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하나님아들 2016. 6. 4. 11:00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5가지 축복   (2814 )


A.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의 모든 은혜 

 

1.서론


오늘날 사람들은 성탄절을 선물 주고받는 날, 혹은 한 해에 한 번 있는 절기나 행사쯤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 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한 가장이 직장에서 퇴직하고 개인사업을 해 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또 취직을 하려고 일자리도 알아보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거의 일년이 되자 본인도 그만 지쳐버리고, 보는 사람마다 묻는 안부가 질책으로 들려 교회 나가는 것조차 기피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도 도망치듯 일찍 나가 버리고 가족들하고도 대화가 끊긴지 오래 되었습니다
12월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고, 성탄절은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메시지가 들어와 있어서 들어보니 자기 아들의 음성이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된 아들이 아버지를 볼 수가 없으니까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긴 것입니다
"아버지, 왜 요즘 교회도 안나가고 힘이 없으세요? 아버지, 제가 아버지 위해서 항상 기도하고 있으니 다시 힘내세요. 그리고 요번 성탄절에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가요." 
핸드폰을 통해 들은 아들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렇다. 내가 아직 죽은 것도 아닌데. 아직 나에게는 가능성이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절망적인 삶을 살았는가?'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성탄절에 가족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나게 하시고, 나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임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믿음을 얻게 되었고, 희망과 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점점 잘 되어 남을 도와줄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사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절망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드렸던, 아들의 작은 기도가 아버지 마음에 큰 평안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고, 나를 위해서 성탄절의 하나님의 축복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상황에 있다할지라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베푸신 축복의 사건이요, 사랑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시간 성탄절이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가를 말씀을 통해서 전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보면 성탄을 맞이한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순종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으며(1:24; 1:38), 헤롯왕은 두려워하고 소동을 벌였습니다(2:13).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다 알면서도 예비하지 않았습니다(2:46). 동방박사들은 일찍이 별을 보고 찾아와 기쁨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바쳤습니다(2:1011). 목자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2:14)라고 찬양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소식을 전하고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2:1517, 20). 여러분도 부모나 가족, 우리 주변 사람들, 낙심한 사람들에게 성탄절의 메시지를 전하고 도움 주시기를 바랍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성탄기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고 심판과 저주가운데 있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동정녀,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마리아는 호적 하러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진통을 느끼고 아기를 해산할 여관방을 구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관방조차 얻지 못하고 허름한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를 낳아 말구유에 누이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말구유에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축복이 되었습니까? 저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5가지 축복, 구원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 하시는 축복으로 정의 하고자 합니다. 5가지 축복이 성탄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함께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5가지 축복 

1. 구원의 축복 - 죄에서 구원하신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리 인간은 죄악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죄 가운데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부모의 죄, 조상의 죄, 인간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짐승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죄악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어떻게 이 원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이 죄악에서 벗어나 의롭게 살고, 구원받으며, 축복 받으며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므로 우리는 구원의 조건을 얻게 되었고, 어떤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용서함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17절에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멸망에서부터 구원합니다(19:19). 환난에서 구원합니다(삼하 4:9). 또는 죄 가운데서, 저주 가운데서 구원합니다(1:21). 질병 가운데서 구원합니다(5:79).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2:1415).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Luther, Martin ; 14831546)"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용서와 은총을 받지 못하며 아버지께 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도 없고 나갈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 중에서 모성애가 가장 강한 새는 펠리컨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말로 사다새 라고 하는 이 펠리컨은 새끼들에게 줄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가슴살을 뜯어 피와 살을 먹인다고 합니다. 자신은 죽어가면서도 새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펠리컨을 사랑과 희생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비록 내가 죽어서 자식이 산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악가운데 있는 인간이 구원받는다면'이란 조건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죄 가운데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구원받았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 임마누엘의 축복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고난과 슬픔을 당할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약할 때도 하나님께서 같이 계셔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편이 되셔서 죄와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일찍이 이사야서 714절 말씀에 이사야 선지자는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또 마태복음 2820절 말씀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끝날 때까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26:3). 우리의 갈 길도 인도하여 주십니다(48:21). 두려움과 공포가 떠나가게 만들어 주시고(14:9),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2:7).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시고(삼하 18:14), 어떤 경우에든 간에 우리를 형통케 하시고(왕하 18:7), 더 나아가서 우리의 영을 소생케 만들어 주십니다(57:15).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마음에 평강이 있습니다(살후 3:16). 
독일의 사상가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 13791471)"예수가 함께 하면 모든 일이 선하게 되고 아무 어려움도 없지만 예수가 없으면 모든 게 힘들어 진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왜 힘들고 고달픈 인생을 삽니까? 하나님 없이, 예수 없이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작은 문제나 큰 문제나 항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강하게 만들어 주셔서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영국의 성공회 성직자 존 뉴턴(Newton, John ; 17251807)"만일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의 눈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며, 그의 팔은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의 귀는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 그의 사랑은 만족한 것이며, 그의 약속은 불변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유대인들이 머리에 '키파'라고 불리는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좀처럼 벗지를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쓰고, 기도할 때도 쓰고, 걸어갈 때도 씁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키파는 '내 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언제나 그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여러분, 비록 빵떡모자는 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도 항상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어느 나라에 사냥을 좋아하는 한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 죽어갔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꾼이 왕자를 구해서 치료한 뒤 왕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임금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자네가 내 아들을 살려 주었는데 소원이 무엇인고?" 
"임금님, 제가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임금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이니 저희 집에 오셔서 하룻밤 만 묵어가세요." 
임금님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 대궐에서 사람들이 파송되어 좁을 길을 넓히고,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꾼의 부서진 집을 수리해 주었습니다. 이 나무꾼은 어떤 소원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임금님과 하룻밤 만 함께 지내기를 원했을 뿐인데 그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임금님하고 하룻밤만 잔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변화가 없다면 마음속에 하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잠자고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6:3133 참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 잘 믿으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 뜻대로 잘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룻밤이 아니라 일주일, 한달, 1365일 내내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신앙에는 반드시 임마누엘의 축복도 임하게 됩니다

