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

[스크랩]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하나님아들 2017. 6. 12. 21:41

1.서론

1) 종말과 새 언약

이와같이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은 그 궁극적인 목표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세우는 것이었고 이미 언급한 언약들의 목적들을 실현하는 것이
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늘 실패의 길을 갔고 다윗왕국은 그 아들 솔로몬 후에
분열된다. 이스라엘의 영광의 성취로써 성전을 짓고 또 백성들이 단에서 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가지 각기 포도나무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
(왕상4:25)고 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그들은 지
적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이 있었으나 그들의 노력으로는 하나님께 수납될 수 없
게 되었다.
선지자들의 활동이 활발하였으나 그들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리는
데에는 이르지 못한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명확히 보
여주어 일시적으로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나 그때 뿐 이스라엘은 이제 철
저히 심판만 선고되고 멸망이 뒤따른다.
또한 하나님의 특수한 증인으로서도 서지 못한다. 그들은 이방에 하나님을 증
거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기까지에 이른다. 선지자 요나
는 마지 못해서, 하나님의 강제로 그 사명을 다한다. 사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의 선택때부터 그들이 뛰어났다거나 도덕적으로 다른 민족들보다 무슨 장점이
있어서 택함받은 것이 아니었다(신 7장).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원인이었고 반
복되는 실패에도 보존받은 것도 오직 이 하나님의 은혜가 원인이 되었으나 그들
은 그들이 체험하고 있는 은혜로 구원받는 도리를 다른 민족에게 전하지 못한
다. 그들은 그들이 선민이 된 목적을 망각하고 온 인류와 창조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뜻과 경륜을 져버리고 그것을 이스라엘 민족의 배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어떤 것으로, 그 민족의 헌장으로 전략시켜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언약은 파괴된 상태에 있었고 그리하여 종교적인 죄와 사회적인 죄는
만연하게 된다(렘 11:1| 23; 34:9| 22; 암 2:6| 8; 5:10| 13). 그리하여 그들은
멸망이 선고되고 바벨론에 의해서 이것은 집행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심판만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일르키고 이것이 실제로 고레스의 칙령으로 이루어진다(대하
36:22,23).
약속의 땅에로의 회복은 새언약과 그 다음 새창조로 인도해 간다(사 40-66).
이것은 또한 우주적으로 실현되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주권의 회복과 우주적
인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로 승화되고 넓혀져서 본래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의
회복, 아브라함언약의 성취 곧 하나님의 구속의 세계적 성취가 예고되는 것이
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고하면서 이상적인 야웨의 종, 하나님의 의
와 인간의 이상과 소망의 실체로 자기를 제물로 드려 인간의 허물과 죄를 제거
하시며 언약을 완전하게 하실 메시야가 임하여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뜻을 완전
하게 성취하실 것과(이사야서의 종의 찬가) 보다 구체적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참 이스라엘의 성격을 예언한다(남은자 사상).
이러한 와중에서 이스라엘은 심판받고 정화되면서 남은 자만이 구원받고 그들
이 참 이스라엘이 되고(왕상 19:12-18; 사 6:11-13; 8:11-22; 11:1; 롬 2:25-29
; 9:1-29) 새언약 공동체를 이루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세계적 선포가
이루어질 것이다(사 22:22; 마 13:52; 롬 3:2; 마 16:16-22). 구약의 진정한 의
미와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것을 풀어 가르칠 권위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2)새언약

여기에 새 언약이 주어져서 인간적인 지혜와 노력과 방법으로는 신인관계의
회복에 이를 수 없는 고로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성령으로 이루시고 그렇기에 결
코 실패함이 없을 언약이 된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은혜로 세우고 지켜지는 언
약이며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께서 언약이 되셔서 그 요구를 다 성취하실 것이
다(사 42:6; 49:6-8; 55:3; 59:21; 61:8; 렘 31:31-33; 32:40; 50:5; 겔 16:60,
62; 34:25; 37:26; 호 2:18).
이때에 하나님의 법은 사람들의 심비에 세겨질 것이며(율법이 돌판에 새겨진
데 반하여) 그날에 다윗의 가문에서 한 사람이 나와 보좌를 차지할 것이요 그의
구속사역으로 죄와 적대감이 제거되어 참된 평화와 안식이 임할 것이며 사람들
은 평화의 영원한 언약을 즐길 것이다(사 11:1-10; 55:3; 렘 23:5; 32:37-40;
겔 34:23; 37:25). 하나님의 백성은 국가로서가 아니라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무리들의 영적인 모임이 될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은 국가적인 권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는 자들의 모임안에와 그 모임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요 하나
님의 궁극적인 목표들은 궁전보다는 성소에서, 군사적인 강함보다는 심령안에
있게 될 것이다. 그루터기의 순으로 어린아이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심령을 감
복시켜 참된 일치와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겔 40).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도래하고 하나님께서 사람 가운데 임재하는 하나님의 직접통치가 완성될 것이
다.
2. 포로기 시대

1)메시아 왕국
포로기 이후의 선지자들은 왕국개념이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겔 40-48). 특히
다니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속에 어떻게 개입하며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고 끝날 것인가를 기술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의 갈등과 마찰과
정을 보여준다. 다윗왕가의 바벨론포수와 예루살렘이 탈취당함은 하나님에 대한
이방세력의 주권을 주장한 것으로 어두움의 권세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의 충돌
로 보고 그러나 마침내 인자에 의해 이 세상나라는 멸망당하고 최종적인 승리가
확보되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온세상 위에 설 것을 말한다(7장과 12장). 이
것은 특히 바벨론과 시날 땅이 언급됨으로써(1장) 창세기 11장을 상기시켜 이상
의 사실을 더욱 명확하게 한다.
이렇게 구약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
하심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고양시켜 고대하게 한다.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가서도 모세의 출애굽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고 회복, 구원해 주실 제
2의 출애굽을 소망하고 그것은 이루어지고 만다. 이스라엘은 고난을 당할 때마
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원하심과 회복해 주심을 바라본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이
러한 소망이 종말론적으로 이스라엘을 넘어서서 우주적으로 이루어질 것을 말한
다. 이스라엘의 이상은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에 의해 온세상에 대한 축복과 새
창조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는 곳마다에 이 종말론적인 소망을 이방
에 심고 마침내 그리스도에게서 실현된다.
2) 신구약 중간기
그리고 마침내 구약은 말라기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새언약의 선구자 세례요
한(엘리야)의 도래를 예언함으로 끝나고 신구약 중간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말
씀이 끊어지고 이스라엘은 무서운 고난을 당하면서 율법의 이상이 실현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이스라엘민족이 회복되며 다윗의 가문에서 왕이 나
오고 이를 통해 세계가 구원받으며 예루살렘은 세계지배의 센타가 되고 그들은
세계 위에 군림할 것이라는 민족배타주의적인 선민사상과 세계의 구원이라는 보
편사상이 동시에 나타난다. 특히 그들은 구약에는 등장하지 않은 하늘나라 개념
을 씀으로써 그러한 의식과 기대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쉽
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수 있으셨다.
3..구약에 나타난 종말의 본질
1). 최초의 신정
에덴에서 하나님은 왕으로서 주권적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법도를 세우시며
그의 은혜로운 다스리심과 관할하심이 있고 영토가 있고, 그 가운데에 백성이
있다. 이것이 최초의 신정으로 거기에는 죄와 악이 없이 만물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를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간은 피조물이었지만 하나
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창조주와 교제할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신정 대리인으로 하나님의 창조를 계발하여 하나님의 창조 성업의 완
성의 동반자로서의 사명을 지고 만물을 대표해서 하나님 앞에 선다(창 1-2장).
