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이란?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면서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 모든 기독교 목회자와 신도들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 믿음에 대하여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지구상에 있는 모든 신학교나 교회에서 이 “믿음”에 대해서 바르게 알지 못해 정확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이 병들어 죽어 가면서 타락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 역사에서 이 “믿음”에 대하여 바르게 아는 사람이 없고 정확하게 가르쳤던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도들이 이 “믿음”에 대하여 배우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믿음”을 얻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망하고 부질없는 헛짓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출발이 “믿음”을 얻는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상에는 “믿음”이 없어 출발도 못하고 있는 기독교 신도들이 모래알처럼 많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서 바르게 알려 드립니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믿음”은 헬라어 “피스테위오”와 “피스티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 기록된 “믿음”은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생활하면서 사람의 마음에 얻어지는 믿음과는 본질상 다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이 세상에 있는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알지 못하고? 인정 못하면? “믿음”에 대해서 알 수 없고 또 얻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내 자신의 마음에서 예수님 말씀이 믿어져야만 성경에 기록된 “믿음”을 알 수 있고 이 세상 믿음과 구별하여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 말씀이 내 마음에 믿어져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신학교 선생과 목회자들이 있어도 이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믿음”에 대해서 바른 설교나 글이나 책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믿음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내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부모를 믿고, 형제와 아내와 자식을 믿으며, 직장 상사나 동료와 부하를 믿고, 하늘은 새가 날고, 땅에는 호랑이가 살고, 바다에는 고래가 산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 외 모든 사물과 현실과 세상 이치를 사람들이 자신의 눈과 귀와 생각과 마음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믿는 것을 이 세상에서 얻어지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교회에 다녀야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이 세상 믿음입니다. 내 자신이 교회에 등록하여 일요일 날에 예배당 의자에 앉아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하는 것도 역시 이 세상 믿음입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인정하고 싶지 않고? 깜작 놀라 황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며 정확하게 이 세상 믿음입니다. 여기에 증거는 이 책에서 차근차근 자세히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믿음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믿음을 말합니다. 혹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어? 미리 알려 드립니다.
저의 글을 읽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하는 이 믿음과 “어떻게 내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 세상 믿음인가?” 의심하면서 저의 글을 비방하고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이런 사람들이 의심을 많이 하리라 봅니다. 자칭 하나님을 믿고 또 알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이름 높은 신학자나, 목회자나, 또는 교회를 오래 다니고 직분이 높거나, 십일조와 헌금 잘 내고 전도도 많이 하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심을 더 많이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의 글에 대하여 의심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아예 없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무리 외쳐도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믿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불변하는 하나님 법칙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 순서대로 자동으로 알게 됩니다. 다만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인가?” 이 말을 항상 머릿속에 염두에 두면서 읽지 않으면 이 인터넷 책은 끝까지 읽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예수님 말씀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수록, 자신의 양심이 더러울수록, 의심이 많을수록 이 사람들 마음에 화가 나고? 또는 저의 글이 무슨 이단이 쓴 글인가?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생각하고 노와 분이 생기고 분통이 터져 저의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참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알려 드리지만 저는 하나님께 “복음 전하는 자”로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예수님 말씀을 지키는 제 자신이 이 글을 쓰기 때문에 기독교 역사에서 처음 보는 책이라 여러분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참 복음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칼로 도려내듯 아프게 하고 쓰라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 신도들이 가짜 복음과 예수님의 반쪽 복음만 듣고 살아왔기 때문에 저의 글이 이상하게 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가짜 기독교 신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저의 글을 바르게 읽고 바른 마음으로 따라 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먼저 이 땅에 하나님 말씀을 갖고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 말씀부터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불변하는 하나님 법칙입니다. 그럼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와 신학자와 신도들이 예수님 말씀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 말씀을 가짜로 믿고 살아왔는지? 확인해 봅시다.
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2,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3, “나 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4,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여기에 기록된 1번부터 4번 까지 예수님의 핵심 복음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러분은 1번에서 4번까지의 예수님 말씀 중 어느 말씀이 믿어집니까? 전부 다 믿어집니까? 자신의 마음속에 진정으로 믿어집니까? 나는 믿어진다고 확실하게 말 할 수 있습니까? 4번에는 “미워하는 자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인 지옥에 간다고 했는데 이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니면 믿어지지 않습니까? 혹시 내 마음에 인정이 됩니까? 아니면 어느 말씀을 믿고 싶습니까?
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님은 믿는데 하나님 말씀을 갖고 이 땅에 오신 구세주이신 예수님 말씀이 인정되지 않고 믿고 싶지 않다면? 또는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다면? 내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아예 없는 것입니다. 자기 신분이 신학자나 목회자가 아니라 선지자라 해도 “믿음”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척 시늉은 낼 수 있지만 그 마음속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불변하는 하나님 법칙입니다.
