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절 두번째}
*천국에 쌓아둔 보물/마 6:20-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복음 6:19-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도 은혜롭게 보내셨는지요? 아니면 혼란스러운 나라와 국민들의 분노에 함께 동참하여 마음이 평안치 못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죽어도 권력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위정자와 그를 따르는 이기주의 자들과, 그것을 기회로 여겨서 자신들이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반대당의 되지 못한 사람들, 국민들의 촛불이 자신들을 위하여 드는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어리석은 생각에 교만하여진 사람들 때문에 더 실망하지는 않으셨지요? 어찌 되었던지 하루하루 날자는 가고 지내다보니 이제 성탄절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주님 오시는 날이 되기 전에 이 나라의 잡음이 평온을 되찾아 기쁨이 넘치고 감사가 넘쳐서 우리 모두 경견한 마음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이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밴 다이크(Van Dike)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로마의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갔는데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중 매우 아름다운 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은 아주 근사하고 멋있는 집이었습니다.
부자는 부러움의 말투로
"도대체, 이 아름다운 집의 주인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 집은 당신이 종으로 부렸던 사람의 집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부자는 당황하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멋진 집을 소유할 수 있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불평했습니다.
그의 불평에 천사는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국에는 실수가 없고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을 뿐입니다."
천사의 단호한 대답에 더 이상 우길 수 없었던 부자는 천국의 다른 장소로 한참을 가게 되었습니다.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너무나 낡고 허술한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부자는 천국에도 이런 초라한 집이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이 되어 "도대체 저 집은 누구의 집이요?" 라고 천사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놀랍게도
"당신 집이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더럽고 누추한 집이 내 집일 수 있습니까?"
"천국에는 절대 오류가 없습니다. 실수도 없습니다. 착각도 전혀 없습니다. 이집은 당신이 세상을 살면서 보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세 단락으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땅에 쌓은 보물.
19절에"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 보물이라고 하면 다이아몬드와 같은 값진 보석이나, 또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골동품을 머리 속에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보물은 그러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가 보물로 간주되었던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요새는 옷이 흔하니까 아무런 보물이 되지 않지만, 옛날에는 옷이 매우 귀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옷이 보물처럼 진귀하게 간주되었던 경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창45:22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 형들이 양식을 사기 위해서 요셉에게 왔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고 난 뒤 요셉은 자기의 신분을 형들에게 밝혔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요셉은 형들을 가나안 땅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아버지 야곱을 모시고 오도록 수레를 딸려 보냈습니다. 길을 가면서 먹을 수 있는 양식도 주었습니다. 아울러 요셉은 형들 각자에게 옷을 한 벌씩 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의 친동생 베냐민에게는 옷을 다섯 벌이나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7:21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입니다. 그때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서 전리품을 감추었습니다. 그가 감춘 전리품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었습니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거기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귀한 보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사기 14:12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삼손이 블레셋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청년들 30명이 잔칫집에 모였습니다. 그때 삼손은 블레셋 청년 30명에게 수수께끼를 내면서 만일 그들이 잔치하는 7일 동안 수수께끼를 알아맞히면 그들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수수께끼를 알아맞히지 못할 경우에는 그들이 삼손에게 베옷 30벌과 겉옷 30벌을 주도록 약속했습니다. 그만큼 그 당시에는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왕하5:22에 보면 또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람의 장군 나아만에게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깨끗하게 고쳐주었습니다. 나아만은 너무나도 감사해서 선물을 주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거절하면서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엘리사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마음 속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는 나아만을 몰래 따라가서 엘리사 대신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때 받은 선물 가운데 하나가 역시 옷 두 벌이었습니다. 그만큼 옷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양털로 만든 좋은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실까지 달아서, 자기의 부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날이 추워도 몸둘곳이 없어서 노숙하는 사람들이나 난방을 하지 못하여 추위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 준다면 그것또한 하늘에 쌓아두는 여러분들의 보물이 되실 것입니다.
