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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계시록의 예언 시점에 대한 여섯가지 변증 | - 계시록 해석

하나님아들 2017. 6. 10. 00:55

요한계시록의 예언 시점에 대한 여섯가지 변증

 

 - Six Points Refuting the Early Writ -

 

 

 

Bill and Sandy Kalivas




예수님은 요한복음 8 : 32에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KJVB ) 그리스도인

의 길을 가는데 있어서 진리에 대한 탐구는 평생이 걸리는 긴 과정이다. 바라건대, 여러해가 지난 후에는, 우리들이 성장하고 전진했음을 보게될 것이다. 우리들은 갓난아기에서 어른이 되어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이 되어가면서 사물들을 다르게 본다. 예수님의 몸 안에서 더욱 성장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에는 예언 해석의 부분도 들어 있다.

먼저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의 정의부터 내리겠다.

⼗미래주의(Futurism)는 "다니엘 70주"의 마지막 주가 69번째 주에 연이은 것이 아니며, 어느 기간까지 미뤄졌음을 강력히 주장하는 해석의 학파로서,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예언들이 아직 성취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미래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이 1 세기 후반(주후96년)에 쓰여졌다고 믿는다.

과거주의자(Praeterists)들은 요한계시록의 그 예언들이 이교도 로마제국에 의한 예루살렘(주후70년) 멸망과 심판에 관계된 것이라고 믿는다. 과거주의자들은 사도 요한이 주후64-68년(황제 네로의 통치 동안)에 요한계시록을 썼다고 믿는다.(요한계시록 전기前記설)

역사주의(Historicism)는 크리스쳔 시대 동안에 진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요한계시록이다. 그 역사주의적 관점은 비밀인 큰 바벨론의 멸망을 제외하고, 요한계시록이 거의 완전히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계시록 1:1에 나타난 술어 , "속히 될"은 단순히 책에 기록된 예언들이 곧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의미이지, 몇몇 구가 의미하는 것처럼, "곧 성취될 것이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주의자들은 황제 도미티안의 통치 동안인 주후 약 96년 경에 요한계시록이 쓰여졌다는 데에 일반적으로 동의한다.(요한계시록 後記설)

미래주의 학파의 예언적 해석에 관해 수많은 말이 있고, 글이 있지만, 우리들은 그것이 많은 점에서 부족함을 본다.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에대한 전통적인 프로테스탄트 역사주의 해석들이, 우리가 알기로는, 역사적으로나 그리고 성경적으로나 건전해 보인다. 이 학파는 루터, 위클龼, 허스, 아이작 뉴튼 경, 그리고 많은 신앙적인 사람들에의해 신봉되어 왔다. 우리들은 과거주의에대해서는 조금밖에 알고 있지 않으며, 'Identity Assemblies'에 속해있는 몇사람뿐만 아니라 재건운동(the Reconstructionist Movement)파에 속한 다수에 의해서 주장된 이 예언 연구파에대해서는 보다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신실한 깨어있는 자들이되기 위해, 우리들은 데이빗 칠튼(Chilton)에(재건운동파) 의한 '보수의 시절 The days of Vengeance'을 살펴볼 것이다. 게리 노드(Gary North)에 의한 출판물 서문에서 우리들은 다음을 읽을 수 있다. "나는 크리스쳔 재건운동에 반대하는 자들에게 도전한다. 내게 오는 사람 모두에게 도전하고 있으며, 나는 현명한 방법으로 그렇게 한다: '당신과 칠톤을 싸우게 하자' ... 특별히, 어떤 이는 '보수의 날들'보다 요한계시록에 대해 더 훌륭한 주석을 쓸 준비가 되어야할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도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때부터, 요한계시록에대한 주석들은 단 3 종류가 있을 것이다: 칠톤의 것을 확장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 칠톤의 것을 반박하려고 노력하는 자들, [그리고] 칠톤의 것이 아닌 척 하려는 자들."(32페이지)

왕정복고와 크리스쳔 시민 정부에대한 주제에 대해서, 게리 노스와 데이빗 칠톤같은 사람들은 훌륭한 일을 했다. 그러나, 예언 해석에 관한 문제에서는, 그들이 오류가운데 있음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우리들이 감히 게리 노스와 데이빗 칠톤 정도의 학자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19세기에 씌여진 요한계시록에 관한 보다 훌륭한 주석이 있는데, 그것은 예언에 관한 역사주의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을 뿐만아리라 또한 당시 유럽 크리스쳔 서클에서 막 뿌리를 내리고있던 과거주의와 미래주의를 논박하고 있다. 우리들이 인용한 그 책은 1844년에 처음 출판된 엘리어트(E.B.Elliott)가 쓴 'Horae Apocalypticae'이다. 이 저술의 연구를 통하여, 우리들은 이 "논쟁"이 최근에 시작된 것이 아님을 알게된다. 그것은 지난 3 세기동안 계속된 토론의 소재였다.

우리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과거주의자들의 해석이 계시록기록 날짜에의해 좌우됨을 주장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것이 네로의 통치 후반에(주후64-68년) 기록되었을 경우에만, 과거주의는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토론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점인데, 이는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예언적 견해를 재고해보아야할 충분한 논쟁거리들이 단지 이 문제 하나에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엘리어트의 작품을 이용할 것인데, 이는 그것이 잘 정리되고 철저하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와 동시대의 과거주의자들(일례로, 모세 스튜어트 Moses Stuart)을 만났으며, 그 날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계시록 기록 날짜에 대해서, 이 기독교 교수들과 비평가들은 얼마나 불운한가...만일 그들의 기초가 틀렸다면; 그래서 그들의 구조물이, 이런 면에서, 얼마나 단순한 유사(流砂) 위에 세워져있는지 그리고 얼만큼 무너질 긴박한 위험에 처해있는지, 계시록 기록 날짜에대한 내 증거의 스케치를 읽은 독자들은, 내 생각에, 곧 알게될 것이다"(제4권, 503페이지)

전기 날짜를 주장함에 있어서 칠톤의 저술에는 여섯 요점들이 있다. 우리들은 각각 개별적으로 검증해볼 것이며, 엘리어트의 기록과 다른 자료들을 사용하여 그것을 논박할 것이다.

