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131013 믿음의 생각, 믿음의 언어 (민수기 14:1-10)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 「마음의 색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상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마음에 품은 사고의 색깔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이 밝게 보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이 어둡게 보입니다. 당신은 믿음의 안경을 쓰고 역사를 일으키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역사를 일으킵니다.
본문13장25-33에 보면 "본다." "봤다." 는 말이 여섯 번 나옵니다. 열 두 명이 다 봤다는 말입니다. 열 명도 똑똑히 봤고, 두 명도 똑똑히 봤습니다. 본대상이 같았으며, 본 시간이 같았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대상을, 같은 여건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두 명은 가나안의 환경을 살필 때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야, 이렇게 좋은 땅을 우리를 위해서 준비해 주셨구나,” 하면서 감사했지만, 열 명은 “세상에 이렇게 겁나는 곳에 우리를 인도해서 우리를 죽게 만드시다니 너무하셨다.” 하면서 원망을 하였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같이 경험하고도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명은 긍정적 신앙의 눈으로 보았지만, 열 명은 부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눈으로 보았습니다. 두 명은 자신들의 능력보다 하나님의 능력에 비추어 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열 명은 자신들의 능력만 생각하고 할 수 없다고 낙망했습니다. 무슨 차이 일까요? 하나님을 보는 영적인 눈, 믿음의 눈이 있고 없고의 차이인 것입니다. 똑같은 환경 속에 살고, 똑같은 교회에 다니고, 똑같은 직장생활을 하지만 누구는 행복하게 살고 성장해가며, 누구는 불행하게 살며 퇴보하는 이유가 환경 탓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의 차이입니다. 사람을 보고, 사회를 보고 사건을 보되, 긍정적인 눈, 믿음의 눈, 우리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고 믿는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합니다. 대만에 임어당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버드대학에서 40년 동안 강의를 했던 석학입니다. 그 문집 중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없이 보낸 40년은 나에게 있어서 완전히 고아와 같은 삶이었다.”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는 나날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과 같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삶은 믿음의 눈, 영적인 눈이 열려서 기끔과 축복된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을 대표한 12명의 족장들이 가나안 땅을 40일 동안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였습니다. 먼저 10명의 족장들이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좋으나 가나안 사람들은 대장부인데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것을 ‘메뚜기 콤플렉스’라고 합니다. 이들의 보고를 들은 회중들이 밤새도록 곡을 하였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을 왜 우리를 인도하여 칼에 죽게 하려고 하느냐… 한 장관을 세워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 종살이를 하자고 선동하였습니다. 이때에 다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옷을 찢으며 보고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아름답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주시리라,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온 회중이 돌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막아 주셨습니다.
잠언 18장 21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배의 방향을 키가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우리의 혀가 우리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며, 억누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령이 내 속에서 기뻐하시기도 하고 한숨을 쉬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향해 갈수도 있고, 하나님의 약속과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입술을 통해 혀를 통해 내뱉는 언어는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중요한 것이기에 우리의 언어가 성령 안에서 변화되어 생명을 살려야 합니다.
유럽의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그 신부를 도와서 성찬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그만 이 어린아이가 실수를 해서 포도주가 든 그릇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버럭 화를 내면서 저리 나가라고, 너 같은 녀석 필요 없다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무신론자가 되고 그리고 철저한 공산 국가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그 동시대에 또 다른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는데 어린이가 보좌를 합니다. 어린이가 그만 실수해서 포도주잔을 땅에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너도 앞으로 큰 신부가 되겠어, 나도 너만 한때는 그런 실수를 많이 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훌륭한 신부가 됐잖아.”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를 격려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그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유명한 ‘플턴신’ 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니까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데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덕을 세우는 말만 합시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비방하는 말, 헐뜯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으면 묻어두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는 세계
열 명은 가나안을 보고 와서 말합니다.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민13:32) 가나안 땅은 그 당시 전체 평균으로 보면 이 열 명의 말이 맞을 수 있습니다. 기름지고 아름다운 옥토보다 메마른 광야가 훨씬 더 많은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본 대로 말을 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의 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 것처럼 말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히11:1-3, 롬4:17-18). 현재에는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도 믿음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겨서 누리는 것입니다. 열 명에 비해서 두 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떠했나요? 그들은 선포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을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민14:6-8) 같은 땅을 보고 와서 하는 말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의 시선과 입술을 사모하고 소유하고 누리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버드대의 쿠브잔스키 박사는 건강한 사람 1,30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긍정적인 생각의 소유자일수록 부정적인 생각의 소유자보다 훨씬 건강하다는 것이다. 통증을 느끼는 비율도, 심장마비를 일으킬 가능성도 아주 적다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에서 바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결론이다.
