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어야 하는 분명한 이유 -4 / 존 라일
넷째, 현존하는 책들 가운데 성경만큼 인류에게 놀라운 변화와 영향을 끼친 책은 없습니다.
사도 시대 때 이 책이 가르치는 교훈으로 세상이 소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 한 귀퉁이에서 몇몇 유대인을 보내 사람이 보기에 전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시작하게 하신 지 천팔백 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미신과 잔인함과 정욕과 죄악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종교는 모두 거짓일 뿐 아니라 무익하며, 반드시 그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세상 선포하라고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옛 습관과 풍습을 버리고 전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축구하라고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사람을 가장 비천하게 만드는 우상숭배, 패역하고 역겨운 부도덕, 당시의 기득권자, 오래도록 이어 온 집단, 완고한 제사장, 조롱하는 철학자, 무지한 대중, 잔인한 황제, 로마제국의 모든 권력과 싸우라고 그들을 보내셨습닏. 돈키호테의 행동만큼이나 허황되게 보이고 도무지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일을 하라고 이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어떻게 준비시키셨습니까? 육신적인 무기로 준비시킨 것이 아닙니다. 동의하라고 압박할 수 있는 세상적인 권세를 주시지도 않았고, 돈을 뿌려서 믿음을 사도록 세상적인 재력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이들의 마음에 부으시고 성경을 손에 쥐어 준 것 뿐입니다. 성경의 교리를 선포하고 설명해 주고, 이 교리로 촉구하라고 명하신 것뿐입니다. 1세기의 기독교 설교자들은 마호메트처럼 칼을 차고 군대를 대동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음란한 우상을 섬기는 힌두교 사제들처럼 육신적 쾌락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면허증을 가지고 백성을 꾀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성경이 전부인 거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흥왕하게 되었습니까? 몇 세대가 채 지나기도 전에 이들은 성경의 교리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습니다. 이교 신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를 고사시켰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가장 고상한 도덕적 관계가 자리하게 했습니다. 여성의 인격과 지위를 고양시켰습니다. 순수함과 품격의 기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검투사의 싸움과 같은 잔인한 관습을 종식시켰습니다. 이들을 통해 사회가 맛보게 된 변화를 열거하면 끝이 없습니다. 핍박과 반대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승리가 이어졌습니다. 곳곳에 만연했던 악행들이 하나둘 씩 자취를 감췄습니다. 사람들의 기호와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이 이 새 믿음의 등장과 함께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새 믿음의 권세아래 굴복한 것입니다. 온 땅이 흔들렸습니다. 이들이 안전지대라고 만들어 놓은 부패한 도피처들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새 믿음이라고 하는 이 홍수의 수위가 높아짐에 따라 무너진 이들의 잔해 역시 그 허망한 기초에서 들려 떠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라는 나무는 점점 무성하고 우람하게 자라갔습니다. 이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하려고 이들을 결박하던 구습의 사슬은 새끼줄과 같이 허망하게 끊기고 맙니다. 이 모든 일이 성경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라 말로 진정한 승전가가 아닙니까! 그에 비하면 알렉산더, 시저, 말버러, 나폴레옹, 웰링턴의 승리가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정도로 보나, 완전함으로 보나, 결과로 보나, 영속성으로 보나, 성경이 일군 승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 이루는 승리에는 아무 것도 비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저 영광스러운 종교개혁 시대에 전 유럽을 뒤집어 놓은 책입니다. 오백 년 전에 일어났던 종교개혁의 역사를 읽으면 당시 기독교 신앙을 고백했던 교회에 드리운 어둠을 발견할 것입니다. 얼마나 칠흑같은 어둠인지 마치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기독교는 심하게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죽음에서 다시 일어났다면 당시의 기독교가 정말 자신들이 전파했던 기독교인지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시대에 있었던 이교주의가 기독교란 이름으로 다시 발흥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에는 인간의 전통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고해, 성지순례, 면죄부, 유물숭배, 형상숭배, 성인숭배, 마리아숭배가 사람들이 고백하는 신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는 그 자체로 우상이었습니다. 사제들과 교회의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토록 끔찍한 흑암을 물리친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독일의 개신교가 자리하게 된 것은 단순히 루터와 그 동료들의 설교 때문이 아닙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이 교회의 세력을 뒤집어엎는 지렛대 역할을 했습니다. 영국에서 교황주의가 패퇴한 것은 단순히 토머스 크랜머(Thomas Cranmer)와 다른 영국의 종교개혁자들의 저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존 위클리프(John Wyeliffe)가 성경을 번역해 파종한 것이 이런 엄청난 결실을 가져온 것입니다. 영국 사람들의 마음이 교황에게서 점점 멀어진 것은 단순히 헨리 8세와 교황 간의 갈등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번역하고 이 성경을 교회에서 사용하도록 왕실이 재가하여 누구나 원하는 대로 성경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영국과 독일과 스위스에 개신교의 대의가 자리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성경이 배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종교개혁 1세대가 저무는 동시에 백성은 이전의 올무 아래로 다시 들어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음으로 대중의 마음이 참된 신앙의 원리가 누룩처럼 번져 갔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전히 열렸습니다. 영적인 지각이 열렸습니다. 