2) 메시야관의 고착
최초의 신정은 금단의 열매를 통해 세워진 창조언약을 인간이 어김으로 파괴
되고 세상은 사탄의 말을 인간이 스스로 순종함으로써 사탄이 세상의 권세를 잡
고 지배하여 창조주와 이간, 왜곡과 불협화음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회복하여 본래의 창조목적과 성업을 달성하시고자
임하여 개입하시고(창 3장) 구속언약을 세워 자기 아들을 통해 성육신하시기까
지 자기를 피조물 인간에게 매시고(언약) 임마누엘 구원을 가져오시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처음 아담이 실패한 사명을 마지막 아담으로서 완성하며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며(마 1:1) 그는 또한 나단 선지자(삼하 7:12-16)와 시편의 대관
시(2:7)와 제왕시(시 72etc.)의 예언을 다윗의 보좌에 올라 성취하실 것이며 고
난당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이스라엘이 다하지 못한 사
명을 다하며 이방의 빛이요 언약으로 스스로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제사드려 새
언약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구속의 세계적 성취를 가져오며(사 42, 53) 인자로서
하나님의 왕권을 받아 하나님의 영원한 통치와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3) 주의 날 사상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하심은 두가지로 묘사되어 있다. 그 첫째는 자기 백성의
위기의 때와 그들의 죄악이 깊어지는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임하여 오셨고 둘째는 장차 종말론적으로 다시금 새롭게 임하실 것이다.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은 홍해가 앞에 놓여 있었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추격하
는 위기의 상황에서 두려워 떨고 부르짖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임하
시고 개입하셨는데, 그의 왕권은 세가지 면에서 나타났다. 자연만물 위에는 홍
해를 가르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길을 내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구원을 주시며
그들을 괴롭히는 원수들에게는 심판을 내려 수장시켰다(출 14장). 여기서 하나
님은 자연위에도 이방인이나 이스라엘 위에도 왕이심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
나님의 임하심은 "여호와의 날"로 특징지어 불러진다.
포로기 이전 선지자들에게 넘어서면 여호와의 날 또는 주의 날은 크고 두려운
진노와 심판의 날로 그의 백성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시는 날이었고 그의 백성들
에게는 구원의 날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백성들 마저도 정화하시며 그의
의로우심을 입증하시는 공의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날이다(암 5:18-20). 이사야,
예레미야등의 선지자들은 "말일"로 지칭하면서 그날에 이루어질 특징을 말하고
있다.
포로기 때의 선지자들은 포고기 이전의 이사야와 예레미야들도 예언한대로 이
스라엘의 회복과 축복, 더 나아가서 우주적인 구원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도 예언한다(겔 36,37; 사 40-66).
포로기 후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악한 자들을 심판하시고 지상에
그의 의로운 통치를 실현하시기 위해 인류역사에 관여하실 것이라고 함으로서
심판과 구원의 범위를 모든 민족에게 까지 확대한다. 이러한 임하심과 구원과
심판은 종말론적으로 이루어져 영원한 구원과 정화의 심판을 집행하시어 역사를
새롭게 하시며 우주 위에 그의 주권을 회복, 확립하실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의 초림과 재림과 관련된 것이다.
4) 하나님 나라의 두 그림
구약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표현은 나타나지 않으나 역동적인 의미를 지닌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시 93,95,100). 그는 현세적
으로도 통치하시며 장차 새롭게 그의 왕권을 행사하실 것이다. 여기서 새롭다는
것은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을 가르킨다. 그는 창조주시요 지극히 높으신 영원
하시고 우주적인 왕이시다. 그가 이룩하실 나라의 양상을 보면 여호와 통치는
온 우주에 미친다(사 23:21-23; 25:6-7; 슥 8:20-21; 14:9). 그래서 여호와는
온 땅의 주이시며 그의 왕권은 무모한 힘에 기초되지 않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
좌의 기초이다(시 97편).
메시야의 의는 고아나 과부처럼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까지 미치고
(사 11:3-5; 렘 23:5-6) 그 아래서 정화와 일치가 있으며, 그리고 모든 삶의 특
징은 사람들이 정결케 되고 새롭게 된다(사 1:25-26; 4:3-4; 26:2; 32:15-16;
렘 31:31,32; 겔 36:25-26; 37:23,24). 그 나라는 전쟁이 없고(사 2:2-4;
9:5-6) 죄와 적대감의 제거로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누워도 해됨이 없다(사
11). 동물의 세계에도 화해가 이루어지고 한 왕 아래서 참된 평화와 일치가 임
하고(겔 37; 엡 2) 유대인의 양의 우리에서 뽑아낸 양이 유대인으로 구성된 양
의 우리에 속하지 아니한 다른 양과 합쳐 한 목자 아래서 한 양의 무리를 이룰
것이다(겔 34; 요 10). 만물이 회복되고(사 35; 41:17,18; 겔 47; 호 2:21,22;
욜 4:18; 암 9:13), 황폐된 인간성도 회복 완성되며(사 35:4,5,6), 죽음도 정복
되고(사 26:19-21), 만민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그의 부요하심에 참여
할 것이다(사 25:6-8). 피조성의 혼란과 한계를 극복하고 그의 불사의 생명에끌
어 올려질 것이다(대상 29:10-25).
역사의 목표는 여호와의 주권의 계시와 우주적 시인, 의와 승리와 세계평화와
구원의 완성에 도달하는 것이다(시 46장). 그는 현재적으로 통치하시고 장차 완
전하고 우주적으로 인정될 것이다. 그 나라는 영원하며(단 2:1-3; 25-49) 선은
승리하고 악은 폐기된다(시 110; 145:11-13,20). 이러한 왕권은 다윗의 위대한
아들을 통해서 행사되며(시 72장), 그의 임재가 완성되어(시 132; 행 2:30-32;
고전 15:24-28; 엡 2:19-21; 계 12:1-5)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왕되심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시 46).
5) 다니엘의 사상과 인자 개념
묵시적인 선지자인 다니엘은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의 확립과
적그리스도의 출현(단 11:36-43)과 환란 후의 성도들의 구원이 있으며(단
12:1-4) 지상의 왕국을 심판하시고 큰 악의 세력을 멸하실 것을 예언한다. "인
자"는 이러한 여호와의 왕권의 대행자로 구름을 타고 오셔서 죄악 세력을 정복
하고 그 백성의 원수들을 심판하며 그의 백성들은 구원, 새롭게 창조하여 모으
시고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을 대표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우주적
이고 초월적이며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다(단 7:13-22).
4. 신약의 종말관
한마디로 말하면 구약의 종말관의 본질과 그 핵심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며
더 나아가서는 우주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메시야의 오
심을 대망하는 것으로 사탄의 권세를 멸하실 여인의 후손에서 사랑하는 독생자
를 제물로 제사드림으로 구원을 가져올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그 다음 유다지파
의 후손으로,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종말론적인 출애굽을 가져오고
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조직할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의 나라를 건설하여 온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안식
과 평화를 가져다줄 다윗의 후손으로, 그 메시야를 구체화해 가는 것이다.
신약의 종말관의 본질은 이러한 구약의 종말론적인 신앙에 근거하여 예수 그
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현재로 임한 종말과 그의 재림으로 미래에 완성될 종
말을 가르친다. 예수의 사역은 구약의 종말론적인 소망의 구체적인 성취이다.
예수는 자신의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지만 지금 자신의 세대에
이미 임하였고 지금 우리들의 시대에 구현되어야 할 명제로서 가르치셨다.
1)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구약은 한 목표(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발전되어가는 역사이고, 신약에서
사복음서는 그 목표의 성취를 보여주며, 서신서는 이것을 해명하고 있다(요 5:
39; 히 3:1-3; 요 1:14). 하나님의 임하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해서, 그
와 더불어 총화 구현되었고 하나님의 계시는 구속사적으로 통일 되어 있다. 그
러므로 신구약을 유기적으로 해석해야 바른 의미에 이를 수 있다. 각 세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특징이 있게 주어지지만 꽃씨형태가 꽃이 핀 것처럼 어린아이
수준에서 어른의 수준으로 발전되어 그리스도에게 이르러 성취와 완성을 보는
유기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이다. 세대주의는 각 경륜시대를
단절시켜 해석하므로 신구약을 유기적인 통일로 해석하는데 실패한다.