둘째, 그 당시에는 곡식이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얼마나 먹고 살기가 힘든 때였겠습니까? 그래서 창고에 가득 쌓아놓은 곡물은 부의 상징으로 생각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있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밭에 곡식의 소출이 풍성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자는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곡식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에 쌓아두리라." 먹고 살기가 어려운 때 창고에 곡식이 가득 쌓여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부의 상징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충분한 곡식을 쌓아둔 처지라면 돈이 없어서 끼니를 잘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나누어 줘 보십시오. 마음도 평안하고 그것또한 하늘에 쌀하두는 보물이 되실 것입니다.
셋째, 그 당시에는 금과 같은 보화가 보물처럼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 사람들이 보화를 주로 어디에 감추었습니까? 마13:44에 보면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그 당시 사람들은 낮에 나가서 밭의 적당한 곳을 물색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밤중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 가서 밭을 깊이 파고 그 속에 보화를 감추어두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 당시에는 이 세 가지, 곧 옷과 곡식과 보화가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땅에 쌓은 보물의 문제점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지적해 주셨습니다. 옷은 입고 있을 때는 괜찮지만, 입고 있지 않을 때는 거기에 좀이 쏠아서 못쓰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으면 무엇이 생기기 마련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동록이라고 말을 했습니다만 헬라어 본뜻은 "eating," 곧 "먹는 것"을 뜻합니다.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쥐나 해충과 같은 벌레가 곡식을 갉아먹게 됩니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도적이 몰래 숨어서 지켜보다가, 주인이 없는 사이를 틈타 땅을 파고 보화를 도적질해 갈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땅에 쌓은 보물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가 경우에 따라서 좀 더 오래 보관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게 되면 결국은 우리의 손을 다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보물을 안전하지 못한 땅에 쌓아놓는 것은 결코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2. 하늘에 쌓은 보물.
20절에"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이 땅과는 달리 하늘은 안전합니다. 그곳은 좀이나 동록도 또 도적도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가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사용하면 그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을 우리의 욕심에 따라 이기적인 목적으로 쌓아둔다든지, 또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물질뿐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간, 재능, 건강, 노력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예컨대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구제와 기도와 금식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고 있습니다. 구제할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자기를 과시한다면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제할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면 그것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들으라고 다른 사람에게 보이려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곧 보물을 땅에 쌓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금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슬픈 기색을 내면서 또 얼굴을 흉하게 하면서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금식을 하는 것은, 아무리 귀한 금식을 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보물을 땅에 쌓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바르면서 또 얼굴을 씻으면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보이기 위해서 금식하는 것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누구를 위한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위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입니다. 막10:29∼30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요즘 우리가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이율이 얼마나 됩니까?
몇 %나 됩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원금조차도 보장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 이율이 어느 정도 된다 하더라도 물가상승률에 제대로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둘 경우는 이율은 백 배라고 했습니다. 10,000%입니다. 그러니까 그것보다도 더 확실하고 수지 맞는 투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늘나라 은행은 안전합니다. 결코 부도가 나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 만기가 되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금세에는 백 배나 받고, 내세에는 영생까지 겸해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확실한 투자입니까?
3. 우리가 보물을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이유.
21절에"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바라보면서 삽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보물이 있는 곳으로 쏠리기 마련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는 구역예배를 드릴 때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도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어떤 여집사님이 사회를 볼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위 말하는 복부인이었습니다. 그저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계속해서 정신 없이 쫓아다니다가 그날 구역예배에 참석했습니다. 그리고는 찬송가를 펴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같이 찬송가 101동을 찾으십시다. 그리고 101동을 함께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아파트 동 수만 가득 차 있으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말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남자 집사님 두 분이 함께 차를 타고서 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가는 도중에 소낙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차가 그만 미끄러져서 실개천에 기우뚱하게 기울어졌습니다. 밤중이라 도와줄 사람도 없어서 그들은 그냥 차를 두고 걸어서 기도원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밤새도록 엎드려서 기도하는데, 기도의 내용이 서로 다르더라는 것입니다. 차 주인인 한 사람은 앉자마자 계속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 차가 물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꼭 좀 지켜주시옵소서."
