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분명한 구원(사43:1-3)

하나님아들 2016. 6. 2. 16:15

2008.09.21대민(주일낮)

 

*분명한 구원(사43:1-3)

 

신앙의 제일 되는 근본은 구원입니다. 구원이 없이는 기독교 신앙을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스스로는 절대 살아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건져주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혼자는 헤어 나올 수 없지만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가리켜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구원에 관하여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구원의 관한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여기에 더하거나 뺄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구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변질되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론이 아닙니다. 그리고 경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한 사람의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에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는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몰랐으며,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세상의 죄악에 빠져서 그 죄 때문에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자기 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그분이 벌을 받게 하시고,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예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주신 구원의 길입니다.

에베소서2장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힘과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예수 믿고 구원 받는 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명한 구원을 왜곡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으로만 구원받는 다고 하는 것을 어렵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며 구원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전혀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기에 구원에 관한 복음을 쉽게 하셨습니다.

로마서10장9-10절에 “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면 그리고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잘못 전해지고 있다고 하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즉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을 곡해했다. 가이사의 통치 하에 있었던 시대적 정황을 잘 살펴야 한다. 이 때는 가이사 외에 다른 이를 신 또는 주라 하면 곧바로 죽는 시대였다. 즉,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처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다면 생명을 걸고 믿어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이런 믿음을 성도들에게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 】

물론 이러한 설명이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입으로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설명입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것이 정말 쉽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운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셨지만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결코 많지 않습니다. 즉 쉬운 복음을 전해 주어도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로마시대의 상황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하고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하며 그후부터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수 있도록 양육하며 또 생명을 걸어야 상황이 이르면 구원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도 포기 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구원에 관한 것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어떤 신학자라도 그 어떤 설교가라도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구원에 관한 말씀을 왜곡할 수 없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구원의 유일성과 존재의 유일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과 비교될 수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구원도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분명한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가지 환난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죄악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분명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시편100편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리의 주인이 되십니다.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 대하여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이렇게 보배롭고 존귀하게 지음을 받았으나 인생들이 범죄하여 천하고 불쌍한 마귀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서 구속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해서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또 당신의 것을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우리를 사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구속하신 것입니다. 이러니 우리 몸은 이제 우리 것이 아니요, 피로 사신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43장1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실 뿐 아니라 당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여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이제 우리를 잊어버릴 수 없다는 하나님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십니다. 우리를 구속하신 구원자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배로운 자녀가 되었습니다.

 

먼저 내가 너를 조성하였으니 너는 내것 이라는 것입니다.

조성하였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야곱(우리)을 지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시139편13-14절에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실제로 구체적으로 우리의 오장육부 사지백체 세포 하나하나를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오묘하고 훌륭한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면류관이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의 가장 영광스러운 피조물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너를 구속하였으니 너는 내것이라는 것입니다.

시시한 물건도 지불된 값이 높으면 값있는 것이 되어 집니다. 지불된 값에 따라 그 물건의 가치도 달라집니다. 구속하였다는 말씀은 죄를 속량하였다는 말씀이고, 죄를 속량하였다는 말씀은 무슨 댓가나 희생을 받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에는 어린 양의 희생의 제사를 받으시고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어린 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 제사를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값으로 주고 사셨다고 베드로전서1장19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값으로 샀다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피)로 대속한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즉 죄의 값을 지불하고 죄의 종이었던 나를 하나님께서 샀습니다. 또한 성경에 하나님이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다고 사도행전20장28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피는 곧 생명이다"라고 하는데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나를 사주신 것입니다.

또한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내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 날 한 시간 어머니 모태로부터 출생한 쌍둥이 형제인 에서와 야곱도 "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였다"고 기록되었고,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하사 라고 로마서9장11-13절에 말씀하십니다.

에베소서1장3절에 " .....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 전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이 말씀은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여 지키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경우 에서라도 하나님이 나를 잃어버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도 버린 부모도 있고, 낳아주신 부모를 버린 자식도 있습니다. 친구도 친척도 변합니다. 세상은 다 변하지만 나를 택하여주신 내 하나님은 결단코 변하지 않고 나를 지켜주십니다.

