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관복음 | 요한복음 | |
예수님 | 인자인 하나님의 아들 | 신자인 예수 |
신분 | 구속자 메시아 |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
사역 | 하나님 나라 | 교회 |
성격 | 사역적(교회 밖: 외향적) | 관계적(교회 안: 내향적) |
제자들 | 천국 복음의 사역자 | 목양을 위한 목회자 |
마지막 장 | 선교 명령 | 목양 명령 |
마지막 설교 | 성전 강화 | 다락방 강화 |
마지막 예식 | 성만찬 | 세족식 |
활동 무대 | 갈릴리 | 유대 |
공통점 | 제자 양육 | 제자 양육 |
목표 | 세계 선교 | 제자화 |
예수님의 삶 | 지상 삶과 공생애 | 천상 삶과 공생애 |
1. 서론
1) 공관복음서란?
성경 66권 중 복음서라는 말은 여기 4복음에만 붙는다.
그 중 공관복음(共觀福音)이란 같은 관점에서 함께 바라본다는 의미의 복음을 말하고,
여기서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롬1:2-6)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 즉 천지창조 이후 4천여 년의 구약성경에도 아담의 후손들,
특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 자손들의 이스라엘의 역사가 있고, 교훈이 있으며,
십계명 등 교리와 예언의 말씀에 대한 기록이 있듯이
여기 복음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및 그 후손들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시고,
아담의 원죄와 인간의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십자가 복음의 성취와 부활에 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2) 그렇다면 왜 하나의 복음을 요한복음을 포함, 4개의 복음서로 나누어 기록했을까?
여기 공관복음서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마태와 마가, 누가에 의하여 AD60년경
기록된 3대 복음서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같은 관점으로 기술한 것이다.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두세 증인의 입의 말을 통해서 확고해진다.
그러나 바라보는 관점은 같아도 귀납적이나,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와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다 똑같지는 않고 그 순서와 내용상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각 복음서의 주제와 내용을 간단히 적시하고 3대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살펴보기 이전에 각 문제점을 짚어보자.
(1) 마태복음은 구약 하 하나님께서 약속한 ‘메시아’를 갈망하는 예루살렘의 유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말씀인데 십자가 사건으로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의 변천사이며,
(2) 마가복음은 로마교회의 이방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이 구약 하 예언된
‘고난 받는 종’ (이사야53장)이라는 주제로 기술되었고,
(3) 누가복음은 이방인 특히 그리스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오신
구원자’라는 것을 표현한 역사서 내지는 교훈서이다.
3) 4복음서, 네 복음서 하는데 그럼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다른 것인가?
(1) 그렇다. 공관복음서와 누가복음의 속편격인 사도행전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적을 다룬 교훈 내지는 역사서이고,
요한복음은 AD80년 이후 공관복음서를 보완, 완성하기 위해 기록된 것으로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다루면서도 교리적인 면을 다룬 유대인만이 아닌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신 후 뒤늦게 기록한 이 요한보음,
그리고 요한1-3서와 요한계시록까지 연결시켜 보아야 한다.
(2) 요한복음 20:30-31을 보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이 나온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3) 하나님이 세상을(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따라서 신약에 대해 부언하면, ①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서신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교회와 이방인에 대한 교리 및 지침서이며, ② 히브리서는 유대 그리스도인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밝힌 것이고,
③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 등 일반서신은 다분히 유대인 중심으로 구원받은
자들의 고난과 행위의 지침서이다.
④ 요한1,2,3서는 하나님이 어떻게 육신으로 오실 수 있느냐는 영지주의를
배격하고자 사도요한이 AD90년경에 기록한 것이며(요일5:19)
⑤ 요한계시록은 AD95년경 요한이 마지막으로 계시 받은 일곱 인과 재앙,
나팔소리와 함께 이룩되는 재림과 휴거, 첫째부활과 둘째사망에 따른 심판, 그리고
비로소 성취될 천년왕국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2. 4 복음서의 문제점과 상호 보완성(통일성)
1) 그럼 공관복음서의 문제는 무엇일까?
신학적으로는 18세기 중엽 이래로 공관복음 상호간의 관계가 줄곧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는데, 성경 텍스트 간 유사성과 상이성을 그 순서와 내용에서 찾으려는
학문이 과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무엇을 하셨는지, 그 가르침은
무엇이었는지,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삼으신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아는데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문자적으로 마태와 마가복음에서는 무엇이 일치하고,
누가복음에는 무엇이 빠져있는지를 살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듯하다.
