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g131010 성령의 강물이 흐르게 하자. (요한복음 7:37-39)
사람의 몸의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체중이 70kg인 사람은 50kg짜리 물통을 하나씩 달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조금 비싸도 마트나 백화점에 있는 몸에 좋은 물을 사서 마시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밥을 먹지 않고 40일 금식기도 해도 죽지 않지만, 물을 마시지 않고는 며칠을 버틸 수 없습니다. 물은 우리 몸의 윤활유와 같은 기능을 합니다. 폐에 있는 산소를 흡수하여 나르고, 피를 운반하며, 영양분을 온 몸에 골고루 배분하며, 노폐물을 땀과 소변으로 배출시킵니다. 또, 음식물의 소화, 흡수, 체온조절, 관절보호 등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물입니다. 식물도 물이 없으면 죽습니다. 물은 곧 생명입니다. 그리고 몸속에 흐르는 피의 98%가 물입니다. 사람이 어머니 태에 있을 때에 6주까지는 인간의 몸이 95% 이물이라고 합니다.
물이 없는 곳에는 어떤 생명도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왜 지구 안에만 생명이 있습니까? 다른 별들에는 물이 없기 때문에 생명이 살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생수가 있는 곳에는 생명이 살아 움직입니다. 인간의 육신의 생명이 물 없이는 살 수 없다면,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생수가 없이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4대 문명의 발상지도 물이 풍부한 강이 있는 곳입니다. 중국의 황하강을 중심으로 한 황하문명, 인도의 인더스강을 중심으로 한 인더스 문명,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을 중심으로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강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 모두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에덴동산에서 강이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갈라져서 네 강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첫째가 비손강입니다. 넘쳐흐른다는 뜻입니다. 둘째가 기혼강입니다. 터져 나온다는 뜻입니다. 셋째 강은 힛데겔입니다. 급류란 뜻입니다. 넷째 강이 유브라데스강입니다. 열매가 풍성하다는 뜻입니다. 넘쳐흐르고, 터져 나오고, 빠르고 힘차게 흐르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는 것이 물입니다. 물은 생명일 뿐 아니라 힘이요 능력이요 은혜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40년을 생활할 때에도 단단한 반석에서 샘물을 쏟아져 200백만 명과 사람 수 만큼이나 많았던 가축들이 먹고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메소보다미아 나홀 성(창24:10-11)에 이르렀을 때에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훗날 이삭의 아들 야곱이 사랑하는 사람 라헬을 만난 곳도 우물가였습니다. 모세도 아기 때에 갈대 상자에 넣어져서 강물에 버려졌을 때에 강가에 나와 목욕하던 바로왕의 딸을 만나 구조 받게 되고 공주의 아들이 됩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강물은 왕자가 되는 축복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40세에 광야로 도망갔을 때에 아름다운 여인 십보라를 만난 곳도 우물가였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버림받았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구원 받은 곳도 우물가였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셔라.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초막절이 끝나는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일주일간 계속되는 이 명절 기간 중에 행한 독특한 의식 가운데 하나는 우물에서 물을 길러 성전에 바치는 의식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일종의 물의 축제였습니다. 그것은 추수가 끝난 바로 그 절기 직후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팔레스타인의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기 곧 겨울에 충분한 비가 내려야 밀과 보리가 잘 자랄 뿐 아니라, 포도와 그 밖의 과일 농사도 풍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물을 긷는 의식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비가 충분히 내리기를 기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의식의 의미 역시 역사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바로 광야 생활에서 목말라했던 조상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었던 그 우물을 재현하는 것으로, 그 갈증을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행위로 바꿔 이해한 것입니다. 한 해의 농사와 살림살이, 아니 삶 자체에서 실제적으로 가장 절실한 것을 구하는 기원이요 동시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였던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초막절 축제 기간 동안 매일 종려나무 가지와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제단을 돌면서 행진했습니다. 제사장은 황금 물통을 들고 성전 옆의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을 길어옵니다. 이 때, 백성들은 이사야 12:3 말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라고 낭송합니다. 제사장은 길어온 물을 제단 위에 붓습니다. 그동안 시편 113-118편을 악기 연주에 맞추어 레위인들이 합창으로 노래합니다. 노래 중에 “여호와께 감사하라”(시118:1), “여호와여 이제 구원하소서.”(시118:25) 란 가사가 나올 때, 예배자들은 제단을 향하여 고함을 지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이런 의식을 하면서 제단 주위를 일곱 바퀴 돌았습니다. 여리고성을 일곱 바퀴 돈 것을 기념한 것입니다. 명절 끝 날에 예수께서는 군중들이 부르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12:3)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출애굽 당시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서서 외쳤습니다. 초막절 의식은 추수에 대한 감사, 메마른 광야에서 마실 물을 주셔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념,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육체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지만, 너희들은 지금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있다. 광야같이 메마른 세상을 살고 있는 너희들아, 나에게로 오라, 너희들의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리라.’ 하는 초청의 메시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목마름을 위해 반석에서 생수를 내 주셨는데, 오늘날에는 그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 2-4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예수께서는 광야에서의 생수와 같은 물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광야에서의 물이 단지 육적인 목마름을 해결하는 것이라면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는 영적인 목마름을 영원히 해결하는 생명의 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명수를 와서 마시라고 초대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초대에 아멘으로 응답하여 영적인 생명을 영원토록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은 목마른 사막과 같습니다. 물은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같이 어디에서나 물을 구할 수 있는 나라 사람들은 물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사막에서 죽느냐 사느냐는 물에 달려 있기 때문에 사막에서 물은 절대적입니다. 물이 없어 고생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2/3가 산으로 되어 있어서 물과 맑은 공기를 공급해 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땅은 70% 이상이 사막이나 광야로 되어 있어서 물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마름 때문에 신음하며 삽니다.
