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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꼭 필요한 경건의 훈련 (디모데전서 4:8-10)

하나님아들 2016. 6. 30. 17:04

sg131020      꼭 필요한 경건의 훈련 (디모데전서 4:8-10)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할 말씀의 주제는 경건입니다. 경건이란 말이 성경에서 사용된 횟수가 약 102회가 되는 것으로 보아 경건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이 많아지니 너는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 또 디모데전서 3:16절에서는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경건의 비밀이 얼마나 큰지 -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경건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건한 삶이 중요한지는 알기에 경건의 모양을 갖추려 고는 하지만, 경건의 능력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후 진정한 경건은 금욕이나 은둔생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과 기도와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성경 말씀을 통해 강조 하였습니다(딤전 4:5). 이것을 잘 실천한 사람들이 청교도들입니다. 이들은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묵상하고 가족과 자신을 위해 기도하고 남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였습니다. 주일을 철저하게 성수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가족처럼 돌보는 일을 힘썼습니다. 특히 가족과 함께 절제와 내핍(耐乏)생활을 힘썼으며 근면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평양에 최권능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온 평양 거리를 다니시면서 ‘예수 천당’을 외치며 전도하셨던 유명한 분이십니다. 최 목사님이 신사참배의 문제로 경찰에 잡혀 고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고문하는 순경이 매를 때릴 때마다 최 목사님은 ‘예수’, ‘천당’ 하면서 매를 맞으셨습니다. 고문하는 순경이 하도 기가 막혀서 최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매를 맞으면서도 ‘예수 천당’을 하느냐? 이에 대한 목사님의 대답이 또한 명언이셨습니다. ‘내 몸에는 예수가 꽉 차 있어서 움직일 때마다 튀어 나오니 듣기 싫으면 때리지 말아라.’ 정말 명언 중의 명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예수로 가득 찬 사람이야말로 경건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는 가진 사람입니다.

 

 

경건의 의미

 

경건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인데 그 뜻은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경건이 무엇인가? 하고 사전에서 찾아보니, 두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는 holiness(거룩하심)이고 하나는 piety(경외)입니다. holiness는 구별되었다는 뜻이고 piety는 존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즉 언제나 하나님을 예배라는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교회에서 예배할 때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자세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경건이란 말은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를 말합니다. 흔히 헬라에서 종교에 대하여 말할 때 사용된 말인데 이것은 가장 높은 분에 대한 경외 혹은 존경, 예배 그리고 순종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을 연습하라”는 말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존경, 예배와 순종을 통해서 우리 인간의 기본 태도를 바로 가지기를 연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이 경건이란 말을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완전하고도 아름다운 태도로 생각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경건이라는 말이 믿음이라는 말과 같이 사용되어 뜻도 같습니다. 바른 믿음 생활이 바로 경건 생활입니다. 굳이 구분하다면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요 경건은 그 믿음에서 나오는 생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기독교의 덕목 가운데 가장 높은 것을 경건이라고 했습니다.

 

경건하기 위해서는?

 

①경건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유언으로 남김 말씀입니다.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②경건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불복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뒤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경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타락했다, 하나님의 곁은 떠났다고 합니다. 경건은 이처럼 잃어버린 경건성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③경건은 두려운 마음과 존경의 마음을 조화시키는 것입니다. 두렵다는 말은 무섭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분을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아마 우리말로 표현한다는 어렵다는 말일 것입니다. 대부분 며느리가 시아버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어려워합니다. 이것은 무서워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처럼 무섭다는 말과 어렵다는 말은 다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알되, 경외하는 마음 다시 말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상소리를 하면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을 대할 때,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좋기도 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그 분을 높여야 합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④경건은 진실입니다. 약1:26절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경건은 진실을 생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성도에게 진실이 없으면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스스로 경건하게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며 자기 양심을 속인 예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 하와도 그랬고 가인도 그랬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도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그랬습니다. 특히 가룟 유다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을 원하십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하나님께서 보실 때 바람직한 경건은 두 가지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죄악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믿음이 자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경건이란 말은 한 마디로 하면 ‘말씀을 따라 사는 거룩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세기 구라파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당시의 구라파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구라파에서는 페스트를 만연시킨 것은 유태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유태인은 흑사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태인이 흑사병에 잘 감염되지 않았던 이유는 극히 간단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구라파인의 생활은 야만적이었습니다. 위생관념이 없어 목욕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서민들은 비누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하니 얼마나 불결한 생활이었나 하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유태인은 오래 전부터 목욕을 하고 식사 전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생활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여호와께 감사 드려야 하고 가까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몸을 깨끗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규칙이며 신앙생활의 습관이었습니다. 즉 경건한 삶, 평소에 몸을 깨끗이 하는 습관이 그들을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해준 원인이 된 것입니다.

