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대강절 세번째}*자기를 비우고 복종시켜 세상에 평화를 주신 예수/빌 2:5-11*

하나님아들 2017. 4. 1. 15:18

{대강절 세번째}

 

*자기를 비우고 복종시켜 세상에 평화를 주신 예수/빌 2:5-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나라의 혼란으로 인하여 평안하시지 못하셨지요? 그래도 우리는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조국이니까요. 비록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가 어리석어 한 여인에게 통치를 맡기다시피하여 이처럼 혼란스러운 나라를 만들었지만, 우리 국민들은 분명히 이겨나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우리 믿음인들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능력이면 할 수 있으니까요. 하루 빨리 우리나라가 안정이 되고 평화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이제 대통령도 그 직위에서 직무정지를 받았으니 다시는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2주 후면 우리의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이 땅에 오셨으며, 오셔서 어떻게 하셨는가를 오늘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고 성탄절을 대비하는 주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성경 가운데서 예수님의 생애를 가장 잘 묘사한 곳이 빌립보서 2장 5-11절 말씀일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은혜를 받고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우리에게 설명해 준 기독론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됨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사람됨을 외모로 보는 것도 아니요, 어떤 지위나 신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신 것은 하나님 마음 때문이요, 예수님이 예수님 되신 것은 예수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마음을 가지려고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외모를 단장한다든지, 우리 생활을 부유하게 만든 다든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이 그리스도와 같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춰 종의 마음으로 사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를 비웠습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기를 비운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 비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 마음을 채웠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죽여서 인류를 살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일관되게 그의 삶을 이끌어 간 영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과, 섬김과, 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애가 겸손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의 극치입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 몸을 희생의 제물로 내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좇아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께 대한 궁극적인 순종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에 대하여 탄생하신 생애, 살으신 생애, 죽으심의 생애, 이 세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 하늘을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고 말구유에 나신 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이 세상에 살아간 모든 생애는 섬김으로 사셨습니다. 어느 것 하나 섬김이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생애 속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영성은 자기 부인이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는 것, 자기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최대의 과제는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복종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인데 예수님은 복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완성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른 사람과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왕, 정치가, 장군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려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남과 싸워서 이긴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입니다.

이 싸움은 참으로 어려운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을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와 싸워 이긴 위대한 승리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로마의 권력과 싸워 이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라도와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싸워서 자기를 복종시켜야 할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남을 이길 수 있을까?' 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남을 이기면 만족해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승리했어도 완전한 승리가 못되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기도 다 빼앗기고 무너지는 비통한 날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와 싸워 이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며, 이것은 최후의 승리며, 하늘이 준 승리며, 이것은 자기만 이긴 것이 아니라 결국 세상을 다 이긴 위대한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자기와 싸워 이겨서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의 승리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겸손과,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간 것처럼 우리도 이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1. 복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종하는 목적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입니다. 무조건 복종하는 것도 아니요, 아무 이유 없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복종하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했다.' 여기 '복종'은 헬라어로 'uJphvkoo"'라는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복종하기 전에 반드시 먼저 말씀이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들어야 복종이 됩니다. 말씀이 없이 복종하는 것은 우매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복종의 완성을 의미하는데 시간적으로 완전히 죽기까지 복종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질적으로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간과 어떤 질적인 자기 전 존재의 완전한 의미를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했다고 말합니다.
복종은 기분 좋으면 하고 기분 나쁘면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이 복종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마에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떨어지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기도가 끝나고 산밑으로 내려올 때 예수님을 잡으려는 무리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가 그들에게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하고 예수님에게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출 때 예수님께서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저희가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제자 중 하나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고난의 길로 간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육체에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 이것은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말합니다. 능히 살려줄 수 있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간구한 것이 아니라 순종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히 5:8).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받으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순종으로 구원을 완성하여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자기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리스도를 배우는 신앙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족해서 배우는 것도 아니고 몰라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해서 순종함을 배우고 그 순종을 온전하게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은 곧 구원의 완성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있다' 그래서 믿음 자체가 순종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는 자는 모두 다 의인이 되었습니다.
복종은 사람에게 향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향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왕으로 버림받는 것은 순종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삼상 15:2-3)
그러나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 나가서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볼품 없는 것은 진멸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를 통해서 또 사울에게 말씀을 전달합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삼상 15:11)
여기에 대하여 사울왕은 이렇게 변명했습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
그때 사무엘 선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으로 자기 자신도 버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불순종의 비극이었습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요, 이스라엘은 야곱의 후손입니다. 에서는 단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육신의 정욕의 사람이요, 그 후손이 아말렉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려고 하는 야곱의 후손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싸움은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과 육적인 사람들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에게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아말렉을 치라"고 말씀하신 것은 눈으로 보이는 아말렉의 적도 있지만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하는 인간의 정욕을 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은 거기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버림을 당합니다.