3. 기쁨의 축복 -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2:10) 

오늘날 슬픔, 걱정,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무엇이 진정한 기쁨이 되고 좋은 소식이 되겠습니까
시편 1611절에 다윗 왕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바로 기쁨의 종교입니다. 교회에 나오면서도 기쁨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잘 못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도 마음에 기쁨이 없다면 뭔가 병든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말씀을 믿고 진리가운데 거하면 항상 기쁨이 우리가운데 충만하게 되고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기쁨의 샘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큰 별을 따라서 왔습니다. 마태복음 210절 말씀에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라고 했습니다. 동방박사는 아직 아기 예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별만 보고도 기쁨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쁘고, 듣기만 해도 기쁘고, 마음속에 감동만 받아도 기쁩니다
여러분, 왜 기쁨을 잃었습니까? 집사, 장로, 권사,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하면서도 기쁨을 상실한 채, 빼앗긴 채 삽니다.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511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된 자들은 이 세상을 살 때 마땅히 기뻐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물질을 드릴 때도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대상 29:9).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말씀을 듣게 되니 기쁩니다(15:16). 하늘나라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을 기뻐하며(10:20), 진리 가운데 기뻐하고(고전 13:6), 심지어 고난을 당할 때조차도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뻐해야 합니다(벧전 4:13). 기쁘게 사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Shakespeare, William ; 15641616)"마음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1마일도 못 가서 피곤해 진다."고 했습니다. 왜 인생이 피곤하고 지치게 됩니다. 기쁨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학교 가는 것이 즐거운 학생은 공부 잘 하는 학생입니다. 직장에 나가는 것이 즐거운 사람은 직장에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교회 나올 때 기쁜 사람은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오늘날 기쁨을 잃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됩니다
요즘 의학계에서도 기쁘게 사는 것, 웃으며 사는 것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콜롬비아 장로교병원에서는 <코미디 치료단>까지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에서는 환자들을 즐겁게 하는 '유머치료'를 주제로 대규모 심포지엄도 열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들어보면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우니까 슬퍼진다."고 합니다. 우리는 닭이 울고, 소가 울고, 새가 울며, 심지어는 개구리와 맹꽁이까지 '운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 동물들은 슬플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이 짐승 따라 웁니까? 울지 말고 웃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암세포도 웃는 순간은 팽창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웃어야 건강해지지, 늘 울면서 탄식하고 비관하면 질병을 끌어들여 암세포를 확장시키게 됩니다. 건강하게 살려면 기쁘게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머강사 박인옥 씨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병원에 가도 병명을 알 수 없었습니다. 부인은 문득 '저러다 죽으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서 한잠도 자지 못했습니다. 죽은 다음에 보험금 나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싶어 20개나 되는 보험을 모두 해약하고 그 보험금을 가지고 남편의 회복을 위해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남편이 가는 날까지 편안하고 기쁘고 즐겁게 지내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가 죽을병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은 아내가 그 남편을 기쁘게 해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치료한 약은 바로 '기쁨'이란 약이었습니다. 그 후로 아내는 기쁨이 건강의 요법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연구한 끝에 책을 쓰고 유명한 유머 강사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나 불안,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기쁨'입니다. 우리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웃어야 합니다.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더 만족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의 심리치료연구소 브람 박사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슬픔과 우울증에서 벗어나는가'를 연구를 했습니다. 조사결과 그는 교회생활이 우울증을 없애는데 가장 큰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절에 가는 사람, 혹은 아무 신앙 없는 사람,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도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그래도 제일 얼굴이 훤합니다. 교회 나오면 찬송을 부르고 위로함을 받습니다. 기도를 함으로 마음속의 호소를 하고 말씀을 통해서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오늘날 현대인들의 우울증을 없애는 가장 큰 도움이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병원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아 기쁘게 사시길 바랍니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을 바라보고 오늘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4. 평화의 축복 -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참된 평화란 무엇입니까? 죄악과 가난, 저주, 싸움, 분쟁, 이 혼란한 사회 속에서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사람, 기뻐할 줄 아는 사람에게 평화가 있습니다
이사야 96절 말씀에 이사야는 말했습니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마음 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27절에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평화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평화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빌리 그래함(Graham, Billy ; 1918)목사님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평화는 세상이 가져다 줄 수도 없는 영적인 평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서 평화롭고 안정되게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지구상에서 벌어진 전쟁은 모두 35건이라고 합니다. 이 전쟁으로 2천만 명이 난민이 되어 조국과 고향, 가족을 잃고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국지전도 국지전이지만 인류의 존재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지구를 다 멸망시키고도 남을 '원자폭탄'입니다
