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3:18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1.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3: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며 근심하지 말고
●신앙생활에 여러 가지의 복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신앙생활 하면 복받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복이 뭘까요? 말씀의 복입니다.
베드로는 신앙생활을 잘 못해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죽었을까요?
●베드로전서의 배경은?
완전한 박해입니다. 참을 수 없고, 피할 수 없는 박해의 상황입니다. 견딜 수 없는 박해의 상황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을 잘 못해서 내리는 고난이 아닙니다.
너무 잘 했더니, 박해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딜레마의 상황에서 베드로는 무엇을 전해야 할까요?
●간단했습니다.
물질의 복이 전부가 아니다. 영생의 복이 진짜 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시다. 믿음 잘 지켜라.
●불황이 오면, 우리의 신앙이 모두 잘못되어서 불황이 오는 것일까요?
그런 기준을 버리세요. 우리가 받을 복은, 하늘의 복, 영생의 복, 말씀의 복입니다. 그 복만 모두 받아 누리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전도할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전도는 정말 힘듭니다.
저도 지금 태신자로 품고 기도하는 분이 있는데, 연락이 잘 되지 않습니다.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제 최우선순위는 전도입니다.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 주보 가지고 다니세요? 설교CD 가지고 다니세요? 전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기회를 주실 지 모릅니다. 놓치면 다음 기회가 있을까요? 아니요. 준비 안 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십니다.
●항상 전도의 마음과 준비를 하고 다니세요.
그리고 만나면 전도하세요. 그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믿음의 삶입니다. 가장 큰 임무, 전도의 임무 제대로 수행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3. 고난을 두려워 하지 말라.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난을 당하면, 벌받았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이거 정말 잘못된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해서 벌받은 것이 아닙니다.
●교회다니면 고난 올까요? 옵니다.
신앙생활 잘 해보려면 고난이 올까요? 옵니다.
욕 안 먹고 교회 다닐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냥 안 다니면 차라리 심방이라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욕먹을 일을 하고 다니지는 마세요.
그런데 욕먹을 일을 피하지는 마세요. 예수님도 욕먹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 서기관들에게... 그래서 의를 위해서 욕먹는 사람을 아주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저 친구 정말 나를 닮았어. 이런 말 좀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일에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면 욕먹습니다. 누군가 욕해요. 피하지 마세요. 그게 의를 위해서 욕먹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복주십니다.
●하나님때문에 욕 좀 먹고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역경을 어떻게 극복할까? (합 2:1-4)
“고통이란 동일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이 있다. 그러나 고통은 동일한 것이지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모독하지만,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고,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고난이 우리의 영적 생활에 많은 유익이 된다는 말입니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인 폴 투르니에르 Paul Tournier, <고통보다 깊은> (Face a la Souffrance) (Creative Suffering)
“고통 자체는 창조적이 아니지만, 고통없이는 창조적인 사람이 될수 없다.”
고통 그 자체가 사람을 성장 시키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고통없이는 사람이 성장 할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고통을 피할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고통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문제에 임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태도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어느 회사에서 유능한 신입 사원을 뽑기 위하여 시험을 쳤습니다.
어려운 필기 시험과 면접을 마친후에 마지막 시험문제를 사장이 직접 내었습니다.
사장이 이들에게 10일간의 기간을 주면서 문제를 내었습니다.
문제는, “사찰에 가서 머리 카락이 하나도 없는 스님들에게 머리빗는 빗을 팔아라”
이게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지원자들은 “이것은 우리를 모독하는 일이다, 말이 안된다.” 하면서 대부분 중도에서 포기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3 사람이 이 문제를 풀고 왔습니다.
1) 1개의 머리 빗을 팔았습니다.
사찰에 가서 스님에게 사정을 하여 하나를 팔았습니다.
2) 10개를 팔았습니다.
사찰에 오는 사람들을 보니 머리카락이 헝클어졌습니다. 이들 중 단정한 머리를 위하여 빗을 산 사람이 10명.
3) 1000개를 팔았습니다.
