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식과 종말의식
(기독교사상 1991년 2월 특집호)
I. 권두언
종말과 하나님의 나라(남정우)
기독교의 종말론은 요즈음에 주장되는 말세론(말세의 날짜를 명시하거나 재림의 장소를 지적하는 말세론)과는 전혀 다르다. 종말의식은 이 땅위에 실현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에 대한 전망과 직결되어 있으며 현실적 삶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말세의식은 개인주의적이며 현실도피적이지만
기독교의 종말의식은 공동체 지향적이며 현실참여적이다.
말세의식은 노출된 불의와 부패에 대해서 무관심하지만
기독교의 종말의식은 지금 여기에서 회개하게 하고 책임적인 존재가 되게 한다.
말세의식은 소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한 폭력적인 심판을 상상하며 마땅한 것으로 여기게 하지만
기독교의 종말의식은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평화와 기쁨의 관계 속에 살아가기를 전망한다.
말세의식은 순간의 의미에 탐닉하지만
기독교의 종말의식은 영원히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게 된다
말세의식은 조만간 절망에 빠져 허무와 퇴폐주의로 나아가지만
기독교의 종말의식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며 변화 속에서 의미를 찾게 한다.
II. 최영실, 예수와 하나님나라 운동
1. 문제제기
2. 예수의 '하나님나라' 개념의 역사적 배경
3.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나라:억압받던 자들의 해방사건
4. 나사렛 예수에 의해 현재사건으로 수행되는 해방
5. 회개의 선포와 예수의 행동을 통해 실현시킨 하나님나라
6. 나사렛 예수에 의해 실현된 하나님나라 소식의 의미
III. 이상호, 종말사상 출현의 역사적 배경
1.
* 신약성서에 나타난 종말론
살전 4:16, 막 13:25, 행 1; 19~20, 벧후 3: 10~13, 계 8: 6이하.
2.
* 종말사상 출현의 역사적 배경
종교적으로 유대교를 지녔던 초대교인들에서 시작. 특히 유대교의 가르침 가운데서도 예언문학이나 묵시문학의 종말사상을 따름.
유대교도 처음부터 말세와 같은 종말사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실적이었다. 내세나 미래보다도 현제의 복락이 종교의 목표였다. 율법을 지키며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바라던 축복이란 저 세상의 낙원이 아니라 이땅에서 잘 사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이 변함. 응보의 교리로 인해 현세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내세관이 생김. 곧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저 내세에서라도 의인에게 상을 베푸실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서 차차 유대교에 내세의 종말사상이 자라게 된 것이다. 개인의 보상을 토대로 내세관이 이를테면 유대교의 기본적 종말사상을 이루었고 그것은 개인 단위의 규모의 미래를 뜻하는 것으로서 결코 우주의 규모의 종말과 같은 심판이 아니었다.
이런 개인의 보응사상은 마침내 개인의 부활사상에까지 발전. 그리고 개인적인 규모의 종말관은 점차 민족적이고 국가적 차원의 종말사상으로 발전을 보게 됨. 그들은 잃어버렸던 옛 다윗왕국의 회복을 동경하게 되었고 메시야의 왕국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희망이었다. 이렇게 하여 민족 단위의 종말사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들이 대망하던 종말은 천지의 개벽이 아니라 나라의 회복이었던 것이다. 먼저 국가적 차원에서의 민족의 잘못에 대한 심판의 날을 경고하는 예언문학이 탄생하게 되었고 예언문학에 자극을 받아 민족의 새 날을 바라보게 하는 묵시문학의 운동이 펼쳐짐. 바로 초대교인들인 이 묵시문학의 예언에서 종말사상을 배우게 된 것이다.
초대교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묵시문학은 예언문학에 속하는 이사야서의 일부와 요엘서, 말라기서, 스가랴의 일부 그리고 다니엘서와 같은 예언문학들이다. 정경밖에 속한 다른 묵시문학들도 관련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게 영향을 미친 묵시문학은 다니엘서이다.
다니엘서에서는 그들 제국들이 무너지는 날이 있다는 것과 황제들의 지배도 종말이 있다는 교훈을 말해준다. 그러나 여기서의 종말의 날이란 우주의 종말이나 말세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독재자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악의 종말을 가리킨다. 새로운 시대를 예언하는 종말론이다. 신약에 나타난 초대교회 신자들은 바로 이 묵시문학의 종말사상을 이어받아 인자의 날, 곧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새 시대의 역사의 시작을 기다린 것이다. 곧 메시아의 나라, 주님의 강림하시는 날(원어로는 파루시아, 재림)을 대망하는 종말사상으로 발전.
