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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요한 계시록의 새로운 이해와 말씀

하나님아들 2017. 6. 10. 01:04

요한 계시록의 새로운 이해와 말씀



들어가는 말

계시록이 주후 96년경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처음으로 소개된 이후 오늘날까지 거의 이 천년 동안 이 책에 대한 해석이나 이해에 있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읽어 볼 염두를 내지 못한다. 또 읽어본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거나 연구하기를 포기해 버린다. 그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이 책을 자의로 해석함으로서 기독교에 많은 물의를 빚어 왔다. 또 시대의 흐름과 상황에 따라서 이 책에 대한 해석의 방법도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해석법들은 계시록을 일차적으로 기록한 저자 시대의 위급한 상황에 처한 신자들과 또 시대를 초월한 고난 당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는 목양적인 메시지로 읽게 하기보다는 먼 미래에 있을 예수 재림과 천년왕국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만 읽도록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영적 해석법조차도 계시록을 만세 불변의 목양적 메시지로 읽게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계시록은 성서의 다른 책들과 동일하게 '고난으로부터의 승리'를 주제로 기록되었으며, 성서의 다른 책들의 저자들과 동일하게 창조주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고 성령을 통해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앙하는 믿음 아래서 기록되었다. 따라서 계시록은 복음서나 욥기서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메시지로 선포될 수 있으며, 고난 중에 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용기 있는 믿음과 희망을, 박해자들과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의 무서움을 가르칠 수 있는 목양적인 설교가 가능한 책이다.(1 그러므로 필자는 이 논문을 통해서 계시록을 기록한 저자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하였으며, 이 말씀이 오늘의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설교가 가능한지를 시도해 보았다. 논문의 전개 방법으로는 먼저 기존의 해석법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그 장단점들을 검토해 보았고, 단점을 보완하고 보충한다는 심정으로 또 계시록과 목회와 설교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해석법에 가까운 반복과 분리 이론을 발전시켜 보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구원에 이르는 고통'이란 제목의 회람편지에서 "고통 속에는 신비한 치료의 능력이 들어 있다." 고 말하였듯이, 요한 계시록의 말씀 속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수치와 죽임을 당함과 같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비의 영약이 들어 있다. 이 신비의 능력을 발견하는 자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 요한 계시록의 해석법

기존의 계시록에 대한 해석법들은 다양한 천년왕국설에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실 계시록에는 천년왕국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이 천년왕국설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것을 보면, 천년왕국설이 계시록의 해석법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그 반대로 계시록의 해석법이 천년왕국설에 의해서 나온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기존의 해석법들에는 과거적 해석법, 현재적 해석법, 미래적 해석법, 영적 해석법, 점진적 평행(역사적 주기) 해석법, 그리고 문학적 해석법 등이 있다.


가. 과거적 해석법

과거적 해석법(Preterist Interpretation) 즉 성취론자들의 해석법(2은 재림 이후의 사건(19-22장)을 제외한 모든 계시록의 내용(1-18장)을 기록 당시의 상황으로 보고, 그 당시의 교회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읽는 방법이다. 계시록을 기록 당시의 교회를 위한 묵시문학으로 보며, 13장의 첫째 짐승 적 그리스도는 로마제국으로,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666)는 소아시아의 사제직분으로 해석한다.(3 그러나 이러한 해석법에 의하면, 계시록이 기록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의미가 부여되지만, 그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아무런 메시지를 주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김철손은 이 해석법을 "마치 골동품 수집가들이 고물의 연대를 따져서 진열장에 진열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4 라고 꼬집고 있다.

계시록 1-18장

 

계시록 19-22장

기록 당시에 발생한 과거의 사건들

현재

미래에 있을 사건들


나.  현재적 해석법

현재적 해석법(Continuous Historical Interpretation)은 인류의 역사를 칠 천년으로 보고, 그 칠 천년을 일곱 개의 시대로 나누어 설명하는 소위 시대구분론자들이 계시록을 해석하는 방법이다.(5 이들은 구약의 역사를 사 천년에서 끝난 것으로 보며, 계시록은 그 나머지 삼 천년에 대한 문자적 예언으로 본다. 특히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이 천년 교회 시대 즉 예수의 재림 때까지의 일곱 시대를 말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그러나 교회시대가 이 천년에 마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는 데에도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해석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6

교회 창립부터 현재까지로 시간을 잡고 교회시대를 굳이 일곱 시대로 구분한다면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먼저 에베소 교회를 30년 교회 설립이후 약 96년 도미티안 사망 때까지, 서머나 교회를 97년부터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때까지, 버가모 교회를 314년부터 590년 그레고리 1세가 로마교회에 감독이 된 때까지, 두아디라 교회를 591년부터 1,054년 동서방 교회가 분열된 때까지, 사데 교회를 1,055년부터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때까지, 빌라델비아 교회를 1,518년부터 18세기 초 계몽주의가 싹트기까지, 라오디게아 교회를 자유 신학이 싹트기 시작한 18세기초부터 현재까지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기록 당시의 교회로 보지 아니 하고 각 시대를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더구나 편지를 받아 본 일곱 교회들이 자기들과 전혀 상관없는 아주 먼 미래의 교회 시대와 관련해서 요한의 편지를 이해했을 리가 전무하다.

현재적 해석법에서는 계시록 4-22장을 재림 직전과 직후의 사건 즉 칠 년 대환난(4-18장), 재림(19장), 천년 왕국(20장), 그리고 영원한 세계의 도래(21-22장)에 관한 내용으로 읽는다. 이 해석법에 의하면, 계시록이 각 시대마다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만,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통일된 의견을 이루기가 어려우며, 성서를 거의 백퍼센트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7 이러한 입장에서 시한부 종말론이 나오게 된다. 다미 선교회를 조직한 이장림의 92년 10월 28일 휴거설, 시대구분론자 할 린지(Hal Lindsey)의 1988년 휴거설, 윌리암 밀러(William Miller)의 1844년 10월 22일 휴거설이 여기에 속한다.