한번은 미국 국회에서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독한 오펜하이머 박사를 초빙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원자 폭탄을 막을 수 있는 무기가 있습니까?" 
그러자 박사는 웃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 있습니다. '평화'라는 무기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에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친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사, 여당과 야당 사이에도 평화가 있어야 됩니다. 특히 국가의 평화를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 민국에 평화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북한 사이에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태풍이 한 번 몰아치면 바다 표면에 사는 물고기들은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면서 이리 저리 숨고 야단이 납니다. 그러나 바다 깊이 사는 고기들은 끄떡도 없습니다. 아무런 상관이 없이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얕게 믿으면 걱정, 근심, 교만, 불순종, 죄악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사랑도 얕게 하니까 의심했다가 사랑했다가 미웠다가 원망했다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도 깊게 믿어야 합니다. 깊은 믿음, 반석 같은 믿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5. 부요케 하시는 축복 - 예수님의 가난함을 인하여 부요케 하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자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부자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하면 같은 기독교인데도 불구하고 무슨 기복신앙이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기 자녀가 잘 되기 원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교육시키고 후원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풍족하게, 넉넉하게 만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시편 11213절 말씀에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부요하고 재물이 있고 넉넉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풍족케 하시는 하나님, 나에게도 축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야고보서 25절 말씀에도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상속하시고, 가난한 사람을 택해서 부요케 만드시는 역사를 이루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가 3년 되면 집사라고 합니다. 축복 받아서 집을 사라는 '집사'입니다. 그 다음은 장로입니다. 장로는 장사해서 부자 되라는 '장로'입니다. 권사는 집사 마누라, 장로 마누라 따라다니면서 '집사고 부자 되시오.'라고 권하라는 '권사'입니다
기독교는 축복의 종교입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1999년도, 20세기에는 가난과 슬픔과 절망 속에 살았다할지라도 2000년대 내년부터는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부자 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없으면 아예 이름을 '김부자, 박부자, 이부자'로 바꾸세요.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인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부자 되고 풍족한 삶을 삽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도와주는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 은행의 통계를 보면 빈부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 '가난과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싸움이 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월 소득 23만원 이하로 사는 빈곤층이 천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80%가 빈곤층이고 부유층은 20% 밖에 안됩니다. 빈부의 차가 많이 생기면 도둑, 강도, 사기꾼이 많이 생깁니다. 사회가 혼란 속에 빠지게 됩니다. 정책적으로도 빈부의 차를 없애야 되겠지만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고 도와주는 사랑의 유대관계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축복 받으면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말라기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풍족한 축복을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사업가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이제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축복예배를 좀 드려 주십시오." 
목사님이 축복예배를 드리고 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십니까?" 
"십일조가 뭡니까?" 
"십일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여러분, 십일조는 축복의 씨앗이 됩니다. 기적의 씨앗입니다. 하나님은 막연하게 아무에게나 축복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 드리는 사람, 순종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미국의 한 빈민촌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사는 조지 이스트만 이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들 모자는 그 날 벌어 그 날 먹고사는 어려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조지의 어머니는 아들이 잠들기 전 그의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일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조지가 훌륭히 자라 이 나라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어머니는 눈물로 기도하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조지는 깊은 밤에 일어나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해 주세요." 
그래서 아들이 잠들기 전에는 어머니가 기도하고 어머니가 잠이 들면 아들이 기도를 하고, 어머니와 아들이 번갈아 가며 기도를 했습니다
"돈 많이 벌어 하나님 앞에 헌금도 많이 드릴 수 있도록 큰 사업가가 되게 하옵소서." 
조지는 커서 사진관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조그만 가게를 열어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간편한 휴대용 카메라와 필름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국내는 물론 세계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공장을 짓고 세계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이스트만 코닥(Eastman Kodak) 그룹의 회장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눈물의 기도가 이루어져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자기 재산의 절반을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맨손으로 눈물로 드린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때가 되어 축복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찬송하는 사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부요케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C.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주시는 구원의 축복,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하시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자 