요점 1

"사도 요한이 성전 제사의 세밀한 물품들까지 잘 알고 있던 점으로 보아 요한계시록과 제4복음서는 성전 제사가 실질적으로 중지되기 전에 씌여졌음에 틀림없다."(칠톤, 3쪽)

우리가 다음 면 - 사도 요한이 자기가 해왔던 대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계시록에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자신의 지식과, 성전과 그 물품들에대한 즉각적인 현재의 기억들에 의지해야만 했다는 가정- 에서 그가 끌어낸 논점이 취약하다고 느낀다.

누가 하나님을 한계할 수 있으며 요한 앞에 그가 볼 필요가 있었던 모든 것과 정확하게 그것을 중계할 수 있는 능력을 놓아두신 하나님의 능력을 한계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요한이 그토록 세밀한 부분들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사용했던 심상들의 일부분으로서 그것들이 요한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다"는 칠톤의 책의 요점 1을 앞선 단락에서 논하였다면, 사이에 끼여있는 수개월 혹은 여러 해들이 만드는 차이들이 얼마나 간과되어있는가! 요한계시록에서 발견되는 모든 성전 심상이 에스겔, 다니엘, 스가랴, 요엘, 등등에 기록되어 있는 것도 또한 주목해야 한다.

엘리어트는, 그와 동시대에 전기 날짜에관한 이 "증거"에 대한 유사한 논쟁들과 부鞹쳤고 또 다른 각도에서 그들에게 대답하고 있다. 다음 인용구들에서, 그는 그 성전 이미지들이 문자 그대로 취해진 것이 아니라, 이상 중에 그에게 보여진 또 다른 상징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요한을 돕기위한 상징으로써 취해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또한 요한계시록이 기사(signs)들과 상징들로 요한에게 주어진 것이지 문자 그대로 택해진 것은 아니였다는 보편적인 이해에의해 지지되어 질 수 있다. (칠톤은 '보수의 날들' 53쪽에서 "그것은 사건들을 다가가는데 있어서 사인들과 상징적인 묘사들의 책이다. 그 상징들은 문자적인 자세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와 마찬가지로, 그는 되풀이해 그의 책 전반에서 모순된다.)

"유대 민족들과 거룩한 도시, 성전과 제단 ―마치, 그들의 말대로, 유대도시, 성전, 그리고 제단이 아직 서있다면, --을 향한 계시에서 발견하는 암시들로부터 유추해낸 내재된 증거들이 끌어낸 부차적인 논쟁들은, 오히려 더욱 결론나지 않는 것들이다. 왜냐하면 그런 표현들이 상징적으로 크리스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구 예루살렘, 이스라엘로 의미되는 것이 당연하다: 요점은 그들이 결코 증명할 수 없었고, 내가 알기로, 그들은 결코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vol. 1, p. 44 )

엘리어트는 또 다른 장에서 이 생각을 확장시키는데, 그는 예수님이 크리스쳔 교회에서 그들의 성취를 지적하시기위해 성전의 물품들을 사용하시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제, 중요한 기구에대한 예수님 자신의 권위로 첨가시킨 기독교 설명을 가지고, 살펴보도록 제시된 성경장면은 고대 유대 성막 혹은 성전에서 빌려온, 비슷한 상징들을 크리스쳔 교회에 비슷하게 적용하도록 전도자들을 가장 잘 준비시킬 것임이 자명하다. 즉 미래에대한 환상들에서, 실제로 그것들이 나타났던대로, 그것들이 나타나야할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이 그분의 손에 가지고 있던 일곱별로 보여지는 상징은, 그것들이 일곱 천사들이나 혹은 교회들의 감독자들과 감독하는 목사들을 의미한다는 그의 설명과 연결되며, 교회와 관련된 것일 때는 교회 감독자들로, 별들(이어지는 환상들 속에 그들이 나타나야 했다)의 상징들을 해석하도록 요한을 준비시켰을 것이다; 주제가 세속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였을 때는, 추가해서, 또한 세속의 통치자들의 상징으로서 그러했을 것이다."( vol. 1, p. 73 )

요점 2.

"비록 계시록이 도미티안(Domitian) 통치 끝 무렵(즉 주후96년경)에 나왔다는 이레내우스(주후 120-202년)의 의견을 몇몇 학자들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왔다고 할지라도, 그의 정확한 의미에대해서는 충분히 의심의 여지가 있다(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도 요한 그 자신이 '보여졌다'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이레내우스의 언어는 다소 애매하기에; 그가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과 상관없이, 그는 오해되어졌을 수 있다." (칠톤, p. 3 )

요한계시록의 기술 날짜에대한 외적 증거는 초대 교부들과 역사가들의 기록들로부터 시작된다. 2세기 또는 3세기에 계시록의 기술 날짜를 네로(Nero)의 통치기간이라고 지적하거나 언급하는 기록들은 없다. 단지 그보다 더 후 즉 도미티안 통치 기간에 기록되었음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몇몇 기록들이 있다. 이레내우스의 견해가 가장 중요하며 또한 최초의 자료이다.

I

과거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의 확실한 증거들을 갖고있지 않았기에, 그들이 이레내우스의 견해를 묵살해야만 했던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이레네우스가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했고 그래서 이 실수가 기록되었다고 암시함으로서 그의 특성을 교묘히 공격했다. 엘리어트는 이레네우스를 다음 구절에 그가 기록한 것처럼, 학자와 교부로서 높이 평가했다 :

"요한과 관련하여, 이레네우스 자신이 살던 매우 이른 시대와 그 특성을 고려해보면 -- 그는 아시아계 그리스 사람으로 요한의 사망 시기 가까울 무렵에 태어났다-- 그는 폴리갑프(Polycarp)의 제자였으며, 폴리갑프는 요한의 제자였다,-- 그는 당시 가장 박식하고 헌신적인 주교들중의 하나였다...." (vol. 1, p. 2)