이 법칙 때문에 여러분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지킬 수 없고 또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를 가장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필히 지옥에 보낸다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괜찮다고 우기면서 내 자신은 오늘도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와 신도들이 세상 사람들 보다 더 하나님께 거짓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우기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말씀도 인정도? 지키지도? 않고 살면서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 하나로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성령을 받았다고 거짓말로 주장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나 돼지나 모두 하나님께 성령을 받았다고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소가 비웃을 일입니다. 하나님께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예수님 말씀 중 어느 말씀을 인정하고 지키고 있습니까? 한 획 한 말씀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까? 예수님 말씀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고, 지키지 않고 오직 십자가를 세워 만든 건물인 교회를 맹신하고 살아가는 가짜신앙인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왜? “믿음”에 대하여 알리고 가르치면서 “거짓말”에 대해 먼저 설명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얻으려면 내 입에서 거짓말이 끊어져야 “믿음”이 얻어지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습니다. 항상 허전하고 공허하게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 주장이 거짓인지? 여러분 스스로 마음을 확인해 보면 즉시 밝혀집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와 신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 말씀을 갖고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려 찾아오신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이 내 마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믿어지지 않는다면 큰 문제 아닙니까? 그리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는 과연 기독교 신앙인이 맞는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예수님 복음이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가? 무엇이 문제인가?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전 세계 기독교 신도들이 이 믿음의 문제를? 알지 못하고, 해결하지 못하고, 얻지 못하여 위대한 기독교 신앙이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 변질되었고, 전 세계 기독교 교회는? 예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친목단체로 변해 버렸습니다. 제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핵심 복음인 이 말씀은 가짜들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면 이 말씀의 뜻을 바르게 알고 있습니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요8:51)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 출발하여 내 자신이 천국에서 영생이 얻어집니다. 이 말씀을 불순종하고 벗어나면? 모두 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살다 죄와 함께 죽게 되어 있다는 엄청나게 중요한 예수님의 핵심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고 교회에는 다니고는 있지만 예수님 핵심 복음은 인정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내 마음엔 믿음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이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1 번부터 4 번까지 한 글자 한 획이 내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고 중하다고 느껴질 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얻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성경 전체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한 획 한 글자가 내 목숨 보다 더 중하고 귀하게 느껴지고 인정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1번부터 4번까지 예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인정이 되고, 받아들이고, 따르고, 지켜지는 사람만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마음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사람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이 세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면서 아무리 “믿습니다. 아멘” 외쳐 보지만 돌아서면 내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하고, 불안하며, 진정으로 하나님이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내 자신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멘” 하면서 외치는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고 약속이며 내 자신의 의지일 뿐이지 성경에서 말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한 “믿음”은 예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자연스럽게 믿어지고 또 예수님 말씀이 지켜질 때 내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자가 되고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며 예수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예 모르고 살아가는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들과 신학교 선생들이 바르게 가르치지 못해 여러분이 앞에서 말한 1번부터 4번 까지 예수님 말씀이 왜? 내 마음에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인정이 되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지를? 모르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신학교 선생이나 목회자가 1번부터 4번까지 예수님 말씀을 믿고 지키는 사람이 있다면? 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이미 1번부터 4번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을 주장하는 설교나 글이나 책이 나와 있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보셨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저주하고 용서 못하는 죄가 곧 4번에 기록된 죄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저주하는 항목은 “모든 거짓말”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불과 유황에 타는 못인 지옥에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1번부터 4번까지 예수님 말씀을 인정하고 믿고 지키는 사람에게는? “모든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 사람을 다시 만들어 주십니다. 이 책을 쓰는 목적이 여러분 입에서 “거짓말”을 사라지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거짓말이 사라져야 예수님 말씀이 믿어지고 지켜지며 내 마음에 하나님이 믿어집니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하나님은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내 자신이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내 마음에 믿어지기는커녕 예수님 말씀 그 자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 말이 거짓인지? 스스로 확인해 보면 즉시 밝혀집니다.
이 법칙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사람” 을 가장 저주하고 용서하지 않는다고 성경에 수없이 기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도들은 거짓말을 못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거미의 꽁지에서 나오는 거미줄처럼 내 입에서 거짓말이 줄줄 나온다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구원을 갖고 오셨지만 한편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가장 저주하고 성경에는 수없이 많이 거짓말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을 믿는 내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살아간다면? 이것은 모순 중에 모순 아닙니까? 귀가 막힐 일 아닙니까? 통탄할 일 아닙니까? 기독교 신도들이 이 세상 사람과 똑같이 거짓말하고 사는 것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성경 구약과 신약에 거짓말하는 사람을 가장 저주하고 필히 지옥에 보낸다고 하셨는데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 목회자와 신학자와 신도들이 거짓말을 하고 살아간다면? 비극 중에 비극이요, 모순 중에 모순이며, 무엇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아닙니까?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에 대하여 전 세계 기독교에 있는 신학교 선생들과 목회자와 신도들은 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지? 모두 다 입이 없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기의 모든 원인은? 예수님 복음을 가르치고 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허락받지 못한 기독교 내에 가짜 선생과 가짜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자들이 이 세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도무지 알지 못해 희한한 헛짓을 가르쳐 왔던 것입니다. 그 증거는? 이것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 신도들은 교회에 열심히 다녀야 믿음이 많고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내야만 믿음이 많은 줄 알고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고 또 그렇게 신도들을 훈련을 시켜왔던 것이며 신도들에게 전도와 봉사를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고 온갖 프로그램과 조직을 만들어 생고생을 시켜 온 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이 지구상에 있는 교회가 돈 있은 사람들만 다니는 하나의 친목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증거는? 이것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와 신도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또한 인정도 하지 못하고 지키지 못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지키지 못하면? 예수님과 하나님은 내 마음에 진정으로 믿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죽는 그날 까지 내 마음은 허전하고 공허하게 하나님과 예수님은 내 마음에서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 하나님의 법칙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부자들이 모이는 친목 단체로 변질된 것입니다.
