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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어떻게 성경난제를 취급할 것인가?

하나님아들 2017. 1. 18. 10:58
어떻게 성경난제를 취급할 것인가?

 

 

 



글리슨 아처는 <성경난제 백과사전>(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에서 아래 여덟 가지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1.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적당한 설명이 반드시 있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믿으라.
2. 문제로 보이는 것들이 발생할 때마다 어떤 한 가지 선재하는 것을 버리고 정반대의 것을 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3. 어떤 구절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구절이 자체의 배경 속에서 말하려고 하는 사상을 깨달을 때까지 문제가 발생한 그 구절의 문맥과 구조를 주의깊게 연구하라.
4. 면밀한 주석 - 고대 저자가 그 말들 속에서 의미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정성스러운 노력 - 에 근거하지 않는 어떠한 성경 해석도 정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5. 병행구의 경우 정당화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들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6. 입수할 수 있는 최선의 주석들 특히 성경의 완전성을 믿는 복음주의 학자들이 쓴 주석을 참고하라.
7. 많은 난제들은 본문 전사 과정에서 복사자들의 사소한 실수로 인하여 생긴다.
8.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고고학의 발견이나 히브리 족속 외 다른 족속의 고대 문서의 증거와 일치하지 않는 듯이 보이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언제나 성경 자체가 가장 수준 높은 고고학적 문서라는 사실을 기억하라1.

필자도 위 아처의 지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여기에 부언한다면 복음적이 아닌 학자들의 주석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많은 복음주의적인 주석들이 성경의 난제를 난제로 취급하고 있지 않는 데 비해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주석들은 성경의 난제를 난제로 거의 다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복음주의적인 주석들의 결론은 어느 경우에는 옳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는 정확한 해답을 찾아 성경이 무오를 변호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주석이라도 성경의 난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책은 없다. 따라서 성경 난제의 해석을 위해서 그 난제들을 다룬 책들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경난제를 다룬 책들

성경의 난제는 그 저작 연대와 갭이 큰 20세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교부 중에 성경의 난제 해석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인물들이 있엇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은 유세비우스(Eusebius), 크리소스톰(Chrysostom), 어거스틴(Augustine) 그리고 테오도레(Theodoret) 등이었다. 그러나 난제 해석에 대한 관심은 제5세기 말에서부터 16세기까지는 급격하게 저하되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과 성경 연구의 장이 열리게 되면서 난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성경 난제를 다룬 책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John W. Haley, An Examination of the Alleged discrepancies of the Bible(Anodover, 1874). 이 책은 종교개혁에서 후기 종교개혁 어간에 성경 난제를 취급한 42개의 작품들을 인용하고 있다.
* Andreus Althamer의 라틴 어 작품이 1527년에 나와서 16판을 냈는데 160개의 난제를 취급하였다.
* Joannes Thaddacus와 Thomas Min은 1662년 런던에서 The Reconciler of the Bible Inlarged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신・구약에서 3,000개 이상의 모순 된 내용들을 완전하고 자세하게 조화시켰다.
* Oliver St. John Cooper, Four Hundred Texts of Holy Seripture with Corresponding Passages Explained. 이 책은 런던에서 1791년 출판되었으나 57개의 모순 된 구절만을 포함시켰다.
* Samuel davidson, Sacred Hermeneutics, Developed and Applied는 1843년 에딘버러에서 출판된 것으로 115개의 난제를 취급하였다2.
* Louis T. Talbot, Bible Questions Explained(Grand Rapids: Eerdmans). 이 책은 1938년에 출판되었는데 1978년에 재판되었다. 주로 성경의 교리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에 해답을 주고 있다.
* 보다 근대에 나온 책으로는 1954년에 출판된 George W. Dehoff, Alleged Bible Contradictions(Grand Rapids: Baker)이 있는데 이 책은 조직신학, 윤리학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주제로 한 대조적인 본문들을 취급하고 있다.
* Martin Ralph De haan, 508 Answers to Bible Questions(Grand Rapids: Zondervan, 1952). 이 책은 교리적, 실제적 그리고 해석적 질문들을 포함하고 있다.
* J. Carter Swaims, Answers to Your Questions about the Bible(New York: Vanguerd, 1965). 이 책은 해석보다는 사실에 대한 질문을 취급하고 있는 구절들을 다뤘다.
* F.F. Bruce, Answers to Questions(Grand Rapids: Zondervans, 1972). 이 책은 성경 구절과 신앙과 연관된 다른 문제를 취급하는데 책 전체는 264쪽이지만 구약에서는 단지 38쪽만을 할애하고 있다.
* Robert H. Mounce, Answers to Questions about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79). 이 책은 개략적인 저서이면서도 아주 많은 난제를 다루고 있다.
0 Paul R. Van Gorder, Since You Asked(Grand Rapids: Radio Bible Class, 1980). 이 책은 주제별로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성경과 주제별로 가나다순으로 정리하여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성경과 주제별 색인이 되어 있다.
* Gleson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Grands Rapids: Zondervan, 1982). 이 책은 정경에 나타난 성경책의 순서에 따라 난제를 취급하였다. 그 내용으로는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는데 성경의 저자, 어떤 책들의 비판적 반대, 모순 구절들의 문제가 되는 해것들을 취급하였다. 이 책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 F.F. Bruce, The Hard Sayings of Jesus(Downers Grove: IVP, 1983). 이 책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서 난제 70개를 취급하였다.
* Robert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Gospel(Grand Rapids: Baker, 1987). 이 책은 공관복음, 요한복음, 예수님의 어려운 교훈, 예수님의 어려운 행동, 예수님의 예언의 난제들을 다루고 있다.
* David C. Downing, What You Know Might Not Be So(Grand Rapids: Baker, 1987). 이 책은 성경적 구절들과 성경 밖의 문서들, 신화 그리고 다른 종교들 사이에 존재하는 혼란에 주로 중점을 두었다.
*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구약에서 73개의 난제를 취급하였다. 이 책은 생명의 말씀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 Robert H. Stein, Difficult Passages in the Epistles(Grand Rapids: Baker, 1988). 이 책은 단어와 문법, 문맥 및 교리를 다루고 있다.
* Manfred T. Brauck, Hard Sayings of Paul(Downers Grove: IVP, 1989). 바울 서신에서 난제 48개를 골라 해답하였다.
* Today's Hand Book for Solving Bible Difficulties(Mineapolis: Bethany, David E. O' Brien). 이 책은 역사, 언어, 문화 그리고 실제 적용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 Peter H. Davids, More Hard Sayings of the New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91). 이 책은 72개의 난제를 다룬다3.
* Norman Geisler,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이 책은 성경책들의 순서에 따라 난제를 취급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직접 문제를 다루어 간략하고 분명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또 출판된 어느 성경난제에서보다도 많은 난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Emily Filipi. 3,285 Bible Questions & Answers(New York: Wings, 1994). 이 책은 성경 퀴즈식의 문제와 해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난제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1. Gleason L. Archer, Encyclopedia of Bible Difficulties(Grand Rapids: Zondervan, 1982), pp.15-17
2. Water C.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88), pp.13-15
3. Walter C. Kaiser, Jr., Hard Sayings of the Old Testament(Downers Grove: IVP, 1992), pp.13-15
위의 성경난제를 해석한 책들 중에 대부분은 필자의 신약 난제와 구약 난제 강해에 크게 도움을 준 책들이다.




