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방향성이다 .사랑은 방향을 가지고 흐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이 자녀에게로 흐르고, 스승의 사랑이 제자에게 흐른다. 사랑에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의 방향성만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잘못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진정한 사랑은 알아야 한다 .아는 것 만큼 사랑을 할 수 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알아야 하고, 내가 부족하고 채워야 할 것들을 알아야 한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을 알아야 한다.
신앙도 마찬가지 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호세아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을 힘써 알면, 그 분을 사랑하고 그 분의 새 계명을 이룰 수 있다. 요 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변질되고 퇴색한 세상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면 결코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옛날에 거북이를 사랑한 토끼가 있었다. 토끼는 혼자 속으로만 사랑했기 때문에 아무도 토끼가 거북이를 사랑하는 줄 몰랐고, 거북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토끼에게는 한 가지 아픔이 있었다. 그것은 거북이가 자기의 느린 걸음을 너무 자학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토끼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토끼는 거북이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어느 날 거북이에게 말했다. "거북아! 나랑 달리기 해보지 않을래!" 그날 따라 거북이는. 질 때는 지더라도 토끼와 같이 달려봐야지 하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한번 붙어보자!" 드디어 경주가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토끼는 저만치 앞서갔다. 그러면서도 뒤따라오는 거북이만 생각했다. "포기하면 어떡하지! 중간쯤 가서 기다려주자!" 그런데 그냥 눈을 뜨고 거북이를 쳐다보면서 기다리면 거북이가 자존심이 상할까봐 토끼는 길에 누워서 자는 척을 했다. 그래서 거북이가 가까이 와서 자기를 깨워주고 같이 나란히 언덕으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나 거북이는 자기 옆을 지나면서도 자기를 깨우지 않았다. 자는 척 하던 토끼는 눈물을 흘렸다. 결국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게 되었다. 경주 후에 동네 동물 식구들과 후세 사람들로부터 거북이는 "근면하고 성실하다"는 칭찬을 들었고, 토끼는 "교만하고 경솔하다"는 욕을 먹었다. 그러나 토끼는 남몰래 눈물을 흘리며 그 모든 비난을 감수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거북이의 기쁨이 자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티 내지 않는 것이 사랑이고, 소리 없는 헌신이 사랑이고, 양보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하는 대상이 높여지고 내가 무너지기를 기뻐하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 마음이 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고, 우리도 그런 주님의 마음을 가지면 내 신앙생활과 가정생활과 교회생활에는 결코 실패와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태초에 인간은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놀라운 권세를 주셨고(창 1:28),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는 심히 좋아하셨다(창 1:31).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므로 죄가 인간 세계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간은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자학하고, 한과 상처와 다툼으로 신음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에 내려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출발하시고, 인생의 경주를 같이 달려가시면서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시다가 삶의 중간쯤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피를 흘려 돌아가셨다.
그처럼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이 있었다. 우리는 그런 사랑을 받는 존재이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 거북이와 같아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 사랑을 생각하며 우리는 어떤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고 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시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랴 3:17)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유난히 자신의 자녀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런 사람들을 요즘 "아들 바보, 딸 바보"라고 한다지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한없는 인자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저 사랑만 하시는 것은 아니다. 말로만 사랑하거나 무능한 사랑을 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것 만큼 우리와 가까이 하시고, 구원을 이루시는 행동과 강력한 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자식을 위해 염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신 권능으로 이끄시는 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요. 또한, 하나님의 기쁨, 사랑, 즐거움은 그분의 자녀된 '나'로 부터 시작됨을 잊지말아야 하겠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세상 그 어떤 피조물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라보시며 기뻐하셨다.
우리의 존재감, 우리의 친밀함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 성숙한 사랑은 나의 감정이 아닌 상대방의 감정과 요구에도 부응하다.
하나님의 기쁨이 '나'임을 알 때, 더욱 힘써 '나'를 돌아보고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죄의 모습과 세속의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즐거워하시는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야 하겠다. 창조주의 위엄과 권위보다 자식 사랑의 아비 마음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자식사랑이 아닐까요? 세상 살며 경험하는 낙심과 아픔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되고 치유되며, 새 힘 공급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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