왜냐하면 이 3개의 복음서는 서로 대상을 달리하고, 같은 관점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바라보지만, 저자의 중점 주제와 그 기록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배경과 상황의 전개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이를테면 교회를 다니며 나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많은
성도들이 신약성경 마태복음 제1장을 딱 펴는 순간, 구약에서 그렇게 봐온 ‘낳고,
낳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의아해하고 질려 그냥 흥미를 잃고 더 진전하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진정 왜 마태복음에 이 예수님의 탄생 전 그 족보가 중요하고 기록되어야만 했는지
마태의 저자로서의 의도와 기록목적을 모르기 때문에 빗어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마태가 전통적인 유대인을 대상으로 조상 아브라함의 언약 이후 구약 하
일관되게 예언되어 온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을 염원하는 입장에서
그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리고자 했기에 이를 상기시키고,
그 족보만 읽어 내려가도 구약의 전체를 볼 수 있다는 중요성 때문이었다.
(참고로 누가복음3:23-38 에는 그 족보가 예수님을 기준으로 거꾸로 올라간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마1:1)고 시작하여,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14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14대더라.(마1:17)
(14+14+14=42라는 중요의미의 숫자와 아브라함 전 2,000년과 그 후 2,000년의
역사가 나온다)
따라서 마태와 마가, 누가복음은 모두 신약성경 처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지만,
시대적 배경으로는 4분된 헬라제국 하 앗수르와 애굽을 기반으로 한 세력다툼에
피폐해 있었으며, 이후 로마제국의 극심한 핍박(네로 왕) 중에 있게 됨으로써
각 복음서의 내용에 비추어 기록순서를 추정해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예수님의 지상사역기간은 신약시대가 아닌,
구약시대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제대로 공관복음서가 풀려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그리고 한동안 신약성경은 없었다.
2) 공관복음서 문제의 해결
18C 유행한 문학(자료)비평에 따르면 공관복음서의 이 같은 문제 해결책으로
신학상 원복음설, 전승설, 사용설, 단편설, 두 자료설, 독립설 등이 제시되어 있으나,
예수님의 행적을 좇으며 여러 비유의 말씀과 교훈을 배우고 깨닫고자 하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신학의 본질을 왜곡시키는 세상학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3) 요한복음의 문제점과 필요성
각 복음서 간의 공통점과 상이점의 발생 원인을 밝히고,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특정한 순서법칙을 예수님과 직접 동행한 제자들의
생생한 기억에 의한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도 소중하겠지만, 이 공관복음서는 지극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인성이 강조되었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서신서가 기록된 후, 20여년이 지난 AD80-90년경에 써졌다.
그러다 보니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독립된 것인가? 아니면 공관복음의 자료를
참고하고 보충하여 보완하려는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크게 개의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왜 신학계에서는 인간사상의 흐름에 따라 이런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지......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의해서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진 것 아닌가?
지상사역을 끝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신성과 성령의 보내심 등 그로인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에 더 초점이 맞춰져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로 시작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연역법적 기술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게 되면, 또 다른 보혜사를 하나님께 구하여 너희에게
주리니(요14:16, 26, 15:26) “성령을 받으라.”(요20:22)고 간곡하셨다.
그리하여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이어지고 이후 비로소 제자들이
적극적으로 복음전파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알기 위해서는 4복음서를 어떠한
입장에서 달리 무엇을 강조하려 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관계
1) 상호 공통점
4 복음서는 공히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이며 주 되심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서 내 뿐만이 아니고 요한복음서와는 거의 그 주제와 사건, 사역의
무대와 내용을 달리한다.
예수님 한 분을 놓고 그분의 생애를 기록한 것인데 어떻게 그리 달리 볼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한 사물을 놓고 사방에서 바라보는 모양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또한 그의
입장과 생각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리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여러 각도에서 한 인물을 바라보며 다양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하나의 통일성을
기할 수가 있는 것처럼, 이 이 동질성과 차이는 당연한 것이고 틀린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은 공관복음서를 전제로 하여,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시각에서
본서를 기록하였다.
