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십자가를 향하여 마26:36-46 2015.3.22 주사랑감리교회 이우성

하나님아들 2016. 4. 21. 16:22

십자가를 향하여

26:36-46

 

인생의 목적이 무엇일까?

잘살아보세. - 밥 세끼 걱정 안하는 것이 목적.

그러다 내 집을 갖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 살아갔습니다. 자기 집을 갖기 시작하면서 화장실을 목적으로 살아갔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밖에 화장실을 실내로, 실내에 화장이 1개에서 2개로 ) 그러다 보니 인생이 다 갔다고 말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집 한 채 갖기도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빚지지 않고 사는 것이 목적이 된 시대, 지금 현재를 만족하게 사는 것이 목적이 된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실 축복된 미래를 소망해야 합니다.

 

목회의 목적이 무엇일까?

많은 목회자들이 영혼 살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목회를 시작했지만 목회를 하다보니 목회의 목적이 교회성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십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5번 건축했다고 하시는 대단한 분들이 있습니다. 큰 교회를 짓는 것이, 교인을 많이 늘리는 것이 목적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교회를 키우고 나니 총회장이나 감독이니 하며 교회권력을 가지려고 교회 정치 세계에 들어서는 것을 봅니다. 목회의 목적이 인간적인 성공으로 변질되는 것을 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의 목적이 우리의 목적이 되기를 ....

최후의 만찬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면 22:2122 “그러나 보라 나를 파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당신이 팔릴 것을 아시면서도 피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작정된 대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을 다하여 기도하신 후에 26:45-46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당신이 팔려갈 것을 아시면서도 피하지 않으시고 당당히 나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향하여 그렇게 나아가셨을까? “십자가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오직 십자가였습니다.

 

오늘은 십자가를 향하여라는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최고의 찬사를 받을 때도 십자가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고조되었고, 사람들 입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이 퍼져나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나 선지자 중에 하나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선포가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천국 열쇠를 허락하셨습니다.

베드로에 의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위해 오셨는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능력자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은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가장 높은 분이시며, 가장 존경을 받으실 분이시며, 우리를 살릴 분이시며, 우리가 믿을 분이라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최고의 고백, 최고의 찬사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베드로에 의해서 주님이 누구신지 밝혀졌으니 그렇게 대접받고, 영광받고, 높임받아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해서 선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주님 그리하지 마옵소서.’하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단호하게 십자가를 지시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시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는데 그 고백과 찬사 앞에 교만하거나 당신을 드러내려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군가에게 높임받고 칭송받는 것보다 십자가를 더 중요시 여기셨습니다.

누군가의 칭송에 머무르지 않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2. 최고의 인기에도 십자가

예수님은 그렇게 그리스도이심을 숨기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들어가기 위해서 나귀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얹었고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21:8-9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님 때문에 예루살렘에 난리가 났습니다. 무리들은 그를 갈릴리 나사렛에서 온 선지자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온다고 누가 그렇게 환영을 받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시는데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사실 나귀 새끼를 타고 들어가는 예수님은 구경꺼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은 구경꺼리로 보지 않고 선지자로 구원자로 왕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베어 펴고 소리를 내어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며, 경배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입성하는 예수님은 인기 절정에 이른 상태입니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시는 것입니다. 그 인기가 얼마나 컸는지 빌라도는 예수를 시기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예수를 재판에 넘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 인기와 명예라면 예수님은 당대에 최고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3일이 지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십자가에 못박히실 것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것,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듣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그래서 인기 있는 자리에 있고 싶어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인기와 존경과 칭송을 뒤로하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인기를 받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면 즐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십자가였습니다. 그 무엇도 십자가와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최고의 인기와 존경이 있어도 십자가와 바꾸시지 않으셨습니다.