2)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 구약의 하나님의 임하심이 구현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고 가르치셨다
(막 1:15; 마 4:17; 눅 10:9-11).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단의 권세를 꺾고 그의
구원을 가져올 그 시간이 임박했고 벌써 여기에 도착했다는 깃이다. 구약과 유
대 묵시 문학의 가르치심대로 이세상이 종결되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새 세상
이, 하나님의 임하심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그 시간이 벌
써 와서 지금 시작되었다고 하신다. 하나님이 임하실때, 그 통치권을 행사하실
때에는 항상 죄악의 권세를 심판하고 그의 백성을 구원해 오셨다. 그런데 그러
한 통치의 실제가 사단을 결박짓토 그 부하들을 쫓아내고 그들을 왕으로서 짓밟
으시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그의 사역 가운데서 현재가 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최초의 사역은 40일 금식후의 사단의 시험을 물리친 일인데 이
는 첫 사람 아담의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놓은 일로 법적으로 사단은 치명상을
입었다. 예수는 세상의 파괴세력 사단보다 강한자로서 사단을 무장해제시키고
사단의 권세아래 있는 백성들을 구원해내는 데서 하나님의 왕권과 그의 능력이
자신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마12:22-29; 눅11:14-22).
예수께서는 자기의 선포와 가르치심과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제가 되고
있다고 하였다(눅 11:20; 사 60:1-3). 구약에 예언된 황금시대 곧, 메시야시대
의 도래를 가르치셨고(눅 10:23; 11:31; 막 2:15-21; 마 9:26-37) 왕의 취임사
를 하신다(눅 4:16-21).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다른이를 기다려야 합니
까?"라고 제자를 보내서 묻는 세례요한의 질문에 대해 구약에 예언된 황금시대
가 자기의 사역 가운데서 현재가 되고 있고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을 돌아보셨고
은혜의 해가 떠올랐다고 일러주라고 자신이 지금하시고 있고 그들의 눈이 확인
하고 있는데로 소경이 시력을 회복하고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고 자기의 사역과 의의(사 35)을 예를 들어 확정해 주신다(눅 7:19-23).
예수께서는 메시야에 대한 구약의 예언이 지금 자기안에서 성취되고 종말론적
인 미래가 현재로 시작되었다고 말씀하신다(막 2:15-22). 그렇기에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왜 금식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신다: "내가 곧 종말론적인 하나님나라의 신랑이
다. 그 신랑이 현재 여기 임석하여 있으므로 그의 친구들은 금식이 아니라 축제
를 가져야 한다. 금식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적합하나 그것을
가져오신 분이 임하였을 때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된다는 비유를 통해 예수와 함께온 새 시대의 능력은 모든 형태의 옛 것
에 맞출수 없다. 율법과 선지서를 성취하는 예수의 사명은 옛질서의 틀에 맞추
어 둘 수 없으며 옛질서의 틀을 그대로 남겨놓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잘못된 해
석과 시도를 즉각 중지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고 경고
하신다.
또한 과거의 세대가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기를 열망했으나 지금은 자기안에
서 그 통치가 실제로 도착하였기에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제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다(마 13:16, 17). 세례요한은 꿈으로만 생각했으나 예수의 제자들
은 하나님의 통치를 직접 경험하며 현재 임한 구원을 경험하고 있기에 세례요한
보다 크다고 하셨다(눅 7:24-28). 또한 자기의 인격과 사역으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출범하였는데 아직도 유대 묵시문학적 의식 가운데 젖어 하나님의 나라
를 기다리며 이적을 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고 하신다.
그의 의도적인 하나님나라의 비유행위들과 비유선포는 또한 하나님 나라의 현
재를 가르치며 자기 사역 가운데서 아버지의 사랑이 실제가 되고 있다고 하신다
(눅 15장). 회개한 죄인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 자기안에서 실제가 되고 있
다고 하신다. 아버지 집에는 회복된 교제와 기쁨의 잔치가 벌어진다. 그것은 잃
어버렸다가 다시찾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비유
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비난한데 대
해 대답하신 것으로써 당시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고 있던 특권층 즉, 바리새
인, 제사장, 서기관등만이 하나님나라의 복을 누리리라는 기대를 불식시키고 자
신이 메시야 왕국에서 있으리라는 잔치에 대한 구약의 예언(사 9:1-7; 25:6-8)
을 성취하고 있으며, 자신이 그 잔치의 주관자이심을 웅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만이 하실수 있는 죄용서를 직접하심으로써 구약의 약속이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자기안에서 현재가 되고 있다고 하셨다(막 2:1-12; 사
40:9; 41:27; 52:7; 53; 겔 36:25). 자기가 베푸는 회개한 죄인들과 먹고 마시
는 잔치(비유행위)와 잔치의 비유는 비유행위와 비유선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
라를 직접행동으로 선포하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가르친다(마 22:1-4;
눅 14:6-24). 이제 잔치준비는 완표되어 손님들은 와서 먹기만 하면 된다. 그리
고 잔치는 이방인과 전세계, 신분과 종족, 남녀노소 구별없이 확산되고 있다(마
8장).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용서와 화해와 의의 나라요 원수까지도 포
함하는 사랑의 나라임을 증시하셨다. 그리고 종말에는 이러한 잔치와 교제는 새
롭게 될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사역을 이렇게 의미지었다.
또한 예수는 이적을 주로 안식일에 행했는데 이는 하나님나라의 주석이며 실
제화를 가르친다(요 5:17-21). 안식일의 원래 의미는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타락으로 창조가 더 이상 완전하지 못하다. 그
렇기에 안식일에 병자가 있고 사람도 쉴 수 없게 되어 땀을 흘려 일해야 되었고
하나님께서도 고장난 창조와 인류를 고쳐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예수께서도
그 회복의 재창조 사역을 지금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하신 것이다. "내 아
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안에서 그와 더불어 그를 통해서 현재가 되었고
그리스도안에 숨겨진 상태로 가까이 와 있으나 회개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이 행사되며 영적인 실재로 그들 가운데 임하는 것이다(눅 17장).
오늘은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이리하여 죄와 어두움, 증오와 분열, 죽음과
파멸로 흐르던 역사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역사의 물꼬를 되돌려 의와 빛, 사랑
과 일치, 평화, 생명과 하나님께로 역류를 시작하셨다. 역사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새시대에로 열어 제치셨다. 종말론적인 구원의 날이 동이 튼 것이다. 역사
가 구원 받기 시작한 것이다.
3)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성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남은 부분이 없이 완전히 임하였다고
하시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위해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다(마 6:10; 눅 12:31). 하나님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기도의 제목으로 삼으라는 명령이다. "이 악과 고난의 세상을 종결짓고 하나님
이 직접 다스리는 그 새로운 시대를 가져오소서. 그리스도안에서 현재가 된 그
나라를 완성하소서" 하는 기도로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 완전히 오는 것을 나타
낸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에 벌써 법적으로, 원칙적으로 통치하고 계신
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단이 공중권세를 잡고 이 세상을 사악한 방법으로 지배
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적인 통치를 실제로 확립하셔서 사단을 완전히 격멸하고
타락, 왜곡되고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세상을 정화하시고 구원, 회복하소서 하는
기도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미래에 오는 것으로 가르
치신 것이다.
또한 현재 삶의 모습은 미래의 상태로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며(눅 6:20-
26; 마 5:3-12; 19:30; 10:26; 18:4) 가치체계나 존재방식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이며 그래서 지금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자신만만한 사람들이 왕좌를 차지
하나 그때에는 심령이 가난한자, 자기를 부인한 사람들이 왕좌를 차지할 것이고
혼인이 없다.