오늘 참석한 성도 여러분, 이 성탄절은 막연히 왔다가 가는 그냥 절기가 아닙니다. 이 성탄절을 통해서 축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복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5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축복,'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마누엘의 축복,' '기쁨의 축복,' '평화의 축복,' '부요케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이 다섯 가지 축복이 오늘날도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한 아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별탈이 없어서 일주일만에 그냥 퇴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2년 뒤, 경기를 심하게 해서 병원에 가 보니 교통사고 때 놀란 후유증으로 뇌에 물집이 잡혔으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막대한 수술비도 문제였지만 뇌수술 잘 못했다가 어린아이가 혹시 더 잘 못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몹시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수술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지요?"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충성하지 못했던 죄를 다 회개하고 나니, 믿음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면 수술하지 않고도 낫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리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내가 말로만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말고 내 믿음을 하나님 앞에 보여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장은 돈이 없지만 병원비와 수술비, 약값 등을 계산하여 매달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건축헌금이 3년 만에 채워지면서 아이도 점점 차도가 있더니 완전히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보일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입으로 시인하며 예배드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정성껏 물질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물질을 통해서도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한 분도 빠짐없이 성탄절의 5가지 축복을 다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의 축복 마태복음 52-11

 

예수님께서는 부서지고 소망을 잃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 팔복을 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닌 내가 너희와 함께 있기 때문에 복을 받을것이다” (마태복음 52-11)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요! 우리는 그저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마태복음 123)라는 의미의 임마누엘의 축복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과 함께 볼 때에 새로운 의미를 갖습니다.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이사야 498).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의 축복은 우리의 비난과 질책을 모두 침묵하게 할 것입니다.

이러한 침묵은 간음으로 잡혀온 여인에게 일어났습니다.(요한복음 81-1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인을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여인을 데리고 온 배경에는 예수님을 고발하려는 숨은 의도가 있었습니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비난하고 고발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상담을 하면서 자주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 속에서 일하고 계시지 않아요. 열심으로 기도하는데 응답을 안주세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는데도 나를 구원해주시지 않으세요.” 이것은 바로 마귀가 원하는 생각입니다.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탓하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속박의 끝없는 반복을 야기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과 그리고 자신의 고발자들에게 답했습니다.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한복음 87) 더 이상 고발의 대상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포트라이트를 필요한 곳으로 조명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죄였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하나씩 하씩 나가고그들은 떠나감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9)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요한복음 810). 킹 제임스 번역에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그 고발한 자들은 어디 있느냐?”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너를 고발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희에게 너는 죄악되고 희망도 없고 실패자야!’라고 말하는 그들이 어디있느냐? 그들은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너의 공의이고, 내가 그들을 모두 침묵하게 하였다.”

그러한 음성들이 귓가에 계속 맴돌 때, 우리는 그들을 무찌르는 또 하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한복음 1027). 예수님의 음성은 우리에게 말할 것입니다. “내가 너의 고발자들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그의 진리는 시끄러운 소음을 모든 지각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으로 잘라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축복!

 

 

주님의 부활과 영광을 찬양하며,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를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게 하셨는지를 확인해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셨습니다. ( 1:14)

이 독생자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실 때 그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그는 믿는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1:12)를 주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많은 자녀들을 얻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독생자가 아니라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축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8:16-17)

 

바울은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8:29)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형상을 본받아야 할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은 이 목적을 실현 하셨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였다는 것은,

하나님께 그 아들 외에는 다른 아들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독생자로 남아 계시는 것을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맏아들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떻게 독생자를 맏아들이 되게 할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간단합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을 더 많이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아들이 하나밖에 없으면 독생자이지만,

만일 그 후에 더 많은 아들들을 낳으면 그 독생자는 맏아들이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여기에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의 내막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를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 2:10)

하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했습니다.

 

로마서의 “많은 형제”( 8:29)란 말을

히브리서에서는 “많은 아들” ( 2:10)이란 말로 표현 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형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들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친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밀이 그대로 있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한 알의 밀로 땅에 심었습니다.