 

2. 복종은 인격을 성숙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복종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태어났습니다. 그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사람의 몸을 입은 것이 순종이었습니다. 그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가난하게 되심도 순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순종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인격은 복종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순종은 신앙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23)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할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하면 남편들이 좋아합니다. '오늘 목사님 설교 참 잘하신다. 이런 때는 우리 아내가 잘 들어야 할텐데 졸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성경은 이 말씀을 하기 전에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먼저 하고 있습니다. 아내의 말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남편이 복종해야 합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
순종의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할 때 하나님의 대리자로 순종하면 효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할 때 주님에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순종할 때 그 아내는 한 남편의 아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부가 됩니다.
혹시 아내들 가운데 더러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내가 보통 잘난 여자가 아닌데 어쩌다가 저런 못난 남편을 만나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사나 그렇다고 이혼할 수도 없고 한번 버린 몸 살기는 살아야지'
버린 몸으로 일생을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남편을 존경하고,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므로 자기 인격을 위대하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순종은 인격의 성숙을 말하는 것입니다. 못난 사람은 순종을 못합니다. 잘난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도 잘난 자식은 부모에게 대들지 않습니다. 순종합니다. "아버지 말씀하시죠." 맞고 안 맞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서울 명문대를 나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다투느라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결국 위장병이 생겨 병원에 왔다 갔다 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옛날 학교 동창을 만났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친구라 그냥 헤어질 수가 없던 차에 친구가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갔습니다. 그 친구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친구와 시어머니가 대화하는 것을 지켜보는데 사이가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 반면에 한가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전혀 이치에 안 맞는데 그 친구는 "예, 예" 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시어머니를 그렇게 잘 받들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시어머니의 말씀이 이치에 맞는지 안 맞는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뿐이다."
두 친구의 차이는 한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인생관의 차이였습니다. 한 사람은 하나님을 상대하지만 한 사람은 시어머니의 상식 없는 것을 따지고 있습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혹시 이 가운데 남편이 못났다고 무시하는 아내 있습니까 남편을 잘 받드십시오. 남편을 잘 받들면 하늘의 천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주께 하듯 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천사로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을 받드는 존재가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3. 복종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복종시키는 것은 성령의 권능입니다. 순종하므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복종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아래에서 받들어준다. 잘 들어준다'는 뜻입니다. 순종은 상대의 인격을 높여줍니다.
어떤 아버지가 공사판에서 고생하면서 번 돈으로 아들을 공부시켜서 대학을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밥상에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상한 서클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한마디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대뜸 하는 말이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아버지는 너무 상관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피가 거꾸로 도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 고생한 것이 이거란 말이냐' 생각하니 살아온 것이 한스럽고 고생한 것이 억울했습니다. 포장마차에 가서 독한 소주를 얼마나 마셨는지 집에 와서 엉엉 울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위로해도 아버지는 울기만 했습니다.

"아버지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고생하면서 가르친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야 순종하는 아들 아니겠습니까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고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게 됩니다.
자식들을 잘되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효자가 됩니다. 공부시키는 것 가지고 너무 열내지 마세요. 은혜 받으면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부모님께 효도하려고 공부합니다.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복종시켜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우리는 자기를 복종시켜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인격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됩니다. 자신이 행복해지고 또 높임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경스럽게 만들어주므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순종을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정에서 순종함으로 복음이 전파되고, 직장에서 복음이 전파되고, 내 삶 전체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한 생명을 전도하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여 하늘의 상을 주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대강절은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기다림 가운데 주님께서 오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날, 하나님의 날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견뎌내고 참아낼 수 있도록, 구원의 그 순간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대강절을 은혜 가운데 보내시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 날은 추워지고 어느해보다도 이웃돕기 사랑의 온도가 낮은 해랍니다. 우선 우리 주위의 불우한 이웃들을 먼저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시며 자신을 죽이시면서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헛되지 않게 우리가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주후:2016년 12월 11일의 주일에

박종태 목사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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