비결을 물으니, 그 사찰과 산의 그림을 멋있게 빗에다 새겨서 그곳에 여행오는 사람들에게 기념품을 만들어 팔았다고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무슨 마음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나가는가?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현실이 어렵고 많은 역경이 있어도, 쉽게 낙심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여 그 역경을 기회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토니 블레어(Tonny Blair) 전 영국총리 시절에 교육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했던 데이비드 블렁킷은 (David Blunkett)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인 이었습니다.
매우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중증장애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약간의 불편일 뿐이지, 결코 장애가 아니다.”
그러면서 그는 “밤에 불을 켜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원고를 보지 않고 청중을 바라보며연설할 수 있는 건 나만의 장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낙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 갈대아(신바벨로니아)사람들에게 핍박받고 많은 고난을 당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괴로워 하고 있었습니다(하박국1:6). 하나님께서 이방인 갈대아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하박국 선지자의 마음 속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 시대에 유다의 종교, 정치, 문화 할 것 없이 전부가 타락을 하였고,
죄악으로 가득 찼기에 멸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 했음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하박국은 성문 위에 올라가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의 손에 철저하게 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면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기다려라. 정한 때가 있나니, 그리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심판을 넘어서 구원의 역사가 있고 밝은 내일이 있고, 메시아의 나라가 임할 것이다" 말씀하시면서
“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고 하십니다.
이것이 하박국서의 메시지의 중심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어려움과 역경과 때로는 하늘이 무너 내려앉는 듯한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모두 인생의 역경과 고난을 어떻게 이길수 있나요?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길수 있습니다.
많은 고민과 갈등속에 있었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말씀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2절b).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환경을 바꾸시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 말씀을 주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카이로스 모먼트(Kairos Moment)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timing)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3절).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어려움을 이길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나옵니다.
우리의 힘, 우리의 경험, 우리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모든 어려운 환경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승리의 삶을 위해서 매일 매일 QT 하면서 말씀의 인도함을 받고 말씀속에서 위로함을 받고,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나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없고, 말씀 묵상하는 시간도 없이 살아나갑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멀어지면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영혼이 황폐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영혼에 병이 생기고 마음에 병이 생깁니다.
이기심이 생겨나고, 자기가 우상의 존재로 살아나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짜증이 나고 교만해 지기도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이미 현재적 심판입니다.
구약의 사울이 하나님의 은혜로 아말락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난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이겼는데 마치 자기의 공로로 승리했는것 처럼 모든 영광을 자기에게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승리의 축제를 벌리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항상 명심해야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했고, 화려한 삶을 산다고해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그 삶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고 복 주시는 심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좋아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 듣는 일은 절대로 양보하지 말아야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기뻐하시면서 “나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 그리하면 주겠다.”
"Ask for whatever you want me to give you."
그때에 솔로몬 왕이 하나님 앞에서 지혜를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십시오.’
“Give your servant a understanding heart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그런데 히브리 원문으로 보면 ‘메부쉐 미드’라는 말입니다.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Hearing heart’ ‘Understanding mind’
“하나님이여 나에게 듣는 마음을 주십시오. 주의 음성을 듣는 그런 조용한 맘을 주십시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일이 바로 지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나의 고집 나의 형편에 메이지 말고 마음을 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나갈때에 지혜가 생기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지헤로운 성도가 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신앙의 인내로 이길수 있습니다.
3절,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 선지자가 눈을 들어보니 상황은 전혀 호전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지금의 상황은 어렵지만 그러나 미래에 하나님의 크신 뜻이 이루어질것이다는 메시지입니다.
2:14;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
하박국은 물이 바다를 가득한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 온세상에 가득할 것을 먼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박국은 이 약속을 붙잡고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기뻐했습니다.
3:17-18,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환경은 변하지 아니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기다림은 세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기다림은 오기로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결과에 대하여 별로 확신이 없지만 그러나 지금까지 기다려 왔기 때문에 손해보기 싫어서 계속해서 오기로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2) 두 번째 기다리는 기다림은 막연한 자세의 기다림입니다. 모호한 기다림입니다.
내일에 대한 확신이 없는 기다림입니다.
Samuel Beckett의 <고도를 기다리며 Waiting for Godot> 연극이 있습니다.
2막의 짧은 연극인데요, 내용도 별로 없습니다.