3.
신약시대의 기독교인들도 다니엘서의 시대와 같은 정치적 환경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종말사상에는 또 다른 면, 즉 세상의 종말이나 역사의 끝이 아니라 창조질서의 회복을 기다리는 종말사상이다. 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행 2 : 17, 막 9 : 12~13, 행 1 : 6, 눅 17 : 20~21, 요 6 : 39, 40, 44, 벧후 3 : 9)
4.
재림과 심판을 말하는 바울 역시 종말이 세상의 끝이라기보다 현세에서도 얻을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롬 6 : 11---종말의 사건이 세상의 종말이라기보다 삶이 회복된 현재적인 체험이라고 봄.
고전 15 : 23---종말의 때는 세상의 끝이 아리고 세상의 지배자들의 권력의 끝을 말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새 시대의 시작을 의미.
계--희망적인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젼을 보여줌.
→ 이렇게 신약성서의 종말론은 대체로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전환점을 말한 것이었고 결코 어두운 말세의 우주적인 파멸만을 내다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신약의 종말사상에 두 가지 상반되는 면이 있는 이유?
: 종말론의 축자적 해석을 버리고 재림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 것. 곧 재림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재시라는 것과 성도들은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 안에서 새 시대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5.
* 교부시대의 종말론
그들은 우주의 종말과 같은 것을 더 이상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의미의 구원의 미래를 역설. 오리겐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강조하면서 '아포카타스타시아'의 교리로 종말론을 설명.이는 회복이라는 희랍어로 만물이 다 회복되고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 기독교의 종말사상은 인류의 파멸의 날이 아니라 완성의 때를 기다리는 희망이다. 곧 창조의 시작의 때와 같은 질서의 자리를 되찾게 되는 회복의 날로 본 것이다.
그때부터 천년왕국의 축자적인 이해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점차로 교회가 땅위에 실현된 하늘나라로서 이루어진 종말의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는 금욕적인 수도원과 교회를 통해 하늘의 새 나라를 맛볼 수 있는 것이라고 희망을 품게 되었다.
* 르네상스와 인본주의 시대
서양에서는 유토피아사상이 싹텄고 유토피아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발달 그리고 새로운 정치이념과 윤리적인 선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곧 인간의 힘으로 천국은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종말사상으로 바뀜. 이처럼 서양의 기독교적 유토피아 사상의 출현은 과학과 이성을 힘에 의존하였고 낙관적이며 희망적인 미래를 바라봄으로써 역사의 우주의 종말에 대한 축자적 종말사상과 같은 것을 거의 약세에 몰리게 하였다.
IV. 왕대일, 묵시문학운동의 역사이해
1. 묵시, 묵시주의, 묵시문학의 태동
2. 묵시문학운동-그 종말론의 성격
3. 묵시문학운동의 역사이해
3-1 '악이 지배하는 역사''끝이 있는 역사'--종말의 묵시적 상징화를 보는 시각의 반성
3-2 상징언어 : 현실고발의 암호-묵시적 언어표현에 대한 재해석
3-3 '닫혀진 역사관'-역사적 결정론의 의미 재고
4. 임마누엘 신앙에서 읽어야 될 파루시아
V. 천년왕국신앙과 그리스도교 역사관
1. 그리스도교 역사관의 네 가지 유형
① 말세론적 역사관
② 그리스도론적 역사관 : 역사를 창조 전, 창조 후~메시아의 내림, 그 이후
③ 중복된 역사관
④ 나선형적 역사관
* 그리스도교 역사관과 천년왕국
천년왕국신앙은 현재의 역사가 미래의 특정 시점에 가서 종결되고 그때까지 역사 안에서 각자가 행 한 삶의 질에 따라서 최후심판이 내려질 것이나 그 심판이 있기 전에 그때까지 신앙생활을 한 살아있 는 사람들과 죽은 신자들이 부활하여 재림한 예수와 함께 지상에서 천년동안 왕노릇한다는 주장. 현 역사에 대해
㉠ 현역사는 일시적이고 과도기적이다.
㉡ 현역사는 그 자체 안에 궁극적이고 항구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 현역사는 천년왕국에 동참할 신자들의 신앙도장이다
㉣ 모든 역사는 천년왕국의 시작과 함께 끝난다
㉤ 천년왕국이 현역사의 최종목표와 최종단계다.