특히 그가 취급한 사건이나 메시지의 약 90% 정도가 공관복음서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들이다. 이 양자 간의 차이점은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의 해설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2) 상호 차이점
(1) 저자, 관점, 기록시기 및 목적, 장소에 따라
복음서명 | 저자 | 관점 | 기록시기(불명확하다-> 내용전개상) 및 목적 | 장소 (정설) |
마태복음 | 마태 (유대인) 세리 | 유대인 | 50-52년 바울2차 여행 시 예수는 다윗의 자손으로 왕 중 왕 | 예루살렘 |
마가복음 | 마가 (유대인) 바나바의 조카 | 고난의 종 | 66-67년 바울2차 투옥 시 고난 받는 예수 로마의 이방인 대상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 | 로마 네로의 핍박 기 64-70년 |
누가복음 | 누가 (이방인: 안디옥) 의사 | 이방인 예수님의 일생 | 60-62년 바울1차 투옥 시 예수님의 탄생-죽음-승천 역사적 고증 인자, 인성 강조 | 로마 바울과 동행 |
요한복음 | 요한 (유대인) 예수의 애제자 | 하나님 예수님의 신성 | 80-90년 예수님의 신성 강조 | 에베소 |
(2) 기적과 비유비교에 따라(횟수 상)
구분 | 병 고침 | 만물 정복 | 죽은 자를 살리심 | 비유 |
마태복음 | 13 | 6 | 1 | 23 |
마가복음 | 12 | 5 | 1 | 9 |
누가복음 | 15 | 3 | 2 | 28 |
요한복음 | 3 | 4 | 1 | 없음 |
구분 | 공관복음 | 요한복음 |
사역의 주 무대 | 예수님의 사역은 최후 고난의 일주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갈릴리 지방에서 이뤄진다 | 사역기간 대부분이 유대지방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다. |
사역의 목적 |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과 이적을 통해 그분이 오신 목적을 알리고자 했다. | 예수님의 이적과 행동은 철저히 자신의 하나님되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
교훈(교리)의 초점 | 예수님은 각종 비유와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관해 설파하셨다. | “나는...이다”(I am...)라는 표현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과 구속 사역의 의의를 세우고자 했다. |
교훈의 방법 | 일상적이 삶과 친근한 상황을 통해 간결한 비유나 금언형태로 메시지를 전했다. | 긴 강화(講話) 형식으로 교훈하시고 필요시에는 논쟁을 통해 교훈을 주셨다. |
적대세력 | 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이었음 적대이유는 모세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파격적 행동 때문였다. | 주로 유대백성들이었다. 적대이유는 예수께서 선언한 자신의 신적 정체성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4. 4 복음서의 내용과 성격(구체적 문제점의 인식)
1)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누가복음은 유일하게 예수님의 12살 어릴 적 시절의 행적이 그려져 있으며,
그 후편 격인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약속인 보혜사 성령이 오순절 강림으로 인하여
본격적으로 사도들의 설교가 시작되고,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탄생하며 그 교회의
성장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특히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십자가 복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2)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1) 1차적 목적: 유대인들의 사역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약의 구체적 성취로 예루살렘의 왕으로 오신 것으로
그 지상사역이 이 3대 공관복음서에 잘 기록되어 있다.
‘이제 내가 말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할례자들의
(유대민족) 사역자가 되신 것은 (구약 하)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확증하려
하심이요’ (롬15:8 KJV역)
그러나 구약의 언약대로(창3:15) 만유의 왕인 메시아로 오셨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주동이 되어 예수그리스도를 거부 십자가에 처형함으로써,
그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계획이 당시 밧모 섬에 있었던 요한에게 AD95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계1:1)하여 천년왕국으로까지 연기되게 된다.
(계1:9, 20:6 첫째 부활한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어떤가? 하나님의 천지창조 후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축출된 인류의
구원계획이 시작되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맺은 언약을 지키시려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그 열심을 엿볼 수 있지 않은가?
①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15:24)고 하시어,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인 한 여인이(막7:24)
(마태복음에는 가나안 여자로 나옴; 마15:22) 자신의 귀신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매 거절하신 이 말씀이 비로소 풀리게 된다.
지극히 냉정하시지 않은가? 그러나 마태복음서에서 말하는 메시아는 이방인이 아닌
유대인, 즉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소위「왕국의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이 말하는 믿음이 크시다고 하시며 구원을 주셨다.
②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10:7, 3:2)라는 뜻;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고(마10:5-7, 행13:46)
이는 하나님의 나라(막1:15)가 이 땅 이스라엘에 실현될 것이라는 구약에서의 일관된
예언의 성취를 말하므로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전인격적으로 변화를 꾀하여야 한다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유대민족을 향한
외침이었다. (여기 천국은 하늘나라가 아니고 이스라엘에 성취될 지상왕국을 뜻한다.)
이것을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오해하면, 공관복음서가 요한복음,
야고보서, 히브리서 등과 함께 뒤죽박죽되고 절대 깨달아지지 않는 가장 큰 문제점을
노출한다.
③ 포도원 농부의 비유; 따라서 마태복음 21:33-46(막12:1-12, 눅20:9-19)에
기록된 이 비유는 타국에 가있던 포도원 주인이 포도 열매를 거둘 때가 되어서
자기 종을 보냈으나 농부들이 죽이는 고로, 또 다시 다른 종들을 보냈으나 또
죽이는 바, 결국엔 자기의 아들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속자를 죽이고
유산을 차지하려 하므로,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 것이라는 경고이자,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른 이방인들에게 빼앗길 것이라는 암시였다.