 

3. 인생의 아픔 가운데서도 십자가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특별히 세운 제자들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족과 같이 지낸 사람들입니다. 3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특별한 애정을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당신을 배신할 것을 아셨습니다. 한 제자는 이미 예수를 넘겨줄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의 자리를 베푸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리라고 하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제자에게 당하는 배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제자는 예수님이 가장 믿었던 제자입니다. 그래서 돈 주머니를 맡겼었습니다. 그 제자가 아마 가장 똑똑한 제자였나 봅니다. 그런 제자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것을 아시면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당신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당하는 배신, 믿는 자에게 당하는 배신은 사람에게 아픔입니다. 슬픔입니다. 때로는 그 배신당했다는 것이 사람을 망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는 순간에도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 제자 중에 믿음직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베드로입니다. 좀 거칠고 투박했지만 믿음직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당한다고 하면 언제나 앞장서서 예수님을 막겠다고 했던 제자입니다. 모두 주를 버린다고 할 때 베드로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제자도 당신을 버리고 주님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3년의 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인 제자를 세우는 일이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현실입니다. 3년의 공생애가 헛된 것 같은 순간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나 돌아보니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입니다. 이런 일이 닥치면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이제 내 인생은 허무하다고 손을 놓아버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슬픔 가운데 기도해야 합니다. 인생이 실패했다고 여겨질 때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인생의 그 슬픔과 고통과 고뇌 가운데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기도하십니다.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사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인생의 고통이 그 앞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신, 제자들을 키우는 사역의 실패로 인한 허무함, 그리고 십자가 고통이라는 커다란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뒤로하고 십자가를 향하여 나가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슬픔에 빠져서 절망하거나, 고통과 아픔에 빠져서 낙심하시지 않고 그 슬픔과 고통의 자리에서도 십자가를 잊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4. 오직 십자가를 향하여

예수님은 왜 십자가만 행하여 나아갔을까? 십자가가 과연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세 번이나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습니다. 내 뜻은 십자가를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가시고자 한 길을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길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고난과 고통과 죽음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서 대속제물이 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이 십자가가 목적이었고, 오직 십자가를 향하여 나아갔듯이 주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는 삶의 목적이 십자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나아가야 하며, 영혼구원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5:8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가지고 있는 특성을 생각할 때, 신자들이 제일 먼저 생각 하는 것은 인간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죽음입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상당히 많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 사랑의 십자가입니다.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라는 표현입니다. 특히 "아직" 이라는 표현은 매우 강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신 때는 여전히 우리가 죄인의 상태에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사랑하지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선인이나 의인을 위해서 죽는 자는 혹 있을지 몰라도 죄인을 위해서 죽은 사람은 한 분을 제외하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단 한 분, 곧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가 아직 죄인 있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심은 정말로 죄인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지 않고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를 향한 긍휼과 사랑에서 연유된 것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된 우리로 멸망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사함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기의 독생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깊고도 넓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죽으신 것은 우리를 사랑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랑의 표시입니다.

 

2. 죄사함의 십자가입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줍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으로 인해서 죄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능력 으로 자신을 죄의 종노릇에서 해방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에는 필연적으로 죄사함을 동반하는 희생이 뒤따라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죄짓고 숨어버리자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지어 입히셨으며, 구약에서는 족장시대와 왕정 시대에 걸쳐 동물이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을 동반한 희생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인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는데 바로 그것이 죄사함입니다. 이 죄사함을 위해서는 피흘림을 필요로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피흘림을 동반하였기 때문에 죄인된 우리의 죄를 사하는 결과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죄사함,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선결 조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심으로 죄사함을 가져다 주셨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사함을 곧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16).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바라 볼 때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십자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우편은 영광과 권능의 자리입니다. 그것은 부끄러운 고난이며 저주의 자리였던 십자가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권능과 영광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성취하셨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히심으로 모든 영광과 권능을 누리게 하셨고, 모든 만물로 예수님께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고난이 없는 승리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 후에 얻은 승리라야 참다운 승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으려 한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더 이상 저주의 십자가도, 부끄러움의 십자가도 아닙니다. 그것은 승리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심으로 우리를 온전히 구원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한 분 외에 어느 누구도 우리의 구원을 담당 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외에 어떠한 것도 우리의 구원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 되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온전한 구원의 방법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믿음의 주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와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 가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과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이 표현된 것이며, 우리에게 죄사함과 구원을 가져다 주며, 완전한 승리와 구원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출처 : 주사랑감리교회
글쓴이 : 이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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