* 성경의 권위



1.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경
신약에서 헬라 어 액수시아(exousia)는 옳다(NEB)는 말이나 능력으로 변역되며(AV. 마 9:6; 요 5:27; 17:2; 19:10) 때로는 권위로 번역된다(예. 마 7:29; 8:9; 21:23; 요 5:27; 행 9:14). 권위란 주어지거나 상속된다. 예수님은 그가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권위가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자에게서 왔다고 하셨다(요 14:10). 다시 말해서 그의 권위의 근거는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되심의 관계에 있다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성경의 권위는 하나님 자신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모든 권위가 최종적으로 자리하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보다 더 크신 이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이 하나님의 권위는 하나님이 누구이신가의 권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는 그의 계시만으로 알려질 수 있기 때문에 자기 계시만으로 하나님은 알려지신다. 그러므로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열쇠이다. 따라서 계시와 권위는 같은 실재의 양면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계시 안에서 하나님은 그의 권위를 언급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최종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1:1-2).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한다고 하였고(고후 12:19) 사도들은 자신들의 글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였다(예. 고후 10:11; 살전 2:13; 5:27; 살후 2:15; 3:14).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데 있다.1  만일 성경이 인간 저자의 말이라면 그 권위는 결코 신적인 것이 될 수 없으며 최종적인 것이나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성경이 인간의 말이라면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규범이 될 수 없다.

2. 영감된 계시로서 하나님의 말씀
영감이란 말은 데오프뉴스토스(Theopreustos)의 번역으로 그 뜻은 하나님이 호흡하셨다는 뜻인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감동으로 번역했고 영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숨을 안으로 들이쉰다는 뜻이기보다는 숨을 밖으로 내쉰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능동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워필드(B. B. Warfield)는 수동적인 의미로 보았다. 그리고 그 사상은 성경이 하나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의미가 다른 것은 아니다. 디모데후서 3:16 바울의 말씀도 성경이 영감되었다기보다(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그 성경이 신적인 산물임을 의미하였다. 다시 말해서 영감이란 말은 능동적으로 성경을 산출해 낸 하나님이 숨을 내쉰시는 작용을 가리키며 수동적으로는 그렇게 해서 산출된 성경의 영감 됨을 가리켰다. 역시 이 말은 일반적으로 선지자, 시편 저자들, 지혜자들 그리고 사도들같은 계시의 인간 매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말할 수 있도록 능력을 갖추어 준 영향력으로 쓰였다.2
성경적 영감의 사상은 성경을 썼던 사람들 안에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기록된 산물에서 하나님의 종결 사역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호흡의 산물이 성경이므로 모든 성경은 선지자의 설교나 기록된 말씀이 모두 다 신적 기원을 가진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 저자의 사상과 계획 그리고 기술과 같은 말일 뿐 아니라 그들의 입술을 통한 말이나 팬으로 쓴 글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중의 저자를 가진다. 인간은 제이의 저자일 뿐이며 본래의 저자는 그의 시발, 장려, 조명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일을 한 각 인간 기록자들을 그의 감독 아래 두신 성령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렇게 결론지울 수 있다.
성경의 말씀들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들이다. 그것은 구약의 구절들이 모세의 율법이나 구두나 기록된 선지자들의 말씀을 하나님 자신의 말씀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참고, 왕상 22:8-16; 느 8장; 시 119편; 렘 25:1-13, 36 등). 또 신약의 저자들은 전 구약을 성령의 감동과 가르치심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벧후 1:2; 참고, 벧전 1:10-12 ) 하나님의 말씀이나(참고, 롬 3:2) 예언(롬 16:26; 참고, 1:2; 3:21)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은 구약의 본문들을 단지 모세, 다윗 혹은 이사야와 같은 인간이 말한 것으로만 아니라(막 7:6, 10; 12:36; 롬 10:5, 20; 11:9)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행 4:25; 28:25)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고전 6:16; 히 8:5, 8) 혹은 성령이 말씀하신 것으로 인용하였다(히 3:7; 10:15). 예수님은 구약을 종교적 행동을 규정하는 고정된 원리들의 목록으로서가 아니라 영감된 말씀으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활동의 권위있는 기록으로 보셨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이 세워진 필연적인 근거이다.3
성경의 산출에서 인간의 역할은 단지 그가 받은 것을 전달한 것 뿐이다. 물론 인간 저자들이 역사적 조사, 신학적 묵상, 언어의 독자적 표현법 등에서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성경에 인간 저자가 기여한 것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창조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성경이 하나님의 산물이라는 영감 사상을 기계적 구술이나 자동적 기록 혹은 인간 저자의 정신적 활동의 증거를 포함하는 어떤 과정도 아니다. 역시 영감은 하나님이 기록자들의 개성, 문체, 조망 그리고 문화적 조사를 말살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그의 통제가 불완전했다거나 그들이 그것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진리를 전달하는 데 피할 수 없이 왜곡되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성경이 영감됨은 그 본문의 전달과정에서 침입하는 부패에 속하는 성질이 아니라 영감된 저자들에 의해 산출된 원문이다.
성경적 저작의 영감은 성경적 작품이 실제로 위대한 문학 작품일지라도 위대한 문학과 영감이 동등한 것이 아니다.4
이렇게 성경의 영감이 다른 책들의 영감과 다른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이기 때문이며 무오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성경의 권위는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교회나 전통의 권위와도 다르다. 로마 교회는 교회 자체가 신적 제도이며(마 16:18, 20) 교회는 정경이 정해지기 이전에 있었고 그 정경을 결정했으므로 성경 이상의 권위까지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가 그 책들이 영감되었거나 권위가 있다고 결정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에 의해 사도들의 임명으로 결정되어진 것이었다.5 교회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정경을 받아들인 것이다. 말씀이 교회 위에 선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말씀 위에 세워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법도 계명도 만들지 않았다. 그러므로 교회적인 규례들로 불리는 모든 인간의 전통들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명령된 것인 한에서만 우리를 구속한다(The Theses of Berne, 1528). 그뿐 아니라 교회는 어느 시대나 구원받은 죄인들의 모임이었으므로 언제나 옳고 참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교회의 권위는 성경의 권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물론 모든 학자들이 성경을 영감 된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의 산물이라면 그 성경은 무오해야 한다. 하나님은 진실하시며 거짓이 없으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오류를 주장함으로 성경의 권위를 상대화시키고 실추시키는 학자들의 입장은 적어도 아래 세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
(1) 성경 비무오론자들의 입장은 성경 무오론자의 입장보다 성경의 영감에 대한 성경의 언급과 조화가 더 어렵다.
(2) 무오를 배척하는 것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그의 지상 사역 기간에 그 성경을 사용하셨는지의 역동성에 외관상 맞지 않는 것 같다.
(3) 비무오자들의 입장은 성경에 대한 초대 교회의 견해와 맞지 않는다.6 따라서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라면 그 말씀의 무오를 인정해야 하며 성경의 무오를 인정한다면 성경만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권위임을 인정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규범으로 성경을 인정하면서 그 성경의 오류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1. H.D. McDonald, Authority of Bible, W. A. Edwell,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Baker, 1984), pp.138-139
2. Carl F.H. Henry, The Autority of the Bible, Philip W. Comfort, ed. The Origen of the Bible(Wheaton: Tyndale, 1992), p.30
3. William S. la Sor, David A. Hofford, Frederic W. Bush, Old Testament Survey(Grand Rapids: Eerdmans, 1982), pp.2-5
4. J.I. Paker, The Inspiration of the Bible(Philip W. Comfort, ed. The Origen of the Bible), pp.30-36
5. John H. Armstrong, The Authority of Scripture, Don Kistler, ed, The Protestant Position on the Bible(Morgan: Solideo Gloria, 1995), p.115
6. David S. Dockery, Kenneth A. Matthews, Robert B. Sloan, A Complete Foundation for Biblical Interpretation(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4),p.29




