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이원론적 계시인식론 비판
(기독교 계시인식 모델들과 그 비판을 중심으로)
국문초록
이글의 중심 사상은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E. McGrath, 1953〜)가 본 ‘신적 계시인식’에 관한 연구이다. 이 논지 안에는 중세 신학에서 이해한 초월적 계시와 자연계시, 그리고 정통 개혁주의 신학에서 이해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라는 이중 계시를 통합하여 보게 하는 일원론적 계시인식론의 의미가 들어 있다. 이원론적 계시사상은 기독교 신학 안에서만 보면 별문제 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 이원론적 계시인식에 의한 문제는 시대마다 끊이지 않게 나타났다. 계시의 이원론은 영지주의, 범신론, 그리고 범재신론, 현대에 이르러 과정신학이라는 사상들을 낳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가장 큰 예가 바로 기독론인데, 범신론, 범재신론, 영지주의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론문제를 잘못 해석하여 기독교 안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에 이르러 과학철학과 종교적 관념이 혼합된 예술과 문화로 나타나 기독교 신앙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과학주의와 신 다윈주의, 그리고 상대주의인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는 기독교 사상에 큰 위협을 가하고 있다. 기독교 자연신학은 아직 과학과 철학에 대한 지식이 매우 열악하기 때문에 배타적 세계관을 가지고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특별계시인 성경만이 아니라 인간, 역사, 그리고 자연을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즉 성경 안에서뿐 아니라 성경 밖에서 나타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와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해봐야 한다.
이 계시 사상은 사실 기독교 신학에서 그렇게 장려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는 상황을 좋게 만들지는 않았다. 이신론적 계시인식은 성경에서 주장하는 계시인식론을 버리고 과학적 신 인식론, 즉 이신론으로 나간 것을 말하는데, 그 결과는 다원주의적 종교와 전통들을 모두 수렴(收斂)하는 일로 확장되었다. 이러한 결과 기독교 신학은 세상의 학문과 괴리감만 더 느끼게 하였다. 기독교 계시인식론, 즉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일원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위의 문제들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은 두 왕국이 아닌 하나님의 한 왕국으로서 세워가야 한다. 본 연구가 이 논지를 채택한 근거는 초대 교부들과 종교개혁가 존 칼빈(John Calvin)에게서 이미 신적 계시인식을 일원적 목적으로 나아간 데에서 기인되었다. 옛날에는 이러한 작업이 시대적으로 불가능 하였으나 이제는 가능하다고 본다. 맥그래스는 이원론적 계시인식을 일원론적 계시인식이라는 신학 방법론을 세워 위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고는 맥그래스가 본 계시인식의 모델들을 통해서 이원론적이며 파편화된 계시인식을 일원론적으로 볼 수 있는 문을 열고자 한다.
Ⅰ. 들어가는 말
기독교 전통은 17세기 이전까지 신적 계시인식이라는 개념정의를 내리는 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시는 그것이 초자연적이든 자연적이든 모두 성경 안에 이미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자연이라는 이 세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실재(reality)임을 성경에서 이미 선언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 외의 신적 계시인식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기독교 전통과 달리, 계몽주의 시대(17〜18C)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철학, 정치, 그리고 자연법과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의 신 존재 인식을 과학적 바탕으로 한 실증적 접근과 기계론적 우주를 통한 신 인식을 시도한 때였다. 즉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한 ‘실재의 정체성(identity of reality)’에 관해 논증하던 시대였다. 당시 기독교 전통과 계몽주의의 자연신학 갈등은 결국 이원론을 낳았다. 사실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17세기까지 기독교 밖에서도 이층 구조인 초월적 세상과 현실적 세상에 관한 개념 정의가 확립된 것은 아니었다. 이 개념정의는 17세기 후반에 와서야 비로소 명확하게 구분됐다.
맥그래스도 잘 언급하였듯이, 합리주의 시대는 사람이 어떤 사물을 인식하는 데에 있어서 감각(감성)과 개념(이성)을 가지고 인식하며 논증하는 시대이며, 어떤 실재가 실증되거나 경험되지 않으면 그 실재는 실제로 인정받기 힘든 시대였다. 계몽주의 초기에는 자연탐구를 통한 ‘신적 존재’라는 ‘초월적 실재’까지도 증명해 내려했다. 즉 도구를 통해 관찰하는 타동적 실재론이다. 그러나 기독교 안에는 이로 인한 파장이 적지 않았다. 기독교 신학에도 만물은 어떤 신의 섭리나 간섭에 의해서 유지되는 유신론이 아니라 신과 상관없는 인과율적(因果律的) 법칙, 즉 실재의 존재에 관한 원인 규명에만 관심을 둔 이신론적 사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시대는 무신론에 맞선, 아니 그보다 더 능가하는 이성주의적 신학을 장려하던 시대였다.
현대 무신론 과학자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는 실증(實證)없는 신앙은 진실하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기독교신앙을 비판했다. 도킨스의 이러한 주장은 18세기 영국에서,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는 몇몇 입장들 속에서 영향력을 끼쳤던 실증주의 사상들로 창조교리의 특정사유 방식에 대한 강력한 도전이 되었다.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이성적 접근방식 자체에 대해 문제 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유신론이든 이신론이든 유한자가 무한자를 이성적 접근 없이 인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논리가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그래스는 도킨스의 방법론이 타동적 실재론만을 주장하는 이론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불완전하고 해결될 수 없는 무신론적 방법론이라고 비판한다. 17, 18세기 합리주의 영향으로 인한 당시 기독교 자연신학은 인간의 충족을 불러일으키는 물음으로 시작해야 했다. 즉 이 세상에 신이 정말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 신은 어디서 어떻게 발견하고 인식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신은 인격적인 신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무신론 과학에 맞서, 기독교 옹호론자이자 공리주의 철학자였던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고전적 설계논증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 시계공 논증이라는 유추를 사용하였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19세기 전반에 걸쳐 페일리의 “『자연신학』은 영국 대중들의 종교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기술한다. 설계논증은 기독교의 창조론과 그 맥을 같이하지만, 광의적으로는 기독교 창조론의 일반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설계논증은 나름 자연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은 그의 의도와 달리 큰 난점들 때문에 환원주의라고 비판 받기도 했다. 현대 무신론 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 페일리의 시계공 논증을 눈먼 시계공이라고 비난한다. 무신론과 이신론, 그리고 유신론이 맞물리면서 논쟁되는 근·현대(19〜20c)에 우리 기독교는 무슨 말을 내야 하는가?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기독교 변증을 시도하기에 앞서 기독교 신학 내에서의 계시론에 대한 이해와 세상을 향한 답변을 통한 변증을 준비해야 한다고 본다.