2. 천년왕국 신앙의 정의와 특징
천년왕국 신앙은 초대교회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유형의 구원론의 하나
즉 한쪽에서는 구원을 지적이고 영적이며 개인적인 성취로 이해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상에 왕국을 건설하게 될 것이며 믿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산 자와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의 시민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다가 최후심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는 것.
1) 천년왕국설의 정의
탈몬 : 천년왕국 신앙은 총체적 구원이 쉬이(imminent), 전체적으로(total), 궁극적이고(ultimate), 현세 적으로(this worldly) 오리라고 믿는 종교운동이다.
2) 중간적이고 일시적 왕국
그리스도가 신자들과 함께 건설할 왕국은 현세와 내세 중간에 있는 중간시적(interim)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일시적이고 무시간적인 왕국이다. 그러나 천년이라는 시간을 '크로노스' 시간으로서 측정된 '천년'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3)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한 나라
4) 유대교의 묵시문학과 천년왕국설
3. 실현될 천년왕국설
1) 아우구스티누스와 로마 천주교회
2) 요아킴
3) 개신교 안에서의 천년왕국운동
4) 한국교회의 천년왕국운동
박태선의 전도관(천부교)운동, 문선명의 통일교운동, 양도천의 세계일가공회운동
4. 미래기대적 천년왕국신앙
1) 초대교회 교부들의 천년왕국신앙
순교자 유스티누스, 파피아스, 이레네우스, 멜리토, 힙폴리투스, 터툴리아누스, 락탄티우스
그리스도가 영광 중에 재림하리라 믿음. 재림하면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주님 앞에서 대심판을 받아, 박해 중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에서 천년동안 왕노릇하리라고 믿음.
그 왕국이 지금 현재 지상에 있거나 또는 현역사의 시간선상에 나타날 것이 아니라 세상 마지막날에 나타날 것이며, 그것이 나타나면 현역사에는 종말이 온다고 믿음
2) 미국교회의 천년왕국설
17, 18세기 동안에 강렬한 신앙운동이 일어남.
에드워즈--후천년왕국설
교회의 전통적 천년왕국신앙에서 이탈 : 모르몬교(스미스와 영)와 여호와의 증인 운동(러셀)
5. 인류역사에 미친 천년왕국 운동
1) 박해가 심한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끝까지 견디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제공.
2) 수도원운동과 천년왕국 신앙 :요아킴의 역사이해에 영향을 받아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본받은 이 상적인 삶의 공동테를 만들어 보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남
3) 미국의 역사와 천년왕국운동
하버드, 예일과 프린스톤대학의 건국이념에 표출
개인적인 신앙각성운동(에드워즈, 밀러, 피니, 무디 등)
*이탈된 천년왕국설도 등장
4) 한국교회의 천년왕국 신앙
일제시대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일제 탄압하에 있었던 한국교회는 천년왕국에 대한 신앙(말세론) 으로서 그 어려움을 견디었다.
그러나 예수의 가시적인 재림이 나타나지 않음에 대하여 견디다 못해 실현된 예수재림(황국주, 시 온산제국)운동을 일으키기도 했음.
VI. 김철손, 계시록에 나타난 숫자 풀이 문제
1. 숫자 일람표
2. 숫자에 대한 본문 해석적 이해
3. 오늘의 문제
VII. 김경재, 한국인의 위기의식과 종말사상
1. 한국인의 종말사상의 다원적 구성요소
한국인의 본래적 삶의 근본자세에서 볼 때 종말사상 또는 종말신앙이란 이질적인 것이고 낯선 것이다. 한국인의 삶의 태도와 우주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光明理世'요 홍익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숱한 역사의 질고 속에서 세상은 바뀌어져서 생을 다시 긍정할 수 있는 밝은 한 세상이 와야 한다는 현실 비판정신과 사악한 현실에 대한 변혁과 부정의지의 표현에서 이 사상이 대두.
따라서 한국인의 종말사상운동은 환상적 세계로의 도피이거나 현실세계의 궁극적 파국 또는 종국을 대망하는 형태가 아니라 강렬한 현세긍정, 생명긍정의 의지를 밑바닥에 감추고 있는 끈질긴 민중적 생명력의 자기분출이요 사회 집단적 몸뚱이가 막힌 기와 맥을 다시 통하게 하기 위하여 뒤치는 생명 그 자체의 꿈틀거림이다.
이에 종말사상은 본래적 의미에서 성서적 종말사상이든 한국적 종말사상이든 모두 현세 긍정적인 민중들의 적극적인 자기초월적 역사비판정신의 발로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인 종말사상의 첫 번째 특징이다.