반면에 같이 간 다른 집사님은 탄광을 운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탄광에 물이 새어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
이와 같이 물질이 있는 곳에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마음이 쏠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땅에 보물을 쌓아두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가게 되겠습니까? 땅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게 될 경우에는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3:2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여기서 보물을 하늘에 쌓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도 하나님 앞에 기억되고 칭찬받을 영원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사용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심지어 정당하게 누리는 것도 결국은 사라지는 겁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용하는 것, 즉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이 영원히 남게 됩니다. 이것은 천국은행에 예금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예화입니다만,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리가 한번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설교를 했답니다. “여러분! 돈 많이 버십시오!” 그랬더니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 중 한 사람이 “그 목사 설교 잘 하네” 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웨슬리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근검절약해서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 목사 정말 설교 잘 하네” 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런데 이어서 이렇게 설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많이 드리십시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인상을 쓰면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그 목사 잘 하다가 막판에 죽을 쑤네.”
여러분, 버는 것도 축복이고 누리는 것도 축복일 수 있지만, 가장 큰 축복은 드리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드리라니까 꼭 교회에 드리라는 말이 아닙니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며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있는데 물질이 없습니까? 그건 괜찮습니다. 앞으로 주실 수도 있고, 없다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다 살아갈 만큼 주십니다. 하지만 물질은 있는데 신앙이 없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당장은 풍족할지 모르지만 멸망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도 없고 신앙도 없으면 너무 억울합니다. 그런데 신앙도 있고 물질도 있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할 만한 성숙함도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은 겁니까?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죽어서 천국가자” 물론 그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앞으로 가게 될 천국을 미리 여기서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러한 천국을 맛보기 시작하면 할수록, 저 천국이 더욱 그립게 됩니다. ‘그렇구나, 내가 이 땅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고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 진정 내가 살아야 될 삶의 목표이구나.’ 이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삽니까? 무엇을 목표로 해서 삽니까?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믿는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천국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처럼 근심하고 걱정하고 세상에 메여서, 그저 세상 사람들이 따라가는 대로 그 넓은 길로 같이 가는 것이 제일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진정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천국가는 길을 가지고 그 천국을 마음에 두고 이 세상에서 어떠한 파도가 쳐도, 어떠한 태풍이 불어도 요동치 않는 믿음,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진정 구원이라는 것은, “예수 믿고 천국간다” 그 천국이 뭡니까?
그것은 장차 가야하는 천국의 진정한 가치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의 진정한 가치, 그리고 그 천국의 진정한 가치와 진정한 능력을 이 세상에서도 계속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 믿는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도 이미 여러분은 천국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천국의 삶이 여러분에게 시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고 살라고 주님께서 거듭거듭 이야기하십니다.
어떻게 누립니까? “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그 길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늘 우리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당연히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 예컨대 이방인들이나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보물을 땅에 쌓아둘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언제나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의 하늘창고에는 보물이 얼마나 쌓여있겠습니까?
행여 우리의 하늘 곳간은 텅 비워둔 채, 그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우리의 보물을 땅에 쌓는 일에만 급급해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은 겨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신 날을 기념하는 계절이지요. 나눔으로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둡시다.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씩만 나누어주면 그것을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하늘에 여러분들이 나누어 주는 것만큼 하늘나라의 통장에 올려놓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제는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기를 힘쓰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내세에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금세에도 100배의 축복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저와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늘로 보내서 쌓아둔 재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물질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오늘의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성탄절을 맞이하고 있는 동안 아,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6년 12월 4일의 주일에
박 종 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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