이를 부활장 고전 15장에서 이렇게 선포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고전 15:20-2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심과십자가그리고 부활을 통해 이를 이루셨습니다.

이를 부활하신 주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내가 내 아버지 곧 너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 20:17)

 

부활하신 주님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많은 형제들이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주님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셨음”( 2:11)을 확증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축복

복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탁월한 능력과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자처하는 크리스천들조차 복음의 능력과 복에 아무 상관없이 지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3주 전에 제가 미국을 여행 중일 때, 주님께서 복음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메시지를 주셨 습니다. 그리고 귀국한 후 복음의 깨달음에 대해 설교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평소와 다른 설교라는 반응을 보여줘 적이나 놀랐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제가 새삼 깨달은 것은 복음의 능력이 참으로 탁월하다는 사실입니다

로 마서 116~17절 말씀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 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 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 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에 관한 소식

 

이 말씀에 세 가지 메시지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 나님의 능력입니다. 

둘째,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셋째, 복음은 믿는 자로 하여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복음이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일곱 가지 권세와 복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축 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로 죄 사함의 권세와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 다. 요즘 저는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대해 새롭게 경험했기 때문입니 다. 저는 온누리교회의 담임 목사인데도 복음에 대해 다시 깨닫게 되니 세상에 처음 태어난 것처럼 큰 감동을 맛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시피, 저는 암 수술을 6번이나 받았고 아직도 여러 가지 지병을 갖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는 몸이 아플 때마다 음식을 굉장히 절제합니다. 하지만 나는 치유되었다, 치유되었다 라 ‘’ 는 선포가 계속 나오게 됩니다.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육신적으로 연약 할 때 제 안에서 복음의 능력이 흘러넘칩니다. 피로감도 없고 힘들지도 않으며 모든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일곱 가지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 공통된 3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과거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자녀가 되는 권세를 이미 2,000년 전에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질병을 갖고 있더라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써 이미 나음을 입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의롭다함을 입었습니다. 벌써 기도의 응답도 받았고, 성령 세례도 온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누리지 못 한 채 여전히 영적 빈곤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마나 모순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받는 방법은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 다. 

 

믿음은 현재형입니다. 지금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가면 과거에 주님께서 예비해 두신 권 세와 복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는 것 입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 . 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면 믿음을 얻게 됩니다. 믿음이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 방식인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접촉하기 시작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복음의 권세와 복들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을 받는 데에 어떤 자격이나 방법 혹은 시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십니다 동서고금을 . 무론하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그 즉시로 복음의 능력인 죄 사함을 받고 구원 을 얻게 됩니다.

풍성한 은혜에 따라 보혈로 죄 사함

죄 사함의 특권에 대해 에베소서 17~8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 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 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속( , the Redemption)이란 죄 救贖 사함입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죄악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는 뜻입니다. 구속은 두 가지로 이뤄집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풍성함에 따라 구속을 받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을 받습니다. 베드로전서 118~19절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 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전된 죄와 현행되는 죄

죄 사함이 중요한 이유는 죄는 영혼을 오염시키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 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습니다. 첫 인류의 망령된 행실로 인해 인간의 DNA에 죄가 유전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안든 상관없이 죄의 DNA가 이미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죄 안에 각종 질병과 저주와 절망 등으로 가득 합 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야만 없앨 수 있습니다.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 결하지 않고선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을 결코 없앨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의 종 이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의의 종이 되는 것이 원리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한 중풍병자를 만나십니다. 그는 침상에 뉘인 채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주변에 너무 사람들이 둘러싸여 있어서 가 까이 다가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옥상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내고 침상에 뉘인 채로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달아 내립니다. 믿음은 아무리 큰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가는 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그를 돕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 다. 그런데 함께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받았다 고 선언하시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반론을 제기합니다. 21절 말씀을 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 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당시 유대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 서 그들은 죄 사함에 대해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것을 두고 참람하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죄 사함에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에게 최대의 문 제는 죄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 의 죄가 대대로 유전돼 왔다는 것입니다.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풍성한 은혜와 십자가 에서 흘리신 보혈로 깨끗이 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는 죄 사함의 권세

따라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와 그를 돕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 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병 고침보다 우선인 것은 죄 사함을 선언하는 일입니다. 죄 사함을 받으면 뇌졸중뿐 아니라 절망과 죽음마저 이기게 합니다. 우리는 나무를 뽑을 때 뿌리째 뽑아야 하고, 집터를 고를 때 송두리째 파헤쳐야 합니다. 제 가 설교를 준비하는데, 집이 확 무너지는 환상이 보이더라고요. 저의 몸 안에 있는 세균, 바 이러스, 암세포가 근본적으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제 안에 깊이 숨어있던 유전된 죄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지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