물론, 그의 진술은 요한계시록의 후기를 인정할 수 없는 자들에의해서 면밀하게 조사되고 있다.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다! 원문은 그리스어로 주어졌다. 문장의 구조는 분해되어지고, 수세기동안 그것이 정확하게 번역되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다. 엘리어트는 이러한 유형의 공격에 맹렬히 반대한다. 그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그 구절에대한 해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왜냐하면, 이레네우스의 증거 --폴리갑프의 제자였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또한 폴리갑프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는 비난의 여지가 없는 것이며 문제의 핵심의 정확한 표현이다. 계시록 짐승의 이름과 숫자에관해서, 이것이 반드시 알려져야할 문제이고, 계시록을 본 그에의해 밝혀졌어야할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 '왜냐하면 그것(계시록은 확실히)이 아주 오래 전에 보여진 것이 아니라; 거의 우리 시대, 도미티안의 통치 말 무렵에 보여진 것이기 때문이다.'" ( vol. I , p. 32 )

각주에서, 엘리어트는 헬라어로 된 원문을 재인용하고 어째서 이레네우스가 요한 그 자신이 아니라 요한이 본 환상에대해서 언급하는 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의 책의 또 다른 각주에서, 칠톤은 네로 때 기록되었음을 지지하는 초기 작가들을 발견할 수 있는 요한계시록에대한 모세 스튜어트(Moses Stuart)의 작품을 읽어보도록 우리에게 권유한다. 스튜어트 교수가 이레네우스의 문장의 구조에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는데 그가 관심이 있었겠는가? 엘리어트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여기, 그의 서문에서, 스튜어트 교수는 또 다른 주격을 제공하는 것으로써, 도미티안 때임을 단언하는 이레네우스의 유명한 증거를 없애고자 행해졌던 시도들의 헛됨을 우섯 첫째로 명백히 인정한다... 그리고 진짜 구조는... 너무 뚜렷한 것이어서, 스튜어트 교수가 이렇게 거부하고 있는, 그 어리석은 짓들을 계속하려고 노력할 정도로, 어느 존경할만한 작가가 당황했음을 발견하고 어떤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 vol. I , p. 534 )

이레네우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또다른 증거는 그가 숫자 666과 그 해석을 논의하고 있는 그의 저서 '이단에반대하여(Against Heresies)'에 나온다. 그는, 주후 177년 후에 책을 쓰면서, 그들에게는 아직 미래일이였던 숫자 666의 구체화된 존재에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성경에 선언된 확실한 수, 즉 육백 육십 육에대한 지식이, 그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했으며, 첫번째 장에는, 열(10)로 왕국 분리, 그후 다음 장에서는, 이 왕들이 군림하고 있을 때, 죽기 전에 그들의 신변을 정리하고, 그들의 왕국을 전진시키기 시작할 때, [그들로 하여금 깨어서], 스스로 왕국을 주장하면서 와서, 앞에 말한 수(666)를 가지는 이름으로 우리가 말해왔던 그 사람들을 놀라게 할 그가 참으로 멸망의 가증한 것임을 인식하게 한다."(책 5. 30 장, 2편)

요점3

"(이레네우스는, 부수적으로, 요한계시록 후기 날짜에 대한 유일한 근거이다; 다른 모든 자료들은 단순히 그를 인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따라서, 주석가들이, Swete가 한 것처럼, '초대 기독교 전통은 도미티안의 통치 말기에 계시록 기술 날짜를 맞추는 것에 거의 만장일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부정직하다.) 물론, 요한이 보다 일찍 즉 네로 박해 하에서 계시록을 기록했다고 지적하는 초기 저술가들의 진술들이 있다."(칠톤, p.4 )

요한계시록의 저술 날짜에 대해 언급한 초기 교부들과 역사가들이 많이 있다.

이 점에서 칠톤은, 오해되어졌을 수도 있는 한 사람의 초기 교부(이레네우스)에대한 단순한 메아리들이라고 후기를 지지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어트의 글에서, 주후 96년에대한 초기의 반대자들 뿐만 아니라 초기의 지지자들에 대한 정보도 다량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모든 경우에 있어서, 엘리어트는 그가 어느 책에서 이러한 견해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에대한 각주를 달았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원 헬라어 혹은 라틴어로된 축어적 주석들을 반복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 부분(요점3)은 좀 길어질 것인데, 독자들이 양쪽의 증거들에대한 완전한 그림을 익히기위해서는 필연적이다. LeRoy Edwin Froom의 "우리 조상들의 예언 신앙"에서 다뤄진 각 사람에대한 배경 정보를 약간씩 추가할 것이다.

터툴리안(Tertullian)이 최초로 언급된 지지자이다. 그는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태어나, 주후160-240년경까지 살았고, 30-40살 때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라틴어 신학의 아버지이자 라틴어로 된 교회언어의 창시자였다. 주후 96년 기술날짜에대한 터툴리안의 지지는 사도들에대한 박해에관한 그의 언급에 근거한 것이다: 바울과 베드로는 네로에의해 죽었고, 요한은 언급되지 않았으며, 그의 추방이 이 기간동안에 있었다고 언급되었다. (터툴리안은 기독교를 이교화시킨데 역할한 사람 중에 하나다. - 역자주)

--"첫째, 터툴리안은 계시록 기록 날짜에대한 이 견해를 지적하는데 있어서 조금도 의심스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그의 사과문에서 첫 번째 황제의 박해로 네로 시대를 말한 후, 이는 검에 의한 것이며(여기서, 그는 어딘가에서 말한 것처럼, 바울과 베드로는 고통받았지만 요한이 그러했다는 언급은 없다), 다음 박해로 도미티안 시대를 그가 계속해서 지적했기 때문인데, 이때는 요한에게 내려졌던 유명한 처벌, 추방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고통받았다. 유세비우스도 그와같이 터툴리안을 이해했던 것이 분명하다; 즉 도미티안의 법령으로써 요한이 추방되었음을 암시한다. (1권, p. 33 )"

