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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즉각적이고 점진적인 성화 / 안토니 A. 후크마

하나님아들 2017. 9. 11. 23:18

즉각적이고 점진적인 성화 / 안토니 A. 후크마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즉각적인 행위인 동시에 단번에 완성되는 칭의와 구별하여 성화를 신자의 전 생애 동안 계속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비록 신약성경이 가끔 성화를 전 생애의 과정으로 묘사하지만 역시 신약 기자들은 성화를 광대한 기간보다도 오히려 특별한 시점에 발생하는 즉각적인 하나님의 사역으로 서술한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실 죤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약에서 성화에 대하여 언급하는 거의 모든 특징적인 용어들은 어떤 진행 과정이 아니라 단번에 완성되는 행동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이 점을 자주 간과한다."

성화를 즉각적인 의미로 묘사한 구절은 고린도전서 1:2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한다. 여기 기록된 헬라어 동사는 계속되는 결과로서의 완성된 행위를 묘사하는 완료시제이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보통 칭의를 신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적 행위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이 선언적 행동은 계속 진행하는 과정이 아니라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6:11에서 성화는 하나님의 즉각적인 행동으로서의 칭의와 대등되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헬라어 성경에서 이 세 동사는 보통 동작이 단 일회적으로 완성되는(때로는 "순간적인 동작"으로 호칭되는) 부정과거 시제이다. 따라서 결국 바울은 여기서 이들 신자들이 어떤 시점에서 즉각적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과 같이 역시 단번에 성화 된다는 뜻으로 진술한다. 더욱이 사도행전 20:32와 26:18에서 신자들을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로 부른다. 이 두 절의 경우에 있어서도 동사의 시제는 완료형이다.

 

성화의 즉각적인 면은 로마서 6장에 가장 생생하고 예리하게 표현되었다. 바울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롬6:2)고 선언한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은 "죄가 지배하고 있는 영역으로부터 최종적이고 확고부동하게 절단"되었다고 하는 진리를 명백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더욱이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었으며(롬 6:6, 역시 여기 부정과거시제는 최종적인 행동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죄가 더이상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며(14절), 우리에게 전하여준 바 그리스도의 교훈의 본을 우리가 마음으로 순종한다(17절)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다. 로마서 6장에 언급된 중요한 진리는 신자들이 절대로 취소할 수 없는 새로운 관계 아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해서 죤 머레이는 "은혜 공급의 지배 속으로 들어온 모든 성도들은 죄의 능력과 지배로부터 즉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죄와 관계를 끊었다"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을 소유한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교훈할 뿐 아니라 역시 그리스도와 함께 결정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살아났음을 확정한다. 즉각적이거나 순간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시제를 가진 동사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하나님이...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또 함께 일으키사..."(엡2:4-6)라고 단언한다. 비록 우리는 본질상 죄 때문에 죽었지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신앙 안에 있는 우리들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 여기 "살리셨고"라는 말은 오랜 진행 과정의 의미가 아니라 시간상 우리가 거듭났던 어떤 확실한 시점에 발생한 것으로 묘사한다. 더욱이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부정과거시제)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이런 본문의 빛 가운데서 우리는 즉각적인 성화가 사로잡는 죄의 권세로부터 결정적으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즉각적으로 그리고 확고부동한 연합, 즉 신자들이 새로운 생활 가운데서 살 수 있게 하는 방편으로써 연합(롬6:4) 되었으며, 그래서 모든 성도는 지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결론내린다(고후5:17). 그러므로 우리의 즉각적인 성화에 대한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지금 스스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롬6:11)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신약은 즉각적인 성화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성도들이 죄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된 것은 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는 주체와 객체라는 양쪽 측면이 존재한다. 객관적인 의미에 있어서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 때 그와 함께 같이 죽었으며,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 신자들은 세계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결국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했을 때 그 안에 있었다. 항상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로부터 분리되어 계실 수 없으며, 더욱이 그의 백성들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죽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 임하는 은혜를 가로막는 죄악을 깨뜨리고 제거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부활했을 때 그는 신앙에 의해서 들어가는 새로운 생명을 우리 속에 심어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주관적인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바울은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으며(엡2:5),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롬6:2-3)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경험 속에서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을 때 그리스도와 같이 살아났다(골3:1).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삶의 어떤 분명한 시점에(아마도 회개한 시점) 자발적으로 옛 사람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사실에 대해서 상기시키고 있다(골3:9-10). 그러므로 성경적인 교훈을 완전히 정당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한 양쪽 측면을 강조해야 한다; 즉 과거 역사적 측면과 현재 경험적 측면이 그것이다. 과거 역사적 측면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했을 때 죄에 대하여는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험적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했을 때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났다. 성령에 의해서 거듭났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었음을 신앙으로 붙들어야 한다.