산상보훈의 팔복은 첫째 복과 여덟째 복은 현재형으로 되어 있으나 나머지 복
은 미래형으로 되어 있어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로 실재하나 모든 배고픔이 채워
지고 고통이 끝나는 것은 미래에 온다는 것을 가르친다(마 5:3-12).
마지막 때가 갑자기 임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항상 경성할 것과 완성된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할 것, 그리고 제자들이 마지막 겪게될 고난의
때를 가르치신다(마 18:3; 막 9:47; 눅 13:24; 12:49-53; 17:22,23).
그리고 예수에 의해 주어진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심판이 선고되고 열방의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 이 잔
치에서는 이방인이라는 열등이 없고 교제의 회복과 영생의 기쁨이 있을 것임을
가르치셨다(마 8:11,12; 눅 13:28,29; 사 25:6-8).
말씀을 맡은자들(롬 3:2)이 문에서서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마 13:52; 눅
11:52) 풀어 가르치는 열쇠사용을 거부함으로 열두 제자들을 핵으로 해서 새로
운 구원의 공동체(교회)가 성립되고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며, 진리의 파수자가 될 것이다. 회개와 믿음으로 들어가는 그 나라를 선
포할 것이며(마 16:16-24; 사 22:15-25; 눅 24:44; 사도행전) 하나님의 구원과
용서를 선포하며 권징을 행사하고 유대인이라는 양의 우리에 속하지 않는 양떼
들(이방인)도 유대인의 양의 우리에서 불러낸 양과 합해 한 목자 아래서 새로운
양떼를 이룰 것이다(요 10:16). 이들이 남은 자들로 참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
성이다. 그리고 "교회"는 히브리어 qahal을 헬라어 ekklesia로 번역한 것으로
그것은 신조어가 아니라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나 회중을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이 통일되고 하나가 될 것이며(겔 37장; 엡 1,2장), 미래
에 오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죄악의 꽃이 피어 정복되고 종말론적인 최후
심판이 있으며, 이 온 우주가 갱신되고 새롭게 창조된다고 가르치셨다(마 13:
24-30,36-43; 19:28; 24:42; 25:13; 10:23; 24:44; 막 13:32; 눅 12:46; 18:8;
21:36). 처음 창조를 단순히 되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혀 질이 다른 새 창
조를 가져온다. 새로운 존재가 된다(사 43:19). 안식일에 즐겨 이적을 행하심으
로써 병든 창조를 원창조로 온전케 회복, 완성시켜 종말론적으로 진정한 안식일
이 있게 하신다는 것을 극적으로 천명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구원
의 시간은 이미 시작되었고 예수께서는 그 사역의 완성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또한 내적이고 영적인 실체가 가시적이고 만질수 있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
서 내면 가운데 세우시는 보이시지 않는 통치는 앞으로 오게되는 제 2의 완성될
통치의 그림자이다(막 14:62; 살전 42장).
이상의 가르침들은 하나님의 나라(종말)가 완성되는 것은 예수의 재림과 더불
어 미래에 오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4) 예수의 인격과 삶과 가르침의 특색과 하나님의 나라

마태 1장에서 예수는 다윗과 아브라함의 후손(헬라어 원문의 순서는 아브라함
을 앞서 다윗이 나옴)으로 소개됨으로서 그가 나단의 예언(삼하 7)대로 다윗의
가문에서 나와 다윗의 보좌에 앉을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로 참된 성전 즉, 하
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지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악의 권세로부터 하
나님의 백성들을 구원, 안식을 주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시요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 그리고 새 창조사역의 집행자이신 성령
으로 잉태하여 성령으로 난자(이삭)가 약속의 자손으로 세계구속과 하나님의 나
라를 가져오실 분이요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새시대, 종말론적인 구원의 새
시대가 예수와 함께 시작됨을 가르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라는
표현이 창 2:4 '천지의 창조된 대략'과 창 5:1의 '아담자손의 계보'등 창세기의
족보(Toledot)주제를 이어받으므로써 새로운 기원이 이루어짐을 지원해주고 있
다. 또한 예수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대로 임마누엘 구원을 가져오실 분이
시다(사 7:14).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을 가져오는 분이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처녀탄생이 아니고 기혼여자가 아이를 낳은 것이면
징조가 될 수가 없다. 그런데 예수는 처녀탄생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처녀탄생은 하나님의 큰 구원-종말론적인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가르친다.
5) 예수의 세례와 야훼의 종으로서 공포됨
신구약의 분수령을 가져온 왕의 선발대 세계요한은 예수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음성과 성령으로 기름
부어 이를 공적으로 확증하여 고난받는 야훼의 종으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성취하시고 다윗의 보좌에 올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언약의 백성
을 대표하고 하나님을 대신한 왕으로 공포하신다(마 3; 사 42:1; 시 2:7). 그리
고 예수는 스스로 할례와 세례를 받으심으로 언약의 대표자로서 언약의 의무를
지시고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자기가 공적으로 지니셨음을 나타낸다(갈 4:4,5).
예수는 또한 그 옛날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의 출애굽이라는 큰 구원을 가져오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 언약백성이 되게 했던 것처럼 사람들
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종말론적인 출애굽을 가져오시고 새언약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실 종말론적인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보고(마 2) 외적들을
구축하고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 하나님의 신정국을 확립하여 하
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준 다윗처럼 어두움의 권세를 멸하시고
온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시고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고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가져오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종말론
적인 다윗으로 불러진다.
5)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죽음과 부활
복음서에서 사도행전과 서신서로 넘어가는데 있어서 커다란 변화는 예수의 하
나님 나라 선포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대신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내용이
그의 죽음과 부활이 되는 점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했는데 그의 제
자들은 스승의 본을 따르지 않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 전파하고 있다(행
2; 고전 1,2,15; 롬 3-6).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선포자(The preacher)가 사도
들에 의해서 선포의 대상(The preached)이, 역사적 예수가 신앙고백과 선포의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나라가 십자가의 부활이 되게 되는가? 이러한 변화는 예
수 당시에도 나타났는데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라고 고백하자 자기의 죽음과 부활이 자기가 이루어야 될 본격 사역임을 말씀하
신다(마 16:16-24; 막 8:27-31).
이것은 예수께서 소위 예루살렘 성전 청결사건때에 하신 말씀과도 관계된다
(요 2:12-22). 성전을 부수고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않은 새 성전을 사흘에 짓겠
다는 죄목으로 예수는 정죄된다(막 14:53-65). 이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심의 상징인 성전은 그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 가운
데 거하시며 성전을 아주 무시해 버리고 스스로 성전의 기능을 이루고 즉, 죄를
용서하고 자기 몸으로 제사를 지내 속죄와 교제의 회복을 가져오고 새 언약을
세워 새로운 하나님 백성과 공동체를 창조하시어 새로운 성전 즉, 영원한 하나
님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뜻이었다.