* 정경과 그 책들의 형성



성경의 정경에 대해서 말할 때 그 말은 규범이나 규칙에 대한 것이다. 원래 정경이란 말은 헬라 어 카논(kavwv)에서 빌어 왔는데 앗시리아 어(ganu) 우가릿 어(gn) 그리고 히브리 어(ganeh)처럼 셈 어에서 왔다. 그리고 이런 말들은 숨메리안 어 gi-na로부터 빌어 왔는데 원래는 갈대를 의미했다(욥 40:12). 그 의미에서 이 말은 헬라 어, 라틴 어 그리고 다른 언어들로 들어오면서 갈대의 특성이나 구조의 어떤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어떤 곧은 것이나 수직적인 어떤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어떤 곧은 것이나 수직적인 어떤 것을 암시하였다. 그리고 헬라 어에서 그것은 규범, 표준, 보기, 모델, 경계 연대기표 그리고 세금 부과액을 기술하는데 쓰였다. 헬라와 라틴 교부들은 일반적 의미에서 카논을 성경적법 이상, 혹은 모범적인 사람, 신앙의 신조, 교회의 교리, 목록 혹은 명단, 목차 그리고 성자의 색인에 적용했다.1
성경에 대해서 이 말을 쓸 때에는 구약과 신약을 구성하는 개별적인 책들의 수집을 가리켰다. 따라서 성경은 책이란 말에서 왔는데 사실은 한 책이 아니라 66권의 책들의 수집이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에서는 외경을 포함시키므로 우리 개신교와는 그 정경관에서 다르다. 크게 보아 로마 가톨릭의 견해는 성경은 무오한 책들의 무오한 수집이라고 보는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성경은 무오한 책들의 유오한 수집으로 본다. 로마 교회에서는 성경의 정경은 교회에 의해 무오하게 규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는 정경을 이룬 책들에 대한 교회의 결정을 유오한 결정이었다고 본다. 로마 교회에서는 교회의 해석까지도 무오하다고 본다.
그러나 교회는 한 설립자와 한 기초를 가진다. 그 설립자는 그리스도이시며 그 근거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저술들이었다. 따라서 정경을 세운 것은 교회가 아니다. 교회를 세운 것이 정경이다. 교회는 정경을 확립하지 못하며 그것을 인식하고 그 규범에 복종할 뿐이다.2
따라서 교회의 결정은 정경을 확인하고 수납한 것뿐이다.

1. 구약의 정경

구약의 정경 형성에는 적어도 아래 네 단계가 있었다.

권위 있는 언설

정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받을때부터 시작되었다. 모세는 그 말씀들을 기록해 두었다(출 24:3). 그리고 그 이전에 벌써 족장들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있었다.

권위 있는 문서들

신명기 31:24-26에서 모세는 한 책에 이 율법의 말씀들을 기록하였고 레위기에는 언약궤 곁에 두라고 명령했다. 이 책의 구속하는 권위는 여호수아에게 재확인되었다(수 1:8). 그리고 요시아 18년에 율법서의 재발견은(주전 621) 구약 정경의 발전에 획기적인 사건이었다(왕하 22장).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확신을 한, 한 책을 듣고 순종했는데 그것이 정경성의 본질이었다.