믿음의 언어.
열 명은 절대로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가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생각과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14:8). 그들은 자신들이 그 땅을 차지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내 능력, 경험, 지식을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매트 버드라는 의학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0여년간 봉사한 사람입니다. 그가 그의 인생을 정리하면 쓴 책의 제목이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입니다. 일생동안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어 집니다. 내 입에서 쏟아지는 말이 곧 내 인생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매트 버드는 언어 치료학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남긴 사람입니다. 언어 치료학은 언어를 통해서 의학 분야에서 치료의 효과를 가져 오는 연구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에는 파괴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말은 무서운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게도 하고 살리게도 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깊은 심장 속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상처를 치료하기도 합니다.
말에는 기술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선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악해지는 것입니다. 음란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벌써 음란해지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아무생각 없다가도 누가 자꾸 옆에서 음란한 말을 하면 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방하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도 거기 전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줄로 믿습니다. 잠언 6장 2절에 보니까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이해인 시인은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의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이 새롭게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것을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그렇습니다. 말은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입술에 능력 있는 말을 선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불신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서 거인들을 보았다 말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민13:33)고 말합니다. ‘메뚜기 신앙’ 우리에게서 이 불신이 떠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서 부정적인 말이 떠나가야 합니다. 그들은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떠했나요? 그들은 믿음으로 입을 엽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 그들이 밥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잘 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강해서도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민14:9).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승리합니다.
충청남도에 중. 고등학교의 이사장을 지낸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머슴 생활을 하여 평소에, 사람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주인 집 애들까지도 반말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교회가 들어섰는데, 목사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장로님도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들 종처럼 자기를 대접하는데, 그 분들은 자기를 사람 같이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 교회가 부흥회를 한다기에 참석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이틀째에 강사 목사님이 하는 말이, 하나님께 투자하는 사람은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이 머슴은 이 말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정말 이 말씀을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말씀을 꽉 붙잡았습니다.
이 사람은 평생소원이 논 20마지기 농사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논 1마지기 값은 쌀 10가마니였답니다. 그러니까 20마지기 논농사를 지으려면, 쌀 200가마니가 있어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투자하면 최고 100배까지 이익을 올릴 수 있으니 2가마니만 하나님께 바치면 된다는 계산이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그 머슴은 당장 살던 집을 팔았습니다. 그 집은 총각시절에 벌었던 쌀 3가마니로 샀던 집입니다. 그는 급히 집을 내놓아 쌀 2가마니에 집을 팔아서 즉시 교회에 갖다 바쳤습니다. 그는 이제 집 없이 살아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을 산 사람이 이사 날짜를 잡으려고 무당을 찾아갔답니다. 그런데 무당이 하는 말이, “당신 그 집에 들어가면 죽어. 그 집에 들어가면 안 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집 산 사람이 머슴을 찾아와 무르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머슴은 이미 집 판 값, 쌀 2가마니를 하나님께 바쳐버렸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 집 산 사람은 무당 말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집을 판 머슴이 그냥 그 집에 눌러앉아 그대로 살면서 정말 무섭게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고 100배로 받을 줄로 믿었습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도 이런 모습을 보고, 아주 세게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물질에 복을 받아 차례차례로 논을 사들여 땅 부자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분에게는 소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신 분이 선생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 되는 것보다 더 나은 게 있습니다. 아예 학교를 지어 이사장님이 되십시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중고등학교를 지어 이사장이 됐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을 거느리는 이사장이 된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11:1,2) 또 믿음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딤전 6:12).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바로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붙잡고 살기 위하여 나와 싸우고 환경과 싸우는 것입니다. 원수마귀는 믿음을 빼앗기 위하여 계속 공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정복
본문 9절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10명의 족장들은 가나안 사람들을 보고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가나안 백성은 대장부들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메뚜기와 같다고 스스로 자포자기하였습니다. 심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하나님, 민족, 자신을 저버렸습니다. 싸우지도 않고 손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겪은 부정적인 경험들은 ‘두려움의 사이클’이 시작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비누나 세제를 들고 다니며 팔다가 실패를 경험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그는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그가 고객들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 영업사원이거나 각 가정을 심방 하는 목사라면, 그 옛날 어린 시절의 실패가 두려움을 초래할 것입니다. 거절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믿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의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메뚜기와 밥'은 얼마나 대조됩니까? 이는 손쉽게 가나안을 정복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입니다.
