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기도문 !!

[스크랩] 기도와 영적성숙

하나님아들 2017. 6. 17. 15:45
기도와 영적성숙

 

 


 

 

기도에는 세가지 움직임이 있다라고

리차드 포스터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는 안으로 향한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기도 .버림받은 자의 기도 .

성찰의 기도 .눈물의 기도 .

포기의 기도 .성숙의 기도 .

언약의 기도

 

둘째는 위로 향한 움직임입니다.

이 기도는 성부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우리 가운데에서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으로

또한 능력주시는 자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과 일치합니다.

 

찬양의 기도 .안식의 기도 .

1성례의 기도 .쉬지 않는 기도 .

마음의 기도 .묵상기도 .무언의 기도

 

셋째는 밖으로 향한 움직입니다.

이 기도는 성령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에 힘과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과 일치합니다. .

 

일상적인 기도 .간구기도 .

중보기도 .치유의 기도 .고난의 기도 .

권세있는 기도 .철저한 기도

 

처음에는 우리 자신이 당연히 기도의 중심이며 주제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다보면 나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 마음에 놀라운 전환이 일어납니다.

아주 천천히 무게중심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기도주제가 나에게서 하나님으로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1.기도의 올바른 이해(6:5-8)

 

마태복음 6:5-8절은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치기 전에

잘못된 두 종류의 기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잘못된 기도

 

잘못된 기도의 유형을 예수님은 먼저 외식하는 기도에 대한 예를 들었습니다.

 

65절에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원래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이나 복음서에 보면 36시에 성전에 올라갔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장소가 무척이나 중요했습니다.

또한 성전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도 소중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꼭 성전에서만 해야지 응답되어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3, 6시 시간보는 방법, 12, 3경 시간보는 방법)

시간을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주 좋은 신앙적인 습관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넘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소와 시간이 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익명적 관계입니다.

기도는 시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속에서 있을 때에 그것이 진짜 관계입니다.

통성기도는 하나님이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통성기도에서 묵상기도로 묵상기도에서

관상기도로 바뀌어 갑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통성기도나, 묵상기도, 관상기도가 단계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기도가 남에게 보여질때에 문제가 되어집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앞에 당당하게 기도합니다.

나는 십일조도 했고, 금식기도도 했고, 기도시간을 철저하게 지켰고.... 소리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가슴을 치며 구석에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여기서 바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외식의 기도입니다.

 

여러분들~ 외식이 무엇입니까?

외식은 밖에서 먹는 식사를 외식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외식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중심이 내안에 있지 아니하고

 밖에 있을때에 그것을 우리는 외식이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잘못된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여러분들! 중언부언이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한자뜻으로 보면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반복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단순하게 반복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러분들 기도하다보면 반복할 수 있어요!

 

하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 사랑합니다.

이런 말은 우리가 반복을 합니다.

이것이 중언부언일까?

 

그것은 아닙니다.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바타로게세태"

즉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말을 배울 때

그 뜻도 알지 못하고 부모를 따라할 때의 발음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어린 아이들이 부모의 하는 말을 아무 의미도 알지 못하고

그대로 반복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의미없는 단어의 나열,

오랜 신앙생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기도가 바로 중언부언입니다.

이런 기도를 우리는 잘못된 기도라고 보는 것입니다.

 

2)골방의 기도

 

6:6절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기도를 어디에서 하느냐?

골방에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골방이 어디입니까?

골방은 기도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리에 골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장통에 골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이 아주 많은 75평에 골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조그만 방이 있어서 문을 닫고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마음에 분심이 생기면 그것은 골방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아무리 떠들고 시끄러워도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바로 그곳이 골방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다락방에 모였다라고 말을 합니다.

다락방이 어디이냐? 바로 골방입니다.

렇다고 한다면 다락방은 어떤 곳입니까?

 

골방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다락방은 생명이 있는 곳입니다.

다락방은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다락방은 세계를 품는 방입니다.

 

이래서 골방에서 다락방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2.주기도문의 특징(6:9-13,11:2-4)

 

주기도문을 보통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대답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기도문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마태복음에 있고 또 하나는 누가복음에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견해가 있지만 원래 원본이 있는 것을

마태와 누가가 필요한 내용만을 삽입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Q 자료설)

 

그런데 누가복음을 보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앞에 서론 부분이 있습니다.

