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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순종의 사람 엘리야(왕상 17:1-7) 120909 주사랑감리교회

하나님아들 2016. 4. 21. 16:41

순종의 사람 엘리야

왕상 17:1-7

 

엘리야는 왕상 17장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등장부터 대단합니다. 불의 종이란 이름처럼 역사에 등장하자마자 북 이스라엘에 엄청난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너무 확신 있게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내 말이 없으면 비만 아니라 이슬까지도 수년 동안 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이 심판의 선언을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말이 없으면이 말은 내가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는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 비가 온다고 내가 다시 말하기 전까지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비가 오고 안 오고는 엘리야의 입에 달려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선언은 엘리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엘리야는 하나님이 말씀하기 전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왕상 17:2-5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하나님이 숨으라고 하니까 가서 숨었습니다.

왕상17:8-10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하나님이 가라고 하니 가는 엘리야의 모습을 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숨으라면 숨고 가라하면 가라고 하면 가는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움직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심판의 선언도 엘리야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엘리야는 확신 있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순종의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불순종 - 엄청난 심판

하나님은 왜 북 이스라엘에게 이런 엄청난 심판을 선언하셨을까?

엘리야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살고 있던 시대에 북 이스라엘의 통치자는 오므리의 아들 아합 왕이었습니다. 아합은 북 이스라엘의 7대 왕이었습니다. 아합 왕의 선조 왕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한 왕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선조의 왕들보다 더 악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합 왕을 보실 때마다 분노할 정도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왕상 16:30-33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신전 안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니 그는 그 이전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아합은 하나님이 보실 때 심히 노할 정도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아합은 모든 불순종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께 불순종해서 우상을 섬기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엘리야를 통해서 북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심판을 선언 하십니다.

 

이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36개월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농사로 살아가는 농경사회에 이슬까지도 수년 동안 오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도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3년 반 동안 비한방울 내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가끔 가뭄이 오면 논에 물대는 문제 때문에 살인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비는 반드시 있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들입니다. 몇 달만 비가 오지 않아도 난리가 날텐데 수년 동안 이슬도 내리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옥토가 황무지가 되어버립니다. 모든 땅들이 삭막한 사막이 되어버립니다. 그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왜 불순종한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엄청난 재앙을 내리십니까?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비와 이슬을 내리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미워서일까요? 그들이 싫어서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결코 미워서도 싫어서도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사랑의 채찍과 사랑의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심판하시기도 하고 재앙도 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 등을 지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방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내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마냥 보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불순종하면 하늘 문을 닫아 버리십니다. 하늘 문을 닫아 버리면 어떤 은혜도 내리지 않습니다. 이것처럼 무서운 심판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속에는 이스라엘 나라처럼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닫아 버리는 불행한 삶이 일어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 순종의 사람 엘리야

불순종의 시대에 하나님은 엘리야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엘리야 하면 대담하고 용기 있는 전사와 같은 사람으로만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했던 사람이 바로 엘리야였습니다. 아합은 불순종의 모델이라고 하면 엘리야는 순종의 모델입니다. 엘리야는 불순종의 시대에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의 명령을 받고 너무나 확신 있게 심판을 선언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질 줄 알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비도 이슬도 오지 않을 것이다

이 엘리야의 심판 선언을 아합에겐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마 민심을 교란하는 유언비어로 들렸습니다. 왕권을 도전하는 불순한 음모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엘리야를 찾아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엘리야로 하여금 또 다른 명령을 하십니다. 왕상 17:3-4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이 숨으라는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엘리야는 5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여호와의 말씀 같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엘리야는 순종하되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엘리야의 성품(성격)과는 맞지 않는 명령입니다.

엘리야의 성품은 용기 있고 단호하고 차라리 죽었으면 죽었지 기죽고는 못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큰소리 쳤던 엘리야에게 이 선언을 하자마자 이제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합니다. 엘리야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큰소리를 치고 바로 숨어버린다면 다른 사람들이 엘리야를 어떻게 보겠습니까? 비겁한 사람! 겁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순종합니다.

둘째는, 이성적으로 맞지 않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합니다. 이 이야기가 믿어집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사람조차도 까마귀로 날 먹인다고 비웃을 명령입니다. 반면에 믿음의 사람에게 까마귀는 레위기 11장에서 보면 부정한 새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본래 매우 게걸스런 날짐승으로 시체와 썩은 것들을 즐겨 먹어치웁니다. 그런데 그런 부정한 새와 썩은 것까지 먹어치우는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겠다고 합니다. 도저히 믿음의 사람으로서도 믿고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셋째는, 환경으로도 순종하기에 어려운 명령입니다.

그릿이라는 뜻이 분리’ ‘단절입니다. 그릿이라는 말은 좋은 환경에서 단절되고 분리되어진 나쁜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그릿 시냇가는 좁고 협소한 계곡입니다. 결코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쉽게 발각될 수도 있고, 도망칠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 옆 그래도 조금 넓은 요단강에 숨으라고 하지 않으시고 좁고 협소한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는 엘리야의 성품으로나, 이성으로나, 환경으로나 어려운 명령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 성품(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내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나쁜 환경을 주신다고 불순종하거나,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고집과 아집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기 경험에 비추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여호와의 말씀대로 순종하였던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고 그 말씀대로 살았던 순종의 사람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

내 생각대로, 내 기분과 감정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은 대체로 기분 따라 신앙생활 합니다. 기분 좋으면 기도생활도 하고 감사도 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십일조도 잘합니다. 그런데 기분 나쁘면 그게 어디 있습니까? 언제 그랬느냐 하는 것처럼 기도도 감사도 이웃사랑도 없습니다.

신앙이란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많이 순종하고 있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신앙이 등급이, 인생의 등급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빠서 못하느니, 살기가 어려워서 못하느니, 피곤해서 못하느니 하는 이런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주님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으니까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지요! 목사님도 나 같은 환경에 처해 보세요. 감사가 과연 나오는가?” 이런 변명은 필요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으니까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고 믿음입니다

주님이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니까 그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는 성격이 모나서 어쩔 수 없다느니, 타고난 성격이 이래서 어쩔 수 없다고 핑계할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을 쥐어뜯어야 됩니다.

우리는 늘 엘리야처럼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승산이 있습니다. 축복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은혜가 있습니다.

 

3. 순종할 때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믿음으로 나아갔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6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하여 아침과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숨어 있는 엘리야를 위해서 하나님은 아주 특별하게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잘 훈련된 개나,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묵묵한 사람을 동원하지 않고 부정한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엘리야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욕심 많은 까마귀를 통하여 떡과 고기를 공급하신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늘 인도하시지만 때로는 초자연적인 역사도 베푸십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불가능할 때, 일상적인 방법과 수단으로서 나의 생존이 불가능해졌을 때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지금도 내 삶을 책임지시고, 내 필요를 채우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과연 순종의 자리인가 하는 이 사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처한 이 환경이 얼마나 좋은가 라는 생각보다 먼저 나는 지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임하고, 삶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호와 말씀과 같이 하지 않는 불순종한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환경일지라도 하나님이 심판을 하시면 아무 좋은 환경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까? 아합처럼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머리 좋은 사람을 찾지 않으시고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머리 좋은 사람보다 순종하는 사람이 더 큰 은혜와 축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의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기준과 맞지 않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엘리야처럼 까마귀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주사랑감리교회
글쓴이 : 이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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