저의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과연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거짓 없이 자신 있게 “나는 하나님이 믿어진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1번부터 4번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이 믿어지고 지켜집니까? 먼저 저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나서 저의 글을 의심하기를 바랍니다. 만약 1번부터 4번 까지 예수님 말씀이 자신의 마음에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저의 글을 의심하거나, 평가할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1 번에서 4 번까지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이 내 마음에 믿어지는 사람은 저의 글을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복음이 믿어지는 사람에게는? 저의 글이 너무나 초보적이기 때문에 괜히 시간 낭비입니다. 하지만 1 번에서 4 번까지 기록된 예수님의 복음이 내 마음에 믿어지지 않고, 또한 지켜지지 않고 내 입에서 거짓말이 나오는 사람은? 자기 신분이 목회자 아니라 선지자라 해도 저의 글을 읽고 따라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내 자신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또 천국에 들어가려면 말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사람이 교회에만 다니면? 그 사람 마음에 하나님이 자동으로 믿어집니까? 아니면 예수님이 믿어집니까? 혹시 예수님 말씀도 믿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내 마음에 하나님이 진정으로 믿어지는 사람은? 저의 글을 여기까지만 읽으셔야 합니다. 괜히 시간 낭비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 말씀이 지켜지고 하나님이 믿어지는 사람한테는? 저의 글은 아무런 효험이 없는 글이며 너무나 초보적인 글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수십 년 동안 다니고? 직분을 받고? 전도를 열심히 해도?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녀도? 교회에 헌금과 십일조를 잘 내도? 찬양과 봉사를 드려도? 목사가 되어도? 신학자가 되어도? 자신의 마음에 하나님이 진정으로 믿어지지 않는 사람과? 왜? 내 마음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사람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얻고 싶은 사람은? 저의 글을 읽고 나면 그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의 글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따라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까지 알려 드렸는데? 무슨 이단이 쓴 글인가? 욕과, 비방과, 험담의 말을 하고? 의심을 품는 사람들은? 전부 마귀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이유와 원인은? 이 책 본문에서 밝혀집니다. 저의 글은 지나가는 나그네나 개나 돼지들에게 권하는 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개나 돼지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 말고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 말씀을 지키려는 사람과, 하나님께 성령을 받고 싶은 사람과, 하나님 믿는 “믿음”을 확실하게 얻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이 글을 권하고 알리고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얻어지는가? 그 해답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각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차례대로 알아봅시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여기서 말씀한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님 말씀에서 이 겨자씨는?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아주 작은 씨 이며 이 세상 모든 씨앗 중에 제일 작은 씨입니다. 주님은 너희 믿음이 겨자씨 한 알만큼 있었다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이 겨자씨만큼 정도의 적은 믿음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예 믿음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믿음이 아예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수제자이신 사도 베드로는 주님이 붙잡혀 있는 곳에서 천한 여자 종에게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 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마26:72)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이 여자여 내가 저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눅22:57)
이렇게 맹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며 그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 했습니다. 이전에 사도 베드로가 했던 말은 찾아봅시다. 전부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목숨도 바치겠다고 결심한 말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26:33)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
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막14:31)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이렇게 예수님에게 약속의 말씀을 했지만 베드로가 믿음이 있었다면 이 말씀을 해 놓고 예수님을 부인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수제자이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8-9)
여기서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제자인 빌립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이때는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시고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인 도마에게 찾아와서 하신 말씀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을 확인하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린 구멍 속에 손을 넣어 보고 나서야 믿겠다고 한 말을 미리 아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막16:11)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막16:13)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28:16-17)
“그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16:14)
이렇듯 예수님과 삼년 반을 같이 지낸 제자들도 믿음이 이 정도인데 온갖 죄를 짓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믿음이야 오죽 하겠습니까? 그래도 나는 믿음이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 하나님께 성령을 받았거나
둘, 바다에 뽕나무를 심어 놓고 자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바다에 뽕나무를 심어 놓고 자랑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요즘 교회에서 자칭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거나, 교회에서 직분이 높은 사람일수록, 헌금과 십일조를 많이 내는 사람일수록, 찬양과 봉사와 전도와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이름 있는 교회 목사들은 자신의 믿음이 크고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로 믿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과 열심을 갖고 종교인 생활하면서 남들 앞에 자랑까지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성령을 받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믿음이 처음부터 아예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남들 앞에 자랑하고 싶어 그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랑이 하나님께 죄가 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1장 3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랑”하는 사람을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 정해 놓았습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럼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 말씀을 찾아 더 알아봅시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느니라”(마17:20)
이 말씀은 제자들이 어찌하여 우리는 귀신을 못 쫒아 냅니까? 하고 물었을 때 주님이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믿음이 겨자씨만큼도 없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 주님이 제자들한테 겨자씨만큼 보다 믿음이 없다고 하셨는가? 그리고 우리는 신앙생활 수십 년을 해도 믿음이 자라지 않고 거의 없다시피 하는지?