저술들의 권위 있는 수집

히브리 성경은 전통적으로 율법서, 선지서 그리고 성문서의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모세의 다섯 책들은 율법(Torah) 혹은 오경으로 불렸는데 아마도 현재의 형태는 대략 다윗 시대(주전 1000)에 완성되었으리라고 본다.
선지서들은 두 그룹으로 구분하는데 전선지서와 후선지서이다. 전선지서는 역사적 책들로, 여호수아서, 사사기서, 사무엘서 그리고 열왕기서이다. 후선지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던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이었고 여기에 12권의 책들이 포함되었다. 어떤 경우에 이 12권의 선지서는 소선지서로 부르는데 그 이유는 비교적 개략적인 저술들이기 때문이며 이 책들은 한 개의 두루마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선지서들의 마지막 편집은 가나안의 정복에서부터 바벨론 포로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언약사와 연관되어 있다(주전 1250-550). 또 포로 전 선지서들은 대부분이 포로 기간에 수집되었을 것이다.
성문서들은 그 책들의 다양한 성격 때문에 더 복잡하다. 시편과 잠언과 욥기는 시적이며 헌신에 관한 책들이다. 개별적인 두루마리에 쓰여진 다섯 책들은 연중 절기에 따로 읽었다. 유월절에는 솔로몬의 아가서, 오순절에는 룻기,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파괴되었던 날 아브(Ab) 9일에는 예레미야애가서, 장막절에는 전도서, 부림절에는 에스더서를 읽었다. 다니엘서는 고립된 선지서이며 그 성문서들은 에스라, 느헤미야 그리고 역대기서의 역사적 언급들과 함께 히브리 성경에 포함되어 있다.
대부분의 성문서들은 포로 기간이나 후에 기록되거나 수집되었으며(주전 550년 후) 시편이나 잠언은 군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나(주전 1000-507) 전체적인 수집은 아마도 주전 150년경이었을 것이다.

확정된 정경

세 부분으로 구성된 성문서들의 목록은 주전 150년 이전에 발견되었다. 주전 132년경에 헬라 어로 번역된 벤 시락(Ben Sirach) 집회서 서언에는 다른 책들(Books)처럼 율법서와 선지서들의 언급이 있는데 벤시락 자신이(주전 190년) 구약 정경의 삼중 구분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탈무드의 소책자 바바 바트라(Baba Bathra)는 주전 제1세기나 제2세기의 작품으로 보는데 정경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언급하셨으나(눅 24:44), 구약을 율법과 선지자로 말씀하셨으며(마 5:17; 눅 16:16) 그 안에 선지서와 함께 성문서를 포함시키신 것이 분명하다.
정경성은 기록된 언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믿는 자의 공동체가 정경적 책들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증언에 근거하였다. 유대 인들에게나 로마 가톨릭 학자 제롬(Jerome)과 대 그레고리(Gregory the Great) 그리고 종교 개혁자들에게나 모두 히브리 정경의 저술들만 구약에 포함될 권위가 있는 것으로 언급하였다.3
그뿐만 아니라 정경성은 영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 글이 영감 되었다면 그것은 정경이었다. 이렇게 영감과 정경과 권위는 모두 한 나무에 세가지처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2. 신약의 정경

주후 68년 베드로는 바울의 글들을 다른 성경들 속에 포함시켰다(벧후 3:16). 바울 역시 디모데전서 5:18에서 누가복음을 인용하였다. 속사도 시대의 초기부터 교부들은 신약의 저술들을 성경으로 취급하였다. 그들은 사도들의 글들을 성경적 귄위서로 취급하여 인용하였다(Clement, Ignatius, Polyoorp, Papias, Justin Martyr 등).
제2세기말 타디안(Tatian)의 디아테사로(Diatessaron)은 복음서의 조화를 담고 있다. 뮤라토리 정경(The Muratorian Comon, 마아 제2세기 말경)은 신약의 목록을 담고 있다. 그의 신약에는 마가복음과 바울의 열 개 서신이 들어 있다(물론 마르시온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들로 정경을 구성한 이단이었다. 그는 반유대적이었다).
처음부터 대부분의 책들은 오늘의 정경에 들어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 2, 3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의심서로 논쟁이 있었다. 제4세기에 와서야 그 논쟁이 종결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주후 367년 모두 27권의 책들을 언급하였고 주후 363년 라오디게아(Laodioea)회의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지금의 모든 신약의 목록을 작성했다. 주후 397년 카르타고의 제3차 회의에서 정경에 현재의 책들을 다 포함시켰다.
어느 책이 성경에 포함될 수 있는지는 ⑴ 사도적 기원, ⑵ 교회들에 의한 수납, ⑶ 정경적 책들의 확실한(의심 없는) 핵심으로서 일관성의 기준을 따랐다.4