필자는 맥그래스가 본 계시인식의 모델들을 통해, 파편화된 기독교 계시인식의 다양한 접근 방법을 논증하면서 맥그래스가 주창하는 일원론적 계시인식론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려 한다.
Ⅱ. 본론
맥그래스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그리스어 아포칼뤼프시스(ajpokavluyi"), 즉 ‘어떤 것을 가리고 있는 덮개를 제거하여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계시의 기본 뜻을 가지고 기독교 신학 안에서 다양한 측면의 계시 모델들을 소개 한다. 맥그래스는 그의 책,『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교리로서의 계시,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 경험으로서의 계시, 역사로서의 계시라는 다양한 계시인식 모델들을 소개한다. 맥그래스가 소개하는 계시인식의 모델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제공하는지, 그리고 어떤 계시 신학의 문을 열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하게 한다. 필자는 맥그래스가 자연적으로 자연 신학과 계시의 밀접한 관계성을 다루고 있음을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계시 모델마다 본 연구자가 탐구한 신학자들과 맥그래스를 비교 논증하면서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본 논고는 맥그래스가 본 ‘계시인식의 모델’을 살피고 논증하기 전 ‘계시인식의 역사’에 대한 예비적 고찰이 필요했다. 맥그래스는 ‘계시인식의 역사’에 대한 예비적 고찰을 기술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맥그래스의 계시인식을 논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잘 부합하는 루이스 벌코프(Louis Berkhof, 1873∼1957)가 기술한 ‘계시인식의 역사’를 간략히 다루면서 본 논고의 서론을 열고자 한다.
1. 계시 역사에 대한 예비적 고찰
벌코프는 시대에 따라 계시의 개념과 의미, 그리고 인식을 달리하고 있음을 상세히 논한다. 벌코프는 크게 다섯 시대로 ‘계시인식의 역사’를 언급한다. 즉 원시시대, 헬라철학 시대, 17세기 후반까지의 기독교 시대, 17세기 후반 및 18세기, 그리고 19세기 시작 이후의 시대로 나눈다.
➀ 원시시대:
원시시대라 함은 매우 범신론적이다. 신이 동물 내장 안에, 또는 새의 비상하는 가운데 그리고 별자리 등을 신의 행동으로 보았고 징조로 보았는데, 벌코프에 의하면, 원시시대는 이렇게 인위적 징조 해석으로 이해하던 시대였다.
➁ 헬라철학 시대:
헬라철학시대에는 신들이 인간에게 스스로 계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점차적으로 발견했다는 사상으로 바꾸었던 시대이다. 즉 꿈이나 환상 같은 일들을 통해서 계시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고요한 사색을 통해서 얻어지는 시대이다.
➂ 17세기 후반까지의 기독교시대:
17세기 후반까지 기독교 시대에는 그동안 1600년 동안이나 이중적 계시 개념이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었는데, 이제 성경을 통해서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구체적으로 구분하던 시대이다. 하지만 문제는 분명한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벌코프는 언급한다. 물론 중세의 아퀴나스는 자연계시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고, 초자연적 계시는 삼위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비밀을 인간에게 전해줄 수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스콜라신학은 토마스의 이러한 이층구조 때문에 계시개념을 이원론적으로 정리하게 된다.
➃ 17세기 후반 및 18세기 시대:
17세기 후반 및 18세기 시대에는 과학시대의 출발이기도한 시대이다. 벌코프는 특별계시를 희생시키고 일반계시를 강조하는 시대임을 밝힌다. 즉 이신론 및 합리주의 시대의 도래이다. 벌코프에 의하면 이 시대는 자연의 빛은 인간에게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시대이며, 기독교의 계시는 사실상 그것에 아무것도 더하지 못하고, 단지 존재이유가 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사물들로부터 그 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연의 빛을 “재공포”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던 시대였다고 한다.
➄ 19세기 이후시대:
이 시대에는 칸트와 슐라이어마허의 자연의 빛으로 나타나는 계시나 특별계시는 잠정적으로 초월되어 있다고 보고 존재하는 하나의 길을 인식하는 구분된 두 길로 보는 시대이다. 벌코프는 이를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내재에 관한 교리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라고 한다. 쉽게 말해서 칸트는 인간 밖의 초월적 세상은 절대 알 수 없는 영역이며 신은 인간 안에 충분한 신적인 빛을 주었다고 믿었다. 슐라이어마허도 인간 속성 안에 있는 계시는 부동의 자세에서 수동적으로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신을 직관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를 통해 가능하다고 보았다. 칸트와 슐라이어마허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넘어 보다 높은 통일체로 변화시키고 있다. 벌코프는 19세기 계시사상이 헬라철학시대로 돌아간다고 평가한다. 헬라철학 사상은 근대 신학의 범신론으로 발전하게 하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17세기의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래에서 위로 가는 신인식이라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일반계시라고 해서 아래에서 위로 가는 신 인식만을 고집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나타낸다. 맥그래스는 위에서 아래로의 계시인식을 기본 전제로 한 전통적 계시인식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맥그래스는 위에서 아래로의 계시인식과 아래에서 위로 가는 계시인식을 통합한다. 즉 맥그래스에게 있어서는 이원론적 계시인식을 거부하고 있다. 맥그래스의 계시인식론을 다루기에 앞서 그가 제시한 주요 계시 모델들을 통해 문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2. 교리로서의 계시
맥그래스가 사용한 ‘교리로서의 계시’라는 말은 명제적 계시라는 말이다. 맥그래스는 역사적으로 교리로서의 계시, 혹은 명제적으로서의 계시를 보수적 복음주의와 가톨릭의 신 스콜라 학파에서 강조해 왔다고 밝힌다. 그리고 복음주의자들은 계시를 매개하는 것을 성경으로 본 반면에, 가톨릭의 신 스콜라주의 사상가들은 전통이나 교회의 교도권(magisterium)의 역할에 큰 비중을 두어왔다고 한다. 맥그래스는 계시가 대체로, ‘계시의 보고’ 또는 ‘진리의 보고’라는 용어로써 명제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맥그래스는 명제적 계시의 전도자이며, 미국 보수주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칼 헨리를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의 이론은 계몽적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며, 이 사실에서 그의 이론이 명제적 계시를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설명된다”라고 언급한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가 명제적 계시를 정의할 때,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들을 통하여 초자연적 방법으로 알려주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지식적 정보”이며, 곧 성경 속에 들어 있다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밝힌다. 즉 칼 헨리는 명제적 계시론을 주장한다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가톨릭 신학자들도 하나님의 명제적 계시를 주장하지만 그들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을 기초로 삼아 성경과 전통이 가르치는 모든 것은 거룩하고 보편적인 신앙적 계시로 믿고 있다고 밝힌다. 즉, 이 명제적 계시는 오직 가르치는 것에 그 권위가 있다고 주장한다. 맥그래스에 따르면, 이러한 이론은 후기 자유주의 신학자인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에 의하여 비판받았다고 한다. 맥그래스는 린드벡이 이러한 가톨릭의 이론은 “객관적 실재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명제나 진리 주장들”로 비판했다고 한다. 린드벡은 가르치는 권위에 두는 계시가 주지주의적이고 문자주의적이며 객관적 진리를 확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즉 완벽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형태의 명제로 언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가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맥그래스에 따르면, 이러한 계시나 교리를 ‘인지적’으로 이해하려는 신 스콜라주의 계시론은 린드벡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언급한다. 즉 신 스콜라주의, 특히 헤르만 디크만(Hermann Dieckmann 1880∼1928)의 초자연적 계시는 명제적 계시에 도구가 되어 지식을 전해준다고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교리로서의 계시를 택정하는 것도 기독교 역사에서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와 가톨릭의 명제론적 계시이론과 다른 견해들을 나눌 필요가 없음을 시사한다. 맥그래스는 명제적 계시이든 인격적 계시이든 그리고 가르치는 계시이든 서로 부정하고 어느 한쪽만이 옳다고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한다. 즉 “기독교 신학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여러 모델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태도”라고 언급한다. 이는 맥그래스의 생각만은 아니다. 이미 고대 교부들 때부터 이러한 사상은 서로 보완되어 갔음을 알 수 있다. 분파주의자들은 플라톤식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아퀴나스를 구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넓게 생각하면 이는 서로 통하고 보완하고 관계 맺을 수 있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와 달리, “기독교의 맥락에서 계시는 하나님에 관한 정보를 아는 지식과 관계를 통한 지식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계시 개념 자체를 그 두 개념이 상보적이거나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계시에 있어서 명제적 계시라는 의미도 맞는 말이고 인격적인 계시라 해도 맞는 말이라 하겠다.