또 한국인의 종말사상은 세계 고등종교사상과 우주론의 다원적 요소를 자기 종말론의 구성요소로 차용하여 종교 혼합적 형태의 종말론적 모형을 창출해간다는 것이 두 번째 특징이다. 한국 종말론의 體는 병든 생명, 뒤틀린 세상을 건강하게 회복하는 생명회복이요 그것의 用은 다양한 약초를 약탕관에 넣고 끓여 죽어가는 환자를 살려내는 한 모금의 명약을 만들어 내려는 제약처방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한의사가 여러 우익한 약초를 약탕관에 넣고 끓여 탕제로 하듯이 한국인을 종교 혼합적 종말신앙을 갖는다. 만약 그 수많은 약초들을 하나의 약탕관에 넣고 끓이는 약탕관 그릇이나 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최치원은 유, 불, 선 3교를 능히 포용하는 '한'사상, 하느님 신앙이 있기 때문이다. 그 구성요소는
① 易에 기초한 우주자연의 순환론
② 이기설에 기초한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설
③ 노장적 신선사상 및 無爲而化의 자연주의
④ 정감록적 秘記 참위설
⑤ 아류적 기독교 종파 계열의 재림 말세론
⑥ 불교계열의 미륵신앙
①②에 대한 설명
우주의 삼라만물을 변화하는 동적 실재로 보며 질서 정연한 순환적 운동 속에서도 만물은 각자의 자기 본질과 고유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인간과 인간의 역사적 삶은 자연 우주의 리듬과 맥박, 그것과의 뗄 수 없는 상관관게적 존재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상관적, 상보적, 상생적인 全一生命體라는 실재관 또는 세계관이 남는다. 천지인 三才가 서로 유기적 관계 속에 협동해야 만물이 올바로 化育生成한다는 사상이야말로 한국인의 종말론이랄 수 있는 후천개벽사상을 이해하는 요체가 된다.
⑥에 대한 설명
미륵신앙이란 불교적 유토피아 사상이요 불교적 메시아대망사상이요 역사변혁사상이다. 미륵은 희망의 부처로서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특리 왕조의 전환기적 혼란시대에 민중들의 고달픈 삶은 도솔천에서 강림하여 지상천국을 이룩할 미륵의 출현을 고대하였다.
④에 대한 설명
秘記란 길흉화복을 예언한 기록을 말하고 조짐이나 그에 관한 예언을 말한다.
2. 동학의 후천개벽적 종말사상
동학사상은 전형적인 한국인의 종말사상으로서 후천개벽설과 함께 출현했다. 동학적 종말론으로서 후천개벽사상은 19세기 후반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와 한국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위기상황과 직결되었다. 박종홍은 동학의 기본정신은 우리의 한국적인 사상과 종교체험의 진수들의 결정체이며 19세기 한국이 당면한 역사적 종말의식을 그 전환기적 시대의 위기의식과 고뇌를 전형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것이라 함.
동학의 후천개벽적 종말사상은 時運觀이 작용. 그 특징은
① 易에 기초한 천지운세의 전환이 역사현실변혁과 직결된다는 시운론적 종말사상이다.
② 후천개벽은 뒤틀린 자연질서, 도덕질서, 사회질서 회복을 통해 지상낙원을 회복하는 현실적, 현재적 지상천국을 실현한다는 종말사상이다
③ 후천개벽은 인간만의 인본주의적 유토피아 실현을 통해서도 아닌 하늘, 땅, 사람의 협동을 통한 신 국실현을 강조한다.
이러한 동학적 종말사상은 단순히 식물 주기적, 구형적 우주상 아래에서의 자연순환 반복이론도 아니고 서구 발전사관이 갖는 직선적 신의 시대경륜 과정도 아닌 나선형의 순환적 상향운동이면서 항상 '지금 여기'라는 현재적 삶의 자리를 운동기점으로 삼고 우주로 사면팔방 확산해가는 질적 확산의 진화적 생명관이며 역사관이다.