다. 미래적 해석법

미래적 해석법(Futurist Interpretation)은 역사적 전 천년설에 입각하여 계시록의 첫 세 장을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으로, 나머지 4-22장을 재림 직전 직후의 사건 즉 칠 년 대환난(4-18장), 재림(19장), 천년 왕국(20장), 그리고 영원한 세계의 도래(21-22장)에 관한 내용으로 읽는다.(8 이 해석법에 의하면, 계시록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미래의 소망을 말해 주지만, 그 중간시대의 신앙인들에게는 의미 부여가 전혀 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계시록 1-3장

 

계시록 4-18장

계시록 19-20장

계시록 21-22장

기록 당시

현재

칠 년 대 환난

천년 왕국

새 하늘과 새 땅


라. 영적 해석법

영적 해석법(Spiritual Interpretation)은 계시록을 단지 선과 악의 세력과의 영적인 투쟁으로 보는 해석 방법이다. 이러한 해석법에 의하면, 계시록은 원리와 원칙을 제시하고 있을 뿐 상징적인 표현에 불과하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이 해석법은 역사상의 모든 교회를 계시록과 관련 맺어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9

계시록 1-22장

신앙의 원리와 원칙을 제시


마. 점진적 평행 해석법

점진적 평행 해석법(Progressive Parallel Interpretation) 즉 역사적 주기 해석법(Historical Cyclic Interpretation)은 윌리암 헨드릭센(William Hendriksen)이 주장한 것으로써 계시록 전체를 일곱 주기로 나누어 읽는 해석 방법이다. 계시록의 일곱 주기는 영적 해석법과 마찬가지로 전 교회 역사를 대표하며, 전체 계시록의 말씀은 원리와 원칙을 제시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첫째 주기인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문자적으로 요한의 시대의 일곱 교회로 볼 뿐 아니라, 전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교회의 모형으로 본다. 일곱 주기는 (1)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2)일곱 인, (3)일곱 나팔, (4)여인과 용, (5)일곱 대접, (6)바벨론의 멸망, (7)대 완성을 말한다. 이들 주기들의 특징은 한 주기에서 그 다음 주기로 옮길 수록 그리고 종말에 가까울 수록 그 강도가 커진다고 본다. 예를 들면, 대접 재앙은 나팔 재앙보다 강도가 세배나 된다. 둘째 주기로부터 여섯째 주기는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세력간의 영적 투쟁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이 해석법은 천년 왕국을 문자적으로 풀지 아니하고, 주의 재림 때까지 계속되는 교회와 낙원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며, 재림 이후에는 곧바로 영원한 세계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한다.(10

제1주기

제2주기

제3주기

제4주기

제5주기

제6주기

제7주기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여인과 용

일곱 대접

바벨론의 멸망

대 완성


바. 문학적 해석법

문학적 해석법(Literary Interpretation)은 계시록을 대조와 반복과 클라이맥스가 잘 구성된 희곡(戱曲/drama)으로 보는 견해이다.(11 김철손,(12 보우만(Johnwick Bowman),(13 헌터(A. M. Hunter)(14와 같은 신학자들이 이 해석법에 동조하고 있다. 특히 보우만은 계시록을 "헬라의 희곡 또는 희브리적 '서사시'의 웅장한 형식으로 표현된 복음 메시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15 라고 하였고, "요한의 희곡은 헬라적 옷을 입었지만, 가장 훌륭한 히브리 예언적-기독교적 전통에서 나온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16

요한 계시록이 묵시문학이란 점에서 계시록을 헬라의 희곡 형식을 취한 복음의 메시지로 볼 수도 있겠으나 계시록의 계시성이나 역사적 현실을 무시한 채 꾸민 이야기로(fiction) 볼 수 있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한편 도날드 거쓰리(Donald Guthrie)는 "계시록은 대화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헬라 희곡과는 다르다. 더욱이 계시록에는, 헬라 희곡에서와 같은 찬송과 대화의 교환이 없다. 또한 헬라 희곡에서 합창대가 '어떤 행동이 적당한지'를 토의할 때 나타나는 토론이 계시록에는 없다."(17는 점을 들어 보우만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1) 희곡적 구조

희곡적 해석법(Dramatic Interpretation)은 보우만(Johnwick Bowman)이 주장한 것으로써 계시록을 7막극의 구조에다 편지 형식이 첨가된 희곡으로 보는 견해이다. 또 각 막은 각각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보우만이 주장하는 희곡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18

서막(1:7-8)
제1막: 지상 교회의 환상-"사람의 아들"을 그 중심 인물로 하고(1:9-3:22)
(일곱 교회로 가는 편지들)
제2막: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환상-역사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목적(4:1-8:1)
(일곱 인을 떼다)
제3막: 하나님을 섬기는 일곱 천사의 환상-환난을 당하는 교회(8:2-11:18)
(일곱 나팔을 불다)
제4막: 승리하는 교회에 대한 환상-구원의 드라마(11:19-14:20, 15:2-4)
(일곱 개의 야외극 공연)
제5막: 하나님의 진노를 쏟는 일곱 천사의 환상-고뇌 속에 있는 세상(15:1,5-16:21)
(일곱 대접을 쏟다)
제6막: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환상-심판에 관한 극(17:1-20:3,7-10)
(일곱 재앙의 전개)
제7막: 천년 시대 교회의 환상-하나님의 목적의 완성(20:4-6,11-22:5)
(하나님의 일곱 가지 계획의 성취)
종막(22:6-20)(19


 2) 오경적 구조

문학적 해석법 가운데 계시록을 오경적 구조를 가진 묵시문학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20 오경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

서사(序詞/1장)
서막: 천상의 노래(4-5장)
제1막: 인 재앙(6장)
제2막: 나팔 재앙(8:1-14:20)
제3막: 대접 재앙(14:21-18:24)
제4막: 그리스도의 승리(19:1-20:3)
제5막: 최후의 대심판(20:4-15)
대단원: 신천신지(21:1-22:5)
결사(結詞/21:6-21)