수님께서 이미 이뤄 놓으신 것을 제가 선언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는 일곱 가지 복음의 능력과 축복에서 다른 것들은 믿는데, 병 고침의 능력과 축복은 잘 믿지 못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암이 6번이나 재발했다는 상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치유의 능력과 축복을 부인하진 않지만, 그것 을 잘 믿으려 하지 않는 경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젠 그런 약한 부분을 뚫고 믿음으로 선포하는 문제가 남은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 된 주님의 약속들을 경험했든 않았든, 이해하든 못하든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끝까지 돌보고 사랑하는 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고 사랑한 게 아니라 뱃속에 있을 때부터 사랑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해도 모든 것들을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우리의 모양이나 행동을 보시고 사랑하지 않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우 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의 특별한 관계를 절대 깨뜨리지 않으십니다. 이것을 믿는 일이 신앙 생활에서 기적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우리의 됨됨이와 상관없이 이미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죄의 뿌리가 뽑힌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잘 믿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다리를 잃고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습 니다. 그 사람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다리가 간지러워 긁으려 하는데 다리가 없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무의식 속에 다리가 있었던 것이 지워지지 않은 채 여전히 잠재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꿈에서 다리를 만져보다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 깨 어나곤 했던 것입니다.

죄 사함의 선행 조건은 믿음

이미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죄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마귀가 계속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 습니다. 가정 주부들은 외출할 때 가스 불의 상태를 확인합니다. 저희 아버님은 외출하실 때 꼭 사방을 둘러보시면서 문빗장을 확인하셨습니다. 모두 가스 불이나 안전 장치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심지어 어떤 주부는 가스 불을 끈 후에 가스를 잠갔다 라고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활동하는 동안 ‘’ 소리 지른 사실을 기억하고 가스 불에 대해 안심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사실에 대해 끝임 없이 선언해야 합니다

 

이미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치유의 사실을 입술로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죄책감에 시 달리거나 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몇 천 번이나 들었을 것입니다. 아마 처음 들었 을 때 그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엄히 말해, 구원은 하루 아침에 쉽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들으며 그 사실을 자주 선포하다 보니, 성령님 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구원이 이뤄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입술로 시인하고 직접 선포하며 그 내용을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성의 벽이 높고 오랫동안 상식의 세계에서 살아 왔기 때문에 믿음의 세계로 들어 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도 와주소서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복음의 능력과 축복의 시리즈 설교를 준비하면서 모든 성도님들이 설교를 들은 후에 방황을 끝내고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 사함의 믿음을 갖는 순간부터 영적 자유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배운 지식에 막혀 믿음의 세계를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성을 벽을 뚫고 나아가 하나님의 기적과 맞부딪히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고난 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기도를 한다고 그 고난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항 상 극복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난관도 뚫고 나가는 영적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복 음의 능력과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날마다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과거에 받은 은혜에 만족하지 말고 날마다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요즘 저는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도를 하면 응답을 받기 때문입니 다.

죄 사함과 병 고침은 동시적이다

우리는 기도하면 변할 수 있고, 자녀들도 변할 수 있습니다. 병도 나을 수 있고, 전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일에 대해 믿음을 갖 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 발은 이쪽에, 한 발은 저쪽에 두고 양쪽을 오가면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 입니다

22절에서 26절까지 말씀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 의논을 아시고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마음에 무슨 의논을 하느냐 네 죄 사 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저희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 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 다 하니라.” 이 말씀에 대해 우리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서 죄 사함과 병 고침은 서로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낫게 해 주시지 않 고, 먼저 자신이 이 땅에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갖고 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는 권세는 예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한 가지 질문하겠다고 말씀하십니 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 냐 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 많은 사람들은 죄 사함과 병 고침을 분리해서 봅니다. 그러나 죄 사함과 병 고침은 동시적 입니다. 예수님께 죄 사함의 권세와 동시에 병 고침의 권세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 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병 고침에 대해 잘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이 사실이라면, 기도하면 병 고침을 얻는 것도 사실임 을 믿어야 합니다.

죄 사함 받았음을 믿고 선포하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고 환난을 겪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능히 이기게 해 주십니 다.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갖듯이, 다른 것에 대해서도 동일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온누리교회 성도님들, 복음의 권세와 축복이 실제적으로 이뤄지기를 축원합니다. 절망에서 소망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모든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죄 사함을 얻고 병 고침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축복

 

 

사도행전412절에 "다른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일이 없음이라하였더라  

 

요한복음 14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서 , 진리, 생명은 한가지 내용을 세가지로 발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죄 사함받고 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The Way) - 구원의 길입니다.