11:1 절입니다.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시매 제자 중 하나가 여짜오되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을 해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요한도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는 데

이제 선생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의 제자들이 유대인들이었고

또한 유대인들은 기도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기도를 잘 몰라서 예수에게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있기 때문에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당시에 요한은 자신의 신학과 종말론적 소망을 표현하는 기도문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서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지금 선생님이시여~

새로운 운동을 위해 세례요한이 기도를 가르쳐주었듯이

선생님의 구원역사에 맞은 기로를 가르쳐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은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기도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기도문을 잘 이해하기만 하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특징을 살펴봅시다.

 

1)모범적인 기도모델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은 기도의 모델입니다.

제일 먼저 시작하는 기도문이 무엇이냐면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것을 인정하는 기도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하나님에 대한 존재인정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으로 기도가 끝납니다.

바로 이것이 기도의 모델입니다.

 

2)간결하고 단순함

 

대개 대표기도를 시작하면 어떤 분은

가정에서부터 교회,국가,세계,인류가지 한바퀴를 돌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어떨때에는 설교보다 더 길게 느껴질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기도는 간결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도 아주 간결합니다.

제가 주기도문을 천천히 또박또박 읽어보면서 기도했더니 정확하게 25초 걸렸습니다.

 

3)중요한 간구의 기도

 

주기도문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마태복음에는

여섯 개의 청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당신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

당신의 뜻이이루어지게 하소서의 당신청원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라는

우리청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당신청원'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의 청원'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주기도문은 청원기도입니다.

 

첫째는 하나님나라의오심에 대한 청원

둘째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청원

셋째는 죄 용서에 대한 청원

넷째는 지금도 완전히 박멸되지 않는 사탄으로부터의 보호에 대한 청원입니다.

 

3.영적성숙

 

1)참된 영성이란?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영적인 삶에 있습니다.

영적인 삶이 잘 계발된 생활은 신앙생활의 극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된 영성이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질적인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하고 영화롭게 해드린 유일한 분은 누구인가?

 

바로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닮는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참된 영성이란 예수그리스도를 철저히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성화라고 합니다.

처음에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면서 동시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조금 어렵게 말하면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즉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봅시다.

엄마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도 비록 사람구실은 못하지만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처음에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영적인 어린아이가 됩니다.

새생명이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이 자녀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하나님이 자녀답게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렵게 말하면 성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엣날부터 알던 사람같고 형제 자매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것은 축을 그리스도라고 하고 살을 성도라고 하였을 때

한쪽 바퀴 살이 축에서 멀어지면

다른 한 쪽 바퀴의 살에서도 서로 멀어져야 하고

한쪽이 가까워지면 옆에 있는 살과도 가까와져야 하는 것과 같이

참된 영성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미워하면서 닮아가는 방법 그런데 닮아가는 방법이 무엇이 있습니까?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절대로 안한다 아버지와 아들-저런 아버지 안된다.

사모하면서 닮아가는 방법 존경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변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 자꾸만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2)참된 영성의 구별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는가

얼마나 봉사하고 있는가를 놓고 우리의 영성을 가늠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였나로

참된 영성의 척도를 삼으십니다.-헌신이라는 말은 전적인 신뢰이며 의존입니다.

사랑하는 분에게 숨길것 없이 다 드리는 것, 그것이 바로 헌신이다.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얼마나 친숙한가 하는 친숙도로 참된 영성을 판단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는가 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참된 영성을 분별하십니다.

 

3)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

내가 그분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안다고 하는 것은

막연히 상대방의 배경이나 현실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친숙하게 상대방에 대해 아느냐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동침한다는 단어가 안다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남편이 아내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속속들이 그러한 앎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목사이기 때문에 집사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얼마나 그분을 닮았는가? 닮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닮는 것입니다.

 

자연인(육에 속한자)-자연인은 영적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더러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고전 2:14) .

자기 중심적입니다. .자연인은 영적인 진리를 잘 받아들이지 않을 뿐 더러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육신에 속한자(고후 3:1)-육신에 속한자의 본성은 자아가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예수님은 한편 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사람은 영적으로 태어났지 영적으로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합한 상태의 사람입니다.

