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주님을 감동시켜라 (마8:5-10) 120916 주사랑감리교회

하나님아들 2016. 4. 21. 16:41

주님을 감동시켜라

8:5-10

    

책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체족들로부터 설교를 부탁받았습니다. 목사님은 마음이 꺼림직했지만 그들도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성령님께 의지하고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이 나체족들에게 설교하러 간 사이에 목사님이 시험이 들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목사님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사모님은 궁금해서 목사님이 들오자마자 목사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여보, 말씀을 전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목사님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글쎄, 설교하면서 보니까, 그 사람들은 옷도 입지 않고 주머니도 없어서, 과연 이들이 헌금은 할까라는 생각을 했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른 것입니다. 사모님은 목사님이 나체를 보고 시험에 들까 생각을 했고, 목사님은 주머니가 없는 그들을 보고 헌금은 할까 생각한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보실 때 무엇을 보실까? 그 목사님처럼 헌금할 우리의 지갑을 보실까요? 아니면 멋지게 차려입은 의상을 보실까요? 또는 여러분의 학벌과 재능을 보실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무엇을 보실까요?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그것을 보십니다. 주님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를 보시고 실망하기도 하시고 놀라기도 하시고 감동을 받기도하십니다. 주님을 감동시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1. 감동하시는 예수님(10)

예수님은 좀처럼 놀라지 않으십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 때문에 특별히 감동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니 예수님은 놀라워하시고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놀라워하고 감동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백부장의 탁월한 믿음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고 감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자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를 합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합니다.” 그러자 주님이 가서 고쳐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때 백부장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8-9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말씀을 들으시고 주님은 깜짝 놀라셨습니다. 1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여기 놀랍게 여겼다는 말은 깜짝 놀라다’, ‘아연케되다’, ‘자지러지다’, ‘감탄하다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님께서 졸도할 만큼 깜짝 놀라고 감탄하셨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무엇 때문에 졸도할 만큼 놀라셨습니까? 주님은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만한 믿음을 영어성경 KJV‘so great faith’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만한 믿음이란 거대한 믿음, 위대한 믿음, 큰 믿음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거대한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믿음이라고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의 크기가 다르고 믿음의 질이 다릅니다.

그가 로마의 장교라는 사실 때문에 놀라시고 감탄하신 것이 아닙니다. 로마의 장교가 하인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시고 놀라시고 감탄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부장의 거대한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고 감탄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감동하신 것은 백부장의 거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주님처럼 믿음을 보시면 감동적으로 반응을 하십니다.

15:5-6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밤에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고 나가십니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별을 세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셀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은 네 자손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을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께서 감동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놀라게 하고 감동케 하는 것도 역시 믿음입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자신을 감동시킬만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자신을 감동시킬만한 거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은 오늘 나의 믿음을 보시고 근심하고 계실까요? 아니면 감동하고 계실까요?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갈 때에 예수님을 감동시킬만한 거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인생이 참으로 복된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킬만한 이만한 믿음, 거대한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2.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

어떤 사람들은 말씀만! 말씀만!’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말씀이 전혀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건 죽은 말씀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만을 강조하다 보면 이성주의에 빠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되어지지 않는 말씀은 말씀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신비한 기적만 찾아다닙니다. 이것은 신비주의로 위험합니다.

 

이 백부장의 믿음은 단지 말씀을 믿는 믿음이 아닙니다.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말씀과 능력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곧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당시 중풍은 불치병입니다. 요즘도 중풍은 상당히 난치병입니다. 이천년이 지난 지금 의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중풍 병은 의학이 잘 못 고칩니다. 그 당시에는 불치병 가운데 불치병입니다. 그런데 무슨 배짱으로 한마디 말씀만 하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까? 백부장은 말씀만 믿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이 직접 자기 집에 오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어떤 분이 목사님에게 기도를 부탁했는데 집에 와 직접 기도해 주지도 않고 전화로만 기도하겠습니다.’라고만 말한다면 섭섭하다고 할 것입니다. ‘누구 집에는 가서 기도해주고 누구 집에는 안 옵니까?’ 서운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우리 집에 오실 것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말씀만 하십시오.

8절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원문의 뜻은 단지 한 말씀만 하옵소서.’로 되어 있습니다.

