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6장 1~2절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에베소서 2장 3~22절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은혜(恩惠):Grace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발적이고도, 제한 받는 일 없는 사랑의 은사(선물).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그 죄와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사죄와 생명을 주심을말한다.그것은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신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은혜의 압축이시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를 믿는 것에 의해 의롭다 함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갖게 되는 것이다(갈 2:16,요 3:16기타).
은혜라는 말의 그리스도교적인 어의(語意)가 완전하게 전개되는데 있어서 가장 공허한 이는 바울사도이다.
구약성경에는 은혜를 의미하는 세가지 명사가 있다. 그 중[헨- (chen)]은 하나님께서 경건한자(시 4:3,26:11,기타), 고생하고 있는 자(시 6:2,25:16기타)에게 호의로써 권고하심을 의미하고, [라하밈- (rach mim)]은 특히 죄의 사유에 대해 언급하며(시 51:3,79:8,미 7:19,출34:6기타), [헤세드 (chesed)]는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긍휼)이심을 강조하나, 그러나, 그 사랑(긍휼)은 의를 배제하지 않는다(렘 9:24,시 112:4기타).
특히 [은혜]로 역되어 있는 [헨-]은, 고마움, 호의, 은고(恩顧)의 뜻도 있고, 그것을 사람에게서 받는 경우(창 39:4)와 하나님께서 받는 경우(창 6:8)가 있는데, 후자에 있어서는 위에서 본대로, 받는자가 경건 의로운 자임이 조건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있어서 신약성경의 은혜에 내용적으로 가장 가까운 말은, [인자](仁慈)로 역되어 있는 [헤세드]이다. 이것은 원칙적으로 계약을 지키는 백성에 대하여 주어지는 것이데, 예외로서 죄를 범한 다윗에 대하여(삼하 7:15), 불복종한 백성에 대해서도(사 54:8)약속되어 있다.신약성서에 있어서의 그리스어 명사[카리스 (charis)]는, 일반적인 용법에서는 감촉 좋음,매력도 의미하고 있고, 신약성서 중에서도 그러한 의미로 씌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골 4:6-[부드러운 말], [은혜스러운말]).
또 호의, 은고(gracious care or help)의 의미도 있으므로, 칠십인역(그리스역 성서 Septuagina)에서는 [헨-]의 역어로서 쓰이고, 신약 성서에서도 같은용법이 보여진다(눅 1:30[은혜], 2:52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행 2:37[호감]). [카리스]는 또한 이러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가지게 되었다(눅 17:9,고전10:30).
일반 그리스어에서는 [신(神)들에게 감사한다](cavri" toi'" qeoi'")라는 종교적인 표현이 있었는데, 이것이 신약성서에서는 [하나님(단수)께 감사]로 그리스도교적으로 변형하여 씌여져 있다(롬 6:17,고전 15:57,고후 8:16).
신약성경 독자(獨自)의 용법에 대해 먼저 거론치 않으면 안되는 것은, 바울의 편지이다. 은혜라는 말이 바울 이외의 저자에 의해 전부 모두 51회 사용되어 있는데 대하여, 바울의 편지에는 101회나 사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 용어가 바울적인 색채를 강하게 가지고 있음을알 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특징적인 것은, 그것이 먼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라는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그에게(고전 15:10,엡 3:7),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고후6:1,8:1,9:14)주어진 것이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다 명확하게표현하는 것과 다름없다. 바울은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표현도 하고있다(살후 1:12,롬 1:7등의 편지의 처음 인사 참조).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씌어져 있는 것은, 편지의 끝맺음의 축복에 있어서 인데(고후 13:13,갈6:13,엡 6:23,빌 4:21,살전 5:26,살후 3:18,본 1:25등), 그 은혜의 내용을 직접 말하고 있는것은, 고후 8:9이다. -[너희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다. 그리스도는 부요하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그것은 그가 가난하게 되심으로 너희를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또, 헬레니즘시대의 편지의 인사에는, [카이레 caivre(기뻐하라)]가 씌어져 있는데,바울이 그것을 같은 어근에서 나온 [카리스]로 바꾸었다는 것은 특별한 일로, 그 배후에 그의 은혜의 체험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바울에게 있어서 어찌하여 은혜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하면, 그것은 자력(自力)으로는 얻을 수 없는 의롭다 하심(롬 3:24), 또는 구원(엡 2:5)을 가능케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로 말미암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와 동의어이다(엡 2:8). 같은 이유에서 은혜는 율볍과도(롬 6:14-15), 행함과도(롬 11:6)대립한다.