 

길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이는 범죄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길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사단과 함께 사망의 형벌받는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의존해야 살 수 있는 피조물이 하나님과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아담의 원죄(인간의 죄의 본성)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6:3)

죄가 바로 하나님과 인간을 분리시킨 것입니다.

인류는 십자가를 통해서만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죄 문제를 해결하였기 때문입니다.

죄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The Truth)- 말씀자체 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리는 죄에서 자유케 되는 진리입니다.(8:32-36)

아담의 범죄로 인류는 죄에게 종노릇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거부하는 부패한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성경의 용어로 죄라고 말합니다.

피조물 인간이 자기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성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죄에게 지배를 받기 때문에 죄인이라 말합니다.

이를 쉬운 표현으로 인간은 자기의 부패한 본성이 요구하는데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본성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본성입니다.

자기가 주인되어 하나님처럼 되는 본성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면 거룩함이 상실되고 윤리적으로 더러워집니다.

이것을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본성은 하나님 관점으로 불 때 죄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노릇 한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죄의 세력에서 해방시키는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은 자기 속에 있는 자기가 주인되는 부패한 본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십자가 속죄함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라야 해방됩니다.

죄에서 해방될 때 사단에게서 자유로워 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죄에서 자유케하는 진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또 성령께서는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죄에서 자유케 하는 진리를 계속 가르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 불리우십니다.(14:17)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The Life)- 구원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함께할 때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이는 첫 아담이 범죄후 에덴에서 상실한 축복이기도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상기하면 좋습니다.

마지막 아담 예수는 첫아담이 상실한 에덴의 축복을 회복한 것입니다.

인류가 다시 죄와 사망, 사단의 지배를 받는 육체에서 벗어나 거룩한 몸을 입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담의 범죄로 잃어버린 생명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을 가져왔고 이것을 성경은 사망으로 표현합니다.

이 사망이 지금 온 인류를 덮고 있고, 모든 인류는 사망의 그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육체의 썩음과 해체만 사망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는 지금 하나님과 단절되어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하는 사망의 형벌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많은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인류의 모든 고통은 사망의 현상들이요,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를 사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 실제적인 증거가 사망을 이기시고 육체적으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인류는 다시 사망의 형벌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는 생명을 얻게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가 해결됨으로 사망을 이기고 생명을 얻게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인류는 다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백성이 되는 길을 얻을 수 있습니다.(The Way)

인류는 다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백성되는 진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The Truth)

인류는 다시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 백성되어 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The Life)

 

십자가 죄사함으로 죄와 사망과 사단에게서 벗어난 것입니다.

우리의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가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가이오의 축복  

 

가이오의 축복(4) 요한32  

 

가이오의 축복순서 세 번째는 건강의 축복이다.

 

요한사도는 가이오를 향하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했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이 잘됨 같이 우리 몸도 건강하기를 원하신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우리 몸은 영혼을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은 하나님을 위해서도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우리의 육체도 강건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육을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육을 다 같이 귀중히 여기신다.

이 영과 육을 합해서 온전한 인간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이 범죄 했을 때도 영과 육을 다 같이 죽게 하셨고

인간을 구원 하실 때도 영과 육을 다 같이 살려주셨다.

그래서 육의 건강도 구원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1. 당신 몸도 구원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질병을 짊어지셨다.

 

"우리 연약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53:4)

이 예언은 이사야 선지자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그의 몸으로 우리의 죄와 죄의 저주로 온 질병까지 짊어져 주실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마태복음에는 이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 연약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8:17)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는데 성령께서 마태를 통하여 그것은 이미 예수님에 관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병을 고쳐 주시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얼마나 귀중한 진리인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은 한치의 오차도 없으시다.

우리를 속죄 해 주시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도 확실한 근거 위에서 행하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서 그냥 우리 죄를 용서하신다면 마귀가 하나님이 불법을 행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하나님 자신도 공의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께서 그 성품상 그렇게 하실수가 없다.

그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독생자를 우리 대신 죄를 삼으시고 죽게 하시므로 죄를 처리하셨다. 그래서 이제

합법적으로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질병도 예수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에 그것에 근거해서 우리는 나음을 얻게 되고 우리는 강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시는 것도 단순히 병을 능력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짊어지시는 대속의 일환으로 하신 것이며 베드로도 질병의 치유가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했다.

"그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나니" 라고 했다. (벧전 2:24)

그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실뿐 아니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속에 우리의 육체의 구원까지 포함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당신의 죄가 끝장 났을 때 영혼도 살고 육신도 살게 되었다.

  

육체에 새 생명을 주셨다.