주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은 주님을 믿지 못했고 그중 가장 똑똑한 제자 한 명은 돈을 받고 주님을 팔아넘기기 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군병들에게 잡혀가는 모습을 보고, 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든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실망 속에 전부 도망을 갔고, 그중 복음 전도하는 자로 사역을 했던 한 청년은 예수님을 따르다가 군병들에게 잡힐 때 옷이 벗겨져 알몸으로 도망을 쳤다고 (마26:56, 막14:50-52)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또 주님의 육신의 형제들도 믿지 못했으며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7:5)
또한 오병이어 기적을 베풀던 때 따라다니던 수많은 군중들도 결국에는 믿지 못했고 이 군중들은 나중에 주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이라고 아우성을 쳤던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기적을 두 눈으로 확인 했었던 제자들과 많은 군중은 주님이 죽는 그날 전부 돌아 섰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26:34)
그래서 베드로가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천한 여자 종과 하속들에게 부인하는 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과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삼년 반이나 가르침을 받고,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 다니고, 또 죽어서 무덤 속에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려내는 기적을 눈으로 보았으며, 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 같이 생활하고 주님에게 가르침을 받았어도 제자들이 믿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교회에 나와 믿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아무리 아우성을 쳐봐도 결국에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앉아 있을 때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 교회를 벗어나 일상생활로 돌아가면 죄짓고 살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됩니다. 이러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해답은 영의 법칙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내가 “믿습니다.” 한다고 믿어집니까? 처음에는 믿어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믿어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얼마나 외쳤습니까? 믿습니다. 또 믿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웃들만 시끄럽게 만들었지 소득 있었습니까? 교회 생활 하면서 믿음 때문에 얼마나 고생 했습니까? 목사님들이 말합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이 강해야 합니다. 믿음이 큰 사람이 돼야 합니다.
십일조와 헌금 많이 내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면 믿음이 크다고 가르치고 또 우리는 그렇게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내 자신을 가르치는 목사님은 믿음이 많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겨자씨 한 알 보다 믿음이 없다고 주님이 직접 말씀하셨는데 우리 주위에 계신 목사님들 중에 주님의 제자들 보다 믿음이 큰 사람 있을까요? 그리고 내 자신의 믿음은 큽니까? 이 믿음은 우리 인간 마음대로 믿고 싶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영의 법칙은 우리 인간의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눈과 귀, 머리, 가슴, 마음, 어느 곳으로도 완벽하게 믿어지지 않고 성경에 기록한 예수님의 말씀대로 겨자씨 보다 믿음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믿음이 아예 없다고 표현해야 정확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믿어지지 않게 태어 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 속에 있는 의심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조상이신 아담과 이브 때 지은 원죄 때문이고 죄의 뿌리인 의심으로 인해 우리 인간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의심을 갖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죄의 뿌리가 되는 의심이 문제인지 알아봅시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마14:31)
이 말씀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면서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고 있을 때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까 주님이 구해 주시면서 왜 의심했냐고 책망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마21:21)
이 말씀은 주님이 시장해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보니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해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어찌하여 나무가 말랐나이까? 하고 물으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누구든지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할 수 있고 산이 들려서 바다에 던진다고 해도 그렇게 될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에서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의심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찾아봅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여기서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죄의 뿌리인 의심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는 믿음이 없고 또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또 마음에 죄의 뿌리인 의심을 뽑아 버리지 못하고 살면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내 자신을 생각해봅시다. 이 세상을 다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과 내 자신만은 못 속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많고 의심이 없습니까? 모든 인간은 혼자 힘으로 믿음이란? 이 문제를 해결 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 믿습니다. 나는 믿음이 좋습니다. 나는 오래 신앙생활을 했으니까 믿음이 크고 많다고 착각하고 그렇게 인정하면서 자랑을 합니다. 내 마음에 진정한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또 의심을 갖고 살면서 주여 저는 주님을 믿습니다. 주여 저는 믿음이 많고 또 강하고 큰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짓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고 있지만 자신의 양심을 속이면서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고 외칩니다. 즉 하나님을 속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틀린 말 즉 거짓말을 하면서 기도를 하니까 기도가 상달되지 않고 내 자신이 변화 받지 못한 것이며 또 제대로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성령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원인 때문에 전 세계 기독교 목회자와 신학자와 신도들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제일 많이 하고 살아갑니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와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회개하고 또 죄 짓고 또다시 회개하면서 죄의 짐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평생 죄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체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올 때마다 회개한다고 죄가 없어질까요? 하나님께서 나의 회개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 주시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즉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는 내 자신이 계속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법칙이며 내가 죄 사함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는? 하나님과 내 자신이 가장 먼저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원인은? 우리 마음에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없다고 하셨고 마음에 의심이 있어 믿음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전부 믿지 못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솔직해야 합니다. 또 정직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우리는 믿음이 없고 가진 것은 의심 밖에 없다고 정직하게 자백해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바르게 가르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나만은 믿음이 확실하게 있다고 착각하면서 무관심 속에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목사와 신학자와 신도들이 말입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교인이 거짓말을 더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하나님께 성령도 받지 못했고, 믿음도 얻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 기독교 모든 신앙인들이 이 사실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면서 “믿습니다.”주장하는 것은 허울 좋은 거짓 외투이며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거짓증거 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 모두 거짓의 외투를 벗어버려야 내 자신이 하나님께 참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 2:3,4).