이것은 자기가 삼하 7:12-16의 나단의 예언 - 손으로 짓지않은 성전을 짓겠다
는 즉, 인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창조, 모아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리라는
예언을 성취하신다는 것으로 자기가 다윗의 자손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기의 죽음의 의미를 가장 잘 밝힌 것은 최후의 만찬석상에
서이다(마 26:26-29; 막 14:20-25; 눅 22:20-22). 이 만찬은 완성된 하나님 나
라에서의 잔치의 지상적인 실현으로 회개하고 그 나라를 상속받은 죄인들이 교
제가 회복되어 아버지의 풍성함에 참여하여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상
에서 가져온 일련의 잔치의 종결로서, 그리고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대
한 예고인 셈이다. 이 만찬은 또한 내일 다가온 자기의 죽음을 극적으로 연출한
것이다. 그의 죽음은 대속과 화목의 제사요,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며 언약의
피이다(사 53:10-12; 출 19,24,34장). 새언약(렘 31:33-40)은 이전 언약의 완전
한 성취와 성령에 의한 내적인 소생, 죄제거와 용서, 세계화해와 영원함을 가져
오는 것이다. 고난받는 주의 종이 백성들에게 언약으로 주어지고(사 42,45,
49,53장) 언약이 맺어지면 하나님의 백성이 창조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화해(화목; 하나님과의 본래관계의 회복)시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구원에 이르게 하겠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선포의
약속과 초대장은 그 효력을 발생하게 되며, 약속은 법적인 보증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죽음과 관련해서 그것이 이 세상임금인 사단의 심판과 축출 및
무장해제를 의미한다고 가르치셨다(요 12:31-33; 히 2:14-16). 하나님께서는 인
류의 죄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십자가 위의 예수께 하셨고(고후 5:21; 롬 3장),
이것은 모든 언약적 요구를 완성하신 것이다(요 19장). 구약에서 자기 백성을
괴롭히는 궁극적 파괴세력인 사단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사단의 통치수단인 죄와
사망의 권세를 폐하여 사단을 무장해제시키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예수는 다윗
의 자손으로 나단의 예언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새로운 성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 것이다(삼하 7:4-16).
이렇게 해서 인간은 죄용서받고 의로 인정받아 하나님께 수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롬 3:29-31). 예수의 죽음은 십자가 위에서 세계에 공개된 하나님의 심
판이었고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내릴 그의 진노의 심판과 저주를 그리스도에
게 쏟으셨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시킴으로써 예수의 가르침
과 주장, 그의 모든 사역이 옳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온 인류의 속죄와 신인관
계의 화목제물로서 열납되었으며 그가 짊어지신 모든 요구와 기대가 완전히 성
취된 것이다. 유대지도자들은 예수가 백성을 오도한 거짓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처형되었음을 알려 예수운동을 효과적으로 종식시키고자 십자가에
처형했으나 그는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증거되고(롬 1:4) 십자가에
내린 저주는 우리 대신 받으신 것이요 대속적 죽음이었음이 확증된 것이다. 부
활은 재창조이다. 중생과 변화가 여기서만이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 대
한 반역을 사랑으로 돌이키시는데, 그만이 타락한 인류를 내적으로 정화시키고
감화, 설득하시고 그와 이간, 왜곡과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창조를 회복시킬 수
있으신데 이 신비스러운 전쟁의 승리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극치를 이룬다.
세상의 원칙대로 물리적인 힘의 우위나 자기주장의 의지로 살아 사람을 정복하
면 굴욕적인 복종을 가져오고 복수의 씨를 뿌려 거두는 악순환을 가져온다는 것
은 인류역사가 증거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다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기본이
며 내용이다(고전 15:1-4). 예수는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외치셨고 하나님
께서는 그를 부활시킴으로써 그의 "다 이루었다"는 주장에 대해 "아멘"으로 공
개 천명하신 것이다. 예수는 자기의 죽음과 부활에서 이루어질 우주적인 구원사
건을 미래지향적 전망으로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뒤돌아
보면서 과거지향적 전망에서 선포한 것이다. 이리하여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
수를 주로 신앙고백하고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고
선포한 것이다.
5.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마태복음 13장의 하나님 나라의 비유는 현재성과 미래성과의 관계를 잘 드러
내고 있다. 씨뿌리는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도입하시는 분이 인자, 곧 다니엘서
의 하나님의 대권자로,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고 모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
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파종의 때가 있는데 씨는 이미 뿌려졌다. 하나
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안에서, 그와 더불어 그를 통해서 이미 동이 텄다. 그리고
막는 것들이 있으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에 따라 30배, 60배, 100배로 퐁
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다. 물리적인 힘이나 권모술수에 의해서 임하는 것이 아
니라 말씀과 인간의 믿어 순종함으로 임하고 성장한다. 악과 함께 자라지만 정
화에의 심판의 추수때가 반드시 있다(가라지와 그물의 비유). 미미한 시작이나
순식간에 이방인까지 포괄해 버린다(겨씨의 비유). 시작한 것은 창조를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사역으로 전영역, 전체를 다 변혁하실 것이다(누룩의
비유). 보화와 진주의 비유는 율법준행을 통해 자기의와 성취로 들어가는 것(바
리새인들이 추구하듯)도, 무력이나 이데올로기적인 혁명(셀롯당이 추구하듯)에
의해서도 엄격한 금욕으로 들어가는 것(에세네파가 추구하듯)도 아니고, 오직
발견 즉, 은혜로 되고 그나라의 위대함을 깨달은 사람들의 전체삶의 전환과 헌
신을 가져온다(감추인 보화와 진주의 비유)는 것을 가르친다. 예수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로 실재하며 미래에 완성될 것이다.
보잘것없는 미미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과 비밀이 그
가운데 있어 권능과 영광 가운데 그의 주권적인 계시가 나타나고, 겨자식물은
모든 만물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우주성을 상징하는 묵시적 예언의 나무
가 되어 그 아래서 온 인류가 완전하고 영원하게 안식할 것이며 이 하나님의 주
권은 예수의 겸손한 사역에서 시작되어 하나님의 우주적 심판과 통치의 승리로
완성되며 모든 부분을 뚫고 들어가 변혁할 것이다(막 4:26-29; 겔 17:22,23;
31:6; 단 4:10-12; 시 104:12). 이와같이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안에서 "이
미" 성취되었고 "아직" 완성과 종국을 향하여 움직이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두가지 큰 순간을 포함하고 있는데 역사 내에서의 성취와 역사끝의 완성"이요
"성취와 완성"의 양면성을 가르친다.
1).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이룩
되는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나라이며 의와 진리의 나라요 생명과 사랑과 평화가
충만한 나라이다. 이러한 실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역사안에 들
어와 현재하며 회개하고 그를 주라고 신앙고백하는 사람들에게 실재가 되는 것
이다. 성령께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시며 이끄시며 죄의 용서와 모든 죄의 권
세와 악으로부터의 해방과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됨(의인)과 하나님의 생명과 성
품을 얻고 그의 형상을 본받는 성화(의의 실체)에 이루고 창조주의 본연의 뜻과
일치를 이루어 그와 직접적 교제, 기쁨과 평화와 만족을 누리며 세상에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증시하여 그 나라를 이룩하는데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마 5:13-16).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저 천당에서만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 가운데 이루어야될 명제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현 역사 가운
데 작용, 진흥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초자연적으로 이루어져 각자
의 마음과 삶속에서부터 시작하여 누룩처럼 온창조세계를 침투, 변혁해 가고 있
다.
그런데 현재성만을 강조하여 인간의 노력으로 지금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려는 신정주의적 이상주의는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예
수의 재림으로 오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동사의 주어가 인간이 된
적은 없는 것이다. 인간은 그 나라를 피동적으로 상속받거나 들어갈 뿐이다.
미래성만을 강조하여 영과 육을 분리, 영은 거룩하고 육은 저급하다고 생각하
는 존재론적 이원론과 이세상과 오는 세상을 분리, 되도록 이 타락한 세상을 멀
리하고 교회내에서와 내세에서의 우리의 영혼구원에만 힘써야한다는 종말론적인
이원론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인 완성에의 소망과 유보정신을 가지고 장
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현재의 고난을 감내하면서 성령의 도우
심을 힘입어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을 갖으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여 자기가
이른 만큼 자기를 내어주고 섬기며(산상보훈의 제자도) 의와 진리의 삶을 살고
새생명과 평화가 넘치는 삶을 살며 복음을 선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입술과 삶
으로 증시하여 세상에 구원과 해방과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해야할 것이다.