3. 정경과 외경

헬라 어를 쓰던 공동체나 흩어진 유대 인들은 칠십인 역본에 포함시킨 외경들도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 후에 로마 가톨릭이나 헬라 정교회에서는 교훈적 정경으로서 외경을 구약의 정경에 포함시켰다. 결국 로마 가톨릭 교회는 유대교나 개신교의 구약보다 일곱 권의 책을 정경에 더하였다. 따라서 소수의 교회를 제하고는 15세기 동안 구약에 유대의 성경과 외경서들을 덧붙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유럽에서 히브리 어의 연구와 제16세기 종교개혁으로 초대 교회가 지니고 있던 유대 인의 구약의 정경을 기독교의 정경으로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5 정경에 외경을 더하는 경향 때문에 그 구분을 위해서 팔레스타인 정경과 알렉산드리아 정경으로 그 이름을 달리하기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헬라화한 유대 인들은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켰으나 팔레스타인 정경의 히브리 성경에는 외경이 제외되었다.
외경은 결코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정경으로 인용되지 않았다. 물론 유일하게 그 예외가 유다서에서 발견되기는 한다. 유다서 9절은 모세의 승천에서 인용하고 있으며 14절은 에녹서를 인용한다. 그러나 유다서의 이런 작품들의 인용은 그가 그것들이 영감 되었다고 믿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바울이 다양한 헬라의 시들을 인용한 것이(행 17:28; 고전 15:33; 딛 1:12을 보라)그들의 시에 신적 영감을 돌리지 않은 것과도 같았다.6
그리스도는 전 구약을 세 계급(율법, 시편 그리고 선지서)으로 구분하심으로 분명하게 유대 인의 정경을 승인하셨고 이런 계급에 들지 않은 책들은 정경에서 제외하셨다. 초대 기독교회는 400년간 우리와 같이 같은 정경을 인식하였지 다른 정경적 책들을 인식하지 않았다. 외경의 저자들은 그들이 말라기 이후에 썼기 때문에 선지자들도 영감된 사람들도 아니었다. 또 그들의 책들은 히브리 어(구약의 것처럼)로 기록되지도 않았고 헬라 어로 기록된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조세푸스는 아르타세르세스(Artaxerxes)후에 그의 백성들에 의해 기록된 것들은 선지자들의 글들과 동등하게 신임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고 하였다.7
물론 정경은 오랜 기간 교회의 역사적인 선별 과정을 거쳐서 완전히 수집되었다. 따라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교회의 회의는 잘못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재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선별 과정에서도 섭리하셨음을 믿을 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죄인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으며 구원받은 성도 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우리 영혼의 유일한 규범이라면 그 말씀들을 영감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어찌 그 영감서를 선별하는 데서 사람들의 실수를 허용하셨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의 66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감 된 정경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1. Roland Kenneth harriso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Grand Rapids: Zondervan, 1979), p.260
2. R.C. Sprool, The Establishment of Scripture, Don Kistler, ed., The Protestant Position on the Bible(Morgan: Soli d대 Gloria, 1995),pp.70-71
3. William S. La Sor, David A. Hubbard, Frederic W. Bush, Old Testament survey(Grand Rapids: Eerdman, 1994), pp.18,23
4. R.C. Sproud. op. cit.
5. Peter C. Craigie, The Old Testament(nashville: Abingdon, 1986),p.24
6. R.T. Beckwith, The Canon of the Old Testament, Philip Wesley Confort, ed., The Origin of the Bible(Weaton: Tyndale, 1992), p.63
7. Francis Turretin, Instinutes of Elenctic Theology. Vol.1(Phillipsburg: P & R, 1992),p.102


* 성경이란 무엇인가?



기록된 계시
성경에는 하나님의 계율의 말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인간의 입술을 통해서 하신 말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기록 형태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십계명에서 발견할 수 있다(출 31:18; 32:14; 34:1, 28). 또 모세는 율법을 써서 레위 자손과 제사장과 모든 장로에게 주었으며(신 31:9-13), 여호수아도 말씀을 하나님의 율법 책에 기록하였다(수 24:26).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와 예레미아에게도 여호와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고 하셨다(사 30:8; 렘 30:2).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그가 하신 말씀을 그들로 기억하게 하실 것을 말씀했고(요 14:26), 바울은 그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말씀이 바로 주의 명령이라고 하였다(고전 14:37). 이렇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기록된 형태를 가리킨다. 이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로서 서령이란 말은 헬라 어(biblia)에서 라틴 어를 통해서 나왔는데 특별히 교회에 의해 정경으로 인식된 책들을 가리킨다. 원래 헬라 어 비브리온(biblion)은 비브로스(biblos)의 축소형으로 실제로는 기록된 문서의 어떤 것을 가리켰으나 원래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것을 가리켰다. 성경의 동의어는 문서나 성서(헬라 어, haigraphai, ta grammata)로 신약에서 자주 전체나 부분으로서 구약 문서를 가리켰다(마 21:42; 막 12:10; 딤후 3:15; 벧후 3:16).1
그러면 왜 기록된 형태의 성경이 필요한가?
첫째로, 보다 더 정확하게 다음 세대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보전하기 위해서이다(신 31:12-13). 구전으로 전달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과정에서 정확성을 기하기가 힘들다.
둘째로,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조사하고 연구하며 토의함으로써 더 잘 이해하고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셋째로, 기록된 말씀은 구전보다 더 많은 지역,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2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성경 번역의 필요성은 세계 선교를 위해 절실한 교회의 우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구분
성경은 두 개의 언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되어 있다. 헬라 어 디아세케(diatheke)라는 말이 헬라 어 성경에 빈번히 나오는데 그 말은 유언이기 보다는 언약이란 뜻이다.
우리가 성경을 크게 두 언약으로 구분해서 구약과 신약으로 부르는데 구약의 책들은 옛 언약의 역사와 그것들과의 밀접한 연관 때문이며, 신약의 책들은 그것들이 새 언약에 기초한 문서들이기 때문이다(렘 31:31; 출 24:7; 히 8:13; 고전 1:25; 고후 3:14).
이렇게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나 기독교 안에서 그 성경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포함되느냐에는 이견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씨리아 계통 교회의 어떤 분파에서는 신약의 베드로후서, 요한삼서,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그들의 신약성경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또 로마 교회와 헬라 정교회에서는 구약에 여러 책들을 덧붙이는데 이런 책들은 기독교의 칠십인 역본에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원래 히브리 어 성경에는 이런 외경들은 권위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영국 국교(루터 교회같이)가 개신교의 성경에 한두 개를 덧붙여서 포함시키고 있으나 제롬(Jerome)의 견해에 따라 삶의 모범과 교훈으로 읽을 수 있을 뿐이며 어떤 교리의 확립에 그것들을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다른 개신교회들은 전혀 그런 책들에 성경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3
따라서 개신 교회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기록된 대로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을 합한 66권만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확신한다.

신ㆍ구약 성경의 구분

1. 구약성경
히브리 성경책들은 세 가지 구분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율법과 선지서와 성문서이다. 율법은 모세의 다섯 책, 즉 오경을 가리킨다. 선지서는 다시 두 구분으로 나뉘어서 전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서로 되어 있으며, 후선지서는 이사야, 예레미아, 에스겔 그리고 12소선지서로 되어 있다.
성문서는 나머지 구약의 책들이 포함되는데 시편, 잠언, 욥 그리고 다섯 개의 두루마리로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도 그리고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와 역대기이다. 따라서 히브리 어 성경은 모두 24권인데 39권의 개신교의 구약과 차이가 나는 것은 그 중에 어느 것을 제외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후대에 와서 소선지서를 12권으로 하고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와 에스라서, 느헤미야서를 각각 두 권으로 나눴기 때문이다.