이것은 절망적인 상황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구원을 참고 기다리는 사람 은 살 것이라고 하는 구원의 소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 이 '믿음'에 해당하는 '애무나'라는 낱말은 다른 곳에서는 '성실', '신실', '진실', '진리', '미쁘심'(공동, 표준)이라는 개념으로 번역되었다(신 32:4; 시 33:4; 37:3; 96:13; 98:3; 100:5; 119:30; 잠 12:17; 사 59:4; 렘 5:1; 7:28; 삼상 26:23; 시 40:10; 88:11 등등).
"의인은 나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 <히브리어 성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 것이다." <LXX>
히브리어 성경에 나타나 있는 '나의 믿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신실성'을 뜻한다고 할 것이다. 즉 의인은 하나님이 그의 계약 백성에게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성에 근거하여 살 것이고 하는 말이다. 헬라어 성경에 나타나 있는 '그의 믿음'이라는 표현은 '의인의 성실성' 즉 의인이 하나님의 약속에 매달리는 신실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신실성'과 '의인의 신실성'은 별개가 아니고 같은 일의 양면을 각각 나타낸다고 할 것이다. 즉 의인의 신실성은 인간학적인 어떤 독립된 덕목이 아니고 하나님의 신실성에 대하여 응답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할 때에 히브리어 본문과 70인역 본문 사이에 양자책일(兩者擇一)을 하지 않고 그 대신에 소유격 대명사를 생략하고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고 인용했다. 이 말씀을 윤리적 가르침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다. 즉 죄인이나 악인이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인정을 받고 그리하여서 참된 삶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신약성서에서 '믿는 사람들' 또는 '성도들'이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의 수혜자들을 가리키듯이 구약성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 또는 '의인'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대상자들을 가리킨다. 하박국서에서 '의인'이라고 지칭된 이 사람은 사회적 무관계 속에 서 있는 단독자(單獨者)가 아니고 대립과 갈등 관계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 있는 역사적て사회적 존재이다. 이 사실은 하박국서에서 이 의인과 대립관계에 서 있는 자들을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명칭으로 지칭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악인','사납고 성급한 백성',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들', '그 힘으로 자기 신(神)을 삼는 자', '사람을 바다의 어족과 주권자 없는 곤충 같게 하는 자', '낚시와 그물과 초망으로 사람들을
잡는 자', '기뻐하며 그 그물에 제사하며 초망 앞에 분향하는 자', '그 그물을 떨고는 연하여 늘 열국을 살육하는 자', '궤휼하며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그 욕심을 음부처럼 넓히는 자',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 만국을 모으며 만민을 모으는 자',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 '볼모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진 자', '여러 나라를 약탈한 자', '사람의 피를 흘린 자',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자',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 '여러 민족을 멸한 자', '피로 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 '짐승을 두렵게 하여 잔해한 것 곧 사람의 피를 흘리며 땅과 성읍과 그 모든 거민에게 강포를 행한 자'
등등으로 지칭되었다. '의인'은 위에 서술한 것과 같은 그러한 악인에게 마구 짓밟히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현재의 극악한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펼치실 미래를 성실하게 바라본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신약성서에 사용된 '믿다'와 '믿음'
신약성서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관심의 핵심으로 되어 있다.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과 그의 구원 사역에 대하여 인간이 취할 근본적 태도를 표현하는 데 '믿다'라는 동사가 압도적으로 사용되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무엇인가 믿음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장 1~3)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의 기도와 헌신으로 불행한 이웃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땅에는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괴로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늘진 곳에서 살아가는 저들에게 사랑의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정말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은 나눌수록 더 많아지고 고난은 더 나눌수록 줄어집니다. 여러분의 헌신과 충성에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헌신과 충성에 큰 은총으로 보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성경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성경적 믿음이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에는 성경이 내린 믿음의 정의입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이 말씀을 통해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듯알듯하면서 불확실한 실체입니다. 여러분께서 히브리서 11장 1절로 3절을 읽어서 그 내용을 확실히 알수 있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알듯하면서 실제로 모르거든요.
<본론>
1. 믿음의 첫 단계 실상과 증거
첫째로, 믿음의 첫 단계인 실상과 증거를 알아보십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그러므로 믿음은 재출발이 마음 속의 소원이 텃밭이 되는 것입니다. 소원이란 텃밭에 믿음의 꿈나무와 잎과 꽃과 열매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마음 속에 바라는 소원이 믿음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아무 소원도 없으면 안믿어져요. 마음에 뜨거운 소원이 있으면 믿음이 바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에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뜨거운 소원이 있으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이 없는 사람에게 믿음이 있을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먼저 입을 크게 열어야 하나님이 채우시겠다는데 소원이 있어야 입을 크게 열지요. 소원이 없는데 입을 크게 열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떠먹이려고 해도 고개를 돌려 버리는데 어떻게 떠먹입니까? 입을 크게 벌려야지. 마음에 큰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소원과 바라봄의 법칙이 믿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소원과 바라봄은 그 상대가 내게 끌려오든지 내가 끌려가든지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야훼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내가 원하는 바를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바랍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내가 건강을 소원하면 건강해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실제는 없는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나깨나 건강한 내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원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소원이 먼저 있어야 돼요. 소원하고 바라보아야 된다. 소원하고 바라보아야 된다.