교황주의가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를 확연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순전한 복음의 탁월함이 그들 마음에 새로운 토대로 자리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교황이 발하는 출교의 위협조차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왕과 여왕들이 나서서 불과 칼로 개신교 신앙이 가는 길을 막아 보려고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많이 알아 버렸습니다. 빛을 본 것입니다. 기쁨의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진리의 맛을 본 것입니다. 흑암 가운데 잠자던 이들의 마음에 태양이 떠오른 것입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비늘이 벗겨진 것입니다. 이들 안에서 성경이 그 본연의 역사를 이루었고 이 역사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백성은 다시 이집트로 내려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영적인 시계를 거꾸로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성경으로 인해 지적이고 도덕적인 혁명이 촉발 되었습니다. 성경이 불러온 진정한 혁명이었습니다. 베르토(ReneAubert de Verrot)가 기록한 혁명들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프랑스와 영국이 경험한 세속 혁명은 성경을 통해 일구어진 혁명에 비할 것이 못됩니다. 어떤 혁명도 성경을 통해 이룬 것처럼 피를 흘리지 않고, 만족스럽고 영속적이 결과를 가져온 것은 없었습니다!
열방의 안녕이 이 책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 신앙을 인정하는 모든 나라의 안녕과 장래는 이 책을 아는 지식과 떼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존중하는가, 성경의 빛 가운데 행하는가, 도덕적인가, 참된 종교를 추구하는가, 선한 법을 입법하고 자유를 보장하는가 하는 것이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합니다. 저와 함께 역사의 페이지를 넘겨보면 이런 증거를 수도 없이 발견할 것입니다. 열왕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역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얼마나 악들이 만연했습니까!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요시야 왕 때에 성전 한 귀퉁이에서 하나님의 율법책이 발견되었겠습니까?(왕하 22:8) 그것도 율법책을 찾으려고 찾은 게 아니라 성전을 수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들은 어떠했는지 보십시오.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들의 신앙은 또 어떻습니까! 하지만 자기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던 이들이었기에 이는 전혀 새삼스러울 것이 없습니다(마 15:6). 중세의 교회를 보십시오. 이때에 교회에 만연했던 무지와 미신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성경의 빛이 없었기 때문에 흑암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문명사회에 세워진 많은 탁월한 명성 있는 기관들 가운데 성경에 빚을 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공공의 혜택과 유익을 위해 사람들이 받아들인 많은 선한 것들의 기원을 따라가 보면 결국 성경에까지 미치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성경이 받아들여진 곳 어디나 그 영향이 계속되고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는 법들이 성경으로부터 왔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에 널리 알려진 진리, 정직, 남편과 아내의 관계 등에 관한 도덕의 기준 역시 성경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과 이교도 사이에 큰 차이 -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크게 인정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 가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장 자비로운 선물인 주일 역시 성경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구제와 자선 기관역시 성경의 영향으로 세워졌습니다. 성경이 온 세상으로 전파되기 전까지만 해도 병자, 가난한 자, 나이든 자, 고아, 정신병자, 정신지체자, 시각장애자 등은 거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되었습니다. 아테네나 로마의 역사를 샅샅이 살펴보십시오. 이런 약자들을 돕는 기관이나 법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성경을 조롱하는 너무나 많습니다. 성경이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조차 성경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관심도 없습니다. 믿지 않는 노동자는 우리나라의 시설 좋은 병원에 누워 치료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지금 누리는 모든 안락함이 자신이 그토록 멸시하는 성경 덕분이라는 사실을 거의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없었다면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두려울 정도로 자신들이 성경에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합니다.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성경을 통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고 살아왔는지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책이 바로 지금 우리가 다루는 주제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금 성경을 어떻게 읽는지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승전을 거둔 제독에게 수여된 검,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함대의 군함, 메나이 해협을 잇는 강관교를 떠받치는 수압 등 엄청난 권세와 힘을 발휘하는 이 모든 것은 세간의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이 책은 이런 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은 능력을 발휘하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주목 받아 마땅한 성경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묻는 말에 정직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에게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여러분은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읽는다면 어떻게 읽습니까?
출처: 포도나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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