 

즉각적인 성화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은 신자들이 자신이나 다른 성도를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해서는 죽었으며 지금 새로운 피조물이 된 존재로 생각해야 할 것을 시사한다. 확실하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의 새로움은 무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추악한 죄와 대항하여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때때로 죄 가운데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비록 아직 전적으로 새롭게 되지 않았지만 자신이나 다른 성도들을 진정으로 새로워진 인격체로 대우해야 한다. 그러나 즉각적 성화의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이 단호하고 분명하게 죄와 관계를 끊어버릴 것을 우리에게 암시한다. 죤 머레이는 이 점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그 어떤 반대나 다른 견해를 인정할 수 없음과 같이 우리는 모든 신자는 새 사람이며,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죄의 몸은 파괴되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기에 그의 몸은 성령의 전이며, 그 속에 항상 거주하시는 바로 그 성령에 의해서 그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교의에 대한 어떤 타협도 허용할 수 없다.

즉각적인 성화는 "두번째 축복"의 종류와 같이, 그 전의 칭의로부터 분리되는 경험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험적 의미에 있어서 즉각적인 성화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이라는 측면과 같이 칭의와 동시에 발생한다. 역시 즉각적인 성화는 영적 생명의 첫번째 수여가 되는 중생과 동시에 일어난다. 우리는 중생함으로써 믿게 된다. 비록 중생이 인과론적이고 논리적인 순서에서 볼 때 믿음, 칭의, 그리고 즉각적인 성화에 앞서지만 시간적으로 앞서는 것은 아니다.

다음으로 "신분적인 성화"(positional sanctification)라는 표현에 대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많은 신학자들은 내가 "즉각적인 성화"로 호칭한 것과 같은 의미로 "신분적인 성화"를 사용한다. 오순절 계통의 신학자인 S.M. 호튼은 신분적인 성화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우리는 중생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며 이런 의미에서 성도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 의거해서 성화는 순간적인 측면이 있다." 사실상 세대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한 신분적인 성화는 역시 위에서 언급한 즉각적인 성화의 개념과 동일하다. L.S. 카퍼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을 통해서 보증이 된 신분적인 성화는 가끔 간과되어졌다." 현대 세대주의적 가르침을 반영하는 새로운 스코필드 관주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진술이 발견된다. "신분(position)에 있어서 신자는 구속에 의해서 영원히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되었다. ...그러므로 신분적으로 신자는 믿는 순간부터 '성도'이며 '거룩'하다." 달라스 신학교에서 만든 교리적 진술 가운데 제 9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지위가 그리스도와 동일하기 때문에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의 성화는 이미 완성되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어 존재한다."

그러나 신분적인 성화를 즉각적인 성화와 동일하지 않게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면, H.C. 디이슨은 신분적인 성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의와 거룩을 상속받는다. 이런 의와 거룩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J.R. 맥퀼킨은 신분적 성화의 두번째 단계는 칭의인데 "죄인을 용서하시고 의롭다 선언"하는 성부와 성자 사이의 법률적 거래 행위라고 부른다. 신분적인 성화를 계속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칭의의 교리에 속하는 '전가'와 '선언'과 같은 그런 개념을 소개한다. 그러므로 이런 개념들은 성화의 측면들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편 이미 언급한 대로 성경은 역시 성화를 전 생애 동안 진행되는 과정으로 교훈한다. 고로 성화는 점진적인 과정이다. 점진적인 성화는 바울과 누가가 말한 즉각적인 성화를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보충한다. 죤 머레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각성을 강조하는 성화에는 점진적인 측면이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이 추론하는 것은 성경이 교훈하는 중요한 관점과 명백히 모순된다.