저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세울 때 세계적인 교회를 세워야 되겠다고 마음에 간절히 소원하면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늘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교회가 지어지지도 아니하고 교회가 크게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자나깨나 큰 교회가 세워진 것을 마음에 바라보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미쳤다고 그러지요. 그러나 자기는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뜨거운 소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고 바라보면 그대로 됩니다. 믿고 바라보면 그대로 돼요. 구멍가게를 하더라도 내가 구멍가게 성공하려면 구멍가게가 성공하는 것을 믿고 바라봐야 돼요. 아직 성공도 못했어도 크게 성공한 것으로 바라봐야 돼요. 따라 말씀하세요. 믿고 바라보면 그대로 된다. 소원과 바라봄의 법칙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뜨거운 소원은 주님께서 항상 찾으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1절로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는데 이방지역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쉬러 가셨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의 때가 아니므로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예수인 것을 알고 뛰어와서 “주여, 내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으니 내 딸을 고쳐 주시옵소서.” 고함을 치는데 예수님이 대답도 안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자가 제자들을 붙잡고 주님께 부탁을 해서 우리 딸을 좀 고쳐달라고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 여자가 저렇게 울부짖으며 따라오는데 고쳐 주시지요.” 주님이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방인의 때가 안왔으니 못 고쳐준다.” 그런데 그 여자가 예수님이 가신 길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렸습니다. 꿇어앉아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식들에게 줄 떡을 취하여 개에게는 안준다. 너 이방인은 개들이니까 개들에게 아직 자식에게 주는 떡을 줄 수 없다.” “주님 옳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상 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굉장히 설득력있는 말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녀같으면 우리 이방인은 그 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감탄을 했습니다. “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내 소원대로 되리라.” 그러자 그 딸에게서 귀신이 나오고 즉시로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방인의 때가 아니라도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이 귀를 기울여 주시는 것입니다. 되도 좋고 안되고 좋고 밑져야 본전으로 해보자. 그것은 하나님이 나도 밑져야 본전이다. 너의 기도 안들어 주겠다고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뜨거운 소원을 가지고 나오면 하나님이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미국의 아놀드 슈월츠제네거(Arnold Alois Schwarzenegger)는 캘리포니아 지사이면서 영화배우이자 성공한 재벌가인 것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긍정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했어요.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한 번도 그것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힘은 정말 엄청난 것이어서, 저는 처음 참가한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서 마치 우승자가 된 것처럼 대회장을 걸어 다녔습니다. 마음 속으로 이미 수없이 우승 장면을 그려 놓았기 때문에 제가 우승하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우승도 안했는데 자기가 우승한 것처럼 마음에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본다. 영화배우로 진로를 바꾸었을 때에도 성공한 영화배우의 모습을 마음 속에 생생하게 그렸습니다. 영화배우가 되면서 아직 유명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유명하게 된 것으로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늘 성공한 내 자신을 상상하고 느끼면서, 모든 것이 현실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고 또 그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소원과 바라봄의 법칙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그것을 바라보며 나아갈 때 소원이 내게로 다가오거나 아니면 내가 그 소원으로 다가가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바라보는가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만 성경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했으니까 마음에 믿음이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가면 안됩니다. 저는 매일매일 내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는 것을 바라봅니다. 마음에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고 잘될 것을 생각하고 바라봅니다. 없는 것을 있는것처럼 바라봅니다. 그러면 바라봄의 법칙을 쫓아서 내가 바라보는 그것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내가 그 바라보는 목적으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을 바라보아야 돼요. 실패하고 패배하고 고난당하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대로 돼요. 성공한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아야 돼요. 믿고 바라보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서 우리가 믿고 바라보면 얼마나 위대한 힘이 생겨나는지 형언할 수 없습니다.