그저 무대에 몇 사람이 왔다 같다 하다가 연극을 마칩니다.
2 사람이 작은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립니다.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올지? 외모가 어떠한지?
실제로 오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냥 막연하게 기다립니다. 그리고 끝입니다.
사무엘 베케드는 이 작품으로 1969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떤 평론가가 이 작품에 대하여 평하기를, “이 연극은 한없이 지루한데 결코 자리를 뜰 수 없는 연극,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깊은 내면의 세계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습니다.
Samuel Beckett은 “인생은 본질적으로 비논리적이며, 부조리가 넘치고, 그리고 인간의 언어도 컴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적당하지 아니하다.”
그래서 이것을 부조리 극(Theatre of Absurd)이라고 칭합니다.
사실 우리의 삶 속에는 부조리 한 일이 너무나 많으며,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맺는 모든 인간 관계도 부조리하다. 완전한 의사 소통이란 이루어 질 수도 없다.” 그래서 까뮈(Albert Camus)는 “우리의 부조리는 죽음과 함께 끝난다” 했습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인생의 모든 부조리를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베게트는 이러한 이러한 부조리를 <고도를 기다리며>란 연극을 통하여 묘사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고도를 기다리는데 고도가 무엇인가?
고도는 신이라는 주장도 있어왔고, 희망의 상징이란 주장도 있었다. 자유란 주장도 있었으며, 베케트에게 그것은 2차 대전의 종식이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고도는 각자에게 다른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고도가 있을 수있다고 합니다.
연극속에서 고도는 무엇인가? 그것은 희망이다. 구체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막연한 희망이다.
기다려도 오지 아니하는 희망입니다. 희망 그 자체로만 즐겨야하는 희망입니다. 너무나 막연합니다. 모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현대인들의 삶의 특징입니다.
현대인들은 “내일을 뭔가 나아지겠지” 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매우 막연한 희망속에 살아나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기다림은 이러한 종류의 기다림이 아닙니다.
3) 세 번째 기다림은 분명한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그 기다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성취함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분명한 약속있는 기다림입니다.
분명한 기다림 속에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은 이러한 기다림 속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였고, 그 감격으로 인하여 소망가운데 살았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고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저 우연히, 막연하게 존재하지 아니합니다.
중국의 어느 샤핑센터에 어느 여인이 의자에 앉아서 실크 카페트위에 아름다운 수를 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을 만드는지 전혀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실 한실 엮어나가면서 점차적으로 아름다운 그림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마음대로 하는것이 아니라, 옆에는 조그마한 용지에 전체의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 plan 대로, design 대로 수를 놓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의 현실이 지금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도저히 이해 못하는 상황속에 처해 있다고 해도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멋있는 디자인이 있습니다.
그 디자인을 따라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롭게 창조 해 나가십니다 .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도, 우리가 기다리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엮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믿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 처한다고 해도 지금의 기다림을, 감사함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만이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사람만이 끝까지 참고 인내 할 수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의 훌륭한 설교가요 부흥사인 George Whitefield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설됴자 가운데 한분입니다.
미국에도 몇번이나 와서 조나단 에드워드와 함께 부흥운동을 일으킨 분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설교가 였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하였지만 실패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고, 그리고 건강도 좋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여 옥스포드 대학으로 진학.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근로 장학생은 주로 동급생인 귀족들의 가정의 자녀들에게 밥도 날라주고,
빨래도 해주고, 아침에 깨워주는 일도 하고, 방 청소도 해주는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상당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참고 견디며 좋은 성적으로 공부를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 앞에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다보니 모든 것이 주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끝까지 견딜수 있고, 궁극적으로 승리합니다.
인내로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믿음으로 이길수 있습니다.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종교개혁의 모토가 된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생활도 믿음으로 살아나갑니다.
By faith.
참된 믿음은 우리로하여금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그 순간을 생각하면서 오늘을 살게합니다.
앞으로 우리게게 분명하게 올 그 순간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나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못듣는 말을 듣습니다. 영적인 귀로 듣습니다.