2. 신약성경
신약성경은 약속의 성취란 점에서 구약의 완성이라고 볼 수 있다. 구약이 선지자들에 의해 우리 조상들에게 하신 옛 말씀이라면 신약은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말씀하신 마지막 말씀으로 그 안에서 모든 이전 계시가 요약되고 확립되고 탁월하게 되었다. 구약 계시의 능력있는 역사들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서 정점에 이르렀으며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들이 그 안에서 성취되었다.
신약성경은 네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⑴ 사복음서들, ⑵ 사도행전, ⑶ 사도들과 사도 시대 인물들이 쓴 21개의 서신들, ⑷ 요한계시록 등이다.

성경의 메시지
성경의 중심 메시지는 구원의 이야기이며 두 언약들을 통해서 전개된 이야기 안에서 세 가지 요소가 구별될 수 있는데 그것은 구원의 초래자, 구원의 길 그리고 구원의 상속자들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계약으로 취급하시는데 그 요소로서는 언약의 중보자, 언약의 기초 그리고 언약의 백성이 있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의 구주이신데 그가 그들과 그의 언약의 자비를 확립하신다. 구원의 초래자, 언약의 중보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원의 방법, 언약의 기초는 믿음과 순종의 반응을 그의 백성에게서 불러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언약 백성인 구원의 상속자들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교회이다.4 따라서 구원이 성경의 핵심 메시지라는 사실은 그 성경의 주요 내용이 구원의 초래자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과 구원의 대상자인 인간의 타락과 그 비참한 결과 그리고 믿음을 통한 용서와 구원의 축복과 은혜가 그 중심임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성경은 이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삶의 방법과 마침내 누리게 될 영원한 천국에서의 영생의 축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3. 위경(외경)과 성경
외경(Apocrayphal)이란 말은 감추어진 도는 기원이 알려지지 않은 위조의 비정경적인 책들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1546년 트렌트 회의(the Council of Trent)에서 외경을 정경으로 공인하였으며 그 목록은 토빗, 유딧, 솔로몬의 지혜, 집회서(즉 예수의 지혜, 시락의 아들), 바룩 그리고 마카비일, 이서이다. 같은 회의에서 역시 에스텔, 수산나와 세 가지 거룩한 어린이의 노래인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를 더하였다.
외경의 형태는 역사적, 소설적, 설교적, 종교적 혹은 묵시적 형태 등 여러 가지 문학적 장르에 속한다.5 대체로 그 책들은 경건 서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위경은 구약의 정경처럼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고 읽혀지면서 그 권위를 인정받은 책들과는 달랐으며 특별히 저자들의 영감에서 떨어지는 책들이다. 물론 그 책들은 경외서로 분류되는 다른 많은 책들보다는 더 신뢰를 받아 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외경은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영감 된 성경으로 간주할 수 없다.

1. 외경은 원래의 히브리 성경 구약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조세푸스(Josephus)가 마음에 두고 있던 구약 22권은 아래와 같다.
⑴ 모세의 다섯 책: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⑵ 13예언서: 여호수아, 사사기 그리고 룻기(하나로 취함), 사무엘서, 열왕기, 이사야,예레미야 그리고 애가(하나로), 에스겔, 12소선지서(하나로), 다니엘, 욥, 에스더,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하나로) 그리고 역대기서
⑶ 하나님께 드리는 네 가지 찬송과 실제적인 교훈들로 시편, 잠언, 솔로몬의 아가, 전도서이다.
2. 외경은 결코 우리 주님에 의해 인용되지 않았다.
3. 이런 외경들의 저자들 중에서는 영감을 부인하였다(벤시락의 아들, 예수의 지혜서에 대한 서언을 보라. 역시 마카비이서 2:23; 15:38).
4. 외경서들은 교회에서 읽혀졌으나 제롬의 진술의 빛에서 해석되어야 했다. 그는 교화를 위해서 읽을 것이지 신앙의 교리를 증명하기 위한 권위를 위해서는 아니라고 하였다.6

따라서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의 진술대로 39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권위서로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라고 확신한다.



1. F.F. Bruce, The Bible in Philip Wesley Comfort, ed. The Origin of the Bible(Weaton: Tyndale, 1992), p.3
2. Wayne Gradam, Systematic Theology(Grand Rapids: Zondervan, 1994), p.50
3. 외경에 대해서는 외경과 성경란을 참고하라
4. F. F. Bruce, op. cit., pp.4-11
5. B. 매트거, 외경이란 무엇인가, 민영진 역(서울: 컨콜디아사, 1979), p.10
6. William Hendriksen, Survey of the Bible(Grand Rapids: Baker, 1978), pp.20-21


* 계시란 무엇인가?



라틴 어 ‘revllo'에서 온 영어의 계시란 말(reveal)은 히브리 어 갈라(gala)와 헬라 어 아포칼립토(apokalypto)의 일반적인 번역이다. 계시란 감추어진 무엇이 드러나서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지고 알려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경이 계시에 대해서 말할 때 의도된 사상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그를 알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그의 능력, 영광, 그의 본성, 성품, 그의 의지, 방법들과 계획들을 - 요약해서 - 능동적으로 드러내시는 것이다1.
이 계시의 행위는 인간들이 유한한 존재이므로 그들 자신의 감지력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계시하실 때 크게 두 가지 방법, 즉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로 하신다.