(1) 易에 기초한 時運 종말의식
《동경대전》과《용담유사》 속에는 동양적 우주론으로서 자연의 사계절과 천지운행의 질서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易의 논리와 운동인데 그 변화는 자연법칙적 성경이면서 동시에 천지의 주재자인 천주 하느님의 조화의 자취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지만물은 성쇠의 흐름의 리듬을 갖는데 우주적 주기적 운세가 동학 창도 해인 1860년을 전후로 해서 우주적 운세가 상원갑, 하원갑 각각 5만년의 주기로 전환하며 지난 하원갑 5만년의 운세가 쇠진하여 지상사회는 재난과 괴질이 돌고 사람들은 하늘의 도리와 명을 어기는 난세혼란이 나타나고 새로운 상원갑 5만년의 우주적 운세가 시작하는 운세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최수운의 후천개벽적 역사 종말의식은 천지만물, 우주의 易 운세의 순화주기가 우주쇠퇴기의 절정에 도달하였고 이제 우주는 새로운 상원갑 5만년의 새로운 우주 주기가 시작되는 전환점에 들어섰다는 시대의식이다. 하원갑 우주시대에 인류 心田을 개발했던 유교, 불교의 인간 감화적 도덕 종교의 운세도 운이 역시 다해서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새로운 宇宙曆의 우주적 리듬의 시작에 즈음하여 새로운 종교, 새로운 도덕, 새로운 세상펴기의 시대적 사명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수운 자신과 동학도들에게 사명으로 주어졌다고 믿었다. 새 시대의 창조적 운세를 타고 상승적 운세를 공유하며 하늘의 도를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서학(천주교, 기독교)과 동학(천도교)은 같은 운세를 타고 있지만 이치는 다르다고 보았다(運則一也 道則同也 理則非也)
(2) 현재, 여기의 삶을 기점으로 삼고 우주로 뻗어가는 질적 확산의 현실적 후천개벽사상
동학의 후천개벽의 종말시대는 사후에 들어가는 천국도 아니요 죽어 도솔천에 다시 태어난다는 불교적 왕생사상도 아니며, 우주 대자연이 근원적으로 파괴되고 새로운 우주창조가 이뤄져야 한다는 우주파국적 종말론이 아니다.
새로운 세상 후천이 개벽한다는 것은 이 땅 위의 하늘, 땅, 사람의 질서와 협동이 질적으로 새로워지고 그 건강을 회복하여 영성적 생명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이 동학적 새하늘이다. 하늘을 몸에 모시고(侍天主) 보국안민 광제창생하고 誠, 敬, 信을 잘 지켜나가 하늘, 땅, 인간이 건강한 생명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후천개벽의 이상이다.
우주생명은 우주적 생명력인 至氣의 창조적 조화이며 만물은 서로 공경하고 성실한 자세로서 생명을 대해야 한다고 수운은 강조. 세상 사람들과 만물이 同歸一體하는 全一的 생명공동체가 실현되는 것이 지상천국이라고 수운은 주장. 이기적 자기구원만이 아니라 廣濟蒼生 보국안민하여 함께 더불어 사는 생명공동체의 실현이 개벽할 후천의 모습인 것이다.
3. 증산교의 천지공사론과 후천개벽설
동학을 물려받았으나 자기 나름대로 한국적 종말사상 후천개벽설을 주장.
증산교는 초대 기독교 발생 시절의 영지주의처럼 교리신학과 종교의식은 천도교보다 언뜻 보기엔 심원한 듯하고 체계화된 듯하고 그 내용이 풍요로운 듯해도 결국은 모자이크식의 종교혼합사상에 불과하며 과학과 신화와 미신과 종교가 혼합되어 있는 그럴싸한 한국판 영지주의 형태에 불과하다.
4. 맺는 말
"네가 땅에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하고 믿는 자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인간존귀성 강조는 동학의 후천개벽적 종말신앙에서 강조하는 인간의 책임성과도 깊이 통하는 사상임을 부연해 둔다.
VIII. 편집부, 한국교회와 이단적 종말론의 실상
1. 종말론의 대두와 그 역사적 상황들
1) 성서와 교회사에서 나타난 종말
성경에 나타나는 종말론은 바벨론 포로기와 귀환 그 이후를 지나 이교도들에 의하여 신앙이 짓밟히며 헬레니즘의 생활양식을 강요받고 로마의 폭정이 극에 달한 시기-마카비의 독립전쟁마저 진압당한 후-에 등장한 다니엘서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현실의 역사는 파국으로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게가 탄생될 것을 기술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현실의 폭정과 비극적인 상황이 인간이 손댈 수 없는 '악마적 세력'에 의해서 조정된 것으로 규정하고,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이 뒤틀린 상황에 대해 심한 '비관'이 -비관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자리하고 있으며 하나님만이 이와 대결하여 마지막 날에 승리하신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보도가 상징과 현시, 초자연적인 일들로 가득찬 일존의 영적 암호들로서 신약에 들어와 있다. 성격상 요한계시록이 다니엘서와 다른 것은 율법의 고수와 같은 구약적 요소와 관련을 갖지 않고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려 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서 이후 교회사적으로는 2세기 중반에 이르러 몬타누스가 일으킨 종말운동이 대표적. 이는 그후 5세기까지 잔존.