칼 헨리는 근본주의를 반대하고 신정통주의는 배격하였는데, 성경 계시관에 있어서 헨리의 주된 논적은 신정통주의로 본다. 왜냐하면 신정통주의는 명제적 계시보다는 인격적 계시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칼 헨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자신 스스로 계시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계시한다. 칼 헨리는 하나님이 계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논리 자체는 바르트의『교회교의학 II/1』신 인식론 서론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식 없이는 “교회에서 발언되고 청취될 수 있는 모든 것은 주체 없이 공허한 소리로 허공에 머무를 것이다”라고 밝힌 것과 같다. 이는 하나님 스스로 인간에게 계시하시지 않았다면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계시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고 그 선포가 기록됐으며, 또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을 취한다. 바르트는 인격적 계시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명제적 계시나 인격적 계시라는 의미보다 계시의 말씀으로 보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여기까지는 칼 헨리와 바르트에게 있어서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칼 헨리는 바르트와 달리 성경 안에서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를 모두 인정하고 포괄적, 혹은 점진적으로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계시가 드러나지만 결국 종말에 가서 모두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칼 헨리의 명제적 계시의 정의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이라는 틀 안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바르트는 성경안에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보기 때문에 칼 헨리와 다르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보다 바르트에 가깝다. 맥그래스 역시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를 구분하여 보려하지 않는다.
스탠리 그랜즈도(Stanley J. Grenz, 1950∼2005) 맥그래스가 본 칼 헨리의 명제적 계시를 인정한다. 그랜즈는 “성경적으로 강조된, 복음적인 명제주의의 옹호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20세기 후반기에 가장 현저한 복음주의 신학자로 불리어진 칼 헨리보다 더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학자는 없었다”라고 밝힌다. 그랜즈는 명제적 계시가 이미 종교 개혁이래로 신학을 성경을 요약하는 중심적 기능으로 보았다며, “자연계 과학자들이 탐구에 순응하여 밝혀지듯이, 성경의 가르침도 객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의 결과로 자연과학이 자연계시의 수많은 사실을 조직화하는 것이듯, 조직신학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사실들”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성구사전식’(concordance) 또는 ‘명제주의적’(propositionalist) 접근방법이라고 부를 것을 언급한다. 이렇게 되면 명제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신학은 곧 성경을 요약한 명제적 계시범주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랜즈는 칼 헨리와 달리 신정통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명제들이나 정보들을 드러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특히나 강조했음을 피력한다. 여기에는 성경 자체나 성경을 요약하는 신학자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정통주의자들은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의 분리를 주장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신정통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를 분리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러한 보수주의자들의 견해에 그랜즈는 찬성한다. 왜냐하면 신앙과 객관적인 하나님의 계시는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랜즈는 신학에 대한 성구사전식 이해는 신학의 상황적 성격에 대해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명제주의자들의 전제와 다르며, 신학이란 본질상 상황적인 학문 분과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그랜즈에게 있어서 명제적 언명에만 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한다. 즉 “하나님의 본성과 성품을 밝히는 일에서 이야기와 전통이 맡는 역할에 좀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밝힌다.
에릭슨은 칼 헨리와 달리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의 상보적 입장을 드러낸다. 그러나 에릭슨 역시 성경 안에서 보려는 성향으로 볼 때 결과적으로 칼 헨리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릭슨 역시 맥그래스와 다르다 할 수 있다. 에릭슨은 신정통주의(neoorthodoxy)자들에게 있어서 계시를 정보(명제적)로 보는 것보다는 인격적 계시로 본다면서, 그들은 하나님은 정보가 아닌 직접 자신을 인격적으로 드러내신다는 것으로 본다고 소개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정통주의자들에게 있어서 계시란 명제적인(propositional)것이 아니라, 인격적인(personal)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계시에 대한 이해를 반영한다. 믿음이란 그 명제들에 대한 지적 동의 그 자체를 믿는다. 하지만 계시가 인격적으로만 주어지는 것이라면 믿음은 인격적인 신뢰나 헌신의 행위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에릭슨은 인격적 계시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한다. 즉 계시를 인격적인 계시로만 이해한다면 신학이란 계시된 일련의 교리들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한 것 중 교회가 발견한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시도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에릭슨은 어떤 사람을 신뢰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를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언급한다. 즉, 만일 성경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대한 서술이 없다면, 어떻게 그들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을 알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달리 말하자면, 만일 누군가에게 어떠한 물건을 맡길 때 그 사람의 인격을 믿으려면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한다. 에릭슨은 “만일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과 신분을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우리가 만나는 하나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본 연구자가 볼 때, 에릭슨에게 있어서 명제적 계시 없이 인격적 계시는 불가능하다. 즉 그는 성경 안에서의 인격적 계시를 말하고 있다. 에릭슨은 인격적인 계시만을 믿는 사람들도 비록 믿음이 교리적인 명제에 대한 신앙임을 부인하지만, 그런데도 그들 역시 믿음을 정의하거나 교리적 이해를 기술하는데 매우 관심을 기울인다면서 신정통주의 자들을 우호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에릭슨에게 있어서 계시는 명제적, 또는 인격적 계시 중 어느 하나이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not either...or) 두 가지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both/and)고 언급하면서 이 둘을 분리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결과로 에릭슨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성경을 놓는다. 즉 성경은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그는 점진적(progressive) 계시라는 말로 이 둘의 관계를 정의한다. 에릭슨은 점진적이라는 개념을 후에 나타난 계시는 앞선 계시를 기반으로 하여 세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이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언급한다.