타이투스 플래비우스 클레멘스 혹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대략 주후150-220년 경까지 살았으며, 그는 원래 이교 철학자였는데 기독교로 개심했다. 그는 그리스, 이태리, 이집트, 그리고 팔레스틴 등지를 여행하면서, 가장 뛰어난 선생들로부터 가르침을 구했다. 그는 알렉사드리아에서는 판타에누스의 제자였고, 알렉산드리아 교회 장로가 되었다. 후기에대한 클레멘트의 지지는 요한이 밧모섬으로부터 되돌아온 후의 행적을 포함하고 있는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요점은 그 일이 발생했을 때 요한이 아주 나이 많은 노인이였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간접적으로, 그러나 명백하게, 그 견해를 확인한다. 요한과 도둑에관한 유명한 이야기와 관련하여, '독재자의 죽음 이후' 밧모섬으로의 추방에서 그가 돌아왔을 때 그 사도에의해서 행해졌다고 말하며, 그가 그 당시 매우 허약한 노인이였다고 묘사했다. 이제, 그가 언급하고 있는 독재자의 죽음은 반드시 네로 아니면 도미티안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1세기의 끝 무렵이자 그리스도의 몸에대한 유일한 제국 박해자들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네로로 보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네로의 박해 시기에, 요한은 결코 매우 허약한 노인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60이상은 아니였을 것이다.

이처럼, 그것은 독재자 도미티안이였음에 틀림없다. 사실상, 유세비우스는 클레멘트가 의미한 것을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1권, p. 33-34 )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주후 303년 혹은 304년에 죽었으며, 현재의 비엔나 근처 판노니아에 있던 페테(Pettaw)의 주교였다. 그는 구약성경 몇몇 부분들과 마태복음 그리고 요한계시록에대한 주석들을 썼다.

--"세째로, 빅토리누스, 페테의 주교이자 디오크레티안 박해의 순교자,인데 그는 3세기 끝무렵에 씌여진 계시록에 대한 주석에서, 두 번 반복해서 어떤 가필의 흔적도 없이 명백하게 말하기를, 로마 도미티안 황제에의해 추방당했던 밧모섬에서 사도 요한에의해 계시가 보여졌다고 했다."(1권, p. 34-35 )

유세비우스(Eusebius) 팜필리는 대략 주후260-340년까지 살았다. 그는 가이사랴의 주교였고, 교회사를 썼다. 이 책에서 , 그는 초대교회의 사건들을 이야기하고있는데, 그의 연대기에서는 도미티안의 통치 동안 요한을 밧모섬에 배치시키고 있다.

--"같은 취지로, 네 번째로 매우 중요한 유세비우스의 증거가 있다 ... 밧모섬으로 사도 요한이 추방당한 날짜에, 그는 고대의 전통들 즉 도미티안의 박해를 의미하는 것에 자신이 동의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완전히 명백한 것처럼, 밧모섬으로의 사도 요한의 추방 시기에 관한 다른 어떤 전통들도 알지 못함을 암시해준다."(1권, p. 35-36 )

--"동일한 것이 제롬(Jerome)의 견해에 기록되어 있다; 어거스틴의 친구, 오로시우스도 같으며; 설피티우스 세베루스도 동일하다. 다시 한번, 우리들은 프리마시우스: 6세기의 유명한 계시록 주석가에게서 유사한 의미의 주저없는 성명을 발견하게 된다. 이 주석서의 서문에, 그는 요한이 황제 도미티안에 의해 밧모 광산으로 추방형을 선고받아 추방당했을 때 요한에게 계시의 환상이 보였다고 이야기한다."(1권, p. 36 )

제롬은 대략 주후 340-420년까지 살았다. 그는 라틴 벌게이트라고 알려진 번역성경의 '고대 라틴어' 번역에대한 자신의 교정본으로 가장 유명하다. 그 역시 성경의 많은 책들에 대해서 주석서들을 썼다. 설피티우스 세베루스는 약 주후 363-420년까지 살았으며, 아퀴타니아에서 태어난 교회역사가였다. 그는 아퀴타니아의 톨루즈에 있는 수도원 은거지에서 그의 남은 여생들을 보냈다.

우리들은 초대 역사가들의 모든 진술들을 읽었던 한 학자, 엘리어트에게서 그들이 단순히 이레네우스를 흉내낸 것만은 아니고, 그들 스스로가 학자들이였으며, 그들의 진술들이 그 문제에대한 자신들의 연구의 결과였음을 알게된다. (여기서 제롬, 유세비우스 등은 초기 카톨릭 교부들이다. - 역자주)

"현존하는 후대의 부차적인 교부학적 증거도 마찬가지인데,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통치기간에 밧모섬에서 계시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다:--살펴보지 않은 일련의 증거들이 있는데... 이레네우스의 것을 되풀이했던 것이 아니며, 실제로 이 작가들중 대부분은 오히려 그를 인용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당시 존재했던 모든 증거들로부터 형성된, 그들 자신의 신중하고 독자적인 판단에의한 것이였다. 계시록 기술 날짜에관한 그러한 상반된 초기 전통들에대해, 만일 그런 것이 있었다면, ,,, 그들은 거의 알지못했다. 그것에대한 그들의 전체적인 침묵은 두가설 중 하나로만 설명될 수 있다;--즉 그것이 존재하지 않았든지: 또는 그것이 신뢰할 가치가 없는, 심지어 그것을 주목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그들이 생각했든지...."(1권, p. 36-37 )

다음으로 엘리어트는 네로의 통치 혹은 더 빠른 기간동안에 계시록이 씌여졌다고 주장하는 초기 저술들을 고찰한다. 그는 이 저술들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의문이 생긴다 : 문제의 이 핵심에대한 반대 진술에 관해서 살펴볼 때, 4세기 후반, 사이러스에있는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 때까지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 그의 가장 중요한 글, 'On Heresies'는, '저자의 경솔과 무지로인한 오점과 허물로 가득차 있다'고 비난받는다... 왜냐하면 요한이 황제 클라우디우스 당시, 밧모섬에 있을 때 계시록을 받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에 황제의 박해가 아직 없었던 때이다..."(1권, p. 37)

"..계시록의 전기에대한 또 다른 증거가 있다. 6세기 초반에 쓰여진 계시록 시리아어 번역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황제 네로에 의해서 추방되었던 행선지, 밧모섬에서 전도자 요한에게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계시록'. 그러나 그것이 나타났을 때, 처음으로 발화된 것이라면, 이 의견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1권 p. 38-39 )

엘리어트는 도미티안에게 때때로 네로의 칭호가 주어졌었다고 설명해주는 각주를 첨가한다.