1. 일반 계시
일반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이용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반 게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에서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사실을 기술하는 말이다2.
자연: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므로 무엇보다도 그가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그것은 유명한 화가들이나 작가들이 그림과 문학 작품 속에서 자신의 특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자연 계시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서 특별히 시편에 풍부하다. 예를 들어 시편 19:1에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 자연 계시에 대하여 설명하기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인다”라고 하였고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므로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고 하였다(롬 1:19-20).
역사: 일반 계시의 두 번째 경로는 일반 역사의 사건이다. 누구든지 역사를 관찰해 보면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깨닫게 된다.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이며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였다. 그 역사의 구비에서마다 하나님의 두 가지 큰 손길인 공의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역시 그 역사는 이스라엘과 연관된 세계의 역사였다. 모든 나라들의 흥망성쇠가 하나님의 손안에 있었다. 이사야는 열국의 경계를 옮긴 이가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으며(사 10:13) 다니엘은 열왕을 폐하시고 세우신 이가 하나님이시라고 증언하고 있다(단 2:21).
인간의 본성: 일반 계시의 세 번째 경로는 인간의 본성 안에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며 타락 후에도 그 형상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창 9:6). 거기서 살인은 하나님 형상의 파괴로 규정하였다. 이 하나님의 형상은 우리 인간의 도덕적 성품 속에서 나타난다(롬 2:12-16). 다시 말하면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한 의식이 있고 그 두 사이에 구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 양심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의무감이 있다3.
그러나 이 일반 계시나 자연 계시로서는 신 지식에 대해 불충분하고, 우리의 타락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을 알 수 없으며 더욱이 우리 인간이 구원받아야 할 타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지는 못한다.

2. 특별 계시
특별 계시는 아래 몇 가지 방법에서 일반 계시와 다르다. 특별 계시는 그 내용에서 더 특별한데 그것은 그 계시가 일반적인 것이나 신학적인 진리를 취급하기 때문만 아니라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특수한 역사적인 사건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 계시는 역시 개인이나 그룹들을 한정하는 의미에서 특별하다. 따라서 그 계시는 보존이나 다시 제시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없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용할 수가 없다.
이 특별 계시는 하나님께서 구속사에서 행하신 드라마틱한 소식으로,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이 그 결정을 이룬다(히 1:2).

특별 계시의 양식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계시하시는 형식들이 다름으로 특별 계시 안에도 그 계시의 양식들이 있다.
1. 역사적 활동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어떤 징조를 제시하는 역사적인 사건들 안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가리킨다. 그 대표적인 예는 선민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이다.

2. 하나님의 말씀
인간들에게 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대화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말씀의 대화는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였다. 예를 들면 실제로 들리는 말씀, 들리지 않는 말씀 혹은 육적으로 들리는 말씀으로 꿈(무의식 상태)이나 환상(의식 상태) 이 그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 많으며 그 저자들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영감되었다(렘 18:1; 겔 12 장: 호 1:1; 욜 1:1; 암3:1).

3. 성육신
특별 계시의 가장 완전한 형태는 성육신이다. 성육신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이 한 형태로 연합된 경우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적 진리의 말씀들을 말씀하였다. 그는 세상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계셨다. 그래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본 자라 하셨다(요 14:9).

4. 성경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메시지의 내용을 우리를 위해서 재생하고 보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저자들을 영감시키셨으므로 그들이 쓴 것은 신적 계시를 보유하고 있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다4.

특별 계시는 구속적인 계시이다. 성경은 거룩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로 구원을 약속하는 좋은 소식을 공포한다(구약).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서 만인이 믿도록 소명된 그의 아들의 선물 안에서 그 약속을 이루셨다(신약). 복음은 성육하신 로고스(Logos)가 멸망할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그들 대신 죽으셨고 그들의 칭의를 위해 살아나셨다는 소식이다. 이것이 특별 계시의 고정된 핵심이다5.
자연 계시는 신 지식에 대한 그것의 불충분성과 인간의 타락 때문에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알려 줄 수 있을뿐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지식과 그의 뜻과 계획을 알려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구원을 받게 되려면 특별 계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특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적 죽음, 부활에 의하여 그 절정을 이룬 독특한 역사적인 신적 구원의 사건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Carl F.F, Henry).6 그러나 그렇다고 일반 계시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느 면에서 특별 계시는 일반 계시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1. J.I. Paker Revelation, New Bible Dictionary(Downers Grove:IVP, 1996), p.1014
2. G.W. Bromiley, Natural Revelation, Baker's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Baker, 1969). p.456
3. David S. Dockery, Kenneth, A. Matthew, Robert B. Sloan, A Complete Foundations Library of for Biblical Tools and Resources Interpretation(Nashville: Broadman & Holman, 1994), p.4
4. Ibid., pp.10-13
5. C.F.H. henry. Special Revelation,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서 론 - 성경의 난제



성경에 오류가 있는가? 이 질문은 성경이 누구의 말인가라는 해답 속에 그 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성경이 인간의 말이라면 오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은 진실하셔서 거짓말을 하실 수 없으시며(히 6:18; 단 1:2), 진리이시므로(요 14:6) 그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은, 주의 말씀은 진리라고 규정하고 있다(요 17:7; 시 119:16).
그러나 이 말은 성경에는 전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말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성경은 시간과 공간, 언어와 문화 등에서 많은 갭이 있다. 따라서 어떤 말씀은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이해가 쉽지 않다고 그 말씀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거스틴(Augustine)은 “우리가 만일 성경에서 어떤 분명한 모순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진다면 그 책의 저자가 실수했다고 말하지 말고 필사자의 실수이거나 번역의 잘못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라. 그 잘못은 하나님의 계시에 있지 않고 인간의 해석에 있다”고 하였다1. 따라서 가이슬러는「비판자들이 질문할 때」라는 그의 책에서 성경 비판자들의 질문에 대한 문제점 17가지를 아래와 같이 지적하였다.