이 세상은 자기주장하려는 의지로 살아 무력과 권모술수가 지배하고 그것에 의
해서 강제로 굴복시켜 그 위에 군림하고 피정복자는 와신상담, 힘을 길러 정복
자를 역으로 굴복시키는 악순환이 끝없이 반복되어 악순환되어온 것이 인류역사
이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가 구현되어야할 장으로 보고 그 나
라의 진흥을 위해 헌신하며 마침내 이 어둠의 권세가 멸망당하고 하나님의 의로
운 나라가 완성될 것을 확고히 믿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 선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2) 하나님 나라 선포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로 우리도 그를 본받아 부활하여 하늘에 속한 사람 예
수 그리스도의 본성,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불사의 생명에로 끌어 올려져 지
상에 매여있는 짧은 인생의 피조성의 혼란과 한계를 벗고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
를 즐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이적을 행
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구원의 힘을 시위하시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했음을 구체
적으로 나타내어 악과 고난으로 다스리는 사탄의 지배하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에
게 의, 사랑, 생명, 진리, 평화로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을 창조, 모으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하
려는 것이었다(고전 15장).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지금도 보좌우편에 앉아 다스리는 참된 왕이시
며, 그의 왕권은 모든 창조세계 위에 행사되어 마침내 온 창조가 하나님의 은혜
스러운 관할과 다스리심 가운데에로 회복되고 볼 수 있게 온 우주위에 계시될
것이다. 그 때에는 죽음이나 고통이 더 이상 권세를 부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우
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죄와 악이 청소되고 그리스도안에서 만물이 통일되며 온
창조도 새롭게 되어 의에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 하나님께서는 만
유가운데 자기의 임재를 충만케 하실 것이댜(고전 15: 28; 벧후 3:13; 계
21:1-5).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의 본질이다.
3) 사도시대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에서 끝나는 사도사(사도행전)를 성경에 포함시킴
은 구속언약과 아브라함언약의 세계적 성취를 가져왔음(행 3:19| 24,25,26)과
하나님 나라가 우주적으로 실현되리라는 예수의 예언이 성취되었음과 이방인의
구속도 구약과 똑같이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속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제자들의
더딘 진행을 보라(행 1,9| 11,19etc). 그들은 요나처럼 이방인이 하나님의 나라
에 들어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예수는 모든 족속에게 가
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시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분부하셨는데도 예
루살렘에만 머물렀고 유대인 선교에만 국한한다.
그러나 스데반의 순교로 일어난 핍박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안디옥에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했는데 그 중에 몇사람이 헬라인(이방인)에게도 복
음을 전파하니 거기에 주의 손이 함께 하셔서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이방
선교의 문이 비로소 열리고 사도사의 방향이 베드로, 예루살렘, 유대선교중심에
서 바울, 안디옥, 세계선교로 전환을 가져오는 것이다. 스데반의 순교와 그로
인해 흩어진 자들의 선교는 요나의 하나님의 강제에 의한 니느웨 선교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된다.
첫 추수를 드리며 감사하는 오순절 성령이 임하기 전 유다 대신 맛디아를 보
선한 것은 이스라엘 12지파를 대신해서 새언약 공동체교회의 12기둥을 새로운
핵으로 세워 진리의 선포, 파수자가 됨을 선포한 것이요 앞으로 이방인 추수라
는 본격적인 추수를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은 객관적인 표증과
함께 임했고(2 장, 10 장) 즉, 디아스포라 모두가 자기들의 난곳 방언으로 알아
들었고 종말론적인 새 시대를 선포한 것이며 예수의 약속의 성취로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성령으로 제자들을 통해서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표징이며(막 9: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서 시작하신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대한 보증금이요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표였다(고후
1:22; 5:4).
그래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일으킨 사건은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하신다는 보증이었으며 성령의 은사는 이렇게 하나님 나라가 지금도 능력
으로 임하고 있음을 증거한 것이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그렇게도 반대했던 그리
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담대히 외치고 그리스도께서 참된 왕으로 지금도 다스리
시며 그 나라를 완성해 가신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다(2 장). 그리고 그 나라
를 받을 사람들은 세상적인 삶의 철학과 원리로 살던 옛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
을 섬기고 그가 대신 도리에 따라 삶을 경영하려고 자기주장, 자기중심성과 세
상으로부터 전인, 전인격이 돌아서는 회개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경쟁과 불신과 허위와 속박과 불화속에서 살던 사람들이 진리와 사랑, 자유와
평화의 나라를 이루는 공동체가 된다. 내 뜻 추구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요 자기 주장하려는 의지가 청산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교회이
다(2:42-47; 4:32-35).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종으로 하나님나라를 선취이며 하
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증시하는 장이요 미리 맛보는 것이다. 우리를 세상에 내
시고 구속하신 분의 아름다운 덕을 증거하며 드러내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벧
전 2:9).

4) 요한계시록의 메세지
계시록은 재림의 시간표라기 보다는 아무리 죄악과 불의가 극성을 부리고 난
무해도 반드시 죄악과 불의는 물론 죽음과 사탄까지도 멸망되고 의에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고 곧, 하나님의 의로운 통
치가 온우주와 역사에 완전하고 영원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주제로 가르친다. 그
리고 '666'이란 글자가 특정시대의 사람들의 이마와 오른손에 나타난다고 하는
데 이것도 요한계시록의 첫번 수신인들에게 과연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가를 알
아보아야 한다. 로마시대에 과연 그러한 숫자를 이마와 오른손에 새겨 넣어겠는
가? 이것은 지금가지는 무력과 폭력으로 인간을 지배했으나 말세에는 경제와 정
보로 인간을 몰아쳐 세계지배를 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묵시문학은 사실 문학
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666이란 불완전한 인간의 수로 인본주의적
정신과 인간의 힘으로 사는 것을 말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주의적 경
제원리에 따라 농업이나 상업과 산업을 경영하지 않으면 직장에서 쫑겨나고 살
기가 극히 힘들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뇌물방식이나 그 직장의 특수한 생
존방식과 구조적인 악을 따르지 아니하면 직장에 살아남기가 극도로 어려워 지
고 있다. 옛날에는 폭력과 무력이 사람을 지배하고 몰아갔지만 이제는 경제와
정보가 채찍질해 간다(계 13). 성도들은 이러한 와중에서와 죄악과 불의와 자연
도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폭력의 원리의 지배가 더욱 심해가고 영적인 각성
이 점점 저급해져가는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거룩하고 선하시고 의로운 나라가 이룩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것을 믿음
으로 인내하고 의연히 살아야할 것이다(눅 18:1-8; 히 10:35-12ff.; 계 13:10).

6. 결론
성령은 재림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과 구원의 보증(금)으로 주셨다(고후
1:22; 5:1| 5). 보증금이란 약속한 대로 지불하겠다는 선금으로 성령은 우리 구
원의 완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금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의 완성
은 확실한 일이고 이는 예수의 재림으로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빌립
보교인들에게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
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고 하여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
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구원의 완성을 가져올
것을 확신시킨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는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살전 1:4)"고 그들의 구원
을 확인해 주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고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
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즉, 하나님의 무서운 공의의 심판에서 구원해 주
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확고한 믿음(살전 1:9,10) 즉, 구원의 완성을 가져올 재
림이 반드시 있을 것을 믿은 믿음 때문이었다.
구원과 하나님나라가 완성되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탈, 탈락하여 그와
이간되고 왜곡과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창조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관할과 다스
리심 가운데로 회복될 것이며(행 3:19| 21) 죄와 악은 폐기되고 의와 평화는 영
원히 서며 온 창조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완성될 것이다. 이러한 구원과 하나님
의 나라의 완성에 대한 확신과 대망, 이것이 곧 바른 종말론적인 신앙이다.
그러니까 역사를 경영하시는 주님의 크신 뜻을 생각지 않고 재주껏 살면서 화나
면하고 천국이 있다고 하는데 거기도 재주껏해서 들어가자 해서는 않되고 세상
을 창조하시고 나를 여기에 내시고 구속, 새생명과 사명을 맡겨주셨는데 이렇게
하신 분의 본 뜻이 완성되는 그 시간을 기다리며 그 본연의 목표와 완성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 나아가고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온전히 이루
는 성화에 힘써야 할 것이다. 재림이 지연된다고 해도, 악이 아무리 기승을 부
려도, 자기가 불의와 악의 희생이 될찌라도 항상 깨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을 기대, 의로운 통치,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을 믿음
으로 사는 것이 바른 종말론적 신앙이다.