 

경건의 훈련

 

경건을 “연습하다” “훈련하다”는 말은 헬라어 “귐나조”인데 여기서 온 말이 체육관을 의미하는 영어 “귐나지움”입니다. 영적인 경건생활도 이러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착념해야 합니다(5절, 13절). 착념(着念)하라는 말은 그 일에 온갖 마음과 뜻을 집중하라(give attention)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경건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연습"이라는 동사는 원래 '벗는다'는 말에서 나왔는데 이는 운동하기 위해서 옷을 벗는다는 뜻입니다. 연습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계획된 과정을 반복하여 훈련하고 실습과 실험을 하여 익숙하고 숙달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방면에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과 연습이 있어야 합니다. 피아니스트는 훌륭한 연주를 하기 위하여 피아노 건반을 쉬지 않고 두드립니다. 권투 선수는 챔피온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백을 두들깁니다. 야구 선수는 안타와 홈런을 치기 위하여 열심히 방망이로 때리는 연습을 합니다.

 

 

본문 8-9절을 보면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훈련과 연습도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경건에 이르는 훈련과 연습은 범사에 유익하니 곧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하다고 합니다. 경건훈련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육체의 연습이라는 말은 육체를 단련시키기 위해서 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꾸준한 육체의 훈련은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좋은 경기 결과를 낳습니다. 그러나 그런 육체의 훈련보다 더 중요한 것이 경건의 훈련입니다. 경건의 연습입니다. 육체의 훈련은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해 주고 어떤 경기에서 승리하게 해 주지만, 경건의 훈련은 “이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영원한 세상에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보장해 준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연습을 계속해서 거룩한 삶을 살면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과 상급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 창고에 있는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경건에 이르기를 훈련하면 금생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는 훈련이 잘 되게 되면 신앙생활을 더욱 잘 하게 될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이라든지, 쉬지 않고 기도생활을 하는 것이라든지, 말씀생활을 하는 것이라든지, 전도생활을 하는 것이라든지, 성도 간에 교제생활을 하는 것이라든지, 하나님의 일을 봉사하는 일을 하든지 간에 그야말로 범사에 큰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경건 훈련을 잘 하게 되면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큰 유익을 가져 올 것입니다.

 

 

막스 비어의 <행복한 위선자>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비양심적인 악인 로드 죠오지 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음뿐 아니라 행동에도 야비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얼굴만 보아도 사람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아름답고 순결한 미어리라는 소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얼굴이 저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의 아내가 될 수는 없어!” 하고 그를 거절했습니다. 로드 죠오지 헬은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고심한 끝에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인자하게 보이는 가면을 쓰고 미어리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게 된 그는 날마다 그의 위선을 감추고 참을성 있게 너그럽게 보이려고 힘썼습니다. 좋은 사람같이 보이려고 끊임없이 그의 나쁜 성질을 억눌렀습니다. 어느 날 옛 친구가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로드 죠오지 헬의 가면을 무자비하게 벗겨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가면이 벗겨졌을 때 거기에는 거룩한 얼굴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얘기는 소설이지만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날마다 노력했던 만큼의 선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격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경건의 능력이 주는 것

 

첫째, 경건의 능력은 금생과 내생에 받을 수 있는 축복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망령되고” 하는 말을 했는데, 망령이란 말은 직역하면, 영이 망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인데, 왜 영이 잘 되지 못하고 망했을까요? 마귀가 망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 망한 영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살려주셨습니다. 그 다음에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쓸데없는 소리에 시간을 보냅니다. 괜히 아무 필요도 없는 소리에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은 저주받은 인간이, 지옥에 갈 인간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내생의 영원한 구원의 약속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둘째, 경건의 능력은 마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마귀들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합니다. 여러분은 잠을 자지만 마귀는 잠을 자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쉬고 있지만 마귀는 쉬지 않습니다. 이 마귀가 할 수 있는 대로 삼킬 자를 찾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이 믿음이 없는가? 어떤 사람이 시험에 들었는가? 어떤 사람이 불만불평이 있는가? 하는 것을 전부 색출해서, 이런 사람을 자기의 부하로 만듭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이러한 마귀의 공격을 막아 버립니다.