다른 사람이 못보는 것을 봅니다. 믿음으로 봅니다. 믿음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낍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죽을 지경으로 매를 맞고도 정신을 차리면서 찬송을 불렸습니다. 그 신비한 기쁨은 누구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는 현실 사건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버려진 사건이 없습니다. 우연이 없습니다.
내가 실패했던 성공했던, 잘했던 못했던, 누구를 만났던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사건들이 오늘 나에게 필요해서 있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매 순간순간의 일들이 모두 소중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간증하면서 하면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도 믿음으로 살아나가도록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합니다.
(어느 신문의 글을 읽어 보니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최근 뇌생리학자들은(Brain Physiologist)어린 시절의 경험이 커서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를 사랑하고 배려해 주면 뇌에 ‘기쁨의 회로’가 생기지만,
폭행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하면 뇌에 ‘슬픈 느낌, 미움’이 각인된다고 합니다.
영유아기에 아이가 부모 및 주위 어른들로부터 받는 양육과 교육의 질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부모의 긍정지수를 1% 높여라>의 저자 이와자키 겐지 박사는
어린 시절에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그 한을 뇌에 냉동 보관했다가 자기보다 약한 대상이 나타나면 해동하여 복수를 한다고 했다.
지나치게 욕심이 많거나, 비판적이거나 남을 모함하는 사람들은 그 어린시절에 많은 상처가
뇌속에 입력되어 있어서, 그 사람의 성격이 되었고, 삶의 pattern이 되었다고 합니다.
Personality Disorder. 성격 장애자입니다.
한 아이가 긍정적이고 행복한 성격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만 8세가 되기 전에 사랑으로 감싸고 배려해 주며,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그때그때 가르쳐 주는 어른이 주위에 최소한 20명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많은 교육학자들의 주장이다.
여러분 세상의 교육학자들도 어린 시절의 교육을 이처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보다 더욱 우리의 자녀들을 어릴때부터 신앙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의 가정이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믿음의 삶속에 내일의 소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많은 어려움과 역경과 고난이 있습니다. 피할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자세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이길수 있나요?
1. 말씀으로 이길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경륜을 굳게 믿고 인내로서 이길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이길수 있습니다.
이 한주간도 이러한 신앙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마5:1-12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착하고 의롭게 살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된다 해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핍박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이상하고 당황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주님께서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기뻐한다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10)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주님께서는 세상이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에 우리도 미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보복하거나 분노해서는 안 되며 원망하거나 기가 꺾여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세상에 핍박과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것이 복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면 복이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주님 때문에 고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박해와 고난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왜 그것을 기뻐해야 할까요.
진리에 의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싸움들은 이성이나 감정으로가 아니라 진리로 이겨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구원 받으셨습니까?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감정 위에 세우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이 잘되고 기분이 좋을 때, 그리고 은혜 받았을 때는 구원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거나, 죄를 지었을 때는 구원을 받지 못한 것처럼 느낍니다. 감정에 따라서 구원의 확신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구원의 확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진정 나의 구주로 믿고 있다면 구원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단순하고 확실합니까?
이러한 진리는 핍박을 당할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핍박을 당할 때 감정이나 이성으로 대응하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반드시 진리의 말씀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분명하게 기억하며 굳게 붙잡고 있는가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 됩니다.