 

미성숙합니다.-찬송가 안보여주는 , 자리안비켜주는것

영적인 진리를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른 교인들에 대해 질투심이 많고 이해심이 부족합니다.

 

영적인 사람-하나님의 영이 나의 모든 것을 관할하고 예수님만이 나타나는 사람

 

예수믿는 사람에게는 다 성령이 계십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영적인 사람은 진리를 배우고 싶어할 뿐 아니라 이해를 잘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또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마음이 있습니다.

 

4.영적성숙의 방법

 

건강한 것과 성숙한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건강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성숙한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성숙한 경험을 한 사람일지라도 일순간 건강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하고 참된 영성은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상태가 잘 균형을 이루는 때에 가능합니다.

 

1)영적성숙은

 

성장의 과정을 통해서(1:12, 2:52)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태어남이 있어야 합니다.

 즉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과 좋은 거름을 준다고 하여도 생명이 없는 것이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갑자기 성숙하는 것은 없습니다. 갑자기 교회열심인 사람은 주의 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흥회 한번 갖다가 와서 갑자기 성장한다고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잘못먹으면 체할 수가 있습니다.

성장은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1:12, 2:52

 

2)영적성숙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될 때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다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가지 이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친밀하여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선 믿어서 생명이 생기고 그 후에는 사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예수님을 만나 친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전한 사람에게 이를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이 무엇입니까?

온전하다라는 것은 성숙함을 말합니다.

성숙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까지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다는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어린아이 상태로 너무 오래 있으면 안됩니다.

어린아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것도 인간적이고,세상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에 예수 안 믿다가 믿기 시작하면 얼마나 이쁩니까?

 

주일날 예배한번 나오는 것만 해도 그렇게 이쁘고 착합니까?

그러나 그것도 한달 두달이지 12년이 지나도 계속 자라지 않고

주일 한번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고 산다면

교역자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하고 한심할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100일이 지나고 돌까지 얼마나 이쁩니까?

그러나 평생 그 모습대로 살라고 한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생명이 있다면 자라야 합니다. 열심히 자라야 합니다.

 

3)영적성숙은

 

버리는 것과 사모하는 것이 제대로 될 때 (벧전2: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벧전2: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악독,모든 궤휼,외식,시기,비방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모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합니다 .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을 말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무엇이냐 ?

그것은 군살빼기이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세상의 성장 즉 부요함과 풍성함은 점점 더해하는 것입니다.

돈이 점점 많아 지는것, 아파트 평수를 넓혀가는 것, 기업이 점점 커가는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성장은 점점 제거해나가는 것입니다.

군살빼기라고 제가 표현을 하였는 데

군살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살이 아니라 없어야 되는 살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자신의 급한 혈기가 나타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말을 함부로 하고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화를 자주 냅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잘난척을 합니다.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못난 부분을 점점 제거해나가는 것이

성숙한 신앙으로 가는 길입니다.

 

4)영적성숙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을 통해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감사할줄 알고 기뻐할 줄 아는 사람이 참 성숙한 사람입니다.

사역을 할때, 기도모임을 갖는 데 거기서 기도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고 일주일동안 기도하고

다음주에 모여서 기도응답을 받은 것을 나누는 데 지금까지는

똑같은 상황이 되어 좋은 일이 생겨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응답인줄 몰랐는 데 기도노트를 보면서

그것이 바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주어진 조그만 일들이 바로 하나님에게 감사의 조건이 된다는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것으로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5)고난과 훈련을 통해서

 

고난을 겪고 나면 신앙이 정금같이 단련된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나옵니다.

고통과 시련이 올때 복주시려고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은 축복의 동전의 다른 면입니다. 구약의 많은 인물들을 보십시오.

모두 어려운 환경과 처지에서 극복하였을 때에 성숙한 신앙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시지 않았습니까?

 

셉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야곱이 그랬습니다.

로마서 5장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6)하나님앞에

 

올바른 중심을 갖고 있을 때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의 나와의 관계가 좋을 때 영적성숙은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편과 싸우고 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야단치고 나면 속상하다고 새벽예배에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사람들은 신앙의 기준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찾고 있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기보다는

먼저 사람에게 찾아가 호소하는 것도 올바른 중심의 신앙은 아닙니다.  

 

 

/출처ⓒ†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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