또 은혜는 죄사함 받은자를 새로운 사명 위해 분발케 하는 것이다(롬 1:5,고전 3:10,15:9-10,갈 2:9,엡 3:7-8).자기 자신에 무력을 느끼는 때도, 이 은혜는[충분]하다(고후 12:9). 바울의 경우의 사도직에 한(限)하지 않고, 각양의 [카리스마](cavrisma 은사)가 은혜로 말미암아 교회에 주어져 있다(롬12:6-8,고전 12:28-31참조).
또 그리스도인의 위치해 있는 상황, 그것이 은혜라고 말해지고 있다(롬 5:2,행 13:43,벧젠 3:7, 5:12 참조).
은혜의 성격은 자유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에 있고, 보수(報酬)와는 구별된다(롬 4:4). 거기서 단순한 은사(도-론 엡 2:8)보다는, 자유로운 은사로 역할 수가 있는[도레아](derea)의 편이 많이 씌어져 있다(롬 5:15,고후 9:14,엡 3:7,4:7).
은혜에 대해서는 당연히 [주여졌다]는표현이 언제나 되어 있다. 또 그것은 풍성히 주어진 것으로서, [풍성(넘침)](롬 5:15), [더욱풍성(넘침)](고후 4:15), [지극히 풍성](엡 2:7)이라는 표현이 씌어져 있다.
은혜가 주어지는조건은 다만 하나 신앙인데, 신앙 그것도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할 수가 있다(빌 1:29,행18:27참조). 바울에게는, 예정설의 근거로 되는 것 같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를 강조하는 사상이 확실히 존재한다(롬 9-11장,특히9:10-13,11:5-6).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인간편의 책임도 경시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는다](갈 2:21),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말라](고후 6:1).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로서, 우리들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어야 할 것이 권해지고 있다(엡 4:29-듣는 사람에게 은혜가되도록 하라).
거기서 cavri"는 [선물](고전 16:3,고후 8:19), [은혜로운 사업](고후 8:19)의 뜻으로도 씌어지게 되었다. 목회서신을 바울서신과 구별하는 학자도 있으나, 그 [은혜]의 용법은 아주 바울적이다. 마태와 마가의 두 복음에는 이 말은 개무(皆無)하다.
누가복음에는 6회 나오고 있는데, 특별히 성서적인 용법으로는 씌어 있지 않다. 요한복음에는 서언의 부문에 나와 있고(1:4-17), [진리](참)와 결합하여, 율법과 대조되어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칠십인역(Septuaginta)에서와 같이 사용된 일이 많은데, 바울적으로 씌어진 경우도 있다.
베드로전서는, 바울서신 이외에서는 가장 용례가 많고, 또 그 이외에도, 사도행전과 함께 가장 바울에 가깝다. 성서에 있어서의 은헤의 사상은, 위헤 말한 특정한 용어의 범위보다도 훨씬 광범하다. 구약성서에 있어서도 값없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구가되어 있는 곳이 있다(시 32,51,130,143편).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사야의 [주(여호와)의 종의 노래](사 42:1-4,49:1-6,50:4-9, 52:13-53:12) 중에도 말해져 있다.
에스겔도 불신의 백성에 대한 성결과 신생의 약속을 말하고 있다(36:25-29). 로마서는 이교도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미칠 것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선택 자체도 무슨 공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 은혜로 말미암는다.
은혜의 가르치심은 에수의 말씀 중에서 철저한 교의를 찾을 수가 있는데(마 20:1-16,눅 15:11-24,18:14),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현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컨대, 은혜란 하나님의 역사(일)하심의 총체인 것으로서 가장 넓은 의미에 있어서는 창조의 은혜도 포함한다. 그러나, 창조를 은혜로서 받아 들이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의 계시와 성령의 역사에 의해 불러 일으킨 바 되는 신앙이다.
가장 협의에 있어서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있어서 보여지신 하나님의 화해(revoniliation)의 역사(일)하심인 것으로서, 그것은 죄인을 의롭다 하시고, 용납할 수 없는 자를 용납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화해에 있어서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동적인 일(역사)을 하신 것으로서, 인간은 거기에 응답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인각측에서는 아무런 전제도 필요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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