12세기에 등장한 요아킴 피오레의 주장.
2) 한국교회사에 등장한 종말론
① 1920~30년대에 나타난 신비주의와 관련된 종말론의 등장.
스스로 자신이 재림 예수로서 자처. 원산의 유명화, 황국주가 대표.
유명화 : 예수가 親臨하였다고 하면서 예수 모양의 모습을 하고 다니며, 영흥집회에서 降神극을 벌 임.
황국주 : 주님을 자처하면서 수염과 머리를 기르고 다님. 그의 아버지까지 그를 주님으로 부름. 그가 만주에서 서울을 향하여 오자 도처에서 예수의 화신을 구경하자며 군상들이 길을 메웠고 가 정을 버리고 따르는 유부녀들과 처녀들이 60여명이나 함께 하였다. 그들이 서울을 입성할 때 는 전국 교회가 떠들썩하였고 이러한 순례의 길은 천국지도를 따라 행진한 것이라 하였다.
1920~30년대의 이같은 현상은 엄격히 말하면 역사의 파국을 말하는 '종말' 혹은 '묵시'에 관한 것이라 기보다는 스스로 예수를 자처하는 '예수의 재림'에 대한 이단적 현상에 속한다. 이는 接神 혹은 降神 이라는 샤머니즘적인 요소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인의 심성(종교성)과 연계되어 나타난 현상이며, 萬有 一如, 梵我一如와 같은 신비적 합일을 지향하는 동양적 토양의 이단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여기에 시 대적 상황까지도 한몫을 하였다.
② 대표적인 이단은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천부교
문선명 : 1920년에 재림주가 한국에 재림(그의 생일이 1920년 음력 정월 초엿새)하였다고 하며 원리 강론을 신구약성서에 덧붙임.
박태선 : 1980년 신년 첫 집회에서 예수를 마귀대장의 아들이며 성경을 98%가 거짓이라고 부정. 자 신이 곧 '새 하나님'이라고 하며 5798세 혹은 1조 5천억 세(1985년 이후)라고 하여 교명도 천부교 로 바꿈.
→ 이들의 공통점은 스스로 재림주 혹은 하나님으로 자처하며 출발은 각기 다르지만 한국전쟁후 폐허 위에서 울고 있는 한반도에서 교세가 급격히 확장됐다는 것과 모두 성적인 문제(피가름, 섹스 안찰)를 내포하고 있다. 또 물질을 추구하여 부를 축적하였고 이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와 결탁하여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재벌 세력이 되었다.
2. 최근 한국에 등장한 종말론의 사례와 성격들
펄시 콜레,《내가 본 천국》, 《100가지 천국비밀》
이초석
이장림 : 1990년대에 '다가오는 미래'의 준말로 다미선교회를 조직.
애천교회 정명석
종말복음연구회의 들림교회
→공통적으로 보고 있는 징조
① 유럽공동체(EC)의 통합
② 컴퓨처와 바코드(666)
③ 북한과 공산권에 문이 열리고 상호교류가 되지만 곧 문이 닫혀 순교자들이 생긴다.
3. 한국의 이단적 종말론의 평가
종말론을 그 상황과 분리하여 살필 수 없다. 특히 날짜를 지정한 종말론의 등장과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추종은 교회의 올바른 종말신앙에 대한 무관심, 제도교회와 성직의 부패, 영적 빈곤과 정신사적인 변혁시와 결부되어 있다. 때문에 오늘날 급격히 독감처럼 번진 종말론의 대두는 오늘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질병과 반공의 겨울 속에서 증폭된 정치적 갈등, 부의 편중, 지역간 계층간의 대립과 이러한 뒤틀림이 탄생시킨 사회규범의 와해, 그리고 극심한 이기주의, 인간경시, 도덕적 타락으로 혼미케 된 사회현실과 연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종말론에 대한 올바른 신앙에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성직자들과 제도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보신과 성장만을 꾀할 것이 아니라 먼저 자신들이 '예수의 뜻'을 따라 사는 모범과 참된 종말론적 긴장을 회복하여야 한다. "종말은 있을 것이나 인간을 알 수 없다"는 신비가 부여하는 삶의 질을 회복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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