예수님이 율법의 가르침들을 확대시키고 내면화시킴으로써 그것들의 수준을 한층 높이신 방법을 주목해보라. 그는 그의 가르침을 시작하면서, “…을 너희가 들었으나…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셨다.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히브리서 저자는 과거에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으니, 그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하였다(히 11:1〜3). 하나님의 계시는 구원과 같이 점점 더 완전한 형태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결국 에릭슨은 신정통주의자들과 전통적인 기독교와 계시개념 의미에 대한 합의점을 이끌어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에릭슨은 명제적 계시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성경자체가 명제적 계시이기 때문이다. 즉 인격적 계시를 수용한다 할지라도 결국 에릭슨은 성경 안에서 만의 인격적 계시라 할 수 있다. 에릭슨의 이러한 정의 역시 맥그래스와 같지 않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와 위에서 열거한 신학자들과 달리 좀 더 발전된 의미에서 계시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맥그래스는 계시란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격적인 자기 드러냄을 의미한다”라고 정의한다. 맥그래스의 이 말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냄에 예수가 그 절정에 이르고 완성된다 할 수 있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이러한 정의는 “이미 20세기에 다양한 인격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고가르텐(Friedrich Gogarten, 1887∼1968)과 임마누엘 히르쉬(Emanuel Hirsch, 1888∼1972),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 같은 신학자들이 강조했다”고 한다. 즉 맥그래스는 계시와 관련해 성육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자연스럽게 명제적 계시와 인격적 계시 그리고 자연적 계시의 연결로써, 필자가 본 논고 각주 2에서 밝힌바 있는 ‘삼위일체적 자연신학’이라고 하는 새로운 신학용어를 탄생시킨다. 성경 안에서 나타나는 일반 계시가 성경 밖에서 나타나는 일반 계시와 다르거나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맥그래스는 자연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통해서 성경 안에서 말하는 일반 계시가 성경 밖에서 말하는 일반 계시와 다르지 않음을, 오히려 그동안 명제적으로 가리어지고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더 드러난다는 관점으로 본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전통적 기독교 신학의 문제점은 맥그래스가 잘 지적한 데로 성경에서 계시되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일반 계시와 연결하지 못하는 데 있다. 그래서 기독교 신학 밖에서는 자연적으로 성경 안에서의 하나님을 신화적으로 또는 종교적 신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보면, 인격적 계시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음을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예수를 인격적인 계시로 인식하여 자연스럽게 자연계시와 연결한다면 과정신학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인격적 계시에 따라 말하면, 우선 과정신학은 하나님이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설득을 통해서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죄악과 재해와 고난에 있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제1 원인자에서 제외시킨다. 따라서 하나님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논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주장하는 성경에 위배되기 때문에 맥그래스의 삼위일체적 자연신학이 그 대안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볼 때, 맥그래스는 칼 헨리가 명제적 계시만으로 주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할 수 있으며 성경밖에 있는 일반계시도 하나님의 것으로 여겨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맥그래스는 칼 헨리의 명제적 계시모델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계시인식에 대한 정의와 비교 논증하고 있다. 맥그래스는 명제적 계시이든 인격적 계시이든 그리고 가르치는 계시이든 모두 하나님의 계시로 인식하길 원한다. 성경 문자주의자들 입장에서 볼 때, 맥그래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성경 문자주의자들은 오직 성경 외에 다른 어떤 사상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맥그래스의 이러한 견해에 크게 동조한다. 왜냐하면 성경 역시 인간의 언어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도 성경 밖에 있는 인간의 역사와 연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은 명제적 계시 모델과 달리 인격적 계시의 입장에서 강하게 주장되고 있는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 모델’ 즉 부르너의 계시관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3.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
맥그래스가 두 번째로 밝히는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관은 중간에 어떤 매체를 불필요로 하는 계시모델이다. 즉 직접적인 ‘나’와 ‘너’라는 관계적 계시이다. 이는 명제적 계시를 주장하는 자들과 달리하는 신정통주의자 에밀 부르너의 사상이다. 맥그래스는 부르너의 이러한 계시 사상이 유대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다. 맥그래스는 부르너에게 있어서의 계시관은 하나님에 관한 단순한 정보가 아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에게 정보만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현존을 전달하는 일과 관계가 있다. 때문에 부르너에게 있어서 계시의 개념은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이 오직 하나님의 자기 내어줌을 통해서만 전달 될 수 있다”고 본다. 부르너의 이러한 이해는 마틴 부버의 ‘나와 너’ 및 ‘나와 그것’의 동일성 차이를 분석한 것을 기초로 삼은 것으로 계시는 분명히 관계적 본질이라 할 수 있다.