1)정리

이 마지막 날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신다. 예수의 재림은 세가지
용어로 묘사된다. 첫째는 parousia(행 1:11)로 이는 임재 또는 도착을 뜻하는
말로 왕이 자기의 영지를 방문할 때 쓰여지는데 이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최후의
구속사적인 자기 백성방문을 말한다. 그리고 apokalupsis(살후 1:7)는 계시나
들어냄을 뜻하며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왕으로서 영적으로 다스리는데 종말에는
그의 왕권이 세상에 볼수있게 완전히 드러날 것을 말하는 것이다. epiphaneia
(딤후 1:10)는 나타남을 뜻하며 그의 재림이 비밀리에 일어날 것이 아니요 모두
가 볼 수 있게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을 말한다.
이 용어들은 예수께서 초림때와는 달리 재림때에는 영광스럽게, 역사 안에,
인격적으로, 모두가 동시에 볼 수 있게 오실 것을 말한다. 이 때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권능과 영광 가운데 임하여 그 안에서 죽은자들을 부활시키고 자기 백성
들을 그에게로 모으시며 악을 멸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왕권과 주되심이 명
백하게 드러나 모든 무릎이 마침내 예수에게 무릎을 꿇고 모든 입이 그를 주라
고 시인하게 될 것이다.
이 마지막 구속사적인 자기 백성 방문은 주의 날 또는 그리스도 예수의 날 또
는 그 날 등으로 표현되며 구약에서는 크고 두려운 진노와 심판의 날로 그의 백
성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시는 날이었고 그의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자기 백성들 마저도 정화하시며 그의 의로우심을 입증하시는 공의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날이다(암 5:18-20).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사악한 자들
을 심판하시고 지상에 그의 의로운 통치를 실현하시기 위해 인류역사에 관여하
시는 어느 때를 가르킨다. 신약에서는 구속이 강조되고(엡 4:30) 그래서 소망과
기쁨과 승리가 지배적이다. 그리스도는 인자로서 산자와 죽은자에게 심판을 집
행하시어(요 5:27; 마 24:27,30) 양과 염소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를, 신자
와 불신자를 갈라내어 영생 또는 영벌에 처하신다. 불신자들에는 심판이요 신자
들에게는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다. 죄와 악은 영원히 제거되고 의에 거하는 바
새하늘과 새 땅이 임하고(벧후 3:13; 계 21:1)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된
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영광스런 소망으로 대망할 날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의 재림을 가르치시면서 주의 날에 앞서 일어
날 현상 즉, 재림의 징조를 말씀하신 후 두가지 격언성을 지닌 표현으로 요약하
셨다. 즉,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찌니라(마 24:28; 눅 17:37)"는
것과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재림에 앞서 그것을 알리는 징조가
있을 것을 가르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시체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독수리가
모여드는 현상과 같이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반드시 예루살렘의 멸망(이미 일
어남)과 재림(앞으로 일어남)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점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이 반드시 어김없이 명백히 있을 것
이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유대인의 잘못된 가르침 즉, 메시야가 아무도 모르게
성장해서 숨어 살다가 적시에 나타날 것이라는 유대인의 잘못된 신앙(그래서 거
짓 메시야와 선지자가 많이 나올 것이기에 "어느 때", "어디오
니이까"라고 묻는 제자들(마 24:3; 눅 17:37)을 예수께서 경고 하시며 그와는
전혀 다르게 갑짝스럽게, 볼 수 있게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동시에 볼 수 있
게,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올 것이라고 가르치셨다)을 불식시키고 메시야를
찾아 또는 그 날과 그 시 , 그 장소에 대해 과도한 호기심과 추구를 갖고 동요
하여 이리저리 헛되이 쫓아 다니지 않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그러한 현
상은 여름이 근접했다는 사실을 알리듯이, 예수께서 앞에서 말씀하신 현상들이
나타나면 그것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재림이 근접했음을 증거해 준다는 뜻이다.
그리고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재림을 알리는 현상은 지엽적인 사건이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을 보고서도 특히 중동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무엇이나 성경
의 예언들과 곧 바로 일치시켜서 소동을 일으키곤 하는데 이것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마태 23:37-39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성전의 파멸을 예고하신다. 그러
니까 제자들은 성전의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보려 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
님의 임재와 그의 백성과 함께하심의 상징인 성전은 그 실체이신 예수께서 오셔
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며 성전을 아주 무시해 버리고 스스로 성전의 기능을 이
루고 즉, 죄를 용서하고 자기 몸으로 제사를 지내 속죄와 교제의 회복을 가져오
고 새언약을 세워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과 공동체를 창조하시어 새로운 성전을
지음으로써 그리고 그런데 이스라엘이 그것을 거부했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린 바 될 것을 더욱 강력한 어조로 말씀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
아름다운 성전이 하나님나라에서 세계지배의 중심이 될 것이며 성전의 파괴는
세계의 종말과 최종적인 하나님나라 도래와 관련되리라고 생각했기에 제자들이
놀라서 파괴의 시기와 주의 임하심과 세상끝의 징조를 다시묻는다. 이에 예수께
서는 "주의 하라"는 말씀과 함께 "아직 아니니라", "재난의 시작이니라(6,8)"고
하셔서 먼저 과도한 호기심과 추구를 경고하신다. 그리고서 제자들이 그리스도
를 위해 당할 고난을 말씀하셔서 그들이 감당해야 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받
을 준비를 시키신다. 이것은 그들이 천국복음 즉, 그리스도의 세상을 위한 죽음
과 부활을 선포하여 온 세상에 전파하는 큰 사명을 다하게 되면서 그들이 받을
고난이다(9-14). 이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
서 핍박을 받고 그리고 성전에서 열심당원들이 살인을 함으로써 멸망의 가증한
신성모독이 일어나고 제자들은 이것을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로 알고 도피하였으
며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됨으로써 성취되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의 예언
대로 그 당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 졌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자신의 재림과 관련지으신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의 심판과
멸망은 그의 재림때에 온 세상에 임할 심판과 멸망에 대한 예표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탄의 지원을 받는 죄악의 세력이 있어 종말에는 최후의
기승을 부려 하나님을 반역하고 거룩한 것들과 선을 적극적으로 배척하게 될 것
이다.
2)적용
예수님의 예고(마 8:10-12; 13:31-33; 28:18-20; 눅 14:16-24; 24:47; 행 1:
8)와 베드로의 고넬료전도, 스데반의 순교핍박으로 흩어진 자들의 선교, 바울의
선교여행등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마에서 사
도사가 끝나고 지금 계속 확대되어 가는 이방선교는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 계속
될 것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면 그것이 재림의 시기가 되는 것이다(마
24:14; 롬 11:25).