1. 비판자들은 설명되지 않는 구절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가정한다. 과거에 과학자들은 유성, 일식, 돌개바람, 허리케인 그리고 지진 등 자연현상을 설명할 자료를 갖고 있지 못했다. 과학자들이 아직까지 설명할 수 없는 것도 많다. 그러나 그것도 언젠가는 설명이 가능할 날이 올 것이다. 오늘날 성경난제도 언젠가 앞으로 풀리게 될 것이다.
2. 비판자들은 성경에 대해서 그것이 옳다고 증명되기까지는 잘못되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비판자가 그것이 옳다는 증명을 획득하기까지는 무조건 틀린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3. 비판자들은 하나님의 무오한 계시를 인간의 오류있는 해석과 혼동한다. 성경은 폐할 수 없으며 변할 수 없다. 성경의 모든 약속은 다 성취된다. 종종 성경의 교훈은 작은 역사적인 세부 사항이나(히 7:4-11) 단어나 구절(행 15:13-17) 혹은 단수, 복수 사이의 차이에 근거하였다. 성경은 이렇게 무오하며 정확하다. 그러나 인간의 해석은 틀릴 수 있다. 성경은 불변하나 성경의 의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변한다. 그러므로 무오한 계시와 유오한 인간의 해석을 분별하는 상식이 필요하다.
4. 비판자들은 그 구절의 문맥을 이해하는데 실패한다. 그들은 한 본문을 그 본문이 속해 있는 문맥에서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시편 14:1의 전반절만 취하여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구절은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는 뜻이다.
5. 비판자들은 어려운 구절을 분명한 구절의 빛에서 해석하는 데 등한히 한다. 예를 들면 야고보는 구원은 행위로 얻는다고 말씀하는 것 같다(약 2:14-16). 그런데 바울은 분명하게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다고 하였다(롬 4:5; 딛 3:5-7; 엡 2:8-9). 이것은 바로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칭의에 대해 말씀했고 야고보는 사람 앞에서 의로워지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6. 비판자들은 불명확한 구절의 교훈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불명확한 구절에 교리를 세우지 말아야 한다. 역시 우리는 불명확한 구절이 주어졌을 때 그것이 성경의 다른 평범한 교훈에 모순이 된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에 잘못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7. 비판자들은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 의한 인간적인 책임을 잊고 있다. 다만 그 책들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므로 오류가 없는 것뿐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원천들을 사용하며(수 10:13; 행 17:28; 고전 15:33; 딛 1:12) 인간의 문자적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8. 비판자들은 부분적인 보고가 거짓 된 보고라고 가정한다. 성경은 같은 사건도 다른 견해를 가지고 다시 말해서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다. 사복음서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그것들은 같은 이야기를 취급하고 있지만 독자들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인용할 때까지도 다른 말로 하고 있다. 예컨대 마태는 그리스도에 대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16:16), 마가는 그리스도로(8:29), 누가는 하나님의 그리스도로 표현하고 있다(1:20).
9. 비판자들은 구약에 대한 신약의 인용이 항상 정확한 인용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것이 문자대로 정확한 것이 아닐 때 잘못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할 때 정확하게 문자적으로 할 수도 있고 요약해서 그 의미만 취할 수도 있고 부분적으로는 문자적으로 취하고 부분적으로는 뜻만을 취할 수도 있다. 저자가 다른 사람의 글을 꼭 문자적으로 인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문자적으로 인용하지 않았다고 그의 글이 틀린 것도 아니다.
10. 비평자들은 서로 다른 설명을 하는 것은 틀린 것으로 간주한다. 마태는 부활 후 무덤에는 한 천사가 있었다고 하는데(마 28:5) 요한은 우리에게 두 천사가 있었다고 소개해 준다(20:12). 그러나 이것은 모순된 보고가 아니다. 마태는 거기에 한 천사만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마태의 설명도 틀린 것이 아니다.
11. 비판자들은 성경이 그 모든 기록들을 승인한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성경에 모든 내용이 성경이 명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은 진리이다(요 17:17). 그러나 성경은 사단의 거짓말과 라합의 거짓말도 기록하였다(창 3:4; 참고 요 8:44; 수 2:4). 성경의 진리는 성경이 드러내는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지 성경이 기록한 모든 것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12. 비평가들은 성경이 전문어가 아닌 일상 용어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성경은 모든 시대의 보통 사람을 위하여 일상의 말로 쓰여졌다. 따라서 과학적인 말로 쓰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비과학적이란 의미가 아니라 단지 과학 이전의 말이라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해가 뜨고 진다는 말은 과학적이 아니지만 현대의 기상 학자들도 그렇게 쓰고 있지 않는가?
13. 비판자들은 개략적인 숫자를 틀렸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저자가 어떤 모임에 모인 사람들의 수를 기록할 때 1,050명이 모였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저 1,000명이 모였다고 쓸 수도 있는 것이다.
14. 비판자들은 성경이 다른 문학적인 문장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성경에는 시적인 책도 있고(욥, 시편, 잠언) 사복음서에는 비유들이 있으며 풍유도 있다(갈 4장). 또 은유(고후 2:2-3; 약 3:6)와, 직유(마 20:1; 약 1:6), 과장법도 발견된다(골 1:23; 요 21:25; 고후 3:2). 따라서 우리는 그 문학 형식에 맞는 주의 깊은 해석을 해야 한다.
15. 비평가들은 성경의 모든 복사판이 아니라 원문만이 오류가 없음을 잊고 있다. 성경의 원문은 사라졌고 많은 사본들이 있다. 물론 그 사본들은 엄격한 서사 규칙에 따라 필사된 것이기 때문에 큰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필사의 전수 과정에서 서사자들의 실수를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열왕기하 8:26에 아하시아 왕의 나이가 22세로 기록되었는데 역대하 22:2에서는 42세로 기록되었다. 후자의 수는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에 그는 그의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문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16. 비판자들은 일반적인 언급을 보편적인 것과 혼동한다. 성격상 다만 일반적인 안내만 하고 있는 잠언의 말씀은 보편적인 보증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잠언 16:7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경우는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으나 그의 원수들이 그를 돌로 쳤으며(행 14:19)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는가? 잠언은 일반적인 안내의 지혜이나 율법은 보편적으로 구속하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그 두 사이의 차이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17. 비판자들은 후대 계시가 앞선 계시를 대신한 것을 잊고 있다. 그들은 계시의 점진성의 원리를 잊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단번에 드러내지 않으시며 항상 모든 시대를 위해 같은 조건을 두지도 않으신다. 따라서 후대 계시 중 얼마는 이전 언급들을 대치한다.


1. Norman Geisler and Thomas Howe, When Critics Ask(victor Books, 1992), pp.15-26. 여기서 필자는 위의 책을 요약하기 위해 자유롭게 인용하기도 하고 필자의 견해를 더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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