"도미티안에게는 가끔씩 네로의 칭호가 주어졌기에 그로부터 착오가 일어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실제로 시리아어 본의 원 저자는 네로가 아니라 도미티안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그는 이 주석에 더해서 도미티안에게 적용되는 이 칭호에대해 라틴어 증거들을 포함시켜놓았다. (1권, p. 39 , 주석 1)

주후 860년 태어났던 아레타스(Arethas)는 가이사랴의 대주교였고, 그 비잔틴 궁정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계시록에대한 그의 주석은 대부분 편집본으로서, 그 안에서 그는 주로 보편적으로 인정되던 주후 96년기술날짜를 의심하였던 안드레아를 따르고 있다.

--"또는 다시, 주석가 아레타스(의 것), 아직도 2세기 혹은 3세기 후에나 공표될 것으로, 계시록이 예루살렘 멸망 전에 쓰여졌다는 취지; 그 의견은 사실 그 글 자체 어딘가에서 모순되는 것이다."(1권, p. 39 )

"수세기동안 그 의견들은 동일하게 주목받지못한 채 잠재워졌다. 만일, 근대의 비평가들에의해서 일깨워졌다면, 그것은 오직 ... 계시록 예언들에대한 어떤 가능한 해석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 기술날짜에대한 의도된 필요성의... 발로였을 것이다." ( vol. I , p. 39 )

그래서, 우리들은 그 가장 초기에 나왔던 많은 본질적인 증거들이 후기 혹은 도미티안 당시로 훨씬 기울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네로 시대를 지지하는 반대 의견들에 관해서는 그들이 숫자상으로 거의 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나중에 씌여졌으며, 그리고 보다 덜 명백한 것임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네로 날짜(전기)를 지지하는 과거주의자들은 당연히 중요한 단서가되는 진술들이 의미하는 것들에 의심을 던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주의자들이 이레네우스의 진술에 했던 행위들이 또한 다른 중요한 진술들에대해서도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어트는 이러한 성질의 논쟁들을 논박하기위해 대단히 상세하게 접근하지만, 그것들을 여기에 더 적지는 않았다.

( 'Horae Apocalypticae' 1권 39쪽 참조. 유세비우스의 진술에대한 변호를 위한 주석 6과 p. 34쪽, 클레멘트의 이야기를 변호하기 위한 주석 2)

요점4

"도미티안 날짜를 지지함에 있어서, 근대의 추정들은, 그의 통치하에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와 학살이 지속되었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다. 그러나 이 믿음은 소중한 것이지만, 이 믿음이 그외 다른 확실한 증거에는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칠톤, p.4 )

이 논점이 무엇보다도 가장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도미티안의 통치 기간에 요한계시록이 씌여졌다고 믿기 위해, 크리스챤들에대한 도살과 박해의 기간들을 도미티안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상,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러한 형태의 박해가 부재했음을 이야기한다 : 네로 휘하에서 바울과 베드로처럼 많은 크리스쳔들이 죽었으며, 도미티안 치하에서는 많은 크리스쳔들이 요한처럼 추방되었다.

요한이 네로 앞으로 끌려왔었다면, 왜 그는 그렇게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죽음에 처해지지 않았겠는가?

요점 5

"그러므로, 우리들의 가장 안전한 경로는 계시록 기술 날짜에 관하여 존재하는 내적 증거를 살펴보기 위해 계시록 자체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주석들을 통하여 볼 것이지만, 요한계시록은 첫째로 로마인들에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관한 예언이다. 이 사실 만이 주후 70년 9월 이전 어딘가에서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술했음을 말해준다. 더 나아가서, 살펴보겠지만, 사도 요한은 네로 황제가 아직 왕위에 있을 때를 언급하고 있으며, - 그리고 네로는 68년 6월에 죽었다."(칠톤, p. 4)

대부분의 학자들은 계시록이 주로 예루살렘 멸망에대한 예언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에 대한 그들의 해석은 주후 64-68년을 계시록 기술 기간으로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과거주의 해석은 계시록 전기를 배제한다면 존재할 수 없다. 우리들은 이점에 있어서 칠톤의 논법이 순환적임을 알고 있다.

"우리들이 볼 때, 사도 요한은 네로가 아직 왕위에 있을 때를 언급한 것이다-그리고 네로는 주후 68년 6월에 죽었다"는 칠톤의 진술과 관련하여, 우리는 계시록 17:9-10절에 대한 다음 진술을 보수의 날들 436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7왕들이 있는데; 다섯은 멸망했고; 최초의 다섯 황제들은 줄리어스,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그리고 클리우디우스였다. 하나는 네로이며, 여섯 번째 시저이고,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 왕위에 있었다." 우리는 이 구절에대한 다른 해석들에 대하여 긴 토론을 진행하길 원치 않지만, 그러나 엘리어트의 다음의 간단한 반박을 기록한다 : "상기 논쟁을 당연한 것으로 또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다니엘 7:6, 8:22절에서 유추되는 것과 반대로: 짐승의 머리들이 개별 황제들을 의미한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 (1권, p. 543 )

여기서 다시 우리들은 칠톤이 한 왕이 하나의 개별 황제를 의미한다고 가정함으로서, 문자적인 태도로 그 환상들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또 한편으로, "왕들"이 로마 정부의 다른 형태들로 언급되는 것으로 살펴보는 것은 상징적 해석과 보다 상통하는 것이다.

요점 6

"이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나, 모든 특별한 계시가 주후 70년경까지 끝났다는 성경 자체의 선행 가르침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그 '70주'가 예루살렘의 멸망(다니엘 9:24-27)과 함께 끝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은 또한 '환상과 예언을 봉인하는'(Dan.9:24)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특별 계시는 멈추어질 것이다-'봉인될 것이다'-예루살렘이 파괴될 때까지. 성서의 캐논은 전적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까지 완전히 이루어졌다."( 칠톤, p. 5 )

이 논쟁을 논박하기 위해서, 우리는 2가지 이슈들에 답해야할 필요가 있다.

