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우리의 구원
(갈 3:13, 고전 15:1~8 )
서론 :
갈라디아서 3:13의 배후에 있는 사상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의 그리스도의 현현에서 체험한 사건의 일부
이다. 요점은 “충성된 유대인이었던 바울에게 있어서, 신 21:23에 나오는 저주는 언약의 축복(신27~28)과
반대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 것은 언약이 폐지되는 것”, “언약 밖에 내쳐지는 것“ (신28:58~68) 즉 이방인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하나님이 그를 거부하셨으며, 그를 이방인 가운데 포함되게 하셨다는 것”
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것은 이러한 추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즉, 하나님은 저주받은 자, 언약밖에 있는 죄인, 이방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다시말헤서 롬1:16~17에 있는 말씀과 같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핼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는 말씀이 이루어 진 것이다.
본론 :
(1) 그리스도의 죽음심은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속하기 위함이다.
갈3:10 : 유대인이나, 헐라인이나 모두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3:23)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난다(롬1:18)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즉 “율법 행위로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들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언약 안에서
삶을 영위해 나갈 것이다.“ 라는 뜻이다.
율법행위를 통해 의와 생명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율법 행위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저주를 지심으로 (신21:23)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못한 것 때문에 율법이 우리에게 선포한 그 저주로부터 우리를 속량하셨다
(롬1:18~3:20; 7:4~25)
이 속량의 목적은 유대인들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 곧 이방인들의
구원(갈3:8, 창12:3; 18:18)도 실현되도록 하는 것 역시 그 목적의 한 부분이었다.
(2) 믿음으로 약속된 성령을 받는 것을 약속하심(갈3:14, 겔36~37)
과거의 악행들이 사면되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었으므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선언함 : 11절)
이제 저주 아래에서 구속함을 얻은 사람들은 주 예수의 날에 마지막 심판을 받을 때, 종말론적 소망을 획 득하기 위해,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전 1:7~8, 5:11~13, 고후5:10)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고전 6:9~11에 열거된 죄들을 피하면서 “의롭게 된” 상태로 혹은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기초하여 성령을 받아,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의로운”
사람으로 남아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갈5:16~26; 롬6장, 8:3~17)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된 이방인인 우리는 율법의 행위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순종” 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데살로니까 전서 4:1~8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율법행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롬 8:1~17) 그리스도의 법을 순종(갈6:2; 고전 9:21) 하는 삶을 말한다.
데살로니까 4:8은 에스겔서의 말씀들(겔36:26~27; 37:6, 14)을 되풀이 한 것에서 예레미야 31:31~34
과 함께 로마서 8장, 고린도후서 3장,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바울의 성령과 율법, 성령과 육체간에
에스겔 36:27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하도록 하기 위해 새 언약의 시대를 살기
위한 성령이 약속됨에 감사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선언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로 난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썼다” 고 바울은 비난한다.
로마서 9:31~32에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투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의” 에 대한 무지의 까닭이었다.
의는 율법의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사실에 대한 무지이기도 하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율법의 행위를 통해, 그들 자신의 의를 학립하려 고집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롬9:31에서 바울은 그 이유가 그들이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는 “율법이 이르지” 혹은 “율법에 따라”
살지 못하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롬9:30~10:4에서 바울은 로마서 2:12~3:26에서 확증한 요점을 되풀이해서 말하기를
이방인들이나, 유대인들이 의를 얻는데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았기 때문
이거나,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갈3:10~14)
이제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었으므로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의를
얻을 수 있게되었음을 감사하자.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행위)을 통해 의를 얻으려는 모든 시도에 마침을 의미한다. (롬10:4)
결론 ;
(1)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으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심판 때, 하나님의 진노에서
주의 백성들을 건지시기 위함이다. (살전1:10; 5:9~10, 23)
이것은 오직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서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임을 가르친다.
왜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이 종말론적인 구원 사건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바로 데살로니가전서
5:9~10말씀이다. 또한 고린도전서 15:3~5에 기록된 말씀은 “복음의 진수다.”
전파된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복음” 안에서 선포된 객관적인 구원 사건을 구체화시킨다.
그래서 그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와 죽음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 된다.
(2)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으며(살전1:4), 우리를 부르신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 하셨다.(살전2:12)
그 신적인 선택과 부르심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주도권적인 주도권과 은혜는 성령을 통헤서 유지하게 된다(살전4:7~8)고 말했다.
바울은 “미쁘신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시는 마지막 심판 때까지 자신이 택하신 자들을
계속 성화시키시고 흠없이 보존 하시리라는 것이다.(살전 5:23~24)
(3)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저주를 지심으로 (갈3:13)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이다.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해방된다” 는 뜻이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재판관이시다. (롬8:33)
그 이유는 어느 누구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 뿐이랴! 그 분은 모든 악한 세력을 이기시고 승리의 부활을 하셨다. 그리고 그 분은 하나님의
전권대사(하나님의 아들)로써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이 바로
그 분이시다. 그래서 누가 우리를 송사한다 해도, 우리에게는 다시는 정죄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나,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엄숙히 선언한다. (롬 8:35~39)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곧 복음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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