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주제 글 모음!!!

[스크랩] 신자의 이혼은 정당한가?

하나님아들 2017. 11. 11. 01:02

 신자의 이혼은 정당한가?



 



근래에 들어 신자로서 아픈 마음을 가눌 수 없어 몇 자 적어보려 한다. 그것은 신자들의 이혼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대로 피치 못할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혼까지 갈 수 밖에 없는 딱한 사정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혼까지 가나?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부부가 이혼을 한다는 것은 한 가정이 파괴 된다는 점에서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더 가슴아픈 것은 신자들 가운데서도 이혼을 정당화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이혼에 대해서 무엇이라 하는가? 잠시 살펴보려 한다. 


마 5:31~32을 보면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하셔서 마치 예수님께서 이혼을 허락하신 것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막 10:2~9을 보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고 하셔서 여기서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을 강조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의 마 19:3~9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하셔서 “음행”을 했다면 이혼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는 이혼에 대하여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를 더 강조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인데,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허용”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욱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말씀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한 것이지(신 24:1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하나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과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라는 의미를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이혼이 옳은 것인지,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특별히 부부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세우시고,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사도 바울을 통해서 부부 됨이 그리스도와 교회 됨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부 관계가 깨어지면, 그리스도와 교회가 깨어지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부부 관계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즉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곳에서 교회를 체험하며,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겠는가? 부부가 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가 깨어지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부부관계를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부는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서로 사랑해야 하는 관계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 잘 설명한 엡 5:22~33을 보자.


먼저 22~24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25~27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다.


이어서 28~30절을 보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고 하셨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가?


그리고 계속해서 31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고 하셨다.


이제 32절의 놀라운 말씀을 보자.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하셨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다. 32절에서 부부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진 부부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체험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지식으로는 얼마든지 부부관계를 알 수 있다 해도 결코 체험적인 부부관계의 비밀은 모를 것이다.


어떤 부부관계 전문 강사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강의를 수 없이 많이 하고 다녔다고 아침에 방송하는 TV에 나와서 말을 했다. 그리고 몇년 전에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 강사가 하는 말이 결혼하기 전의 강의와 결혼후의 강의가 내용은 변한 것이 없는데, 강의를 하는 자신부터, 그리고 회중들에게 전달되는 내용의 의미가 다르다고 말을 했다. 이처럼 결혼을 하지 않아도 내용은 지식으로 습득하고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체험에서의 강의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 만 부부관계를 했던 사람은 이혼을 판단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의 체험을 통해서 부부관계를 이어 온 사람은 후에 배우자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 첫 사랑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서도 지식과 물리적인 면에서의 신앙이라면 어떤 문제가 발생 하였을 경우 신앙을 파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신자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이루어진 사랑의 관계라고 할때, 그것을 진정으로 체험한 신자가 신앙을 파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부부관계의 신비를 버린 부부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를 알 수 있다는 것은 개인의 착각에서 온 자신의 지식에 불과 한 것이지 결코 체험된 신앙이라 볼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신자의 부부관계는 용납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랑의 차원에서의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시고 33절에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작금에서 신자들 가운데서 세상사람들이 하는 이혼의 행위를 아무 꺼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마음아픈 것은 지도자들 까지도 아무런 의식 없이 부부관계를 깨버리는 자들이 주변에 너무 많은 것을 볼 때 가슴이 멍 하기만 하다. 물론 이유없는 이혼이 어디에 있겠는가? 나름대로 모두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는 새 사람이 되어 마음의 완악함에서 떠난 자들이 아닌가? 참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자가 아닌가?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거역하는 교인이 아니라 이 말씀을 따라 서로 이제 한 몸이니 서로 사랑하는 신자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제 하나님이 이혼에 대해서 얼마나 싫어 하시는지 말씀을 보고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말 2:16절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이혼하는 것을 미워 하신다고 하셨다. 이것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행하는 자라고 하셨다. 그러면 혹자는 “간음한 자를 제외하고”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들려 주고 싶다. 그리고 이혼 하는 것은 “너의(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다” 고 말하고 싶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미워 하신다고 하면, 그것도 싫어 하시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신다고 하면… 


물론 우리의 완악함 때문에 간음의 연고로는 허용은 하셨지만, 그래도 신자로서 서로 이해하고, 용납하고, 용서하는 차원을 넘어서 사랑의 차원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신자가 세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말씀을 가진자 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세상을 극복 하였으면 좋겠다.


모든 부부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는 말씀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는 말씀을 따라 모든 신자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부관계를 통해서 주님의 기쁨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출처 :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