맥그래스는 마틴 부버의 ‘나와 그것’의 관계와 ‘나와 너’의 관계가 무엇인지 두 개의 관계를 잘 이해시키고 있다. 첫째, ‘나와 그것’의 관계라는 부버의 말은 주체와 객체의 관계, 즉 인간과 연필의 관계와 같다. 이는 ‘나’ 라는 인간은 능동인 반면에 ‘그것’이라는 연필은 수동적이다. 즉 “이 구분은 철학적인 언어로 흔히 주체-객체 관계라고 불리는데, 이 관계에서는 능동적인 주체(여기서는 인간)가 피동적인 객체(여기서는 연필)에 관계한다”고 한다. 둘째, ‘나와 너’의 관계는 부버 철학의 핵심에 이르게 되는데, ‘나와 너’의 관계는 능동적인 두 주체, 곧 두 인격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상호적인 관계는 매우 특별하다. 맥그래스는 “부버의 ‘나-너’ 관계라는 개념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관계 그 자체, 곧 두 인격을 이어주는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끈”으로 정의한다. ‘나와 그것’은 간접적이기 때문에 어떤 객체를 통해 매개되고 특정한 내용을 지니는 반면에, ‘나와 너’의 지식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것이지 그 중간에 어떤 매개가 필요 없다. 예를 들면 ‘그것’은 무게와 색상 같은 것의 측정을 통해서 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나 ‘너’는 어떤 객체를 통한 매개가 필요 없이 직접 알 수 있다. 즉 상대를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인식한다는 것이 부버의 관계철학 논리이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이러한 부버의 철학적 논리는 부르너의『만남으로서의 진리』(Truth as Encounter)라는 저술을 낳게 했다. 인격적 만남이라는 내용으로 부르너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인격적인 관계, 또는 인격적 만남이라는 계시이해를 낳는다. 부르너에게 있어서 계시란 역사적이며 인격적이다.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역사적이라는 것은 “진리란 영원한 이념들의 세계에 속한 항구적인 것이 계시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거나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시 공간속에서 발생하는 것”라고 말한다. 즉 진리는 시공간 속에서 하나님이 행위로 존재한다.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인격적이라는 말은 하나님에 관한 개념 자체가 교리들로 구성된 복잡한 논리적인 명제적 집합체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 바로 그 자체를 의미한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부르너는 “그리스도가 누워있는 구유”라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면서 명제적이고도 객관주의적인 계시개념을 비판한다. 즉 “계시는 단순한 지식의 소통이 아니라 생명을 나누어주고 삶을 새롭게 하는 교제”로 보았다. 달리 말하자면, 일차적으로 계시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인격적 관계 형성 또는 소통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주님은 정보자가 아니라 살과 피를 지니신 참사람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신학 함에 있어서, 부버의 철학적 논리를 생각하면, 부버는 ‘나와 그것’과 ‘나와 너’라는 이 두 관계 모두 포함하는 논리를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준다고 밝힌다. 하나님은 본질상 그것이 될 수 없는 인격적인 관계로 정의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계시란 하나님에 관한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나와 그것’이라는 말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로서 맥그래스는 부르너가 부버의 ‘나와 그것’을 포함시키지 않음을 비판한다. 맥그래스는 부버의 ‘대화적 인격주의’ 또한 수동적 객체라고 보는 개념의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한다.
19세기 자유주의는 하나님을 능동적인 신학자들이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 객체라는 것인데, 여기에 부르너의 ‘만남으로서의 진리’라는 글로 하나님을 ‘너’로 능동적인 인격적 주체로 봐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이란 인간의 하나님 탐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맥그래스는 강조한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인격적인 하나님’만을 강조할 때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다. 맥그래스에게는 공유적 속성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신적 속성은 무한하다. 즉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때 어디까지 밀고 나갈 수 있으며, 고난당한다 할 때 어디까지 그런 말을 쓸 수 있느냐이다. 맥그래스의 이러한 이해는 에릭슨의 유비 개념에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유비’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동한(同閈)’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에릭슨은 인격적인 하나님을 강조할 때에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즉 “인간이 능력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능력이 있으시지만 그 도(度)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많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아신다고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이 안다고 말할 때와 같은 의미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제한된 것들만을 알고 있는 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라고 강조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무한대로 증폭된 인간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피력한다. 에릭슨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단지 형태일 뿐 하나님의 무한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의 유비 개념을 정의한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에릭슨의 유비 개념적인 의미로서의 인격적 관계로 설명하지 않지만, 맥그래스의 인격적 관계 계시의 비판에 있어서, 즉 계시에 있어서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하기 때문에 유비적 사용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에릭슨의 유비 개념 정의와 동일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유비를 세울 수가 없기 때문에 부버의 관계 개념을 통한 부르너의 신학 역시 그 한계가 드러나 있다 할 수 있다.
부버는 근원어, 즉 존재 자체를 말할 때 ‘나’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다만 근원어 ‘나-너’의 ‘나’이거나 근원어 ‘나-그것’의 ‘나’일 뿐이라고 한다. 부버에 의하면, 사람의 삶은 타동사의 영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은 으레 다른 ‘것’도 그 곁에 존재하게 마련이라고 한다. 부버는 모든 삶의 경험과 삶은 관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부버는 철학적 관점에서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사물을 언급한다.
부르너는 부버의 이러한 관계적 유비를 통해 단순히 신과 인간의 관계를 언급한 것이다. 계시인식에 있어서 부르너는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볼 수도 알 수도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눈이 열리게 되었다고 강조한다. 부르너는 그리스도 예수에 서서, 계시에 있어서 자연적 계시와 죄에 대한 계시라는 이중계시를 말한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죄인 된 인간이 늘 연약하기 때문에 보호하고 함께하고 질서를 잡아갈 수밖에 없는 관계로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부르너는 인격적 계시인 ‘나와 너’라는 관계를 설명하였다.
필자가 보기에 맥그래스는 부르너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전제로 인격적 계시를 볼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그의 신학 전체에서 볼 수 있다. 맥그래스와 부르너의 계시성에 대한 표현이 다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본 연구의 목적대로 맥그래스가 본 부르너의 계시론은 인격적 계시를 언급함에 있어서 많은 통찰력을 보여준 계시모델이라 생각한다. 부르너는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인격적 계시인식을 거부한다. 즉 부르너는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제하였다는 측면에서 맥그래스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으나, 부르너의 계시모델 문제는 전통주의 신학과 다르지 않은 기독교 신학 안에서만 머물러 있고 자연신학에 대하여 진일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결국은 부르너의 관계적 계시는 바르트의 초기 주장처럼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를 일원론적으로 묶는 것을 거부한다 하겠다. 부르너는 바르트처럼 계시인식을 기독론을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성경에서 제시한 계시인식을 그대로 성경 밖에서도 인식되기를 원하고 있다.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야말로 말씀 선포이며 실재는 우리의 삶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실재들이라고 주장한다 하겠다. 맥그래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맺은 칭의를 전제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즉 삼위일체 자연계시를 주창하고 있다 하겠다.
4. 경험으로서의 계시
맥그래스는 19세기의 슐라이어마허를 경험으로서의 계시자로 소개한다.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의 신앙 감정을 모라비아 경건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보았다. 모라비아 경건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헌신으로 말미암아 회심이라는 인격적 자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가 그의 신앙 감정을 갖게 된 배경은 사실 낭만주의의 영향과 관계가 있다고 밝힌다. 낭만주의는 계몽주의시대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온 사상인데, “낭만주의의 발전은 유럽의 기독교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합리주의는 경험과 감정의 결여로 기독교 신앙에서 인간의 현실적인 필요들을 채워줄 수 없었다.