2. 새로운 계시록의 해석법

앞에서 살펴 본 해석 방법들에는 모두가 장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이러한 해석 방법들이 기독교 역사상 중요하게 거론되었던 무게 있는 해석법이라고 생각되어 진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 방법들이 최종적인 해석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며, 여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계시록은 읽혀 질 수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따라서 필자는 계시록을 통해서 저자가 자신의 교회 공동체에게 하고자 했던 그 메시지가 무엇 이였으며, 그의 설교가 오늘 우리의 강단에서 어떻게 설교되어 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계시록이 기록된 당시의 삶의 자리, 즉 정치 사회적 상황과 초대교회가 처한 상황; 둘째, 계시록이 쓰여진 이유와 목적과 주제; 셋째, 계시록이 사용하고 있는 자료와 편집과정; 넷째, 계시록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들과 그 의미; 마지막으로 계시록의 전체적인 틀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와 같은 것들을 간략하게 살펴 본 후에 계시록의 본문을 가지고 강해 설교의 가능성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계시록의 저자는 첫째, 창조신앙의 소유자였으며; 둘째, 구약성서의 해석자였으며; 셋째, 환상을 보는 묵시묵학자였으며; 넷째, 역사의식이 뚜렷한 신학자였으며; 다섯째, 소명의식을 가진 목회자였다. 계시록은 이와 같은 자질의 소유자인 목회자가 쓴 설교이다. 이 설교는 보통의 원고 설교나 목회자가 쓴 희곡이 아니라, 자신이 본 환상을 그림으로 설명하는 시청각 설교(Audio-visual Sermon)이다. 계시록은 앞으로 되어질 사건들에 대한 예언적 설교 일뿐 아니라, 저자 시대의 교회 공동체에게 주어졌던 시기 적절하고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훌륭한 목양적 설교 말씀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한결같은 영감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성경의 다른 책들 특히 복음서와 같이 한 편의 설교로서 읽혀지고 전파되고 설명되어 질 수 있다. 우리가 여전히 계시록을 미래에 전개될 사건에 대한 예언서로만 읽게 된다면, 계시록은 우리의 현재적인 삶과 전혀 관련이 없는 미래의 책이 되어 버리고 만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계시록은 이미 이 천년간 교회로부터 천대를 받아 왔거나 악용되어 온 책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교회 역사 속에 등장했던 몇몇 재림 열광주의자들, 예를 들면, 2세기말에 나타난 몬타니우스, 16세기의 초의 토마스 뮨쳐, 19세기 중반의 윌리암 밀러와 찰스 러셀, 20세기초의 할 린지와 스코필드, 20세기말의 이장림 등이 나타나 계시록을 잘못 사용함으로서 이단을 만들어 냈고, 이와는 반대로 종교 개혁가들은 계시록을 홀대했다. 쯔빙글리는 계시록을 성경의 일부로 볼 수 없다고 했고, 루터는 계시록에 십자가라는 말이 없어서 기독교적 문헌으로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 칼뱅도 성서 66권 가운데 계시록만은 주석을 완성하지 않았다. 동방 헬라 정통파 교회에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시록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있어서 강단에서 읽는 것과 설교의 본문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와 같이 계시록으로 인해서 야기된 부작용은 교회를 분열시켜 왔고, 이단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는 모두가 계시록에 대한 올바른 이해의 부족에서 왔다고 본다.(21


가. 기록연대와 배경

계시록이 기록된 것은 A.D. 96년경이다. 이 시대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나 엘리야 시대의 바알숭배 강요와 마찬가지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 강요가 있던 시기에 쓰여졌다. 다시 말하자면, 신앙의 선택을 양심의 자유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칼의 권세와 위협과 달콤한 교리와 협박으로 우상숭배 내지는 이방신 숭배를 강요받던 시기에 계시록이 기록된 것이다.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대다수는 칼날의 위협 앞에 야훼를 버리고 바알을 선택했다. 마찬가지로 계시록이 기록된 시기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칼날의 위협 앞에 예수신앙을 저버리고 황제숭배를 택했다. 배교의 위협이 있던 시기에 계시록은 기록되었다. 그리스도냐? 황제냐? 그리스도의 선택은 죽음을, 황제숭배의 선택은 생명을 의미했던 시기에 계시록은 기록되었다.(22


나. 기록 목적과 주제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성서와 이스라엘 민족의 창조주 하나님 신앙과 심한 역경 속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낸 그들의 삶을 재해석하면서 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승리를 환상(幻想)으로 보여 줌으로서, 악의 세력과 대항하여 싸우며, 박해와 고난을 당하는 성도에게 소망과 용기를 심어주고, 위로를 주며, 박해로 인한 배교의 위협과 신앙의 위기에 처한 성도에게 끝까지 믿음의 정조를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다. 따라서 계시록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사탄의 세력과 싸워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사탄의 세력이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지만, 싸움의 결국은 성도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이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고, 위기위발의 순간에 있지만, 승리는 결국 그리스도인의 것이라고 말한다.(23

적그리스도의 칼 또는 무력의 권세 앞에서 힘없이 박해를 당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승리 또는 승리의 하나님, 또는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는 사실과 거짓 선지자의 회유와 무력 앞에 힘없이 끌려가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구원 또는 구원의 하나님, 또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구원의 근원이시다'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끝까지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하고 있다.


다. 이용 자료

요한 계시록의 저자는 구약성경의 많은 부분을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와 소돔성 멸망(눅 17:26-29),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에서의 고난, 탈출, 그리고 가나안 정복 그리고 아합과 이세벨 시대의 박해, 그리고 끝까지 바알에게 무릎을 굽히지 아니한 엘리야와 칠 천명의 남은 자, 헬라제국으로부터의 박해와 마카비가 이끄는 하시딤의 독립전쟁과 승리, 다윗왕국 회복에 대한 기대와 예언자들의 예언문서 또는 주전 일 이 백년 사이에 나타난 에녹서나 에스드라서와 같은 묵시문학 서적들이 계시록의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24 이러한 자료들을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선별적으로 사용하여 편집함으로서 인류역사의 과거 속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개입과 섭리와 구원과 심판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그와 같은 구원과 심판을 현재와 미래 속에서 동일하게 기대한다. 이 작업을 저자는 자신이 본 환상을 통해서 하고 있고, 그 내용을 회화(繪畵)적으로 설교함으로서 시청각 효과를 얻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뇌리(腦裡)에 이미지 심기(imagimaking)를 하고 있다. 특별히 고난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극적인 구원에 대해서 그리고 박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재앙과 심판에 대해서 극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계시록의 연구는 구약성서를 참고서 삼아 이루어져야 한다. 한가지 예를 들면, 계시록에서 말하는 환난과 재앙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칠 년 대환난을 말하면서 환난과 재앙을 구별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계시록은 이를 분명하게 구별해서 설명하고 있다. 대 환난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배교의 위협과 예수신앙으로 야기되는 고난과 수치와 순교를 말한다. 그러나 재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는 적대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를 위한 결정적인 포격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노아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면서도 노아의 여덟 식구를 방주로 구원하신 것과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시면 서도 롯과 두 딸을 구원하신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온갖 학대와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피하여 오직 이집트와 이집트에 사는 바로와 그의 백성들에게만 열 가지 재앙을 내려 심판하신 것과 같으며, 결국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승리를 맛본 것과 같다.