1 . 어떤 시간 틀 안에서 그'70주'가 주어졌는가?

2.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가정되었고, 어떤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우리들은 앞에 말한 예언(다니엘 9:24-27) 구절을 축어적으로 칠톤에 의해서 인용된 어떤이의 대안 해석을 제시해가며 검증해 볼 것이다.

1. 시간 틀( The Time Frame):

다니엘 9:24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다니엘에게 언급된 그 시간 틀(70주)이 문자적인 것인가? 상징적인 것인가? 첫째, 그 용어 "70 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70"은 스트롱의 #7657번, "shib'iym"이다. 쉬빔이라고 발음된다. 70을 의미한다.이것은 #5651(shibah 혹은 7)의 배수이다. 그리고 "주 들weeks"은, Strong의 # 7620 "shebuah", 셰부와로 발음된다. 이것은 #7651의 과거 분사이다, 즉 일곱이였다(sevened)-한 주... 70 주는 70이 일곱 번 혹은 70 주일 혹은 490 일이다. 만약 이것들이 문자적인 날수였다면, 이 예언은 일년 반 동안에 성취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것들이 상징적인 날들이라면, 그렇다면, 만약 그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또한 우리에게 주어졌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들은 그분의 말씀에서 그러한 열쇠가 주어져있음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말씀 마18 : 16과 고후 13 : 1에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되리라고 기록하고 있고, 하루가 일년을 대표하는 두 예가 기록되어져 있다.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멂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민14:33,34)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에스겔4:6)

이것이 "일일 일년day for a year" 원리로 알려진 것이며; 그리고, 성경으로 확고하게 확정된 그것대로 우리는 움직일 수 있다

단9:25-"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그 출발점은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중건하라는 영이다. 이 명령은 메데-페르시아(Medo-Persian) 군주 아닥사스다 휘하의 주전 457년경에 나왔다. 이것은 에스라의 책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제 이것은 그 왕 아닥사스다가 서기관, 심지어 주님의 계명들과 이스라엘에대한 그분의 법령들에관한 말씀의 서기관, 제사장 에스라에게 주었던 편지의 사본이다.

"모든 왕의 왕 아닥사스다는 하늘의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한 학사겸 제사장 에스라에게 조서하노니 우리 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에스라 7:11-13 ).

그 사람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관리 아래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그리고 회복하는 데에 7주 혹은 49년을 쓸 것이었다. 그들은 유태인들의 도시 설립을 회복하면서 49년동안 일하였다. 이 기간은 주전 457년에서 주전408년까지였다. 그 당시 그들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데 또 다른 62 주, 또는 434년을 보내야 했다. 과연, 아닥사스다의 명령 이후 "69 주" 혹은 483년이 충족된, 주후 AD27년( BC에서AD로 건너감) 주 예수님이 요단강 물 속에서 요한에게 침례받으셨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왔을 때 권세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다.

마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우리는 예수님 자신이 하신 다음의 예언적인 발표를 알고 있다 :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4,15)

"때가 찼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분은 무엇을 의미하시는 것인가? 때의 참은 70주까지 명령되었다. 그 메시야는 아닥사스다 명령으로부터 483년이 경과할 때까지 등장할 수 없었다. 이것을, 예수님이 성취하셨다. 그 70번째 주가 도착하였다.

다니엘 9 : 26 --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르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메시야가 끊어질 것이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이 돌연하고, 때아닌 성질의 것임을 말해준다. 이어서, "한 왕의 백성.."은 마24장, 막13장, 눅21장에 완벽하게 묘사되어 있는, 로마장군 타이터스에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에대한 설명이다. 비록 심판받아야할 그 행위('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거절한 것)는 예언의 시간틀 안에 포함되어 있지만, 심판 그 자체(예루살렘의 멸망)가 예언의 중심은 아니다.

다니엘 9 : 27 --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메시야가 굳게할 언약이란 무엇인가? 이는 다름아닌 바로 죄사함의 그 새 언약, 예레미야에 의해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그 언약이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피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31:31-33)

언제 이 언약이 굳게 정해졌는가? 3년 반 후, 유월절에 그분은 그분의 지상의 죄사함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은 마태복음에 선언하셨다 :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 : 27,28 )

다니엘 9 : 27--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다시, 심판에 대한 예언적 경고이다.

이제, 남아있는 3과 1/2 일 혹은 3과 1/2년은 무엇인가? 언제 70주는 종결되는가, 그것은 칠톤이 우리에게 생각하게하는 것처럼, 주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때인가? 아니다, 주후 70년은 예언의 490년 문맥 밖에 있는 것이다. 그 70번째 주는 주후 27년 예수님의 침례에서 출발하고, 3년반 후에 새 언약이 이스라엘에게 굳게 정해진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예수님의 다른 사도들은 무엇을 70주의 끝이라는 표시로 보는가?

그 주의 끝(The End of the Week)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 아직 성취될 3년반의 예언이 남아있다. 그 주의 반은 유다의 집과의 언약을 굳건히 정하기 위해 남아있었다. 그분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29:19)

이 명령은 전 세계에 가서 천국의 좋은 소식을 전할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즉시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오직 유대인들에게만 남아서 설교하였다. 그들이 전도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들은 박해받았다. 이 박해는 스데반의 순교로 극적인 순간까지 도달했다.

사도행전 7:51-59에서, 스데반의 위대한 변호와 유대인들의 그에대한 정죄가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음을 우리는 읽는다.

"예수님 아니면 無(Christ or nothing)"가 그의 메시지였다. 그들은 마음이 사무쳐서, 그를 죽였다.

*나는 "70 주" 13 장의 이 항목들에 대하여 로버트 카링골라(Robert Caringola)에게 감사한다.