 

셋째, 경건의 능력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 구원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야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지옥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지옥문이 닫히고 천국문이 열립니다. 이러한 경건의 능력을 갖고 영생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그래서 경건의 능력은 죄에서, 지옥에서, 가난에서, 병에서 다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른다고 말씀했습니다.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7-18) 그러면 이 능력을 어떻게 얻을까요? 가만히 앉아있으면 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얻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경건의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건의 연습은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습니다(딤전4:8)”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지독한 훈련을 받은 군인을 가리켜서 우리나라에서는 해병대라고 합니다. 그래서 귀신 잡는 해병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 잡는 해병대를 잡는 군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특수부대입니다. 이 특수부대 요원은 번개처럼 공격합니다. 어디서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만큼 훈련을 많이 받습니다. 루이스 스미스는 성도가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서너 해가 지난 한 자매에 대해 한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생활의 긴장과 공허 때문에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주님께 도움을 구했을 때. 성령님께서는 그녀가 전에는 한 번도 유의하지 않았던 이사야 30장을 주의 깊게 읽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사 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고 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30분간을 경건의 시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했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위대함, 능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몇 가지 복잡한 문제로 가득 찬 머리로 그녀는 홍해를 건너던 이스라엘 자손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수십만의 백성들이 바다를 건너게 하셨는가?”를 깨달았을 때 그녀는 말했습니다. “나는 그분이 나의 하루 중에 일어날 어떤 홍해든지 안전하게 건너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경건의 시간을 끝낼 때에는 확신, 자신,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의 신경쇠약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곧 영감과 능력으로 넘치는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은 그녀가 신경쇠약의 위험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구체적인 경건의 훈련

 

(1) 기도와 구제를 통하여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에게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고넬료의 경건의 훈련은 기도의 삶이었습니다. 경건의 삶에서 기도의 삶을 뺄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하나님을 향하는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경건의 훈련을 받는다고 할 때는 바로 기도의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만 가지지 말고 경건의 능력을 가지는 것은 다만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경건의 훈련을 받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3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착념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착념할 때에 경건해집니다. 경건은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읽고 보고 순종할 때에 경건이 만들어집니다. 인간 스스로 착하게 행동하고 고행을 통해 경건해지는 것이 아닌 진정한 경건은 거룩하신 말씀을 붙잡고 나아갈 때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 경건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에 경건의 훈련이 됩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 훈련을 연단이라는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롬5:3-4) 경건의 훈련은 평안하고 안일할 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핍박과 고난의 현실 속에서 더 빛나게 됩니다. 아프간에 선교여행을 갔던 사람들이 지금의 고난과 핍박을 예상하지 못하고 선교지로 떠났을 것입니다. 진정 선교는 앞으로 닥칠 고난과 죽음 앞에서도 후회하지 않도록 담대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트라이얀 황제의 기독교인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남아 있다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았을 때 로마의 황제는 기독교인에 대한 정확한 실상을 왕에게 보고하라고 지시 중요한 내용을 요약해서 보고하였다합니다. 그들은 결코 도적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간음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결코 부패하지 않고 깨끗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사랑했습니다. 이처럼 높은 도덕관을 가진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정확히 들었던 트라이얀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핍박 하려던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고 합니다. 무엇이 이 황제의 생각을 바꾸었습니까? 그는 기독교인들의 경건생활에 진정으로 감복 했던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여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기에 벅차고 어렵다고 여겨지겠지만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물러가듯이 성도는 경건한 삶을 통해서 승리할 수 있으며 그와 그 자손들이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과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내 삶을 가장 보람 있고 축복된 삶으로 이끄는 것이 경건의 훈련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않고 열심히 경건훈련을 쌓는 믿음의 형제들이 됩시다.

 

 

 

출처 : 지저스보이(Jesusboy)
글쓴이 : 물맷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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