클로드 브리스톨(Claude M. Bristol)은「신념의 마력」이란 그의 책에서 믿음을 “마음 그림 그리기”라고 말했습니다. 마음 그림 그리기. 믿음이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마음에 그림을 그려보는 것이다. “마음 그림 그리기”란, 우리가 소원하는 것을 생생히 그려서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릴 때까지 쉬지 않고 떠올리는 것입니다. 마음 그림 그리기. 좋은데 시집가려면 좋은 남편을 마음에 그려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림도 안그려보고서 어떻게 좋은데 시집가는 것입니까? 좋은 아내를 얻으려면 좋은 아내를 얻는 것을 마음에 그려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그려보고 믿으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세익스피어는 “미덕을 갖추지 못했다면 가진 척이라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미덕이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해라.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때의 자기의 모습을 이미지로 그려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고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일생을 통해서 저는 뒤를 돌아볼 때,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인 것입니다. 마음에 바라보는 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의 역사인 것이다. 바라봄의 법칙이 없으면 믿음도 역사하지 않습니다. 저는 50 평생을 항상 성공적인 설교자가 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성공적인 설교자가 되지도 않았는데 된 것으로 바라보았어요. 제가 구라파에 갔을 때 구라파에서 제일가는 부흥사가 될 것을 마음에 바라보았습니다. 영국, 불란서,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덴마크 그 생소한 곳에 가서 이미 마음 속에 바라보고 그리고 주님께 감사하고 믿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제일 많은 군중을 모으는 부흥사가 된 것입니다. 구라파에 어느 나라에 가도... 바라봄의 법칙, 미리 마음에 바라본다는 것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이 역사하니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니까 바라봄이 있어야 믿음이 실제가 능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 바라보는 것이 없으면 믿음은 실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루즈벨트는 한 파티에 참석한 후, 이제 목발을 짚지 않고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루즈벨트는 앉은뱅이였거든요. 친구들도 그에게 걷기를 기원하며 지팡이를 선물했습니다. 얼마 후, 타임지는 루스벨트가 지팡이를 짚으며 걷게 된 것을 소개하며 의사와의 대담 기사를 실었습니다. 의사가 루스벨트에게 어떻게 소아마비를 극복했느냐고 묻자 루스벨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용히 운동하고 마사지 하는 것 그리고 일광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제 스스로 병이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자기가 소아마비로 앉은뱅이가 되었는데 나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믿음은 마음으로 소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모습이 정말로 현실 가운데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믿음은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에 그려보고 바라보는 것이다. 굉장히 간단하고 쉬운 것 같지만 사람들 그대로 안하거든요. 언제나 위대한 지도자는 신념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바라보고 거기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성취
둘째로, 믿음의 성취를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3차원의 세계인 것입니다. 1차원은 직선이고 2차원은 평면이고 3차원은 공간이고 4차원부터는 눈에 안보이는 세계인 것입니다. 만물은 믿음이란 4차원의 영적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되지 않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눈에 안보이는 능력이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 말씀 눈에 안보이잖아요. 이 강단이 자기가 스스로 강단이 된 것이 아닙니다. 강단을 만든 분이 있습니다. 이 눈에 보이는 강단을 만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만들었지 누가 하나님이 만들었느냐? 그 사람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이 만들었지요.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신성이 보이는 만물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세계와 모든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3차원의 세계에는 3차원보다 큰 4차원의 세계가 역사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땅이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이 친히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성령은 안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다음부터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3차원의 세계는 시간과 공간과 물질 이것을 말하는데 4차원의 세계는 그 위에 그것을 만든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꿈과 하나님의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이 4차원의 세계를 가지고 우리가 산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여러분의 꿈과 여러분의 믿음과 여러분의 말의 입의 선언 이것은 4차원의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통하여 안보이잖아요. 여러분의 꿈, 안보이잖아요. 여러분의 믿음, 안보이잖아요. 여러분의 말, 안보이잖아요.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이를 통해서 보이는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려면 여러분 먼저 마음 속에 생각이 들어와야 되고 꿈이 있어야 되고 믿어야 되고 입술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속성은 입술로 명령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 산더러 들리어 저 바다로 가라 명해도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로 24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눈에 보이는 환경이 눈에 안보이는 믿음을 통해서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이 산들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라 하면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산은 눈에 보이는 것이요, 믿음은 눈에 안보이지만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창조적인 선언을 하라. 있는 것처럼 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눈에 보이는 세상 만물 3차원의 세계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말씀했지 않습니까? 빛이 생겼지요. 물과 물 사이에 하늘이 생겨나라. 그래서 궁창이 생겨났지요. 땅은 물위에 드러나라. 그러니 땅이 물위에 드러났지요. 해와 달과 별이 있을지어다. 해와 달과 별들이 생겨났습니다. 땅은 생물로 번성하라. 모든 생물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죄를 사하실 때 내가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칠 때도 내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낼 때도 귀신아, 나오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 병자위해 기도하고 난 다음 하나님이 성령이 저에게 계시하는데로 말씀으로 선언을 하지 않습니까? 선언하면 그대로 되잖아요. 말씀으로 선언하면 그대로 됩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생활 속에 말씀의 선언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에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을 입술로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은 물러가라! 성공은 다가오라! 평안이 있을지어다! 건강할지어다! 말로써 선언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특권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로마서 4장 17절에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할 때 목표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마음에 뜨거운 마음으로 소원하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고 믿으면 담대하게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목표를 상실하면 안돼요. 인생을 사는 것도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이 분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는 것은 믿음이 되지를 못합니다. 막연하게 되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 명확한 믿음의 목표가 있어야 우리 마음속에 뜨거운 소원이 일어나고, 그 소원을 바라보며 능치 못함이 없다는 창조적 선언으로 최선을 다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에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믿으라
