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10032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종려주일) - 조종국 목사 설교

하나님아들 2016. 4. 23. 17:27

2010년 조종국 목사 설교

설교자: Pastor. Rev. 조종국 목사

연락처: 010-7766-0153, 070-8201-8576

E-Mail: pastorjoh@naver.com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

 

20100328 조종국 목사 주일 설교

 

사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은 종려주일로 이번 주간은 고난주간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사야는 주님이 오시기 600년 전에 이미 이사야서 53장을 통해 주님이 당하실 내용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53장은 예수님이 질고와 슬픔을 당하실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매를 맞고 상처를 입을 것이며, 채찍질을 당하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뿐 아니라 능욕과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가서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죽음을 선택하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죽음의 모든 상황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니 그 죽음에 순종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한 3년의 공생애 동안에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게 될 것을 가르치시고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의 시작임을 또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무도 예수님이 당하실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몰랐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바라는 것은 세상적인 성공과 남보다 높은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당하실 죽음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그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마리아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오해한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은전 30냥에 팔기까지 했습니다. 마리아를 뺀 나머지 모든 자들은 예수님을 이용했습니다. 자신의 부와 명예와 세상 높은 자리를 위해서 철저하게 예수님의 곁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제자들만의 모습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입으로는 주를 시인하고 주로 하여금 만족하며 산다고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주님이 아닌 다른 더 많은 것을 공급받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런 신앙은 시험이 들면 주님을 떠나 세상으로 유리방황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 없는 자들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 사랑과 보혈의 은혜를 곧잘 잊어버리고 자신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의 문제만을 생각하고 정작 해야 할 주의 일에는 늘 ‘다음에’라는 합리화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문제가 먼저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먼저 희생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면 그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심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선진 노아가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고, 요셉이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 모두가 종려주일을 맞아 하나님의 일을 위해 먼저 일어서는 자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먼저 일어나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주님이 당하셨던 고난은 주님이 당할 고난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자들의 죄를 대신한 것이고, 또한 이 자리에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당해야할 고난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여서 예수님으로 하여금 먼저 그 십자가 고난을 당하게 하시고 그것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구원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먼저 믿음으로 일어나고 또한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중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이사야가 보았던 예수님을 다시 만나서 주님 혼자 그 길을 가시지 않고 우리 또한 그 고난에 동참하시는 은혜로운 한주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사야가 보았던 예수님은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

 

사53:2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가 연한 순같이 나약한 모습이요, 메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충실하지 못하여 무력한 모습이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어 그의 외모에서는 위인다운 큰 사람의 모습 또한 찾아 볼 수 없다고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사실 이 모습은 온 유대 백성들이 고대하는 메시아의 모습과는 분명 다른 모습입니다. 적어도 빼앗긴 나라를 되찾아 억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고, 해방의 기쁨을 주고, 메시아 왕국의 평화를 가져 다 줄 인물로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참으로 흠모할 만한 인물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유대인들이 좋아했던 자가 있습니다. 그는 사울입니다. 삼상11:24에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 이 모습은 이스라엘의 최초 왕으로 추대된 사울의 모습입니다. 그는 모든 백성 중에서 짝할 이가 없는 걸출한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삼상9:2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울을 향해 유대의 모든 백성들이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유대인들이 사울을 환호하고 사울을 기뻐했으나 그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왕이 되었고, 유대인들이 잘 알지 못하여 무시했던 예수님은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권세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 모두가 종려주일을 맞아 그 보잘 것 없는 모양의 예수님을 이 시간 다시 만나시길 바랍니다. 또한 이제 예수님을 온전히 알고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는 성도님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사53:3에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에게는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어서 만세를 외쳐 부르며 사울을 왕으로 맞이하던 모습과는 달리 유대의 백성들이 그를 멸시했습니다. 그 멸시의 최절정이 바로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그 당시에 가장 엄한 형벌로 중한 죄인에게 내리는 극형입니다. 그래서 갈3:13에도 십자가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그러하거늘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느냐"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해 죽으시는 예수님을 향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면 지금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조롱하면서 주님을 향해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어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당하신 예수님은 실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지만, 사람들은 하나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따라다니며 하늘 문이 열리는 것과 음성이 들리는 것과 이적과 기적이 나는 것을 모두 경험했던 제자들도 모두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는 도망을 했습니다. 심지어 가룟유다는 은전 30냥에 스승을 팔아먹었습니다. 또한 수제자라 자랑하던 베드로는 스승을 욕하고, 저주하며 어린 여자 아이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무도 남지 않고 주께서 잡히시던 그 밤에 모두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철저하게 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나 이 고난주간에 제가 원하기는 더 이상 주님을 홀로 외롭게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고난주간에 주님의 곁을 지키는 그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을 그 누구보다 더 먼저 알았던 마리아와 같이 이 시대에 예수님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주인공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대신 지셨습니다.

 

본문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질고란 ‘질병, 근심, 재난’을 뜻합니다. 그리고 슬픔이란 ‘슬픔, 고통, 괴로움’을 뜻합니다. 곧 질고로 인한 괴로움을 대신 우리 주님이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 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기 사랑의 확증이라고 롬5:8에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실 우리의 ‘질고와 슬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로 인한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 “죄의 값은 사망이다”라고 롬6:23에 증거 합니다. 이 사망이 죄인에게 이루어지는 과정이 바로 ‘질고와 슬픔’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질고와 슬픔’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 나오는 것임으로 하나님은 ‘질고와 슬픔’만을 없앨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 달려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을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요1:29에는 예수님을 향해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모든 인류의 죄와 질고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는 어린양으로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셨고,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는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라고 사53:7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4:15에는 예수님에 대해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고백합니다. 히브리기자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신 주”를 가리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우리와 늘 함께 시험을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질고를 지고 곤욕을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고난을 당하실 때 모든 자들이 주님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지 못하고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만나셨을 때 꾸중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믿음을 회복시키셨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일에 함께 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담대함으로 나갈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것은 주님의 죽음 앞에 도망했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는 모두 다 죽기까지 주의 말씀을 증거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고난 주간을 통해 주님을 다시 만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다시 만난 자들이 죽기까지 주를 위해 헌신함으로 영원히 기억되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모두가 또한 주님께 기억되어지는 은혜의 성도님들이 되길 바랍니다.

사랑의 예수님은 바로 내가 죽어야 할 그 자리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우리의 죄악을 담당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함으로 부활의 아침에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또한 그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전했던 마리아같이 은혜 받은 성도님들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32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 (.hwp

 

출처 : 청라 예수로교회
글쓴이 : pastorj2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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