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조종국 목사 설교
설교자: Pastor. Rev. 조종국 목사
연락처: 010-7766-0153, 070-8201-8576
E-Mail: pastorjoh@naver.com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20100418 조종국 목사 주일 설교
요 21:15-17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는 것들보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오늘은 부활절 후 세 번째 주일로 4월의 세 번째 주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은 3가지 정도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에로스 사랑인 남녀의 사랑과 친구들의 우정 정도의 사랑인 필레오 사랑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인 아가페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인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전합니다. 요일 4:8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성경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oJ qeo;" ajgavph ejstivn. 하나님은 아가페 사랑이심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요한은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은 아가페시다." 라고 선포합니다. 사실 아가페의 사랑은 하나님의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이고, 완벽한 사랑이고,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사랑입니다. 또한 아가페의 사랑은 죄를 범한 세상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이고,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당신의 사랑과 같은 아가페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또한 예수님도 마 22:37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역시 예수님의 이 말씀에서도 쓰이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결국 하나님도 예수님도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은 바로 아가페의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베드로는 아가페의 사랑은 한 번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필레오의 사랑 즉 친구간의 우정 정도의 사랑을 고백합니다. 문제는 베드로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담을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되, 그냥 조금 사랑합니다. 정직하게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예배가운데 은혜를 받는다면 기뻐서 눈물을 흘리지만, 세상에 돌아가서 직장이나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는 금방 하나님께 자신의 답답함만 하소연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는 바로 이러한 심정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막상 유대인들이 앞에서 그는 그 장담을 후회했습니다. 베드로는 겁을 먹고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자입니다. 베드로는 상황이 좋을 때는 누구 보다 예수님을 사랑한 듯하지만, 상황이 바뀌면 예수님을 버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를 지금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어부로 돌아간 그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오래 전에 베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닭이 세 번 울기 전에 나를 부인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는 자기 자신을 잘 몰랐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난 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분명 자기 자신에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었고 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있어서 실망감은 예수님을 알기 전보다 더 했을 것이고 그날 고기 잡는 베드로의 모습은 그 어느 날보다 더 처량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것을 기대도 할 수 없는 그래서 누구보다 그 어느 때보다 처량했을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 찾아가셔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었습니다. 요 21:15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아가페 사랑하느냐”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요 21:15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 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은 아가페 사랑에 대해 물으십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 때문에 아가페 사랑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는 필레오, 즉 친구의 사랑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완벽한 사랑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시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아가페의 사랑을 하느냐” 베드로는 다시 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요 21:17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필레오 사랑하느냐”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세 번째 "네가 나를 필레오 사랑하느냐"고 물으셔서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대답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질문에서는 베드로의 수준으로 필레오의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꾸짖지 않으시고, "네가 필레오 사랑 밖에 할 수 없다면, 그것이라도 내게 달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제나 아가페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로 하여금 죽게 하시고 또한 그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믿는 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문을 여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이 시간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우리가 지금 있는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한글 성경이나 영어 성경에서는 분명히 그 미묘한 차이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헬라어 원어 성경에서는 그 차이가 분명하게 있음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정확히 구분해서 생각해 볼 때, 두 번의 아가페 사랑에 대한 질문과 한 번의 필레오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질문에 세 번 다 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가 당신을 필레오 사랑합니다.
어쨌든 이 질문은 베드로가 했던 3번의 부인을 회복시키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질문은 또한 회복과 함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사명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 먼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사랑을 고백하는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멸망하게 되고, 하나님을 떠나 영원한 형벌을 피치 못하게 되었을 때에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을 죄에서 찾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제 우리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자마다 자기를 구원하신 주를 사랑하는 것이 도리요, 주를 섬기는 것이 도리요, 주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신앙 인격을 가진 자의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은혜 베푸신 주님을 섬기노라, 사랑하노라, 믿노라 하면서 섬기지 아니하고 사랑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면, 그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을 속이고 자기 신앙양심을 속이는 죄를 짓게 됩니다.
주님을 믿는 것과, 주님을 섬기는 것과,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어야 합니다. 주를 믿노라 하면서 주를 섬기지 아니하고 주를 사랑하노라 하면서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주로 하여금 믿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공동체임으로 우리가 또한 주님을 온전히 섬김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이 넘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우리가 아멘 했다면 우리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적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아가페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꾸짖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베드로로 하여금 먼저 잃어버린 제자의 권위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즉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영혼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 양을 먹이라는 것은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말로만이 아닌 진짜 행동으로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예수 믿지 않고 지옥을 향해 가는 수많은 사람을 방관할 수 없고, 그들을 사랑함으로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아직 그런 대상이 없다면 우리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 주님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두 번째 똑같이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 베드로의 대답은 똑같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양을 먹이고 잠재울 우리를 만들어서 모든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닌 주님의 양을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고 돌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주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의 영혼을 책임지고 보살펴서 하나님 나라까지 인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치는 양이 있느냐 없느냐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어린양을 먹이고 내 양을 치라고 했으니 우리 모두 철저하게 양치는 목동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양을 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우리의 최고의 사랑고백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째 똑같이 물으시자 베드로가 근심합니다. 왜 이 질문이 베드로에게 근심이 됩니까? 그 이유는 불과 얼마 전에 “내가 죽을지언정 진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호언장담했는데 그날 밤이 새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그것도 어린 아이 앞에서 두려워하며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으니 양심에 털 나지 않은 이상 두렵고 떨렸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질문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그는 고민 했습니다. 이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도 인간적인 고백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합니다.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필레오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절대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필레오 사랑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전에 자신의 믿음을 대단한 것으로 알고 호헌 장담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자신의 신앙의 수준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는 정직한 사랑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하는냐?” 우리는 지금까지 주를 부인하기 전 베드로처럼 호헌장담하며 신앙생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향한 온전한 믿음의 고백은 자신의 능력과 자신의 믿음의 크기를 알아 겸손함으로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진 사명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먼저 깨달아 그것에 충성하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성도의 진정한 신앙고백이요. 사랑고백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며, 하나님의 사랑의 전도자가되며,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이전에 우리는 하나님께 아가페의 사랑을 고백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이제 우리가 비록 필레오의 사랑을 고백하더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회개한 자에게 새로운 일을 맡기시고 또한 주의 일꾼으로 삼으신 그 사랑을 깨달아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서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00418 네가 나를 아가페 사랑하느냐(부활후 .hwp
'은혜 설교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20100404 부활의 주님을 만나보자(부활절예배) - 조종국 목사 주일설교 (0) | 2016.04.23 |
|---|---|
| [스크랩] 2010041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부활후 두번째주일) - 조종국 목사 (0) | 2016.04.23 |
| [스크랩] 20100425 누가 주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하는가?(부활후넷째주)-조종국 목사 (0) | 2016.04.23 |
| [스크랩] 20100425 누가 주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하는가?(부활후넷째주)-조종국 목사 (0) | 2016.04.23 |
| [스크랩] "예수님은 말씀대로 부활하셨습니다" (0) | 2016.0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