셋째로,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유한한 시간과 공간과 물질에 소속된 우리들입니다. 우리 육체는 3차원의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 육체는 보고 듣고 말하고 만지고 하는 것 모두 3차원의 세계에 속해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직 동물들과 다른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한한 시간, 공간, 보이지 않는 물질, 영적인 4차원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3차원의 육체 속에 4차원의 영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존재 속사람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후서 5장 7절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일반 사람들은 보는 것으로 다 행하지요.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4차원적으로 살 수있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안보여도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갈바를 몰라도 믿음으로 나갔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1~12)
100살 된 남편 아브라함에게서 90살 된 아내 사라가 어린 아기를 가졌습니다. 될 만한 소리입니까? 요사이 아무리 과학이 발달 되었다 해도 100살 된 노인이 90살 된 아내에게 아들 못 낳습니다. 나는 요사이 우리 한국에 자식 많이 낳는 운동에 총재가 되어서 사람들마다 만나면 자식 많이 낳으라고 격려를 하는데 세월이 달라져요. 옛날에는 아들 딸 차별 말고 하나 놓아 잘 기르자. 그래서 자식 적게 놓는 운동을 했는데 이제는 많이 낳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얼마 있지 아니하면 한국 민족이 이대로 가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적게 낳아서. 그래서 자꾸 외부에서 노동력이 없으니까 외부의 노동력을 수입해 들어오므로 우리 민족보다도 타민족이 더 많아질 수 있어요. 지금 벌써 우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 노동자가 120만이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많이 낳아야 돼요. 낳을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많이 낳아야 돼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아내와 함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3차원의 육체를 믿지 않고 4차원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100살이 된 아브라함에게 90살된 아내를 통해서 이삭을 낳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기적이 언제나 따라오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고 내 앞길 캄캄해도 하나님이 말씀 하셨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믿음 위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셔야만 참 믿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면 어떤 어려운 역경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1980년대부터 미국 뉴욕의 맨하탄에서 사무실을 얻어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영어방송을 미국에서 했는데 돈이 있어야지요. 사무실을 맨하탄 그 비싼 곳에 빌려놓고 사무실 개설해서 방송을 했는데 나는 처음 믿었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축복을 해주셔서 방송을 하게 해줄 줄 믿었는데 아이구 돈은 안 들어오고 세는 내야 되고 굉장히 어려웠었습니다. 그런데 1981년 달라스에서 복음을 전하고 제가 너무너무 괴로워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잠을 잤는데 꿈에 제가 우리 교회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우물을 파면서 저는 이 물이 넘쳐나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마실 수 있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며 깊이 파내려 가는데 바위만 있고 아무리 파도 물이 한방울도 안나와요. 저는 꿈에서 괴로워서 어찌할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가 서 있는 오른편 한곳에서 맑은 물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놀라서 이 물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냐고 물으니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오기를 이 물은 미국에서 넘쳐나오는 물로 내가 애를 쓰고 몸부림치며 부르짖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이다고 말씀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물 걱정하지 말고 담대히 마시라. 내 말을 듣는 자마다 믿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런다음 잠에서 깨어났어요. 아 그러자 그다음부터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들어왔습니다. 영혼에 평안이 들어오고 의심하는 마음에 믿음으로 꽉 들어찼습니다. 그때부터 헌금이 들어오는데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헌금을 100불, 150불, 200불, 300불씩 보내와서 굉장히 돈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집세도 내고 방송비도 내고 하나님 사업을 꾀크게 한적이 있습니다. 그게 너무 잘되었으면 한국에 안들어올뻔 했어요.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마음에 믿음을 주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여러분 생각이 달라지구요, 생각이 할 수 없다. 못한다가 아니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라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이 달라지고 그 다음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바라보게 되고 이루어진 모습을 마음에 새겨서 꿈으로 그리게 되고 그 다음에는 믿게 되고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 잡히는 것 없어도 믿게 되고 그 다음에는 입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시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4차원의 영성인 것입니다. 창조적인 영성인 것입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첫째로, 말씀의 생각이 달라져야 된다.
둘째로, 믿음의 꿈을 꾸어야 된다. 변화된 생각과 행동이 나타난다.
셋째로, 불가능을 믿어야 된다. 하나님을 100% 실뢰해야 한다. 하나님께 항복함
넷째로, 신앙고백을 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이다.
다섯째로, 가능을 주시는 분임으로 하나님이 나의 주인인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
여섯째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기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3차원의 세계가 창조되는 것입니다.
4. 믿음으로 산 사람
넷째로, 믿음으로 산 사람들을 보면 자기의 소원을 마음에 뜨겁게 가지고 마음에 생각이 뚜렷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4차원의 영성에 서서 강렬하게 바라보고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말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다 그렇게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결론>
믿음의 사람은 4차원의 영성을 따라 산 사람들인 것입니다.
생각이 분명해야 하고, 꿈과 환상을 바라보고 살아야 되고, 믿어야 되고, 긍정적인 선언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증거는 모두 영적 4차원의 나타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생활에 실천하면은 점점 익숙해지고 여러분의 기도가 굉장히 파워풀하게 되고 운명과 환경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는 손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하게 믿습니다 믿습니다가 아닌 것입니다. 내 마음의 생각이 말씀으로 긍정적으로 들어차게 되고 뜨거운 소원으로 생각이 달라져야 되고, 그 다음에는 꿈이 있어야 되고
셋째로,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믿어야 되고
넷째, 입술로 선언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가능을 가능케 되고 할 수 없는 것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적인 능력을 활용해야 됩니다. 여러분은 눈에 보이는 그 사람만이 여러분이 아니라 속사람 기적의 사람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사람을 가지고서 믿음으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믿고 꿈꾸고 말 할 수만 있으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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