라. 성서의 주제

성서 66권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승리,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승리, 또는 하나님의 구원,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의 구원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을 능히 당할 자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근원이시다.' 그래서 성서에 비친 하나님은 승리자이시오, 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승리자 이상의 승리자인 것이다(롬 8:37). 성서의 뼈대를 구성하는 세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은 구약성서의 출애굽과 바벨론 포로귀환, 그리고 신약성서에서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사건이다.(25 극한 시련 속에서 승리를 맛본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들 사건들을 역사 속에 개입하신 하나님의 구원사건이라고 신앙고백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오랜 이집트의 압제로부터 해방과 바벨론 포로로부터 자유를 하나님의 구원사건으로 고백하고 있고, 초대교회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서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고백하고 있다. 따라서 고난에서의 구원, 시련의 극복, 죄에서의 구원 등은 같은 맥락에서 엮어진 성서의 주제이다. 이들 성서의 이야기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수치와 죽임을 당함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뵙고 승리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생명의 말씀으로 읽혀지기 위해서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조차 신앙의 정조를 저버리지 아니한 사람들의 극난극복의 삶의 이야기가 설교가 되고 간증이 될 때이다.(26


마. 상징들과 의미

계시록이 사용하고 있는 상징들과 그 의미들에 대해서 올바른 해석을 내려야 한다. 가장 빈번하게 잘못 해석되고 있는 상징적인 숫자가 삼 년 반과 666이다. 적 그리스도와 666을 혼동해서 쓰기도 하고, 전혀 성서적인 근거가 되지 못하는 칠년 대 환난에 대해서도 말한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환난과 재앙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난과 재앙을 혼동해서 쓰고 있다.

계시록이 언급하고 있는 삼 년 반에 관한 숫자는 원래가 엘리야 시대에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숭배 강요기간에서 유래한 것이다(왕상 18:1). 삼 년 반이 다시 다니엘서에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마카비 독립전쟁 시대에 헬라제국의 안티옥커스 4세가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신앙을 말살하려 했던 기간인 삼 년 반에서 나왔다.(27 이들 두 가지 사건들은 역사적인 사건들로서 모두가 신앙을 위협받던 시기였다.

북이스라엘 왕국에 다윗 왕에 버금가는 왕이 있었다. 그가 오므리이다. 오므리는 자신의 아들 아합을 시돈 사람의 왕 옛 바알의 아리따운 딸 이세벨과 정략 결혼을 시켰다. 이 이방여인 이세벨이 남편 아합왕으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하였다. 바알 숭배를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심한 박해를 가했다. 이 박해의 결과로 엘리야와 광야의 굴에 숨은 칠 천명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바알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왕상 16:30-33; 19:18).

솔로몬 왕이 종교적으로 타락을 금치 못했던 원인도 이 정략결혼에 의해서 많은 이방여인들이 궁에 입성한 때문이다. 그들이 올 때에는 반드시 자신들의 신과 제사장들과 몸종들을 동반한다. 그러면, 그들을 위해서 이스라엘은 사당을 지어주고, 궁전을 지어 주어야 한다. 아합 왕도 이세벨을 위해서 바알신전을 지어주고, 자신도 바알을 숭배했다. 이는 아합이 이세벨의 유혹에 넘어간 때문이다. 이 이세벨이 아합의 권세를 이용해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를 버리고 바알을 숭배토록 했던 것이다. 이 탄압의 기간이 삼 년 육개월이었다.(28

그러나 구약성경 열왕기상에 보면, 바알과 아세라 신의 선지자 850명이 엘리야에 의해서 결국 기손 강의 물귀신이 되었고, 아합왕은 전투에서 피흘려 죽음으로서 그 피를 개들이 핥았으며, 엘리사와 예후의 구데타 때에 이세벨은 내시들에 의해서 창밖으로 던져져 그 피가 담과 말에 튀었으며, 그 시체는 짓밟히고 말았다. 이것이 박해세력의 최후였다. 박해가 시작된지 삼 년 반만에 얻은 야훼신앙의 승리였다(왕상 18:19-왕하 9:37).

알렉산더 대왕이후 팔레스틴을 지배했던 헬라제국의 에피파네스 안디옥쿠스 4세(B.C. 175-164)는 대제사장직을 매매하고, 유대교를 금지시켰으며, 성전을 약탈하였고, 팔레스틴에 헬라화를 추진하였다. 안디옥쿠스는 예루살렘 성전을 올림피아의 제우스에게 봉헌하였고, 이교의 제단과 성전과 신당을 세우게 하였으며, 이교도들의 관습을 따르도록 강요하였다. 또 유대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와 부정한 동물들을 희생제물로 잡아 바칠 것을 강요하였다. 이 뿐 아니라, 안디옥쿠스는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유대교의 모든 종교의식 특히 할례, 안식일, 절기들을 사형으로 금지시켰고, 율법서의 소유도 사형으로 금지시켰다. 이 탄압의 기간이 삼 년 육개월이었다.(29

안디옥쿠스는 유대인들에게 연극, 스포츠, 대중탕 사용, 나체운동, 테두리 넓은 모자 착용 등과 같은 헬라문화와 관습을 강요하였다. 젊은 사제들 가운데는 제단을 버리고, 원반던지기를 연습하며, 할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수술까지 받았다 한다.(30

이스라엘에 맛디아(마타디아)라 하는 제사장이 있었다. 그에게 요한, 시몬, 유다 마카비, 엘르아살, 요나단이라 이름하는 다섯 아들이 있었다. 맛디아는 이방 제사를 강요하는 왕명 소지자에게 동조하는 유대인 한 명을 죽이고 아들들과 함께 산으로 피신하였다. 이 때부터 맛디아는 다섯 아들들과 헬라제국의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신앙의 정절을 지켰던 하시딤의 무리와 힘을 합쳐 독립전쟁을 시작하였다. 이를 마카비 전쟁이라 부른다.(31