맥그래스는 19세기 초 십여 년 동안 당시 프랑스 상황을 보면, “그때는 신앙에의 갈망, 종교적 위로에 대한 목마름이 컸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러한 위로가 없었던 까닭이다”라고 프랑스 수아 르네 드 샤토부리앙(F. R de Chateaubriand, 1768〜1848)의 말로 당시의 정황을 기술한다. 이러한 신앙의 목마름은 18세기 말까지 몇 년 동안 독일에서도 일어났다. 이러한 현상은 합리주의에 대한 불신의 시대가 접어들음을 의미한다. 결국 합리주의는 종교를 넘어서지 못했다. 이러한 물결위에 19세기에 슐라이어마허가 가속도를 더 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감정의 중요성을 부각하여 당시 합리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시대에 “종교일반이, 구체적으로는 기독교가 감정, 곧 ‘자의식’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가 종교를 무한과 유한한 것들을 통해 알려지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된 감정이라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종교 일반(구체적인 기독교가 아니라)은 과학과 예술에 필수적인 바탕이 되며 이러한 바탕이 없으면 인간의 문화는 메마르고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고 언급한다.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원래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고 밝히면서 종교적 진리를 일차적으로, 교리를 이차적으로 표현하였다고 기술한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신앙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적이라고 언급한다. 즉 “이 경건의 본질은 어떤 합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원리가 아니라 ‘감정’, 곧 직접적인 자의식이다”라고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의 본질을 정의한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이 계시모델의 약점을 지적한다.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가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von Feuerbach, 1804∼1872)와 후기 자유주의 신학자이자 포괄주의자인 린드벡에 의해서 비판받았다고 소개한다. 포이어바흐는 인간의 정신이 하나님이라는 개념을 넣었다고 본다. 즉 우주는 본래 무한한 것이지만 인간이 그 무한을 실제로 투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포이어바흐와 린드벡은 슐라이어마허의 경험을 자아에 대한 경험이나, 인간이 경험하는 그런 경험은 잘못된 보편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즉 감정적으로 직관하는 주관적 경험을 비판한다. 포이어바흐나 포괄주의를 주창하는 린드벡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지만 슐라이어마허의 감정 신앙은 주관적 신앙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의 비판을 수용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절대적 의존감정의 신앙을 가지고 있다. 즉 맥그래스가 19세기 스위스 개혁주의 신학자로 알려진 알로이스 비더만(Alois E. Biedermann, 1819∼1885)이 평한 것을 인용하여 언급한 것처럼 “그는 인간의 깊고 내적인 감정들을 비판적으로 탐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필자는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탐구가 아니라고 본다. 맥그래스는 계시의 모델을 소개함에 있어서 슐라이어마허를 역사적 관점으로 보려는 성향이 있어 보인다. 즉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을 낭만주의에 연결하고 있다.
벌코프는 슐라이어마허를 역사적 배경을 토대로 하여 다룬 맥그래스와 달리 신인식과 신앙에 무게를 두었다. 즉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의 신앙은 그리스도나 교리에 두지 않고 영혼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즉 무한자와, 사물 전체에 대한 조화의 감정에 근거한 새로운 심리적 경험이요 새로운 의식이었다고 밝힌다. 벌코프는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리츨(Albrecht Ritschl, 1822∼1889)의 신학과 대조를 보이면서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신학이 무엇인지를 잘 조명한다. 벌코프에 의하면, 리츨은 신앙이 신적 실재와의 접촉에서 일어난다는 측면에서는 슐라이어마허와 같이 하지만, 신앙의 대상에 있어서는 달리한다. 리츨은 신앙의 대상을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보았다. 리츨에게 있어서 신앙은 어떤 관념이나 교리도 아니다. 벌코프는 리츨에게 있어서 신앙은 하나님의 최고의 계시인 그리스도에게 두었다고 한다. 리츨은 신앙이란 수동이 아니라 능동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신앙을 그리스도나 교리에 두지 않는다. 무한자와 사물을 통해 직접적인 직관에 둔다. 슐라이어마허는 우주론적 직관을 동기로 주관적 신앙을 시사하면서 범신론의 문을 열어놓았다.
리츨과 슐라이어마허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친다. 벌코프에 의하면 현대 자유주의 신학에서 신앙은 인간이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능동으로 이해한다. 즉 “신앙이란 하늘이 일으키는 경험이 아니라 인간의 업적이요, 선물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공로적 행위요, 교리의 인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를 본받아 변화시키는 노력에 의해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는다”고 강조한다. 리츨과 슐라이어마허, 그리고 현대 자유주의 신학의 공통점은 인간의 관점에서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리츨과 달리 윤리와 도덕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비판한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은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있어서 그 방향이 같다. 벌코프는 이러한 사상에 바르트와 부르너가 크게 반발하였다고 한다. 즉 벌코프는 “신앙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예’라는 긍정적 응답으로 하나님 자신이 유도해 내는 ‘예’라는 대답이다”라고 밝힌다.
슐라이어마허는 그의『종교론』에서 기독교 신앙으로서의 계시를 주관적으로 경험하는 계시라고 주장한다. 그의 종교론은 인간 중심과 무한자의 중심을 구별하는데, 즉 형이상학과 도덕은 전 우주 가운데 오로지 인간만을 모든 관계의 중심점으로, 모든 존재의 조건과 모든 형성의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종교는 유한자 가운데 무한자를 보는 것에 못지않게 인간 속에서 무한자를 보며 그 각인된 흔적과 연출을 본다고 주장한다. 그는 형이상학과 도덕이 종교에 많이 침투해 들어왔다고 밝히면서 그로 인하여 종교의 많은 것들이 이 형이상학이나 도덕으로 숨겨지기도 하였다고 주장한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종교는 형이상학과 도덕에 어떠한 방식에서는 대립해야 했다. 즉 “종교가 자기 안에 어떠한 법전도 지니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종교는 우주를 직관하려 하며 우주의 고유한 서술과 행위 속에서 그에게 경건히 귀 기울여 들으려 하고 스스로 어린아이의 수동성으로 우주의 직접적인 영향에 사로잡히고 충만하게 채워질 수 있으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데에는 종교는 어떠한 건물처럼 인간이 인위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인간의 어떠한 관념도 이성도 신비주의도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타자에 대한 직관을 얻는 데 있다. 즉 우주에 떠 있는 별을 보면 기독교 전통의 자연신학처럼 은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별을 보는 순간 신을 직관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어떠한 종교의 사변이나 도덕적 교육이나 강요의 영역에서 벗어나 종교의 고유한 영역만을 특징지으려 한다. 그는 신비주의 또한 경계하였는데 바로 형이상학적 관념이나 수도 같은 노력 자체는 이미 종교를 넘어선 신비주의라고까지 비판한다. 즉 “종교는 믿고 느끼는 사람들을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감정 하에 두려고 힘쓰지 않는다. 종교는 참으로 아직 우주를 직관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그 눈을 열어 보이려고 노력한다”라고 가르친다.