우선 무엇보다도 죄가 아직도 신자들 속에 현존한다는 성경적 가르침을 통해서 볼 때 성화의 점진적인 측면은 명백해진다. 우리는 열왕기상 8:46; 시편 9:12; 143:2; 잠언 20:9; 이사야 64:6과 같은 구절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역시 신약도 이 점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다. 우리의 이신칭의의 필요성을 논증하면서 바울은 인간의 보편적인 죄악에 대해서 생생하게 묘사한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2-23). 여기 "하나님의 영광"을 아마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르지 못했다"는 동사는 헬라어로 현재시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23절 하반절을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 못하다"로 번역해야 한다. 흔히 있기 쉬운 예증을 통해서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신자들에게 쓰고 있다(약3:2). 지금 다루고 있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는 신약의 진술은 요한일서 1:8이다.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 문안하면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문자적으로, 만일 우리가 죄없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 속에 죄가 계속 현존한다. 때문에 신자의 성화는 계속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신약은 죄에 대하여는 죽고 새 생명 가운데서의 성장을 포함한 점진적인 성화의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양면성에 관하여 계속 언급한다. 이미 우리가 상고한 바와 같이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분명하게 성화의 즉각적인 측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8:13에서 성화는 역시 계속적인 과정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죄의 본성에 따라서 산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문자적으로 계속 죽음에 넘기우는 것) 살리라." 바울은 앞서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묘사된 성도들에게 지금은 범죄할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악된 행동은 기꺼이 죽이라고 말한다. 바울의 독자들은 그들이 살고 활동하며 존재하고 있는 영역 속에서 즉각적으로 죄와는 관계를 끊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숨쉬고 있는 동안에는 계속 죄와 투쟁해야 한다. 그들은 오로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만 죄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에 죄에 대한 투쟁은 성화의 한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골3:3) 또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골3:1)고 말한다. 즉 골로새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하는 가운데 즉시 그리고 확고부동하게 새로운 생활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골로새서 3:5에서 바울은 그들에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earthly nature)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역설한다. 비록 그들이 죄에 대해서는 이미 죽었지만 역시 그들은 죄를 죽음에 넘기우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말함으로써 바울은 여기서 지시와 명령을 결합시킨다. 이런 죄된 행동들을 죽음에 넘기우는 것은 단지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되어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도의 노력과 전 생애의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위와 맥락을 같이하는 고린도후서 7:1을 통하여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와 비슷한 내용이 요한일서 3:3에 기록되었다. 요한 사도는 그리스도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게 될 것을 확정하고 난 후 계속해서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동사의 시제는 계속형임) 하느니라." 기독교인은 자신이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이 될 때까지는 단순히 뒤로 후퇴하거나 또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성도는 계속 힘차게 선으로써 악을 이길 수 있도록 분투 노력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쳐 완성되는 성결은 점진적인 성화를 함축한다.

 

점진적인 성화의 본질은 역시 새 사람의 성장을 지시하는 적극적인 성화의 측면을 취급하는 구절들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서 상고한 바와 같이 바울은 골로새서 3:9-10에서 그의 독자들에게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입은 새 사람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었다.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3:10). 바울이 여기 새 사람은 새롭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 때문에 새 사람은 아직도 명백하게 무죄 완전한 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새롭게 하심"으로 번역된 분사 아나카이노메이논(anakainoumenon)은 현재형이기 때문에 새 사람의 갱신은 일생 동안의 과정이다. 흥미롭게도 이 구절들은 성화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즉각적으로 모든 성도들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즉각적인 성화; 여기 시제는 과거에 단 일회적으로 완성된 것을 나타내는 부정과거이다). 그러나 한편 그들이 입은 새 사람은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점진적인 성화: 여기 시제는 현재 진행을 표시한다).

 

점진적인 성화의 본질에 관한 가장 강력한 표현은 고린도후서 3:18에 나타나 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도는 주의 영광을 반영하기 때문에 역시 영이신 주님에 의하여 계속 그리고 점진적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간다. 여기 "우리가...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라고 번역된 헬라어 메타모르포메다(metamorphoumetha)는 단지 외부 형태의 변화가 아니고 내적 본성의 변화이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from on e degree of glory to another, RSV)라는 단어들과 동사의 현재시제는 이런 변형이 즉각적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완성될 것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성화는 즉각적인 동시에 점진적인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각적인 의미에 있어서 성화는 우리를 죄에 대하여 죽게 하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시키며,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성령의 사역을 의미한다. 점진적인 의미에 있어서 성화는 계속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에로 변화시키시며, 우리를 계속 은총 가운데 성장하도록 하시며 또 우리의 거룩이 완전해지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인식되어야 한다. 고로 우리는 성화의 과정의 시작으로써 즉각적인 성화와 그리고 즉각적인 성화에 의하여 창조된 새로운 인격의 지속적인 성숙으로써의 점진적인 성화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양쪽 측면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성화가 시종 하나님의 사역인 동시에 한편으로 역시 성도의 능동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신자들은 믿음으로 즉각적인 성화를 자기의 것으로 해야될 뿐만 아니라 점진적인 성화가 그 목적인 온전한 거룩에 이르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안토니 A. 후크마의 '개혁주의 구원론'에서 발췌(333-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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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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