마타디아의 아들 가운데 유다 마카비는 게릴라전에 뛰어난 전사였다. 그의 활약으로 주전 165년에는 유대교 금지령을 해제하는 조약을 체결하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을 청결히 한 후에 야훼 하나님께 봉헌하였다(12월 25일). 주전 168년 12월 유대인들이 불결하게 생각하는 돼지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성전예배가 중지된지 만 삼년만이었다.(32

예수께서도 삼 년 반(26-30년)의 지상선교를 통해서 십자가를 져야 할만큼 배척과 시련과 수치와 죽음을 맛보셨다. 네로에 의한 기독교인들의 박해기간도 대략 삼 년 반이 되고 있다. 주후 64년 로마시에 대화재가 있는 직후부터 68년 네로가 자살하기까지의 기간은 대략 삼 년 반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 모든 사건들이 삼 년 반 이후에 하나님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삼 년 반 이후에 아합과 이세벨은 비참한 최후를 마치게 되었고, 삼 년 반 이후에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헬라제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는 부활로서 승리를 장식하셨고, 승천하신 후에는 영광과 예배를 세세 무궁토록 받으실 자로 높임을 받고 계신다. 억울한 누명을 씌워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던 네로 황제도 결국 삼 년 반만에 자살하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기에 계시록의 저자는 이들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큰 손길을 보았고, 로마제국으로부터 오는 신앙의 박해도 결국 승리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강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기독교는 제국의 힘을 이기고 승리함으로서 온 로마제국이 기독교국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삼 년 반의 이야기는 계시록 11, 12, 13장에 각각 나온다. 이들 사건들은 목회자와 교회의 시련기가 삼 년 반이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고, 박해자의 박해 기간이 또한 삼 년 반이 될 것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삼 년 반이란 숫자는 상징적인 숫자로서 시련의 기간이 짧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롬 8:18; 고후 4:17). 계시록에서 삼 년 반의 시련과 천년 왕국의 축복을 언급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믿는다. 결국 계시록에서는 시련은 짧고 영광은 영원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보아진다. 그렇다고 재앙의 기간을 삼 년 반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없다. 계시록에서의 재앙은 단순히 박해자를 멸하시고 고난 당하는 신앙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에 불과한 것이다.

11장에서는 두 증인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이들이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받은 박해기간을 삼 년 반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들이 11장에서 목회자들의 대표로 등장하는 이유는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고난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계시록과 출애굽 사건의 비교는 계시록에서의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계시록 전체의 뼈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숭배 정책에 반대하여 신앙의 정조를 지킨 남은 자 칠 천명의 대표가 되는 것이다. 계시록에 이세벨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고, 그녀의 행위가 음란행위와 관련하여 정죄되는 이유는 바알종교가 실제로 사당의 성창(聖娼)들과의 성행위를 통한 예배의식을 인정한 데도 이유가 있지만,(33 이세벨은 절세의 미인의 이방인으로서 남편 아합왕으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하였을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야훼신앙을 버리고 바알을 숭배케 한 신앙의 창기였으며, 참 신앙을 저버리게 한 거짓 선지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모든 거짓 선지자의 대표이며, 영적으로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버리고 이방신과 간음하도록 하는 모든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격인 것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666은 이세벨에서 유래하여 로마제국의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사제들을 두고 한 말이다. 이들의 가르침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완전수 7에서 1이 부족한 인간의 숫자 6을 삼 결합시켜 인위적인 가르침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완전한 마이너스 1의 이단사설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6은 인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숫자이면서 완전수 7에서 하나가 부족한 숫자이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과 같을 수 없는 영원한 피조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숫자이다.

12장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받는 박해 기간을 삼 년 반으로 묘사하고 있다. 12장에서의 해를 입는 여인은 마리아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교회를 상징한다. 사내아이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11장과 12장을 종합해 보면, 목회자와 성도가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받는 박해 기간을 삼 년 반으로 말하고 있는 데, 이것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엘리야와 남은 자 칠 천명에서 나온 것이다. 이들이 받은 고난의 기간이 삼 년 반이었다.

13장에서는 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성도를 박해하는 기간이 삼 년 반임을 설명하고 있다. 계시록이 말하는 적 그리스도는 칼의 힘을 가진 아합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신앙의 적은 언제나 칼의 힘과 이단 사설에 있다. 칼의 힘이 적 그리스도요, 이단 사설이 거짓 선지자이다. 이슬람교가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 코란을 들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반복과 분리 이론(Recapitulation Theory)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이 이론은 계시록의 내용이 천상과 지상의 분리 또는 사건의 반복으로 전개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책자는 없다. 도날드 거쓰리는 빅토리누스(Victorinus)가 최초로 반복이론을 사용한 사람이라는 것과 어거스틴도 이 이론의 지지자라고 간단하게 말하는 것 말고는 분리와 반복 이론에 대해서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았다.(34 A. M. 헌터 역시도 '삽화의 원칙'과 '이중 사건'이란 용어로 계시록의 틀인 반복과 분리를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 말고는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헌터가 계시록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삽화의 원칙'과 '이중 사건'에 관한 설명은 다음의 것이 전부다.

첫째, 요한이 사용한 드라마상의 기법 중의 하나는 '삽화(揷話)의 원칙(principle of parenthesis)이다. 마치 음악가가 두 개의 중후한 악장 사이에 가벼운 리듬의 악장을 도입하듯이 요한도 그의 심판 환상들이 거의 견딜 수 없게 될 때 지상의 고통의 장면에서 하늘의 축복에로 장면을 전환시킴으로써 긴장을 해소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 .

둘째, 요한 계시록의 특징은 '이중 사건'(double happenings)이다. 즉 천상의 사건들 속에는 그와 대칭 되는 지상의 사건들이 있다는 말이다. . . .(35

반복과 분리 이론을 기록한 자료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시록 전체의 구조적인 틀을 살펴보면, 계시록의 내용이 반복과 분리로 되어 있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계시록 전체 내용의 구조가 반복과 분리로 되어 있다는 점을 표로서 간단히 그려 볼 수 있다. 아래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계시록에는 머리말과 맺는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 전체는 일곱 장의 큰 그림(繪畵)으로 되어 있다. 이 일곱 장의 그림은 제 5화(畵)인 중간계시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각각의 그림에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각각의 그림에서 천상의 모습과 지상의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분리되어 있다. 이들 그림들은 신자의 고난과 구원 그리고 박해자와 불신자의 불행한 최후를 경고하고 있다.