스데반의 죽음은 대부분의 학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이 못박히신 지 3년 반 후, 주후 33년이라고 날짜가 기입된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 측정의 끝을 거기에 두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이것이 옳다고 믿지 않는다. 그 예언서는 그 언약이 전적으로 유대인들에게만 7년동안 굳게 정해질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는 그 다음해로 이동하는 기간을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시간을 측정해보면, 주전457년에서 시작하면, 그것은 주후34년까지는 끝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언의 끝을 신호하는 이 년도에 일어난 사건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 10 : 5에, 예수님은 그분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 :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예수님은 또한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모든 세상으로 가라" 이것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3년 반동안 다니엘의 예언으로 그들이 제한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 기간이 끝났을 때에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자유로이 구원을 전할 것이였다. 어떻게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있는가? 부활 후 , 예수님은 엠마오 도상에서 걸어가는 2명의 남자들과 만났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분은 예언자들이 그분에 관하여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이 믿지 않았다고 그들을 책망하셨다. 그러나, 24장 27절에서, 누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 사도들이 예수님에게 속한 모든 예언들에 관하여 가르침받았음을 알게된다. 예언 지식이 제자들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 내부에서만 불타오르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지상명령"을 받은 후에도, 유대인들에게만 전적으로 계속해서 전도했던 것이다. 성경예언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70주를 완결시키고, 그들의 예언된 한정의 끝을 신호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았는가? 언제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로 그분의 처음 기록된 이동을 하시는가?

복음이 사마리아에 전해졌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행8:5)

빌립은 왜 이렇게 하였는가? 그는 예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사마리아에서 설교하는 것을 금지하셨다는 것을 몰랐는가?(마10:15) 그는 주님의 명령을 어겼는가? 베드로와 요한 역시 명령을 어긴 것인가? 그들이 복음이 사마리아에서 전해졌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빌립이 시작하였던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한 팀이되어 그곳으로 출발하였다. 그 대답은 단순하다. 그들은 명령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령에 의해서 풀어졌을 뿐이다. 그것은 주후 34년이였고, 다니엘의 70 주 예언은 성취되었다. 이방인들이, 처음으로, 기회(천국 메시지)를 받았다.

그렇다, 그것은 그토록 단순하다!

주전457년(아닥사스다 명령) ....................다니엘70주(490년)..........................주후34년(스데반 순교-유대인 전도 끝)

490 일 - 해(年)

7년 후에, 베드로는 가이사랴 즉 고넬료와 그의 집안 사람들에게로 복음을 가지고 갔다(행10장). 신약의 메시지가 선포되었다.

그 후, 사도행전 13 장에서, 사도 바울은 안티옥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강하게 언급한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행13:46,47)

왜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가? 왜 반드시 신약 메시지가 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해져야 했는가? 왜냐하면 그 분께서 한 주동안 유대인들과 그분의 언약을 굳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말한대로이다 :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그렇게, 그 예언은 시작되었고 그리고 끝났으며, 그 안에 모든 필수적인 예언들이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장래 7년 환란기간도 없으며, 또한 그 70 주는 어떤 모호한 불확정한 시간 기간이 아니다.

2 . 예언의 성취(The Fulfillment of the Prophecy).

"다니엘의 70주"는 여섯가지 메시야 예언들을 담고 있다.

*허물이 마치며(To finish the transgression): 문자 그대로 범죄를 끝내거나 이스라엘의 반역을 닫는 것. 이사야 53 :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단9:11에는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라고 말씀하시지만,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녀의 메시야를 나무에 못박았을 때, 갈보리에서 그들은 비할 바 없는 가장 큰 죄를 지었다. 아담 클락은 이것이 죄를 끝내거나 혹은 죄를 저지하는 것이며, 복음이 전해짐으로써 그리고 성령이 사람들에게 내려짐으로써 완성되었다(효력을 발휘했다?)고 주석했다.

* 죄가 끝나며(To make an end of sins):

마1 : 21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골2 :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히9:26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언제가 "세상" 끝이었는가? 예루살렘의 멸망 때? 아니다, 예수님이 희생하실 때이다.

다시 예언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아담 클락을 인용해보면, "죄의 예물을 끝내는 것, 우리의 주님이 단번에 모두를 위하여 나무 위에 달리셔서 그분의 흠없는 몸을 드리셨을 때 주님이 그렇게 하셨다." 행3장 14절은 우리들이 거룩한 자를 부인하고,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했다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죄인으로 간주되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그곳에 그분의 사람들의 수많은 죄들을 속하시기 위해 계셨던 것이다. 그분은 거기서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을 인해 상하셨다. 누가 그분의 완전한 속죄가 장래 또 속죄받기 위한 제물 필요성을 끝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는가?

* 죄악이 영속되며(To make reconciliation for iniquity-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심).

고후 5: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롬5:10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2644, katallaso, 차이를 화해시키고, 서로 바꾸는 것)

** 이 글에서 이어서 살펴보게될 "70 주" 11장, 여섯 메시야 예언들, 에대해 로버트 카링골라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To bring in everlasting righteousness)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사51:8 "나의 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렘23: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스펄젼(Spurgeon)은 "예수님이 지상에 오신 중요한 목적중 하나는 영원한 의를 가져오는 것이었다"라고 선언하였다.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To seal up the vision and prophecy)

사29:10-11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봉해진'이란 단어는 사자 굴에대한 왕의 봉인에대하여 기록할 때 다니엘이 한 것처럼(단6:17), 같은 맥락에서 사용되었다. 선지자들의 말씀들을 듣고 따르는 것을 이스라엘이 거절하고, 마침내 주님 그분까지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을 이해하는 것을 단단히 봉인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심판에대해 전혀 깨닫지 못했다. 고후 3:14-15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다시, "그분의 피를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들에게 돌리라"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때문에, 메시야에관해 선지자들이 썼던 것에서 그들의 심판 부분은 보이지 않는 것이였다.

*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To anoint the most Holy).

이 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을 지적하는 성경적 증거들은 확실한 것이다. 예수님 홀로 이 예언을 성취시키셨다.

눅1:35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으리라" 다시 눅 4:18 "주의 성령이 네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행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왜 그 70주가 정해졌는가?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도록!