여러 말씀을 하실 것도 없고 길게 말씀하실 것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능력 자체이니만큼 단지 한 말씀만 하옵소서.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여러 말씀 하실 것도 없이, 길게 말씀하실 것도 없이 단 한 말씀만 하시면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상관없이 그대로 역사할 줄 믿는 믿음!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든 한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씀의 권능과 말씀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이 없다고 칭찬해 주신 것입니다.

교회에는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로 인하여 사회 구석구석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의사, 미용사, 한의사, 법률가, 연예인 .... 이런 사람들을 통하여 선교할 수 있고, 봉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교회에 필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에 필요한 것은 백부장과 같은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직분을 갖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래 믿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이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대하고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내 믿음을 보고 주님도 깜짝 놀라고 감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의 능력을 믿는 믿음!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한 마디만 하시면, 한 말씀만 하시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

어떤 두 사람이 서로 마주 앉아 기차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둘 다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둘은 금방 친해졌고 시간이 지나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점심으로 김밥을 준비해왔고 또 한 사람은 기차에서 사먹으려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식중독 위험이 있다며 기차에서 아무것도 팔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 김밥을 사온 한 사람이 김밥을 꺼내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점심을 준비 못한 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저는 요즘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큰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에 질세라 혼자서 김밥을 먹고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뭐라고 말했을까요? 저는 요즘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조금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믿음이 있다고 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믿음이 무엇인지를 전혀 내 주변의 사람들과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 백부장은 말씀의 능력만 믿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닮고자 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이 백부장은 그 당시 백 명의 군사를 거느린 갈릴리지역의 사령관이었습니다.

그 당시 하인은 짐승처럼 사고파는 시대였습니다. 하나의 재산 목록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하인의 중풍 병을 위해 친히 주님을 찾아와서 간구합니다. 부하들을 보내지 않고 하인을 위해 간청을 합니다. 헬라어에는 자기 종을 표현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어 둘로스노예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단어 파이스이라는 뜻이지만 때로는 아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소년, 철없는 소년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종을 가족처럼 아낄 때 파이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 종을 둘로스라 하지 않고 파이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종을 아들처럼 사랑하고 아끼는 주인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백부장을 보고 예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아무런 가치 없는 종을 대할 때 아들처럼, 불쌍한 아들처럼, 병들어 죽어가는 아들처럼 안타까움을 가지고 대하는 백부장의 믿음,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을 보시고 감동한 것입니다.

그것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마 하셨을 때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안목으로 볼 때, 무명 랍비로 여겨진 예수님께서 당시 로마 장교 백부장의 초대를 받았다면 예수님께 더 영광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백부장의 집에 예수님이 들어가서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지 않고 주여!’ 즉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주님처럼 귀하신 분이 천한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당신처럼 존귀하신 분이 미천하고 무가치한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당신 같은 분이 이방인인 더러운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나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겸손한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겸손을 가진 믿음을 내가 본적이 없다고 감동하십니다. 백부장의 겸손한 인격이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여러분! 인격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인격은 겸손한 인격입니다. 인격 중에 가장 빛나는 인격은 겸손한 인격입니다. 겸손한 인격을 보면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누가 보아도 예수님을 모실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겸손한 마음이 예수님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내가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면 행복이 깨집니다. 늘 싸움과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복이 많아 이런 아내를 얻었지.’ ‘나보다 남편이 더 낫다. 내게는 과분한 사람이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래야 가정이 행복합니다.

교회에서도 하나님께서 부족한 나를 귀히 여기셔서 과분한 직분을 주셨지.’ 감사하며 사는 것이 겸손입니다. ‘교회에 충성하지 못했고 갚지 못하고 살았는데 늘 과한 인정을 받고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겸손한 인격입니다.

늘 손해 보는 것 같고, 늘 빼앗기는 것 같고, 좀 더 인정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 항상 섭섭하고 불평스러운 것이 교만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아프게 하는 인격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사랑과 겸손한 신앙을 보시고 감동하셨습니다.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실천하는, 말씀대로 사는 신앙을 통해 주님을 감동케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주님은 오늘 나의 믿음을 보시고 근심하고 계실까요? 아니면 감동하고 계실까요?

우리도 백부장처럼 거대한 믿음, 큰 믿음, 위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이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구원하신 하나님이 말씀대로 치료하시고, 말씀대로 해결하시고, 말씀대로 축복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믿어져 능력으로 나타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지식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를 새롭게 하고, 나를 행동하는 하는 말씀이 믿음으로 실천이 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큰 믿음을 통하여 주님을 감동시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주사랑감리교회
글쓴이 : 이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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