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조종국 목사 설교
설교자: Pastor. Rev. 조종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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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집에 있어야 할 것
20100321 조종국 목사 주일 설교
요한복음 12장 1-8절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사순절 후 다섯 번째 주일로 “성도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12제자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니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당신의 죽음과 그 후에 있을 일에 대해서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원하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녔으나 그들이 원했던 것은 세상의 성공과 주님 옆의 높은 자리였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도 올라가셨습니다. 변화산에서 변화하신 예수님의 그 모습을 보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실 길과는 상관없이 그 곳에 초막을 짓자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올라가셨습니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지만 예수님의 앞길을 준비한 사람은 베드로도 아니고 야고보도 아니며 요한도 아니고 나머지 9명의 제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정작 예수님의 앞길을 준비한 사람은 바로 오늘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있던 그의 누이동생 마리아였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유월절 엿새 전 베다니 마을 나사로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잔치는 나사로가 다시 살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함으로 예수님을 접대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잔치는 사실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였으며, 마리아의 헌신이 드려지는 자리였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이 3년이나 예수님과 함께 다녔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선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단지 그들 중에 가룟 유다는 마리아의 그 헌신을 돈으로만 계산하고 그 돈을 아까워했습니다.
오늘 향유를 예수님께 붓는 마리아의 모습은 복음서에 모두 나옵니다. 마26:7, 막14:3, 눅7:38, 요12:3에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에는 한 여인이 옥합의 향유를 가지고 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발을 씻고 그 발에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씻었다고 합니다. 결국 마리아는 예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를 향유로 부었고 또한 씻었는데, 그 씻음은 거룩한 헌신으로 마리아의 집이 주를 섬기는 가정으로 기억되는 귀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 그렇다면 먼저 성도의 집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요?
1) 성도의 집에는 늘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베다니 나사로 가정에 오셨습니다. 정황상 예수님을 나사로가 초청한 것인지 아니면 지나시다가 들리신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본문의 내용상 사람들의 분주한 모습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은 초청받아서 가신 것이 아니거나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오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예수님이 오신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잔치를 열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연애를 할 때 만나기가 죽기만큼 싫다면 그 커플은 100% 깨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준다고 해도 정 떨어지면 만나기 싫은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집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기쁨이 넘쳤고,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죽었던 나사로가 예수님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고 난 다음부터는 예수님이 그들에게 있어서 VIP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도 늘 예수님을 모심으로 감사하며 기쁨으로 잔치를 벌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잔치에는 매일같이 더 많은 사람들을 초청해야 하며 널리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을 믿길 바랍니다.
2) 성도의 집에는 주를 향한 헌신의 향유 냄새가 가득해야합니다.
죽음에서 살아난 나사로의 집안은 지금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이 집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모두들 분주히 음식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주함 가운데 마리아가 들어오더니 지극히 비싼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행동은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행동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이 행동은 예수님의 발만 씻고 끝난 것이 아니라 다른 놀라운 일을 부가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헌신은 먼저 죽은 시체의 냄새로 진동하던 나사로의 집을 아름다운 고급 향유 냄새로 가득 차게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성도의 헌신은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화롭게 하지만 또한 그 영광은 성도로 하여금 그 은혜에 동참하는 귀한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도의 헌신은 모든 이로 하여금 그 은혜를 나누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위해 헌신할 때 아까워할 거나 주저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씻기면서 자기의 머리털로 씻었습니다. 사실 여성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머리입니다. 머리 한번 하는데 몇 십 만원부터 그 이상을 투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고전11:14-15에서 ‘여자의 긴 머리는 자기에게 영광’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마리아는 여인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인 자기의 머리로 예수님 발을 씻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주님의 가실 길에 준비를 위한 헌신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마리아의 그 헌신은 그의 집에 아름다움 향기로 가득 넘쳐나게 되었으며, 또한 온 인류가 기억하고 또한 본받을 섬김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바라고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 그 드림이 주님께 기억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전통이 우리 가운데 좋은 전통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정들이 주를 향한 헌신의 향유냄새가 가득한 믿음의 가정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도들의 집에는 늘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예수를 위하여 잔치 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눅10장에는 오늘 본문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마르다는 음식준비로 매우 바쁜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 준비의 분주함 때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꼭 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기에 분주하기만 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문제는 마르다가 예수님을 위한 잔치 준비의 분주함으로 말씀을 듣지 못하더니 결국 시험에 빠져 동생 마리아를 시기 질투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교회도 일을 하다가보면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나 분명히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교회의 분주함이 아니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되어지고 성장되어 지는 것을 믿길 바랍니다.