제 1화(畵)는 박해의 광풍을 금방이라도 잔잔케 하실 인자의 모습이 상단에, 거센 풍랑 만나 몹시 괴로워하는 일곱 교회가 하단에 그려져 있다. 제 2화(畵)는 온 우주를 지배하고 있고, 악의 세력에 의해서 잠깐 동안 장악된 인류의 역사를 바로 세울 하늘 보좌 방의 화려한 모습이 상단에, 일곱 인 재앙에 나타나는 지진, 기근, 전쟁, 순교, 천재지변과 같은 역사의 악순환이 하단에 그려져 있다. 제 3화(畵)와 제 4화(畵)는 박해를 이기고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구원받아 하늘 나라에서 영광과 축복을 누리는 장면이 상단에, 나팔 재앙과 대접 재앙으로 인해서 큰 고통을 당하는 불신자들의 모습이 각각 하단에 그려져 있다. 이들의 모습은 방주에 안전하게 피신한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엄청난 물난리를 만나 멸망당하는 장면 같기도 하고, 홍해 바닷가에 선 이스라엘 민족과 홍해 바다에 빠진 이집트의 마병대와 같기도 하고, 소알 성에 안전하게 피한 롯과 두 딸과 유황과 연기와 불에 타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모습 같기도 하다. 제 4화(畵)는 제 3화(畵)보다도 그 강도가 3배 이상 강한 저주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제 5화(畵)는 목회자와 교회와 성도들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로부터 고난 당하는 장면이 좌측에 그려져 있고, 박해자들과 그들의 나라가 천벌을 받는 장면이 우측에 그려져 있다. 제 6화(畵)는 백마를 타고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그 뒤를 따르는 흰옷 입은 수많은 성도들의 그림이 상단에, 지상에서의 백보좌 심판과 천년왕국의 시작이 하단에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제 7화(畵)는 통합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평화스런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큰 그림들은 요한의 설교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요한은 먼 옛날 이미 시청각 설교 방법(Audio-visual Preaching Method)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의 설교는 정체되어 있던 이 그림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또한 배교의 위기에 처한 신앙인들의 믿음을 바로 세우는 능력이다.

계시록은 일정한 틀을 유지하고 있다. 이 틀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과 적 그리스도의 세력에 속한 불신자들을 완전히 천상과 지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천상과 지상이 반드시 문자적인 뜻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천상은 구원을 그리고 지상은 저주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원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 두 길은 다시 만나질 수 없는 영원한 갈림길이다. 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킨 자들은 구원의 길로, 신앙의 정조를 버리고 적 그리스도가 강요하는 우상숭배에 머리를 조아린 자들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2-3장에 일곱 교회가 나온다. 물론 이 교회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해 있는 교회들이다. 갈릴리 호수에 제자들을 태운 작은 배가 돌풍 때문에 위기를 만난 것처럼 이들 교회들도 박해로 인해서 전복될 위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장에서는 이들 교회의 머리되신 승리자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의 배후에 화려한 인자의 모습으로 버티고 계신다는 점을 보아야 한다. 이는 마치 배를 요동치게 하던 바람과 풍랑이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여 잔잔하여 짐과 같이(막 4:35-41) 능력의 주께서 일곱 교회의 목자들을 상징하는 일곱 별을 손에 쥐고서 일곱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사이를 거닐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에 몰아 닥친 풍랑은 곧 잔잔하여 질 것을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천상에, 교회는 지상의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1

천상(1:19-20)

인자의 환상/ 능력의 주님, 교회의 머리, 성도의 주세주

지상(2-3장)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과 권면/ 박해와 고난

6장에서는 소위 인 재앙이라는 것이 설명되어 있다. 인 재앙은 사실 재앙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들은 승리, 전쟁의 파괴, 기근, 죽음, 신앙으로 인한 순교, 천재지변, 평화에 관한 표현으로서 이 지상에서 펼쳐지는 역사의 악순환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그 반면에 4-5장에서는 인류의 역사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 즉 천상의 청와대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목적 없이 흘러가는 것도 아니오, 윤회의 역사도 아니오, 오직 이 우주를 지으시고 만드신 이의 목적과 계획과 섭리아래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의 지배아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심판아래 놓이게 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천상에, 인류는 지상의 존재임이 부각되고 있다.


2

천상(4-5장)

하늘 보좌 방과 전경/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지상(6장)

일곱 인(역사의 악순환), 고해 같은 세상

8-9장은 나팔 재앙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들 재앙은 모세를 통해서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과 흡사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열 가지가 일곱 가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들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이 심판의 재앙은 하나님에게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재앙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이미 7장에서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위로와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천상에서 구원의 기쁨을 승리의 노래로 찬양하고 있고, 사탄의 백성은 지상에 남아 이 재앙을 받고 아비규환의 소동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대목이 성도의 휴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가 말하는 휴거의 의미는 전혀 다른 대목에서 설명된다. 7장의 천상의 백성과 8-9장의 지상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과 사탄의 백성의 완전한 구별과 분리를 회화적(繪畵的)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이 이집트인들에게만 내리고 고센 땅에 분리되어 살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이 주어졌던 것과 같다. 또 출애굽기 14-15장과 계시록 15장 2-4절에 나타난 장면대로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넌 후 해변에서 구원의 기쁨과 축제 분위기에 쌓여 있고, 이집트 마병대는 불과 유황으로 이글거리는 것 같은 홍해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죽어 가는 모습과 같다. 또한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멸하시면 서도 노아의 여덟 식구를 방주로 구원하신 것과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멸하시면 서도 롯과 두 딸을 구원하신 것과도 같다(눅 17:26-29).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은 고난을 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이요 사랑의 행위인 것이다. 마치 억류된 자국민을 구해 내기 위해 포격을 가하고 특공대를 파견하여 구출해 내는 것과 같은 행위인 것이다. 또한 지상의 재앙과 천상의 큰 무리는 천국과 지옥의 광경을 묘사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3

천상(7장)

이스라엘 자손 중 인 맞은 자 십 사만 사천명과 구원 받은 큰 무리/ 큰 환난에서 구원

지상(8-9장; 11:15-19)

일곱 나팔 재앙/ 저주와 심판

15-16장의 대접 재앙도 8-9장의 나팔 재앙의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다만 다른 점은 대접 재앙이 나팔 재앙보다도 그 강도에 있어서 3배가된다는 점이다. 나팔 재앙의 강도가 33퍼센트 일 때, 대접 재앙의 강도는 100퍼센트가 된다는 것이다. 14장 역시 7장과 마찬가지로 천상의 구원받은 무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는 같은 사건이 반복되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이들 사건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 해서는 안된다. 계시록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말할 뿐 미래에 있을 일들에 대한 문자적 성취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장 확실한 것은 성도의 구원이다. 그리고 성도의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그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다.


