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제자도(8)-나는 천국을 사모하며 삽니다.

하나님아들 2017. 6. 24. 09:11

제자시리즈 제자도

주일설교(2014/09/07)

나는 천국을 사모하며 삽니다.

13:31-3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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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핵심은 천국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천국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천국을 맛 본 자들은 미래의 천국을 사모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최고의 목적도 사람들에게 천국을 맛보게 할려고,, 천국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4:17)” 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는 비유의 말씀이 많은데, 모든 비유의 말씀이 천국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천국을 체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천국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국을 체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인간에게 천국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천국을 소유하십시오. 천국을 사모하십시오. 천국을 체험하십시오. 천국은 예수님의 복음을 통하여 주어집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면 좋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통하여 천국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현대 사회는 방황하는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천국을 잃어버린 시대를 삽니다.

특히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천국을 잃어버렸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천국을 이야기 하면 잘못된 신앙이라고 하고, 천국을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하게 재미없다고 하고, 천국을 이야기하면 현시대에 맞지 않다고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천국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고, 이 땅에서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데만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에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먼저 천국을 체험하며 삽니다.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은 다 어렵고 힘듭니다. 육신의 삶은 평탄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모두가 아픔이 있고, 고민이 있고, 힘든 부분이 다 있습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고 이기느냐는 것입니다. 천국을 먼저 소유한 자는 소망이 있기 때문에 힘든 것들을 이겨냅니다. 내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오셔서 삶을 북돋우어 주시고, 힘든 삶 가운데서도 희열을 느끼며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진정한 천국을 가진 성도는 내 현재의 위치에서 내 삶이 천국과 잇대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원에 잇대어 삽니다.

주 앞에 나올 때 우리 마음 기쁘고, 그 말씀 힘 되어 새 희망이 솟는다.

고난도 슬픔도 이기게 하시옵고, 영원에 잇대어 살아가게 하소서(찬송가 9)

 

어머니 뱃속에 태아는 탯줄로 어머니와 연결되어 있고, 그 탯줄로 영양분을 공급 받고, 생명을 공급 받는 것입니다. 우리 집에 수돗물은 저 멀리 있는 상수원에 수도관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수돗물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집에서 켜지는 전깃불은 전선으로 발전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전깃불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천국을 사모하며, 천국을 품은 자는 늘 저 천국과 잇대어 살아갑니다. 천국을 품고 살아가는 자는 천국의 은혜를 공급받고, 천국의 힘을 얻고, 천국의 생명을 맛보며, 천국의 도움을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천국을 소망하며, 천국에 마음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샘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11장을 보면 이들은 다 천국을 품고 사모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삶이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우리처럼 힘들어 했고, 우리처럼 가난할 때도 있었고, 우리처럼 어려움 당하기도 했고, 고독하고, 외롭기도 했습니다. 기근을 당해 피난을 가기도 했고, 텃새 부리는 원주민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특히 야곱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터리로 지팡이 하나만 들고 타향살이를 시작했습니다. 목숨의 위험도 겪었고, 재산을 빼앗길까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처자식을 지키기 위해서 밤새도록 부르짖으며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한 여인을 사랑하여 14년 동안 장인어른을 위해 섬기기도 했습니다. 재산을 늘리고, 돈을 좀더 벌어 볼려고, 지혜를 짜내고, 사람의 눈을 속여 보기도 했습니다. 타향살이하면서 돈을 벌여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들이 그를 속이고, 첩첩산중으로 고난이 있어도 그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저 중국은 긴 역사와 찬란한 문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 천년동안 내려오면서도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하나도 못했습니다. 그의 역사만큼 인류에게 아름다움과 과학, 문화, 학문, 예술 등등 모든 부분에 이런 영향을 끼쳐야 되는데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 문명의 혜택은 다 서양에서 왔습니다. 과학, 문화, 학문, 의학, 예술, 다 서양에서 왔습니다. 다 기독교 국가에서 왔습니다.