본 연구자가 볼 때, 벌코프와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를 계몽주의로부터 나온 자연과학과 합리주의자들이 보여준 이성주의 시대와 잘 연결하여 설명한 것 같다. 물론 슐라이어마허는 리츨과 함께 계몽주의를 무너트린 낭만주의 시대와 연관성이 있다. 그리고 모더니즘을 통해 나타난 이성과 감성의 조합을 낳는 데에 기여를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맥그래스와 벌코프는 슐라이어마허가 말하고 있는 종교론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단순한 종교 감정론이라는 계시가 아니라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계시는 모든 인간의 형이상학과 도덕을 벗어난 신에 대한 직접적인 직관을 경험한 계시이다. 맥그래스가 계몽주의 반발로 나온 낭만주의와 슐라이어마허를 연관 지어 설명하였지만,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에서 종교 감정에 대하여 논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맥그래스는 슐라이어마허를 통하여 ‘경험으로서의 계시모델’을 간략히 소개하는 역사적 관점으로 보았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은 쉽게 논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슐라이어마허는 단순히 역사적이고 신학적 논쟁 속에 있는 인물로만 취급할 수 없다. 즉 슐라이어마허가 경험한 우주론적 직관은 단순히 계몽주의에 대한 반발로만 여기는 것은 그에 대한 종교 감정론을 크게 왜곡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맥그래스 역시 이 부분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맥그래스에게 있어서 슐라이어마허의 계시인식의 문제는 타동적 실재론을 부정하게 만드는 범신론적 계시인식을 주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슐라이어마허의 계시론은 본 연구에 있어서 문제제기가 될 수 있다. 맥그래스는 성경에서 제시하고 있는 일반계시를 감정신앙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형상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 세계와 인간의 역사를 관찰하여 드러내어지는 하나님의 계시를 풍부하게 맛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5. 역사로서의 계시
맥그래스에 의하면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 1928-2014)는 기독교 계시의 정의를 어떤 특수한 해석 내지는 개인적인 실존적 경험이 아니라 역사 자체로 본다고 한다. 맥그래스는 판넨베르그가 제시한 계시론에 관한 다음 일곱 가지 논제 중, 다섯 논제를 소개하면서, 판넨베르그가 말하고 있는 ‘계시는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그의 계시 기초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⓵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자기계시는 신의 현현(顯現)방식에 따라 직접적으로 발생한 것 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위로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⓶ 처음에는 계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오직 계시 역사의 끝에 가서야 완벽하게 파악 할 수 있다.
⓷ 하나님의 특별한 현시와 달리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 계시는 공적이고 보편적으로 알 수가 있으며,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개방된다.
⓸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는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 의 운명 안에서 역사의 종말이 예시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보편적 계시는 그의 운명 안 에서 최초로 실현되었다.
⓹ 그리스도 사건 그 자체만으로는 하나님을 계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리스도 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역사의 테두리 안에 위치한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기초 위에서 판넨베르그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계시의 중심 사건으로 주장할 수 있었다”고 보았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전개를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파놓은 함정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한다. 포이어바흐의 함정은 슐라이어마허가 주장한 종교적인 자의식이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기인식에서 발출 한 것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결국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와 칼 막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라는 그의 제자들이 무신론과 공산주의를 탄생케 한다. 칼 막스에게 있어서 종교는 아편이고, 기독교의 신은 스스로 계신 분이 아니라 인간의 자의식 속에서, 그리고 환상 속에서 만들어진 신에 불과하다.
맥그래스에 의하면, 포이어바흐의 이론은 서구 자유주의 기독교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밝힌다. 즉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에 반해 포이어바흐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그저 인간 자신의 본성에 대한 경험일 뿐이다. 맥그래스는 “포이어바흐의 비유신론적(Nontheistic) 종교는 외부에서 오는 신과 인간의 만남을 주장하는 바르트 신학과 다툴 때, 그 위세가 상당히 약화된다”라고 밝힌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전적 타자에 의해서 인간이 신 인식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타자, 즉 신 자신 스스로가 우리에게 계시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사실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나 포이어바흐의 유신론적 해석은, 또는 감정이나 심리 쪽으로 비판을 적용할 때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정말 그리스도가 존재했던 역사적인 인물인지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물음에는 판넨베르그는 답을 줄 수 있다. 맥그래스는 사실 판넨베르그가 부분적으로는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에서 나온 결실이라고 밝힌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맥그래스는 판넨베르그가 주장한 역사적 계시가 그 해결책이 된다고 보았다.