오늘 여러분을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 건강, 물질, 돈, 일, 환경, 어떤 문제들입니까? 여러분은 결코 ‘메뚜기’가 아닙니다. 이러한 염려의 대상들은 여러분에게 대장부가 아니라 이제는 ‘여러분의 밥’입니다. ‘밥’을 두려워하거나 도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밥은 먹는 것입니다. 힘과 건강의 도구입니다. 밥을 먹어야 힘이 생기고 더욱 건강해 집니다. 오늘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이 여러분의 밥이 되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시험이고 독약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평안함을 주십니다. 사람과 세상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하는 승리자가 되기를 축원 드립니다.
염려는 ‘목을 꽉 조른다.’의 뜻입니다. 염려는 약국에 가서 ‘신경안정제’를 찾게 합니다. 염려는 ‘마약과 술’을 부르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염려는 뼈를 마르게 합니다(잠17:22). 염려는 ‘두려움’과 친구입니다. 염려는 사람을 파괴하는 ‘괴물’입니다. 사람들은 질병으로 죽기보다 질병에 대한 염려로 죽습니다. 염려는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적입니다. 염려가 많은 사람은 큰일을 못합니다. 염려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불신앙입니다. 자! 지금부터 염려병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니라”(눅10:41) 딱! 답이 나왔지요? 많은 일을 하지 말고 딱 한 가지만 집중하여 하십시오.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몇 가지에만 집중하십시오. 염려란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생각입니다.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어야합니다.
본문 9절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를 거역하는 것은 여호와의 약속을 믿지 않고 여호와의 뜻을 거부하는 악행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찍이 여호와는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사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에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지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바꾸거나 깨뜨릴 수 없습니다. 사람이 부모, 어른, 주의 종,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어느 누구도, 어떠한 경우에라도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생 최대의 실수, 죄악을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여호와를 거역한 10명의 족장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거역의 결과는 죽음과 멸망입니다.
어떤 교회의 교인들이 너무 불평이 너무 많아서 목사님께 와서 자꾸 누구 험담을 하고 욕을 하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어느 날 기도하다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교인 불평록’이라는 공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와서 뭐 불평을 하면 “아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다 적겠습니다.” 하면서 다 적었습니다. “집사님께서 말씀하는 것, 어느 권사님이 어떤 일은 덕이 안 된다는데 지금 제가 적습니다.” 그리고 싸인하라고,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싸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싸인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불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으십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불평하고 원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귀를 기울입니다.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책을 저술한 철학자 앙리 베르크송은 사람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는데, 간단합니다. 하나는 닫힌 마음의 사람이요, 또 하나는 열린 마음의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마음을 닫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고독합니다. 이 사람은 교만합니다. 동시에 절망합니다. 그런가하면 마음을 열고 사는 사람, 이 사람은 사람이 반갑습니다. 여러분, 사람 만나는 것이 반가우면 스스로가 열린 사람인 줄 알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거든 자신에게 문제가 생긴 줄 아십시오. 이것은 우울증 제1단계입니다. 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닫게 될 때 거기서 많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본문 9절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여호수아와 갈렙이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를 ‘임마누엘’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친구, 가족, 성도가 함께 있어도 기쁘고 행복하고 힘이 저절로 솟아오릅니다.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오늘도 하나님은 여기에, 여러분, 가정, 생업, 우리 교회,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십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14:28).” 이 말씀이 오늘 말씀의 결론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하나님께서는 모두 다 듣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한 말씀 속에서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과 결과가 꼭 있다는 것을 계시해주고 계십니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의 말하는 소리가 대기권 안에 저장이 되어 녹음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우리의 선악 간에 행한 대로 심판을 받을 때 우리가 한 말들을 낱낱이 끄집어내서 그 한 말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창조적이고 사랑과 위로의 말에 대해서는 큰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한 말을 다 들으시고 말한 대로 행하신다고 했으니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믿음의 생각 믿음의 언어를 사용하는 축복된 성도가 됩시다.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하자. (요한복음 7:37-39) (0) | 2016.06.30 |
|---|---|
| [스크랩] 나에게 도움이 오는 곳 (시121:1-8) (0) | 2016.06.30 |
| [스크랩] 꼭 필요한 경건의 훈련 (디모데전서 4:8-10) (0) | 2016.06.30 |
| [스크랩] 보배 피로 거듭난 인생 (베드로 전서 1:18-23) (0) | 2016.06.30 |
| [스크랩] 영적 전쟁 (에베소서 6:10-18) (0) | 2016.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