4

천상(14장)

십 사만 사천명과 심판/ 천국과 지옥

지상(15-16장)

일곱 대접 재앙/ 극심한 저주와 심판

10-13장은 성도의 고난을 삼 년 반으로 묘사한 중간계시를 보여 주고 있고, 그 반대로 17-19장에서는 성도에게 박해를 가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 주심을 묘사해 주고 있다. 이들은 중간 계시로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의 구세주이심을 입증하는 구원의 행위인 것이다.


5

중간계시(10-13장)

대 환난/ 목자와 교회와 성도가 당하는 삼 년 육 개월의 박해와 고난

중간계시(17-18장)

대 심판/ 음녀와 큰 성 바벨론의 멸망

20-22장에서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은 19장에서 백마 타고 오시는 재림주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된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은 짧은 성도의 수고가 끝나고 영원히 지속되는 영광의 삶이 시작됨을 알리게 된다. 이 영광의 삶은 부활의 몸, 구속된 몸, 혹은 변형된 몸으로 시작된다. 성도는 이미 영혼의 구원을 통해서 지상 혹은 낙원에서 선취적으로 이 삶을 맛보며 누려 왔으나, 부분적이며 불완전한 것이었다.


6

천상(19-20:3)

만 왕의 왕 만주의 주 재림과 심판/ 두 짐승이 유황 못에 들어가고 사탄이 갇힘

지상(20:4-15)

천년 왕국과 백 보좌 심판/ 사탄이 유황 못에 들어감

그러나 천상과 지상의 통합으로 이루어지는 신천신지(新天新地)는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완전한 나라가 될 것이다. 21-22장의 말씀은 이런 인류가 가진 마지막 소망을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7

천상과 지상(21:1-22:5)

새 하늘과 새 땅/ 천상과 지상의 통합

이와 같이 계시록은 일정한 틀에 의해서 구성된 일곱 장의 큰 그림으로 설명된 시청각 설교이며, 마음 뭉클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이 담긴 멋진 한 편의 설교인 것이다. 우리는 이 설교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현실 속에서 승리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며 인내로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3. 강해 설교

이제까지 계시록의 시청각 설교 해석법(Audio-visual Preaching Interpretation)을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이 해석법에 따라서 계시록의 내용을 몇 개의 묶음으로 나눌 수가 있고, 또 그 묶음을 본문으로 삼아 설교를 작성할 수가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분량의 제한으로 인해서 설교의 내용을 싣지 못하고, 아쉽지만 본문과 제목만 소개하고자 한다.

가) 풍랑을 잔잔케 하실 그리스도(계 1:10-16)
나)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
다) 역사 배후의 큰 손, 하나님(계 4:1-11)
라) 보응의 하나님(계 7:9-17; 14:1-5)
마) 승리의 노래(계 15:2-4))
바) 시련의 짧고 영광은 길다(계 13:4-10)
사) 최후의 승리(계 21:1-8)

* 위의 일곱 개의 설교는 본 홈페이지 {예배 설교}-{기독교 신앙과 삶2}-{제4장 박해시대 기독교인들의 삶}에 실려 있습니다.

나오는 말

이상으로 분리와 반복과 시청각 설교 해석법의 입장에서 계시록의 구조적인 틀을 재구성해보았으며, 계시록을 먼 미래에 있을 대환난과 같은 큰 재앙에 관한 예언의 말씀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삶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는 목양적인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었다. 

 

사복음서의 내용이 단순히 예수의 생애를 전기적으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권위 있는 말씀들과 행위들을 자료로 삼아서 당대의 고난 당하는 신앙인들에게 시기 적절한 살아있는 메시지를 선포했던 것처럼, 계시록도 마찬가지로 주로 구약의 말씀들을 자료로 삼아서 당대의 고난 당하는 신앙인들에게 시기 적절한 살아있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계시록의 저자는 단순히 환상을 보는 자에서 끝나지 아니하고, 구약의 전승을 재해석한 신학자로 설교가로 부각되고 있다.

성서를 기록한 모든 저자들이 창조주 신앙에 바탕을 둔 역사관, 세계관, 그리고 인간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계시록의 저자도 창조주 신앙에 바탕을 둔 뚜렷한 역사관, 세계관, 그리고 인간(피조물)관을 제시함으로써 고난 당하는 신자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계시록의 저자와 그의 저술은 오늘의 목회자들과 교회에게 주는 교훈이 매우 크다고 확신한다.