④ 이를 이번에는 누가복음에서 알아보자! ; 그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이스라엘)을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하니라.(눅1:30-33 KJV역)
⑤ 또한 예수님 탄생을 맞는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눅2:25, 34)
여기 예수님은 누구를 위하여 세움을 받는다는 것인가?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가 되고 84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236-38, 1:68, 딤전5:5, 시111:9, 사52:9)
마태, 마가, 누가 복음에서는 다분히 유대인들 입장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요한복음과는 달리 이방인에 대한 구원은 없다.
단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이루시고 부활하시어 다시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후에야 이방인 구원이라는 지상명령이 내려진다.
(2) 2차적 목적: 열방들의 사역자
① ‘또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니,
이것은 기록된바, 이런 까닭에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주를 시인하시며
주의 이름을 향해 노래 하리이다, 함과 같으니라.(롬15:9-12)
② 부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유대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③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막16:15, 20)
④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가지(오순절 성령이 강림할 때까지: 행2장)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7-49, 겔36:26-27, 시32:15, 사도행전으로 이어짐)
⑤ 이로 인하여 열방의 이방인 구원사역은 사도행전으로 이어져 공식적인 교회가
본격적으로 탄생하고, 특히나 이 일은 바울에 의하여 1-3차 전도여행으로
구체화되며, 로마서를 비롯한 바울서신과 옥중서신으로 꽃을 피우고, 교회의 교리와
성장지침서 등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체계화되어진다.
(3) 또한 최종적으로 사도 요한에 의하여 요한복음, 요한1~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으로(AD90-95년경) 하나님의 심판과 창조 이래 그토록 끈질기게 대치되어
온 사탄(뱀)과의 선과 악의 투쟁이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결판이 나고
천년왕국을 거쳐 곡과 마곡의 전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이
도래함으로써 에덴동산이 회복되고,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역사기록인 측면이 강하므로
4복음서라고 하지만 요한복음과는 엄격하게 구별하여 이해하여야 하고,
따라서 아직 신약시대가 아닌 로마의 침략기에 있었다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 시점으로 돌아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천사의 눈,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공관복음서를 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그 인물과 배경을 달리하나, 하나님의 구속계획과 사랑 그 신앙적
소망은 변함없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5. 교회의 태동과 변질 그리고 심판 (결론)
1) 초대교회의 태동과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
아직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있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십계명이라는 모세의 율법과
성막을 통한 레위의 제사법과 절기 등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았으나, 말라기 이후 사사가 400년 동안 없었지만,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십자가 대속과 피의 보혈로 단번에 죄 사함을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법을 사람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히8:10, 렘31:33) 새 언약을 맺고, 하나의 작은 성전을 이뤄가기를 원하시는 바,
우리가 주를 진정 사랑한다면,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요14:15, 21)
아직도 지금은 심판 전 은혜의 교회시대이기에 예수님께서 사역 중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란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반석이라는 뜻)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하셨다.
그리하여 사도 제자들의 사역에 의해 초대교회가 성립되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두가 한 몸이라는 참교회의 의식이 확립되어갔다.
물론 구약시대의 출애굽 후 광야나 성막, 회당들을 교회라고 할 수는 있으나,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개개인의 마음의 성전 안에는
늘 성령 충만함을 받고(엡5:18) 구하여야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2) 로마 카톨릭의 등장과 지배
그러나 AD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된 이후, 십계명 중 우상숭배를 금한 2항을
없애고, 4항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출20:10, 레19:30, 사58:13)을
주일성수로 바꾼 로마 카톨릭 교회가 표면 위로 등장하면서부터
교회가 변질되고 (단7:24-25, 살후2:3-12, 계13장), 538년 교황권은 확립되어 갔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중세 십자군 전쟁을 통하여 극에 달하자,
16~17세기에 활발한 종교개혁이 이루어져 새로운 기독교가 탄생했으나,
다시금 1798년 나폴레옹에 의하여 죽었던 그 세력이 1929년 라테란 조약으로
바티칸이 독립국가로까지 인정되어, 세계 정치의 중심이 되었다.
여전히 예수회에 의한 정계의 침투와 교란, WCC 등의 종교통합을 주창하고, 이제
뉴에이지라는 세계 정치. 경제, 문화의 통합을 꿈꾸는 신세계질서가 판을 치고 있다.
3)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
세상은 낙태와 동성애가 합법화하여 부패가 만연하고 마치 소돔과 고모라,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셨던 노아의 방주 때와 같다.
“오직 예수”만을 외쳤다가는 사회로부터 추방당하고 마치 무슬람의 근본주의자들로
취급되어 탄압과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 (교황 프란체스코가 이미 영적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나?)
작금은 다니엘서나 마태복음24-25장, 요한계시록 등의 예언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원대한 뜻을 깨달아 자신의 확고한 영적신앙을 정립하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미혹의 영을 분별하고, 앞으로 닥칠 환난과 심판에
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싶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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