다니엘의 환상은 그의 백성들에게 성취될 구원을 위한 연속적인 여러 해의 신성한 시간표를 주는 것이지, 틈을 막으려는 생각으로 시간을 멈추는 게임을 준 것이 아니다. 이 위대한 구원의 주는 69번째 "주"의 해(年) 이후, 70번째 주의 중간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덕택으로 완성되었다. 다니엘 9장은 좋은 소식이다...그것에 기뻐하라!(Vic Lockman,"누가 시계를 멈추었는가?") Mr. Lockman은 과거주의자인데, 70주중에 거의 2천년 동안의 "틈"을 두었던 자들에 반대하는 "신성한 시간 계산"을 상세하게 변호하였다. 칠톤도 신약의 설립에대한 70주 예언 안에 예루살렘의 파멸을 둠으로써, 또한 30 혹은 더 많은 여러 해의 틈을 요구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요약

우리들은 칠톤의 글 "보수의 날"에 있는 6요점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그는 요한 계시록이 네로 통치 기간 즉 주후70년 이전에 기록되었다는 전기를 주장한다. 우리는 주후96년 기술을 지시해주는 외적 증거와 내적증거의 우세를 단언한다.

1. 칠톤은 요한계시록에서 상세하게 제공된 성전 제사 품목들에 관한 언급으로 그 책이 성전이 아직 서있을 때 즉 주후70년 전에 씌여졌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성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던 성전의 품목들이라도, 그가 본 환상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는 능력을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믿는다. 또한, 엘리어트가 설명한대로, 성전품목들의 목적은 예수님 그 자신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며 아울러 요한과 미래의 독자들이 이 설명하는 보조물을 사용하도록 준비시키려는 것이다.

2 . 요한계시록의 기술 날짜에대한 외적 지지는 보존되어왔던 초대 교부들과 역사가들의 저술들로부터 나왔다. 주후 96년경, 도미티안 통치 동안에 밧모섬에 요한이 추방당했다는 것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레네우스가 기록한 진술이다. 이레네우스는 주후 2 세기에 살았으며 사도 요한의 추종자들중 하나(폴리갑프)의 제자였다. 이 진술은 교회 역사가들에 의해 수세기동안 이의가 제기되지 않던 문제였다. 과거 3 세기 동안에 , 그것은 과거주의자들에의해 정밀하게 조사되어 왔다. 그들은 숙련된 그리스어 학자였던 교부들이 그것을 잘못이해했다고 말한다. 만약 이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그들은 또한 이레네우스가 기술 날짜에대해서 부주의한 잘못을 범하였다고 암시한다. 우리들은 이레네우스의 진술과 이 자료를 탄핵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모든 박학한 사람들을 지지한다.

3. 주후 96년 기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초대 교부들의 저술들에서 발견되는데, 그중에는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빅토리누스와 유세비우스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단순히 성 이레나에우스에 의해서 언급된 것을 반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학자들이자 역사가들이였다. 그들은 가능한 모든 정보들, 그중 어떤 것은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들에 근거해서 자기들의 결론에 이르렀다. 만약 상반된 의견이 있었다면, 그것 역시 언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4세기 그리고 이후까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어떤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4 .칠톤의 의견에 반대로, 주후 96년 기술은 크리스챤들이 도미티안 통치때 학살되었다는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도미티안은 종종 형벌로 크리스쳔들을 추방시켰다는 것과 이것이 요한에게 과해진 벌-그가 계시록을 받았던 밧모섬으로 추방당했다-이였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5. 칠톤은 요한계시록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네로시대에 기술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완곡한 추리이다. 초대교부들은 계시록이 그때 당시 그들에게는 미래일 것이라고 해석하였고, 현대의 역사가들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몇몇 부분들이 있는 시대를 통하여서 완성되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 해석들은 과거주의 해석과는 달리, 기술 날짜에 좌우되지 않는다.

6. 마지막으로, 칠톤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우리가 성경 자체에서 먼저 몇몇 가르침을 얻는다고 보았다. 즉 "70주"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끝났으며, 인간들에게 주신 모든 특별한 계시들이 주후 70년까지 역시 끝났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작은 책자에서 예루살렘의 멸망 때 끝났다는 "70주"가 이 예언을 보는 미래주의자들의 것과 유사하게, 시간상으로 또다른 "끊어짐-불연속"을 요구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것은 성경에서 확고하게 기초가 되는 "일일 일해(年)" 원리를 적용시킴으로서 증명된다. 하루가 일년을 가리키는 소재들은 너무 풍부하여 그것만을 살펴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그 "70 주"는 하나님의 계시들의 끝을 공표함으로써 그 자체가 인간과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사역, 그리고 이방인들과 나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부르심으로써 인간과 관계되는 것이다. 다시, 그 "70 주"는 왜 정해졌는가?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도록!

결론.

우리들은 매우 복잡하고 토론의 여지가 있는 문제의 한 관점을 살펴보았다. 과거주의와 역사주의 사이에는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예, 죄의 사람) 아주 많은 영역의 불일치가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기술 날짜는 우리를 중단시켰다. 이것은 과거주의자들에게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다루는 칠톤의 가벼움에 놀라지 않는다. 그는 개종된 사람들에게 전했고, 우리가 제시했던 것처럼, 전기 기술에대한 증거는 빈약하다. 우리들은 이 글이 "듣는 귀"를 가진 어떤 이들에게 도달하기를 바란다.

단순히 미래주의 거짓 교리들에 대한 가능성있는 대안으로서 과거주의로 기울어진 Identity 운동에 있는 자들과 교회들이 신중하게 재고하기를 바란다. 역사주의는 요한계시록에대한 만족스럽고 경건한 견해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우리들의 과거, 현재, 미래에 보여지게되도록 허용한다.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사건들이 그분의 기록된 말씀의 성취였음을 보여준다. 다른 어떤 해석도 이것을 제공하지 않는다. 계시록을 우리 뒤에 놓는 과거주의와 계시록을 우리 앞에 놓는 미래주의는 우리의 현재 삶으로부터 계시들이 풀리는 것을 막는 것이다.

출처 : 하나님 내가 누구죠?
글쓴이 : 隸僕 (예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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