각주

1) 박수암, {요한 계시록}(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9, 16쪽; 김철손, {요한 계시록}(대한기독교서회, 1993), 34쪽.
2) G. E. Ladd, {신약신학}(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이창우 옮김(성광문화사, 1988), 886-888쪽.
3) George Eldon Ladd,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5), pp. 10-11.
4) 김철손, {요한 계시록 신학}(대한기독교서회, 1989), 106쪽.
5) Loraine Boettner, The Millennium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86), pp. 150-151. 보에트너는 시대구분론자들이 인류역사를 무죄시대, 양심시대, 인간정부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로 구분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현재는 은혜시대에 속한다.
6) 김철손, {요한 계시록 신학}, 106-108쪽.
7) Charles Ryrie,
Dispensationalism Today(Chicago: Moody Press, 1965), p. 45; Curtis I. Crenshaw and Grover Gunn, Dispensationalism Today, Yesterday, and Tomorrow(Memphis: Footstool Publications, 1985), pp. 130-133; George Eldon Ladd, "Historic Premillennialism,"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 ed., Robert C. Clouse (InterVarsity Press, 1977), pp. 19-29.
8) Ladd, pp. 12-14.
9) Ladd, pp. 11-12.
10) William Hendriksen, More Than Conquerors: An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Revelation(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5), pp. 16-36; Anthony A. Hoekema, "Amillennialism,"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 op, cit., pp. 155-159.
11) 전경연 외 3인, {신약성서개론}(대한기독교서회), 358쪽; 박수암, op. cit., 17쪽.
12) 김철손, 박창환, 안병무, {신약성서개론}(기독교서회, 1990), 280-281쪽.
13) Johnwick Bowman, {최초의 기독교 드라마: 요한 계시록}(The First Christian Drama: The Book of Revelation), 박창환 옮김(컨콜디아사, 1982), 5-186쪽.
14) A. M. Hunter, {신약성서개론}(Introducing the New Testament), 박창환 역(컨콜디아사, 1989), 239쪽. 헌터는 계시록을 "연기가 엄청난 대단원을 향해 움직여 나아가는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의 드라마"로 보고 있다.
15) Bowman, op. cit., 183쪽.
16) Bowman, 23쪽.
17) Donald Guthrie, {요한 계시록의 신학}(The Relevance of John's Apocalypse). 정충하 역(새순출판사, 1989), 29쪽; Donald Guthrie, New Testament Introduction
(Inter-Varsity Press, 1970), pp. 971-972.
18) Bowman,
op, cit., 5-186쪽.
19) Bowman, 18-19쪽.
20) 전경연 외 3인, op. cit., 358쪽.
21) 김철손, {요한계시록 신학}, op. cit
., 52-53, 94-104쪽.
22) Ladd, op. cit., pp. 8-10.
23) Hendriksen,
op. cit., pp. 7-9; Bowman, 17쪽; 박수암, op. cit., 14-17쪽.
24) 김철손, {요한 계시록 신학}
op. cit., 55쪽; 박수암, 8쪽; 제임즈 칼라스, {요한 계시록} 박창환 옮김(컨콜디아사, 1982), 148-153쪽. 칼라스는 요한 계시록의 체제와 형식은 다니엘서에서 나왔고, 그 내용이나 희망의 메시지는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에서 나왔다고 주장하였다(149쪽).
25) 장일선, {생명나무와 가시덤불}(전망사, 1991), 38-47쪽.
26) 조동호,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혜출판사, 1994), 53-60쪽.
27) 김철손, {요한 계시록 신학}
op. cit., 44-45쪽; C. F. Keil, Bibl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Daniel. Vol. Ⅸ in the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in Ten Volumes by C. F. Keil and F. Delitzsc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5), p. 323.
28) 장일선, {브니엘의 아침햇살}(전망사, 1990), 109-116쪽.
29) 마카베오상 1:41-64.
30) R. H. Pfeiffer, {신약시대 역사와 외경개론}(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with an Introduction to the Apocrypha
), 류형기 역(한국기독교문화원, 1977), 14-19쪽.
31) 마카베오상 2장;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 Ⅵ.
32) 마카베오상 4장; R. H. Pfeiffer, op. cit
., 14-19쪽.
33) {브니엘의 아침햇살}, 66-67쪽.
34) Donald Guthrie, {요한 계시록의 신학} 17-18, 26, 115쪽; 비슷한 반복이론에 대해서 박수암,
op. cit., 99-103쪽 참조.
35) Hunter, op. cit., 240쪽.  
36) {기독교신앙의 본질} 53-60쪽.
37) 장일선, {하나님의 파토스}(나눔사, 1991), 43-53쪽.
38) {브니엘의 아침 햇살} 77-80쪽.
39) {브니엘의 아침 햇살} 109-116쪽.
40) William Hendriksen, op. cit
., p. 83.
41) G. R. Beasley-Murray,
New Century Bible: The Book of Revelation (Greenwood, S.C.: The Attic Press, Inc., 1974), p. 207.

참고서적

[국문서적]
김철손, 박창환, 안병무 공저. {신약 성서 개론} 기독교서회, 1990.
김철손. {요한 계시록 신학} 대한기독교서회, 1989.
김철손. {요한 계시록: 성서 주석} 대한기독교서회, 1993.
대한성서공회 발행. {공동번역 성서} 1977.
박수암. {요한 계시록: 신약 주석} 대한기독교출판사, 1989.
장일선. {브니엘의 아침햇살} 전망사, 1990.
장일선. {생명나무와 가시덤불} 전망사, 1991.
장일선. {하나님의 파토스} 나눔사, 1991.
전경연 외 3인. {신약성서개론} 대한기독교서회.
조동호. {기독교 신앙의 본질} 은혜출판사, 1994.

[번역서적]
Bowman, Johnwick. {최초의 기독교 드라마: 요한 계시록}(The First Christian Drama). 박창환 옮김. 컨콜디아사, 1982.
Guthrie, Donald. {요한 계시록의 신학}(The Relevance of John's Apocalypse). 정충하 역. 새순출판사, 1989.
Hunter, A. M. {신약성서개론}(Introducing the New Testament). 박창환 역. 컨콜디아사, 1989.
Kallas, James. {요한 계시록}(Revelation
). 박창환 옮김.  컨콜디아사, 1982.
Ladd, G. E. {신약 신학}(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이창우 옮김. 성광문화사, 1988.
Pfeiffer, R. H. {신약시대 역사와 외경개론}(
History of New Testament Times). 류형기 역. 한국기독교문화원, 1977.

[영문서적]
Beasley-Murray, G. R. New Century Bible: The Book of Revelation. Greenwood, S.C.: The Attic Press, Inc., 1974.
Boettner, Loraine. The Millennium
.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86.
Clouse, Robert C., ed.
The Meaning of the Millennium: Four Views. InterVarsity Press, 1977.
Crenshaw, Curtis I. and Gunn, Grover. Dispensationalism Today, Yesterday, and Tomorrow. Memphis: Footstool Publications, 1985.
Guthrie, Donald. New Testament Introduction
. Inter-Varsity Press, 1970.
Hendriksen, William.
More Than Conquerors: An Interpretation of the Book of Revelation.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5.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
Ladd, George Eldon.
A Commentary on the Revelation of John.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5.
Keil, C. F. Biblical Commentary on the Book of Daniel. Vol. Ⅸ in the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in Ten Volumes
by C. F. Keil and F. Delitzsch. Grand Rapids: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5.
Ryrie, Charles.
Dispensationalism Today. Chicago: Moody Press, 1965. 

 

요한 계시록의 새로운 이해와 말씀/조동호

출처 : 은혜동산 JESUS - KOREA
글쓴이 : 죤.웨슬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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