역사가 짧은 스위스 같은 나라는 예수님을 잘 믿어서,,, 스위스 사람들은 원래 프랑스에 있었는데 예수 잘 믿는 것 때문에 쫓겨 가서, 신앙 때문에, 로마 카톨릭에 의해 다 버림 받고, 환난 핍박 받아서 산으로 도망친 사람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 어려운 곳에서도 하나님을 잘 경외하니 스위스는 세계에 일등 국민이 되어 있고, 국민당 GNP5만불 이상이고(우리나라는 2만불 안 되잖아요.), 우리나라의 국민은행(KB금융그룹) 같은 규모의 은행이 127개나 된답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유럽연합(EU)에 가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위스는 유로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살면서 EU에 가입 안하고 유로를 사용하지 않아도 경제가 잘 돌아가고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거든요.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나라는 어디에 살든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이 국가와 가정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앞날은,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할렐루야!

 

제가 시골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집 뒤 못에서 물장구 치고, 목욕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수영을 배웠습니다. 수영은 누가 가르쳐 주어서가 아니고 그냥 물에서 놀다가 보니까 저절로 배우는 겁니다. 아마 우리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나라의 옛날 시골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겁니다. 제가 설교 시간에 시골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건 돈 내고 들어야 합니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시골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이건 굉장히 귀한 겁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봄이 되면 항상 많이 만나는 것이 새들 새끼입니다. 참새 새끼, 비둘기 새끼, 꿩 새끼, 까마귀 새끼, 까치 새끼들이 많습니다. 시골은 전부 산이니까 그런 것이 많습니다. 또 참새가 늘 집에서 사니까 지붕에 구멍마다 참새가 있습니다. 처마 끝에 전부 손을 넣으면 참새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끼를 늘 사랑하니까 가져다가 많이 길러 봅니다. 참새 새끼도 까치 새끼도 아주 사랑으로 길러 봅니다.

그런데 한번도 성공을 못했습니다. 제가 극진한 사랑으로 품에 안고 자고 이불속에 넣어 사랑하고, 학교 갈 때도 가방 속에 넣어 가고 지극한 사랑으로 파리를 잡아서 먹이고, 메뚜기 잡아 먹이고, 그래도 결국 며칠 만에 죽습니다. 그냥 안 먹는 것을 입을 벌려 넣어주고 별의별 사랑을 해도 새끼를 어른 새가 되도록 길러 보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참새는 참새 품에 있어야 됩니다. 자연의 품에, 작은 그 둥지 속, 처마 끝이지만 그 안에서야 참새가 잘 크는 것이지 우리 방안이 크고 이불이 넓다고 해서 참새가 이불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불이 커서 참새가 잘 크는 게 아닙니다. 어미가 주는 걸 먹어야지 제가 입을 벌려서 억지로 집어 넣어주어서 크는 게 아닙니다. 나의 지극한 사랑? 아닙니다. 어미의 사랑이 귀한 겁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 어미하고 같이 있어야 되고, 새는 새 집에서 어미하고 같이 있어야 됩니다.

오늘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안 된다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너희가 나를 떠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떠난 문명, 사상, 문화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행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굉장한 게 아닙니다. 항상 부족하고 연약한 겁니다.

 

시골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하겠습니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어릴 때부터 일을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밭에 가서 풀도 뽑고, 부모님 일을 거들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동생이라도 돌봐야 먹고 살 수 있습니다.