본문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4-38)고 말씀하셨습니다. 는 누구든지 예수께 와서 예수를 영접하면 각자의 마음에 새로운 물이 흐르는 강을 소유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각자에게 힘과 능력을 주는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심령은 물 댄 동산과 같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심령 속에는 생명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에 보면 믿는 사람의 심령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광야로 흘러내려가는 요단강 근처에는 아름다운 나무가 무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나무속에 요단 강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땅에는 키부스라는 집단농장이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의 농장들은 거친 광야를 개간하여 요단강에서 끌어온 물을 가지고 농사를 짓습니다. 우리 인생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급해 주시는 생명수를 받아 마시지 않으면 이스라엘의 유대광야와 네게브 사막과 같은 메마른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생명수의 은혜를 받은 자의 심령에는 기쁨과 만족과 영원한 노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절)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생수가 되어 우리의 심령을 충만함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
본문에서 예수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38절)고 하셨는데, 이것은 성령에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해석이 좀 난해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말씀입니다. ‘배’는 실제 사람 몸을 말씀합니다. 이는 곧 한 사람의 인격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또 하나의 생수의 강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마치 또 하나의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우리를 친구라 하였습니다(요15: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14:12)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생수의 강이십니다. 예수님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이 강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이 물이 우리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을 마시자마자 우리 안에서도 생수의 강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이 강물을 먹고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생수의 강을 마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그들이 생수의 강이 되어 로마 전역에서 목마른 다른 사람들에게 이 생명수를 마시도록 복음을 전하여 살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39절입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생수의 강의 역사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령 시대입니다. 이제 성령 하나님께서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고 그래서 우리 안에서 생수가 흘러 넘쳐 생수의 강이 되어 흐릅니다.
정신과 의사인 폴 트루니에의 책을 보면 그에게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대개의 환자는 그 병이 괴로웠던 과거의 경험이나 어렸을 때 받았던 고통이나 충격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그들의 의식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내어 고치는 것이 일방적인 치료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과거를 분석해 보아도 그녀의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정신과 의사이면서 크리스챤인 폴 트루니에는 그 여자와 기도하였습니다. 그때 그 여자가 예수를 영접하고 자기의 죄를 트루니에에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트루니에의 사랑의 기도에 많은 세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도 고치지 못했던 그녀는 갑자기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어요. 이처럼 황홀한 자유와 기쁨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모르고 살았어요. 예수님이 나를 고쳐주셨고 나는 주님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여인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생명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요 7:37-39에 "물"이 무엇인지를 잘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잘 되고, 목마르지 않고 활기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은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1-2에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 충만한 성도는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받고 살게 됩니다. 로마서 8:26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생수입니다. 성령은 큰 강물과 같습니다. 성령은 큰 바다와 같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면에서 풍요로워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깊은 은혜가 임합니다. 늘 불안 초조 걱정 근심하던 마음에 평화가 임하여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떠나면 그 때부터는 메마른 심령이 됩니다. 비가오지 않으면 시골 논바닥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버립니다. 성령이 떠나면 그때부터는 온통 나의 삶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자꾸만 황폐해집니다. 메마른 심령이 되고 강퍅해집니다. 별 일도 아닌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게 되고, 화를 내게 되고, 미운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빨리 무릎을 꿇고 성령 충만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곧 회복되실 것입니다. 찬송가 210장 2절에 보면, "생명 샘이 흘러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언제든지 솟아 나와 부족함이 없도다. 이런 물이 흘러가니 목마를 자 누구랴. 주의 은혜 풍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생명 샘은 성령의 생수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강물 같은 풍성한 은혜가 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생수입니다. 물의 특징은 탁월한 적응성과 유연성에 있습니다. 물은 추우면 얼고, 더우면 수증기가 되고, 공기 중에는 수증기로 떠 있고, 땅에 내릴 때는 비로 내리며, 어디든지 틈만 있으면 스며들어 가고, 바위가 가로막으면 피해 가고 웅덩이가 있으면 갇혀 있다가도 넘치면 낮은 곳을 향해 흘러 내려가는 뛰어난 적응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받은 성도는 어디든 잘 적응하고 누구든지 잘 어울리고 대인관계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도 유연성 있게 잘 적응하고 대처할 줄 알게 됩니다.