지금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으나 넘어지기까지 실족한 것은 아니
다(롬 11:11-15). 그들의 완악함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 까지이다(롬
11:25). 이방인의 구원을 보고서 시기를 이르키게 되고 마침내 대규모적인 회심
을 일으켜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구원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이것 도한 재림의 근점을 예고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타락이 극에 이르면 죄악의 삶에 침륜될 뿐만 아니라 사탄의 지원을
받아 어두움이 빛을 미워하듯 의를 적극적으로 배척하게 됨으로써 무서운 핍박
이 있을 것이며 지금까지의 폭력과 무력으로 인간을 몰아가던 데에 더해서 경제
와 정보로 인간을 지배하고 몰아가는 시대가 되고(계 13) 전무후무한 자연적인
재난(눅 21:11,25; 롬 8:22)으로 기근과 흉년, 인간관계가 극도로 비루해져서
강포와 범죄와 무질서가 극에 달할 것이며 (딤후 3:1-5;유 18; 벧후 3:3,4) 그
리하여 정치적인 혼란, 세계상황도 전쟁과 난리로 가득차고(막 13:7,8; 눅 21:
9-11), 가정의 무질서, 공포와 불안의 급증으로 생활의 고갈, 질병과 정신병이
만연하게 될 것이며(마 10:34-36; 24:12; 막 13:12)악이 꽃이 피어 도덕적인 진
공상태에 빠져 인간답게 살기가 극도로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양심과 법과 질
서의 원칙을 있게 하신 일반은총을 거두어버리는 것은 아닌지(살후 2:7)? 그래
서 유대인들은 메시야 왕국이 완전이 임하기 전에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위한
메시야의 진통의 시기가 있으리라는 사상을 갖고 있다.
이것은 몇몇 사람의 배교가 아니라 바른 기두교의 도리로부터 대단위적으로
떨어져 나갈 것을 말한다. 현생의 끝없는 쾌락과 쾌적과 편리 추구형 문화와 그
것들이 주는 쾌락에 침륜되어 그것을 추구, 합리화하기 위해 바른 도리들을 왜
곡시킬 것이며 그들의 자기추구와 취향을 북돋아줄 가르침들을 좋아하고 따를
것이다(딤후 4:3,4). 하나님의 말씀의 깊은 도리와 크신 뜻을 생각지 않고 안심
입명하고 출세와 성공의 길로서 종교하나 갖는 정도로 적극적인 사고비법으로
마음에 평안과 환희와 행복감과 안도를 얻으며 전체삶은 제주껏 마음대로 살면
서 이따금씩 자선 행하여 천국에 갈려고 하는 종교적 공리주의와 이기주의를 갖
고 사는 사람들은 구약 이스라엘이 빠졌던 배교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기독교
를 자기추구형종교로 믿는 사람들은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되고 사탄의 지원을 받는 죄악의 세력의 적극적인 배척과 핍박도 받게 되며, 다
시 말하면 복 대신에 환란이니 수가 틀려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 적그리스도가 출현, 인본주의적인 처방과 길을 제시하면 진리를 버리고 그
것을 따르고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반역은 극에 이를 것이다(살후 2:1-12).
적그리스도는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 또는 대적하는 자로 기독론을 변경시
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자요 육체로 오신 성육신하심을 부정하며
대환란과 대배교에 발맞춰 자신이 메시야 곧 구원을 줄 수 있고 또 인류의 소망
이라고 하며 마침내는 자신을 예배의 대상으로 숭배케 하며 그렇게 하도록 엄청
난 기적과 능력을 과시할 것이다(계 13:11-18). 역사에는 사탄의 지원을 받아
하나님을 반역하고 의인들을 핍박하는 죄악의 세력이 항상 있어 개인이나 국가
나 문화등으로 형상화되어 몌시야적인 행세를 해왔으나(예를 들면 자신들을 신
으로 숭배하게 강제하고 그것을 거부했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핍박을 가했던
로마의 황제 숭배처럼) 종국에는 사탄이 자기의 때가 얼마남지 않은 것을 알고
가장 무섭게 악랄하고 발악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무력과 폭력에 경제와 정보가
더해져서 엄청난 권세를 휘두르고 무섭게 세계지배를 하고 인간을 채찍질해 갈
것이다(계 13).
노아와 롯의 때처럼 될 터인데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의 아들들 즉, 셋의 경건
한 후손들이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자기의 기호와 취향대로 결혼하고 네피림의 문
화를 이루어 죄악이 관영하고 강포와 폭력의 원리로 사는 시대였다. 그리고 노
아가 방주를 바닷가가 아니라 산 위에 그것도 오랜동안을 만들었으니 그것의 의
미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문과 그에 따른 해명 즉,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
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경고가 주어졌겠으나 그것을 믿지않고 영적인 각성이
없이 적절히 반응, 회개치 않고 세상사에 취생몽사되어 살았던 것이다. 롯의 때
도 사람들이 부요하게 살면서 재물에 대한 끝없는 애착심과 세상사와 쾌락에 취
생몽사되고 성적으로 도착되어 눈을 멀게하는 무서운 징계가 내렸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천사들을 상관하려고 문을 찾기에 곤비하였다. 심판이 있다는 경고를 듣
고도 농담으로 여기기까지 했던 것이다(창 6-8; 18-19). 마지막 때에도 죄악의
밤이 깊어 새벽이 가까왔다는 징조들이 보이는데도 죄악 세상에 취생몽사되어
무감각상태로 자면서 영적인 일에는 무관심하고 진화론적인 사상에 매여 정화에
의 심판이 반드시 있을 것을 생각 못하고 진보로 역사가 끝없이 반복될 것이라
는 생각을 갖고 끝없는 쾌락, 편리추구형 문화에서 빠져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
이다.
천년왕국에 대한 것도 예수께서도 사도바울도 예수의 두번 재림(천년왕국주장
자들은 예수의 재림이 천년왕국 초기와 말기에 두번 이루어진다고 함)에 대해
암시조차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천년왕국시대는 현재 교회시대를 가르친다. 그리
고 구속사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그의 아들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임하였고 아직 종국과 완성을 향하여 진행,
온 우주와 피조세계전체에 침투, 변혁시켜 그 나라를 이루어가고 있다(마 13:31
-33). 그의 통치를 우주에 실현해 가고 있다. 그리스도는 순교자들과 지금 하늘
에서 다스리고 계신다(계 20:1| 10; 천년왕국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예루살렘성전
이 복원되고 그곳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만일 천년왕국주의의 주장대로
천년왕국이 세워지고 예루살렘성전이 재건되어 죄용서받기 위해 죄물이 다시 제
사된다면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속죄사역의 충족성을 부정하고 또 더 이상의 제
사가 필요없다고 못박은 히브리서의 가르침과도 모순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
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재림은 한번이고 이 재림으로 역사가 종결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고 영원한 나라가 최종적으로 이룩되는 것이다.
휴거는 예수의 두 재림중에 첫번째 재림이 아니고 예수 오시기 전에 죽은 성
도들은 어떻게 되는가 슬퍼하는 데살로니가교인들에게 예수재림으로 마지막부활
때에 살아있는 성도가 죽은 성도보다 결코 앞서지 않고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그 다음 살아있던 성도들도 부활의 새 생명으로 덧입어
함께 영광스럽게 부활의 새 존재로 변화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병행구절
인 고전 15:50-58과 잘 비교해보라. 특히 데살로니가전서의 촛점은 죽은 성도
들도 산 성도들과 똑같이 영광스럽게 부활한다는데 있는 것이다(살전 4:13-18;
고후 5:1-5; 고전 15:36-49). 그리고 이러한 부활의 휴거가 비밀리에 일어나리
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그와 반대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임
하신다고 하심으로써 공개적으로 또 모두가 동시에 어느 곳에서든 볼 수 있게
돌연히 예고없이 오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뜻은 생각지 않고 화나 면하려
는 그릇된 회개를 할 순간도 없이 오시는 것이다(살전 4:16; 고전 15:50| 58;
마 24:26,27;행 1:11).
이러한 신앙을 가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두려워서 우왕좌왕하고 동
요하여 괴상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재림은 우리가 기다
려야 할 영광의 소망인데 무엇을 두려워 해야 하는가? 초대교회는 주님이 내일
오실 것으로 하고 잠자고 나면 오시는 생생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았다. 그렇기
에 그들은 성화에의 뜨거운 열정과 고난을 감내하며 살았다(요일 3:1-3; 롬
8:17; 베드로전후서). 그들은 일상생활이 동요되고 해이되고 괴상해져서는 안되
었기에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고


Scrap: 쉴만한 물가

출처 : 智本知神
글쓴이 : Heal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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