필자는 포이어바흐의 종교적 사고는 칸트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칸트에게 있어서 신 인식은 인간의 감성과 이성으로는 절대 알 수 없다. 만약에 신을 인식하였다면 그것은 곧 인간 자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칸트는 신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월적 존재로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신이다. 칸트는 계시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칸트에게 있어서 신을 볼 수는 없지만 인간에 의하여 신의 뜻을 알 수 있었다.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는 칸트가 인간이 도덕적 완성, 윤리적 하나님 나라에 자신의 목적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즉 인간은 도덕적 윤리적 타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신은 역사 가운데 한 인물을 세워 특별한 조치를 취한다. 그리고 “그 인물은 신적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인류의 도덕적 목적을 다시 상기시키고, 인류를 타락에서 건져 내며, 다시금 미덕의 길을 걸어가도록 한다”고 기술한다. 바빙크는 칸트에게 있어서 계시란 외적인 것이며, 한 등장인물을 통하여 발생하며, 이것을 본 인간들은 이러한 계시를 통해 나타난 도덕적 윤리적 목적을 반드시 이해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슐라이어마허는 칸트의 이러한 사상을 비판한다. 즉 신을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음을 말한다. 슐라이어마허에게 있어서 종교적 자의식은 분명하게 구속자를 추론해 낼 수 있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포이어바흐에 있어서 “종교적인 자의식은 인간의 자기인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 자아에 대한 경험이다”라고 해석한다. 맥그래스는 칸트와 슐라이어마허의 인식론이 다르지만, 포이어바흐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추상적인 실재는 통하지 않았다. 과학적 사고에 맞서 무신론자들을 방어 할 수 있는 것은 판넨베르그가 본 역사적 계시가 가장 유효하다. 필자는 맥그래스가 비록 계시의 실재를 과학을 통하여서도 할 수 있다는 논제를 내 놓지만 무신론자들에 대항한 것이기도 하다. 맥그래스는 판넨베르그가 본 역사적 계시가 예수가 이스라엘에게서 나왔다는 실제적 사건을 삼위일체 자연신학에서 함축하여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볼 때, 맥그래스는 계시모델의 대상을 복음주의 신학자 칼 헨리가 본 ‘교리로서의 계시,’ 신정통주의 신학자 에밀 부르너의 ‘하나님의 현존으로서의 계시,’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자 슐라이어마허가 본 ‘경험으로서의 계시,’ 루터란 신학자인 판넨베르그가 본 ‘역사로서의 계시’등을 논하였다. 이 전통들은 모두 현대 신학자들이다. 칼 헨리는 명제적 계시를 강하게 주장하고 인격적 계시는 수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맥그래스와 많이 다르다. 반면에 부르너는 너무 기독론적 인격적 관계만을 중요시 여겨 일반계시가 다소 약하게 보인다. 그러므로 이 또한 맥그래스와 다르다. 슐라이어마허는 우주론적 직관론을 주장하여 계시인식에 있어서 맥그래스와 달리한다. 판넨베르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보는 역사적 계시인식을 주창하였다. 이는 무신론자 포이어바흐와 비 유신론자들을 비판하고, 슐라이어마허, 바르트 등 현대 신학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역사적 사실인 것에 대하여 논증하는데 탁월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맥그래스는 이 가운데 그 누구와도 계시인식론에서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맥그래스의 계시인식론은 성경을 기초로 하되 성경 밖에서 ‘인간중심원리’로 관찰되고 발견되는 자연신학, 혹은 자연 계시들을 실제적으로 드러내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함께 나타내는 원리로 나아가는 데 있다. 이는 그의 과학적 신학, 즉 그의 작품『자연』,『실재』,『이론』과『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자세하게 드러내어주고 있다. 특히『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는 ‘삼위일체적 자연신학’을 통해 세계와 인간의 근원, 그리고 타락과 구원 속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원적 계시인식으로 드러내어준다. 맥그래스는 칼빈이 주장한 것처럼 성경이라는 안경을 쓰고 실제적인 일반계시 -자연, 인간, 역사- 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동성을 드러내고자 노력하였다. 어찌 보면 단순한 논리이다. 그는 특별계시를 전제하여 하나님의 창조물인 세계를 이미 성경 밖에서도 관찰된 일들에 대하여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충만히 역사가운데 드러나고 있음을 알리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과학자인 동시에 신학자로서 이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아직 기독교 신학 안에 세상적인 과학 분야들을 끌어들여 대화를 나누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아직 기독교 신학, 특히 한국적 입장에서는 과학 분야, 즉 일반계시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시도를 한 것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으며 이는 이원론적 계시를 일원론적으로 보려는 시각에 있어서 매우 크게 기여 하였다고 본다.
Ⅲ. 나가는 말
맥그래스가 본 계시 모델들의 방향은 모두가 신의 실재를 증명하거나 경험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실재는 분명 존재하는데 그것을 증명하고 나타내어 실제적인 현상과 연결하려는 의도에서 이루어진 시도들이기도 하다. 맥그래스는 이러한 역사적 고뇌를 읽고 그의 과학적 신학을 통해 자연의 실재와 이론의 합일점을 찾으려 하였다. 그것은 이 논고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맥그래스는 그의 연구『정교하게 조율된 우주』에서 ‘삼위일체적 자연신학’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보았다.
종합해 볼 때, 맥그래스는 19세기 신학으로부터 현대신학에 이르기까지 계시 사상이 아직도 파편화된 채로 남아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본다.
본 논고는 ‘맥그래스의 계시인식론(기독교 계시인식 모델들과 그 비판)’을 통해 일원적 계시인식을 어느 정도 드러내었다고 본다.
과거의 신학, 즉 17세기 이전 신학에서는 일원적 계시인식의 작업이 불가능하였지만, 21세기 과학시대에는 이러한 논증이 가능한 시대라고 본다. 이는 본래 칼빈도 추구하였던 것으로써 그 목적을 향해 진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무신론자들에게는 기독교 신학의 변증을, 세상의 여러 종교와 과학철학의 전통들 앞에서 기독교가 제안하는 신적 계시인식에 대하여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계시가 될 것이라 자부한다.
이러한 작업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차원을 넘어 세상이 모두 성경에서 계시하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들로 나타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낼 수 있다는 데에 기여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개혁주의 생명신학’을 함에 있어서 또 다른 측면을 보게 하였다고 자부 한다.
참고문헌
McGrath, Alister E.『과학적 신학』. 박세혁 옮김.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11.
『과학적 신학 탐구』. 황의무 옮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신학이란 무엇인가?』. 김기철 옮김. 서울: 도서출판 복있는 사람, 2016.
『도킨스의 신』. 김태완 옮김. 서울: SFC, 2007.
『과학과 종교 과연 무엇이 다른가?』. 정성희·김주현 공역. 경기: 도서출판린, 2013.
Berkhof, Louis. Systematic Theology. Carlisle. PA: Banner of Truth Trust, 2012.
Henry, Carl, F. H. God, Revelation and Authority. Vo1. II. God Who Speaks and Shows: Fifteen Theses, part one. Waco, TX: Word Books, 1976.
Barth, Karl.『교회교의학 II/1』. 황정욱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Bavinck, Herman.『개혁교의학Ⅰ』. 박태현 옮김.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Berkhof, Louis.『조직신학』, 권수경·이상원 옮김. 경기: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16.
Brunner Emil and Barth Karl.『자연신학』. 김동건 옮김. 서울: 한국장로교 출판사, 2007.
Buber, Martin.『나와 너』. 김천배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Elders, Leo.『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 박승찬 옮김. 서울: 카톨릭 출판사, 2003.
Erickson, Millard J.『조직신학 개론』. 나용화〮·황규일 공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Grenz, Stanley J.『조직신학』. 신옥수 옮김.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신재식.『신앙과 이성사이에서 아우구스티누스 & 아퀴나스』. 경기: 김영사, 2014.
박찬호.『칼 헨리: 복음주의 신학의 대변자』. 파주: 살림, 2006.
필자 임영동 목사는
샬롬교회 담임이며 백석대에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과학적 신학과 삼위일체적 자연신학>으로 조직신학 학위(M. Div., Th. M., Th. D.)를 취득한 알리스터 맥그래스 전문가이다.
'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교회와 신학의 논쟁 (0) | 2018.03.09 |
---|---|
신학 요어 정리 (0) | 2018.02.26 |
[스크랩] 변증학과 험증학의 기본적 차이점은? (0) | 2018.01.28 |
[스크랩] 멸절주의( Annihilation) (0) | 2018.01.28 |
[스크랩] 존머레이,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요약 (0) | 2018.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