어떤 성도님이 성령받기 전에는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면 남편과 부딪쳐서 죽어라 하고 싸웠는데, 성령 받고 나니까, 술을 먹고 들어오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러서 곤히 잠들게 하곤 했답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남편이 술버릇이 고쳐지고 마침내 술을 끊고 예수를 믿더랍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어려운 현실에도 잘 적응을 하게 됩니다. 까다롭게 구는 사람도 잘 응수하고 포용하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성령을 받으면 자신이 죽어야 할 순간에 잘 죽고, 참아야 할 상황에 잘 참게 됩니다. 피해야 할 상황은 피하게 되고, 돌아가야 할 상황에 돌아가고, 양보할 상황에 잘 양보하게 됩니다. 성령 받으면 참 유연해지고 자유가 옵니다. 성령은 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물은 우리를 깨끗하게 합니다. 정결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씻어 줍니다. 성령이 오시면 머리도 말끔하게 씻어집니다. 가슴도 씻어집니다. 양심도 씻어집니다. 신앙의 묻은 때가 다 성령으로 깨끗해집니다. 사사기 15:18-19에 보면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이고 목이 말랐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 목말라 죽을 것 같습니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샘물을 터뜨리셔서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삼손은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엔학고레의 뜻은 "부르짖은 자의 샘" 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엔학고레 즉 부르짖음을 통해 성령의 샘을 얻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영육 간에 목마를 때마다 삼손처럼 부르짖으면 성령의 생명수가 터져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다 부르짖어 기도하다가 성령의 생수를 마시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성령은 인격자이십니다. 우리에게 그냥 오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네게 가도 좋으냐?" 우리가 "성령님 환영합니다. 지금 속히 오시옵소서" 라고 내가 원할 때 내 속에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계3:20절에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인격적인 성령님이 우리에게 들어오는 통로는 기도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들어 올 때는 자기 맘대로 옵니다. 마귀는 인격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문을 두드리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속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인격적으로 우리 마음을 두드리십니다. 성령님께 마음 문을 여는 사람은 마귀를 이길 수가 있지만, 성령님을 향해 문을 닫는 사람은 마귀에게 열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 다락방에서 간절히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요엘 선지자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지금도 성령이 오실 것을 믿고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사모하며 기도하다보면 어느 순간 성령께서 임하십니다.
고든 맥도널드(Gordon McDonald) 목사님이 쓴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이란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플로리다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어느 날 아침에 끔찍한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아파트 바로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함몰되는 광경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함몰 웅덩이”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오랜 가뭄으로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이 없을 때 생기는 현상인데, 그 현상이 자기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깊은 웅덩이로 도로가 함몰되어버렸습니다. 그것도 모른 채 달려오던 자동차들이 계속해서 그 웅덩이로 빠져듭니다.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 거대한 함몰 웅덩이를 만들어 우리 삶의 모든 축복과 행복을 가 집어삼키고 있는데도, 마치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우리의 삶에 행복이 사라지고 있습니까? 내 영혼에 ‘함몰 웅덩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내 삶에 기쁨이 없습니까? 기쁨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함몰 웅덩이’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생수의 강이 흘러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살면 인생이 함몰되어가는 불행을 막을 수 있습니다.
‘20세기 복음주의 지성 운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에 금박으로 인쇄해야 할 말씀이 있다면 오늘 본문이야말로 그 중에 하나”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의 생명수가 흘러가도록 주님 앞에 나와서 말씀의 은혜 예배의 은혜, 찬송과 기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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