시편100편3절의 고백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이라는 말씀은, 백성이 임금의 은택을 입어 사는 것으로 여기는 것 같이, 양이 목자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이 이제 우리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요, 우리들의 목자이십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목자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우리들의 생명을 주신분이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호흡할 수 있도록 모든 자연환경도 적절하게 쾌적하게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들의 원수가 우리를 해하려 할지라도 우리를 지키시는 목자십니다. 양은 목자를 떠나서는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고 그 생명을 보존할 수 없는 것 같이 양과 같이 유약하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아니면,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창조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구원을 주셨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은 보호의 하나님이십니다.(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2절의 말씀은 너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너희를 보호하는 하나님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포로 생활에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물 가운데로 지날지라도 너와 함께 하여 물이 침범치 않도록 너를 보호하며 불 가운데로 지날지라도 너를 지켜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너를 보호하여 지키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입니까.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과거 애굽에서 나올 때에 홍해의 물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키셨고 포로 생활 중에도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뜨거운 풀뭇불 속에 던져졌을 때에도 불꽂이 그들을 삼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가 주목할 것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실제적으로 거센 물결 같은 어려운 일들이나 불이 엄습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그날부터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여 만사형통, 운수 대통하여 사업도 잘되고 병도 안 걸리고 손대는 일마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물이나 불이 침범하는 환경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내렸던 열 가지의 재앙,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역사 .홍해의 기적들을 체험하며 광야에 들어섰을 때 그들의 기쁨과 기분을 상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런 기적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니 모든 것은 끝나고 가나안의 축복만이 남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아말렉이 쳐들어 왔습니다. 목마름과 배고픔이 찾아 왔습니다. 급기야 하나님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원망했습니까.“하나님 우리를 죽게 하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 내셨습니까. 왜 이렇게 어려운 현실을 주십니까.”그러나 신명기8장2에 보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은 너를 낮추시며 ”라고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혹 어려운 현실이 온다고 해서 이상히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제 아무리 불같은 환경이라도 하나님께서 지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려움이 나를 넘어뜨리거나 삼키게 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결과적으로는 하나님께서는 그 현실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역사 하시는 것입니다.

신명기 33장26-27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너의 처소가 되시니",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그가 네 앞에서" 하신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환경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리니"하였습니다. 사람은 깊은데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하였습니다.

사람은 앞일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하신 것입니다.

위에 계신 하나님, 아래 계신 하나님, 앞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나의 처소가 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백성은 항상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위에, 아래, 앞에, 그리고 처소에서 보호를 받으시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며 보호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구원을 주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은 구원자이십니다.(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오늘 본문3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거짓 신들과 구별되도록 독특한 이름을 갖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바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자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셨습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하였습니다.

애굽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명성을 떨진 국가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나라의 국민은 당시에 가장 개화된 현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에 관한 기록은 문학, 건축술, 그리고 예술과 과학 등 전반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진보를 보여 줍니다.

또한 애굽은 당시에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이처럼 애굽은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나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나라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브라함과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택하여 번성케 하셨고 당신의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교만하게 이스라엘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대로 애굽의 폭정을 방치해 두시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로부터 구출해 내셨습니다.

그분의 강력한 무기를 애굽을 향해서 발포하신 것입니다.

아사 왕 때에 구스 사람(현재 에디오피아인을 지칭함) 이 수백만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습니다.(대하 14:13)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애굽과 바사, 그리고 주변의 많은 국가들을 이스라엘의 속량물로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편에 서서 싸우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구원자로서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작정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로마서10장10절에 “ 사람이 마음을 믿어”라고 말씀 하셨는데 먼저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로마서10장9절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주셨고 독생자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을 마음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제일 처음 그리스도인이 될 때, 이 말씀을 믿음으로 우리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지적 동의와는 다릅니다. 복음의 내용을 비롯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말씀의 내용을 우리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분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마음에 있다는 것은 이제 그 말씀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 나의 것이 되었다는 말입니다.(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로인한 구원,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우리를 제사장 나라로 삼으심 등)

로마서10장10절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 사람을 의에 이르게 한다고 합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것은 말씀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 우리의 것이 되어 우리 안에 머물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심으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마음에 있는 사람들은 그 일들이 우리 안에서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것으로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에 있는 믿음은 입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우리 입에 있는 말씀은 말씀을 우리의 입술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로마서10장10절에 ‘시인하다’는 단어는 ‘동의하다. 똑같은 것을 말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에 있는 말씀을 이제는 나의 입으로 똑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으면 의에 이르고 이것을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분명한 구원입니다. 이 말씀에 토를 달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제정하신 구원을 받아들이며 구원받은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대민성결교회
글쓴이 : 진리수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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