 

아담이 범죄할 때 우리는 아담 안에서 영혼도 육체도 다 죽게 되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죽은자로 태어난 것이다. 이것은 육신이 앞으로 죽게 된다는 것보다 더 근원적인 말씀이다. 우리 육신이 숨을 쉬고 있다고 해도 이미 사망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죽은자라고 하신 것이다.

로마서 810-11 절에 놀라운 말씀을 하신다.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죽은 우리 영이 살아난다고 하셨다. 그러나 몸은 죄로 죽은 것이라고 하셨다.

11절에 가서는 성령께서 우리 몸도 살리신다고 하셨다.

사망의 지배 아래 있는 이 육체가, 그래서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된 이 몸이 성령께서 오시므로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육체에 부어져서 이 육체가 다시 살게 된 것을 말한다. 이 말씀은 앞으로 부활해서 새 생명을 얻는것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지금 우리 육체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받은 것을 말한다.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몸은 다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믿지 않는 사람의 몸은 죽은 몸이요 우리는 산 몸이다.

우리 영혼을 살리신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우리 육체에도 생명력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은 영혼뿐 아니라 우리 육체까지 실제로 구속하신 것이다.

당신의 육체가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것인지 지금 한번 몸을 만져 보라.

물론 이 육체 구원이 완성 되는 것은 부활 때이다.

그러나 지금 현재 이미 이 몸이 구원 받아서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해서 마지막 날에 이 몸을 완전히 변화 시키신다.

이 몸의 생명력을 날마다 체험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가는 다음에 말씀을 나누겠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로 인하여 죽은 몸이 다시 산 것을 믿어야 한다.

참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너무도 완전한 구원이다.

근본적으로 이미 구원받은 자는 살게 된 것을 말한다.

이제 당신의 저주는 끝났다. 당신은 축복자이다. 

 

2. 당신 몸은 성령의 전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20  

구원받은 자들의 몸을 가르켜 어떻게 말하는가?

성령의 전이라고 하셨다.

고전 3:16 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고전 6:19에 가서는 우리 이 성령의 전이라고 말씀 하신다 

하나님을 위해서 우리 몸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령 하나님이 우리 영과 몸 안에 와서 거하신다.

당신 안에 삼위 하나님이 살고 있으니 당신 몸이 얼마나 귀중한 몸인가?

삼위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처를 삼고 사신다. (14:23)

당신 몸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비가 새고 퇴락되고 허물어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육체를 거처로 삼고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 육체가 강건하고 그 분의 능력과 생명력이 넘쳐나서 우리가 활발하고 강건하고 힘이 넘치고 생동력이 있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이다.

당신 안에 살고 계신 성령님은 당신의 몸의 건강도 관리 하신다.

집 주인이 집를 관리하듯 성령님은 당신의 몸도 관리 하시기를 원하신다.

성령은 우리의 영만 강건케 해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의 몸도 강건케 해 주시는 분이시다.

또한 성령님은 장차 우리의 몸을 다시 살리셔서 예수님과 꼭 같은 부활의 몸을 입게 하신다.(8:11)

하나님은 구원만 하시고 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함께 살아주시면서 관리해 주시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3. 당신의 몸은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 몸을 값 주고 사셨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20)

당신 몸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수 있는 몸이다.

당신 몸은 그리스도의 피로서 속량하시고 주님의 것으로 삼아주셨다.

주님이 우리를 값을 주고 사실 때 우리 영혼만이 아니라 우리 몸까지도 값을 주고 사셨다고 말씀 하신다.

당신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수 있는 몸이다.

주님은 그 몸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 원하신다.

당신은 그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우리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옳은 일에 사용해야 한다.

우리 몸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건강도 관리하신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몸은 주를 위하고 주님은 우리 몸을 위한다 하셨다. (고전 6:12)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5)

우리 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였다.

그리스도는 머리이시고 우리 몸은 그의 지체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영도 몸도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는다.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과 능력을 지체인 우리 몸에 흐르게 하신다.

우리는 약하나 그리스도가 강하시기 때문에 강한자가 되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의 몸은 이처럼 귀중하고 영광스럽다.

구원받은 자는 이미 영혼이 산것처럼 몸도 산자가 되었다.

예수의 생명이 넘쳐흐르고 있다.

그러나 더욱 건강의 축복을 받아 가야 한다.

이는 마치 구원받은 영혼이 생명을 얻었어도 더 풍성한 영적 삶을 살기 위해서 성령님과 더 풍성한 교제가 필요한것과 같은 것이다.

건강의 축복은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 때 더해간다 (40:31)

당신은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로부터 건강의 축복이 온다.

건강의 축복은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 때 더해 간다.

당신의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될 때 당신의 건강은 더욱 좋아지게 될 것이다. 

 

출처 : 우림과돔밈
글쓴이 : 카일 짹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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