시골은 다 일합니다. 산에 소를 몰고 가서 풀도 먹이고, 놀면 안됩니다. 저도 어머니를 따라서 밭에 가서 일도 같이 하고, 방아도 같이 찧고, 요즘은 디딜방아 구경하기 힘들지만, 옛날에는 누구가 방아를 밟아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 어머니를 따라 방아를 밟았습니다. 늘 그런 일은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늘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어른들이 일 하는데 저도 같이 감자를 심어보았습니다. 어른들이 뿌리는 보리밭에서 저도 같이 묻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가 심었던 어른이 심었던, 모심기도 그렇습니다. 모심기 때는 일 손이 모자라니까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다 논에 가서 모를 심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심었던, 어른이 심었던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보면 어른이 심은 것이나 애가 심은 것이나, 열 살 된 애가 심은 것이나 장년이 심은 것이나 똑같이 납니다. 똑같이 자라나서 똑같이 열매를 맺습니다.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심는 자에게 능력이 있는 게 아닙니다. 열매는 땅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지 나와 관계가 없습니다. 흙을 덮으면 흙속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영양분은 흙속에 있는 것이지 심는 분에게 있는 게 아닙니다. 씨에 문제가 없는 이상, 씨는 땅에 심어 놓으면 저절로 자랍니다. 누가 심든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도 씨 뿌리는 이야기를 비유로 여러 번 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씨 뿌리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씨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다. 밭이 문제입니다. 씨는 누가 뿌리든 관계 없습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이가 뿌리든 어른이 뿌리든 씨가 좋은 밭에 떨어지면 자라게 되어 있고, 열매 맺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작은 겨자씨라도 좋은 밭을 만나면 자라서 큰 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 천국 말씀(13:19) 이요, 천국의 아들들(13:38) 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밭입니다. 좋은 밭이라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좋은 밭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는 네 종류의 밭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1)길가와 같은 딱딱한 밭, 2)돌밭, 3)가시떨기 밭, 4)좋은 밭, 이렇게 네 종류가 있습니다. 이 밭은 사람의 마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고, 천국을 가지려면 내 마음에 천국 말씀이 떨어져서 자라고 열매가 맺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밭이 되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밭에 숨겨진 보화”, 진주 장사가 찾는 좋은 진주와 같다고 말씀합니다(13:44-45). 여기서 감추인 보화” “좋은 진주천국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누가 가로챌까봐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더 값어치 있는 이 보물을 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바닷길, 육로길, 여러 지방을 다니며 좋은 진주를 찾는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만나면 자기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산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말씀하시면서, 농사짓는 농부와 장사하는 장사꾼을 주인공으로 하여 비유로 말씀하고 있다는 겁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 예수님이 계시던 시대는 대표적인 직업이 농사와 장사였습니다. 농사짓는 것과 장사하는 것은 그 당시 대표적인 직업으로, 가장 성실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예수님은 한순간도 이 땅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 값어치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땀을 흘려서 일하는 농부들의 수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열심히 장사하는 장사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성실히 세상을 삽니다. 천국은 팍팍한 현실에서 그저 놀랍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농부는 구석진 밭이라도 갈아서 먹고 살아야 하기에 성실하게 땀을 흘린다는 기본 전제가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은 포기하지 않고 역경 속에서도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적이고 희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열심히 일을 한다고 누구나 다 보물을 발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물을 만나면 보물인 줄 알아야 하고, 그 값어치를 깨닫고 알아야 하고, 내가 가진 모든 재산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팔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천국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천국의 가치를 모르면 천국이 내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귀중한 천국이기에 우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재물에 대해서 경계하신 예수님도 하늘의 귀한 가치를 한 손에 올려놓고 다른 한 손에는 이 땅의 재물을 움켜쥔 상태에서 이리저리 저울질하는 사람은 영영 그 밭을 살 수 없고, 영영히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과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비교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1)현재의 천국이 있고, 2)미래의 천국이 있습니다. 현재의 천국을 체험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하면, 미래의 천국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천국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의 천국은 처음에는 있는 둥 없는 둥, 보일 듯 말듯. 우리 손에 잡힐 듯 말 듯, 이렇게 다가 옵니다. 한 알의 겨자씨 만하게 옵니다. 겨자씨는 깨 알 보다도 작습니다. 그래서 이 겨자씨 같은 천국을 밭에 심고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밭의 농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밭에 씨를 뿌리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천국이 이 시대의 마지막 가치입니다.

이 시대에 천국을 소유하는 자가 가장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천국을 이 시대의 마지막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천국을 누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천국은 결단을 요구합니다. 천국을 사모하십시오. 나의 모든 인생을 걸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천국을 사는 마음으로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좋은 진주 하나를 찾기 위해 온 천지를 돌아다니며 찾는 것과 같이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의 가치보다 더 귀한 것이 없는 줄 알았기에,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빼앗길까봐 조급해 했으며,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습니다. 여러분, 천국을 사모하십시오. 이 세상의 마지막 가치가 천국입니다. 천국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사탄은 우리의 천국을 빼앗아 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눈동자는 항상 천국을 향하고 천국을 끌어당겨 현재의 삶에 천국을 체험하며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은 말씀이 있는 곳에 함께 따라다닙니다. 비가 올 때 바라이 불면 아주 작은 빈틈 속으로 바람이 들어가면서 빗물도 따라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바람이 불고, 말씀의 바람이 불면, 천국도 따라서 그 심령 속에 파고들어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미래의 천국을 끌어 당겨 현재의 천국을 맛보고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대구영은교회
글쓴이 : 주님의 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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