핍박을 받을 때 감정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던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불로 응답을 받고 바알 선지자들을 심판했습니다. 그 후 엘리야는 왕비 이세벨의 협박을 받게 됩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19:2) 이 협박을 전해들은 엘리야는 심히 두려워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기 생명을 거두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담대하고 능력 있게 승리했던 하나님의 종 엘리야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키신 후에야 엘리야는 계속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 우리의 감정은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의지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상황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당할 때 이성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핍박을 당할 때 우리의 이성은 여러 각도로 추론하고 판단을 내립니다. 대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 것 같습니다. 피해야 할 합당한 이유와 핑계, 타협해야 할 그럴싸한 구실을 만들어냅니다. 타협하고 굴복하는 것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핍박을 이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당할 때 이성적인 생각과 판단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핍박이 올 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과 그 말씀에 대한 확신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이 모든 환난과 핍박을 절대적으로 다스리고 계신다는 것, 주님께서 핍박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이기게 하신다는 것, 고난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를 주시고 상을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핍박을 당할 때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10-11절) 이제 이 핍박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살펴봅시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님
우리 주님은 핍박과 고난과 역경 보다 위에 계시며, 그것들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고난이 주는 아픔과 핍박이 주는 괴로움 보다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더 크고 위대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갈 때 광풍이 불고 파도가 쳤습니다. 배가 곧 뒤집힐 것 같은 급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겁에 질린 제자들이 주님을 깨웠습니다. 주님께서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 지더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막4:39-40)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떤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고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지배하시며 모든 환경을 천국으로 변화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핍박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시고 자비로우신 우리의 왕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 우리는 이 사실을 확실히 기억하고 기뻐하며 이겨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천국시민)이므로
우리가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은 우리의 신분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해줍니다. 주님을 위하여 받는 핍박은 마치 천국 신분증과도 같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과 박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으며, 주님을 닮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받으셨던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인 것입니다. 이 박해야말로 우리가 예수님 편이라는 너무나도 분명한 증거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요15:18-20)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과 욕을 받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종들이요, 예수님의 제자이며 천국시민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12절) 핍박을 당할 때 우리는 “오, 주님! 제가 이런 고난 받는 특권을 갖다니요. 저에게 어떻게 이런 고난의 축복을 주십니까? 이것은 믿음의 대선배들만 가질 수 있었던 특권이었는데 어찌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이런 축복을 주십니까?”라고 감격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행5:40-41)
고난을 통해 깨끗하게 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욱 온전하고 깨끗하게 하시기 위해 이 핍박과 고난을 사용하십니다. 많은 고난을 당한 성도들은 그 신앙과 인격이 깊어지고 주님을 닮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러므로 우리가 시련을 당할 때 기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6-7)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하는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벧전5:10)
다윗은 그가 고난 받기 전에는 제 마음대로 행하다가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는 말씀을 지키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다윗과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 더욱 다듬어지고 성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고난을 통해 우리를 연단하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 고난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게 나타낼 기회이므로
핍박과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믿음을 분명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합니다. 박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빛을 돋보이게 하는 어두운 배경의 역할을 합니다. 모든 일이 다 잘 되어갈 때만 기뻐한다면 우리는 세상의 불신자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기뻐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서 특별한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천국에서의 상급을 생각하고
우리가 핍박 중에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이유는 천국에서 받을 상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성경은 주님을 위해 핍박 받는 사람을 위하여 가장 영광스러운 상이 예비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 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
주님께서 주실 상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핍박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생각하건데 현대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 상을 사모하면서 극심한 핍박까지도 견디고 이겨냈습니다. 죽음까지도 그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천국이 나의(모두의) 것이므로
핍박과 고난은 우리가 장차 가게 될 곳이 어디인가를 증명해줍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어있다는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10절)
팔복 중 첫 번째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입니다. 우리가 받을 상 중에서 가장 큰 상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 천국은 내세에서 영원히 누리는 축복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그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핍박과 고난과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천국의 영광과 축복이 그들에게 임했기 때문에 그들은 핍박과 고난과 순교 가운데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의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핍박을 받는 성도는 천국을 소유하며 누리게 됩니다. 천국을 소유한 성도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고생과 고통도 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을 보상을 생각하며 기뻐합니다. 하물며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어떠하겠습니까?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천국의 임금이신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위로와 기쁨과 놀라운 은혜를 힘입게 됩니다. 그래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박해를 피하지 말라, 뛰어넘고 즐겨라.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모두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히11:36-38) 고난을 당했으나, 그들은 가장 영광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입술로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고 찬송을 하지만, 예수 믿는 일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손해는 극구 사양하려 합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라고 찬양하면서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사양합니다.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면 못하겠다고 돌아서며 화를 내고 불평합니다. 상처나 핍박이나 손해를 조금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이 천박해진 이유는 고난과 핍박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 우리는 분을 내며 복수하거나 낙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잠시 지나가는 것이요, 그 날에 우리에게 예비된 영광스런 상급과 족히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자주 천국을 생각하며 사십니까? 천국을 생각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삶을 좌우하고 있습니까? “기뻐하라. 천국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천국 때문에 관대하며, 핍박을 참으며, 기쁨으로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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