마리아는 나사로의 일로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고,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신 예수님을 통해 구원과 부활의 확신을 같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능력과 권세가 얼마나 놀라우신 분이신지 그의 앞에서 말씀을 듣다가 더욱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이것이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줄 알아 더욱 믿음이 성장되어져서 성도님들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와 여러 문제 가운데도 예수님의 은혜가 넘쳐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가 향기로운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녀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12제자도 하지 못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종을 통해서 말씀이 선포되어지고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있다면 그 말씀을 붙자고 온전히 실천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렇다면 잔치가 있고, 향유의 냄새가 넘치고, 말씀이 있는 성도의 집에는 어떤 일이 있게 될까요?
1) 성도들의 집에는 하나님의 갚아주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사람의 평가에 목숨을 걸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지 못하면 매우 낙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의 평가가 아닌 예수님의 평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학식이 높고 덕망이 큰 사람이라고 해도 사람의 눈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정에 끌리고 금전에 끌리고 아부에 끌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인간적인 욕심에 끌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헌신에 끌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열심을 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열심을 내어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성도의 헌신을 받으시는 하나님은 성도의 한 것 이상으로 갚아주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계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마음먹었을 때 그가 아무 것도 이루지 않았으나 하나님은 다윗의 그 마음먹음과 동시에 축복으로 갚아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즐겨내는 이를 기뻐하신다고 고후9:7에 말씀하십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마리아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이 헌신을 통한 축복의 비밀을 믿었기에 그 은혜에 감사함을 주체하지 못하여 향기로운 헌신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즐겨냄으로 또한 하나님이 즐겨 갚아주시는 은혜가 범사에 차고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들의 집에는 늘 주님의 칭찬과 축복이 넘칩니다.
예수님은 본문 7-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한 일에 너무나도 큰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여인의 기름이 땅에 떨어질 때 괴로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의 헌신이 가치없이 버려지는 것처럼 보였기에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의 헌신은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단 한 번의 죽음을 휘한 향유의 헌신으로 받으셨기에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시고 칭찬하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께 헌신하는 것을 그 액면 가치로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해서 헌신하는 성도의 그 내용 자체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시고 받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드리는 헌신과 사랑의 수고와 헌금도 마찬가지인 것을 믿어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심으로 주님의 칭찬과 축복이 넘치시는 성도님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성도들의 집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남의 잘됨을 시기하는 것과 질투로 하는 비방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가룟 유다는 “이 비싼 향유를 어찌하여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비난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나도 값비싼 것이기에 그것으로 많은 구제를 하고 또한 선교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핵심은 가룟 유다가 가진 믿음 없음이 결국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 마리아를 비방했다는 것입니다. 믿음 없음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요13:27에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믿음 없는 것은 혼자 죽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사단이 들어와 성도들로 하여금 분쟁을 일으키고 말을 만들어 결국 모두 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6절은 가룟 유다가 왜 그렇게 말을 했는지 분명한 대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결국 가룟 유다는 그 마음에 딴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기에 아무리 예수님이 은혜를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셔도,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오직 300데나리온의 돈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고 기적을 보아도 무덤덤했다면 이 시간 온전한 회개를 통해 성령님을 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나사로의 집은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가 충만한 집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마리아의 헌신이 있었고, 그 헌신이 빛을 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마리아의 그 드림의 액면보다 더 큰 의미를 부여하시고 마리아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저와 여러분 모두가 마리아의 향기로운 헌신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가정과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가정들에도 아름다운 헌신의 향기가 넘쳐남으로 예수님이 기억하시는 귀한 성도님들의 가정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321 성도의 집에 있어야 할 것(사순절 후 5.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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