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낮아지신 예수님 빌2:5-11 2015.3.15 주사랑감리교회 이우성

하나님아들 2016. 4. 21. 16:24

낮아지신 예수님

2:5-11

 

한없이 높아진 교회의 십자가 한 없이 낮아진 교회의 위상

조암에는 가장 높은 첨탑이 조암교회 십자가. 아마도 신흥교회 십자가보다 더 높이 세우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여의도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가 국회의사당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여의도에 대표적인 건물 중에 하나. 사랑의 교회가 대법원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더 크고 화려하다고 합니다.

웬만한 면단위 마을을 가면 가장 큰 건물, 가장 눈에 띄는 건물 중에 하나가 교회입니다. 교회에 세금을 먹인다고 하는 이유는 교회에 많은 물질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교회들의 이야기입니다. 끊임없이 높아지려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요즈음 세상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입니다.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요즈음 가장 문제가 많은 곳이 교회,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큰 범죄에 연루된 기업 회장이 대교회 장로라고 합니다. 큰 교회마다 분쟁이 없는 교회들이 없습니다. 곳곳에서 교회에 의한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종교시설 중에서 가장 많이 경매에 나오는 것이 교회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단에게 넘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몇 년 사이에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인기도가 천주교, 불교는 높은 반면 기독교는 형편없다고 합니다.

 

교회가 건물과 사람의 숫자와 재정의 크기로 높아지려고 하는데, 높아졌는데, 실제로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곳, 욕먹는 곳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복음서에서 똑같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셨습니다. 낮아지라고 하시는데 교회는 끝없이 높아지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예수님의 말씀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은 사순절을 보내며 낮아지신 예수님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예수님이 낮아지셨다.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심에 대해서 가르치는 말씀 중에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는 말씀 중에 하나가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서 창 1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사람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은 특별히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말을 쓰시며 지으셨습니다. 그렇게 특별하게 지음 받은 인생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났으며, 저주와 죽음 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 세상에 오실 때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고 하였습니다.

 

처음 창조의 모습에서 사람은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특별한 것들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위상을 높여주셨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세워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순종으로 실패하여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죄인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는 이제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낮아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의 모양을 입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사람의 모양, 종의 형체를 입으셨습니다. 이것이 사순절에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모두 다 높아지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을 입은 최고의 자리에 올려진 인생들이 실패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왜 그들이 불순종했습니까? 더 높아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뱀이 말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하와가 넘어갔습니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말, 그렇게 높아진다는 말에 끌리는 순간 그 나무가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다가 죄인의 자리로 추락하였습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높은 자리를 찾습니다.

아담이 그랬듯이 아담의 후손이 우리도 그런가 봅니다. 삼성이 우리나라에서 일등을 하고나니 이제 세계에서 일등을 하겠다고 합니다. 아마 세계에서 일등을 하면 전 우중에서 일등을 하겠다고 할 것입니다.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는 자녀가 일등이 되길 바랍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일등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게 어렵다면 경기도에서라도, 그게 어렵다면 다니는 학교에서, 그게 어렵다면 반에서, 그게 어렵다면 동네 애들 중에서라도 일등을 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세상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10대 교회에 5개가 한국에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장로교회, 가장 큰 감리교회 ..... 거기다 어떤 교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바닥면적을 가진 예배당을 자랑하고, 가진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예배당이라고 자랑한다. 교회가 부흥하면 이제 감독이니 회장이나 하면 다른 높은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높아지려는 아담의 후손의 본성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는 낮아지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높아지려고 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십니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하나님으로 섬김과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낮아지셨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낮아지셨습니다. 종의 형체로 낮아지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낮아지신 것입니다. 가장 높으신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리에 임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마음을 품으라고 하십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낮은 지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낮아짐의 자리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나를 낮추고 겸손한 성도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히 무릎꿇어 기도하는 성도, 겸손히 주님만 높이는 성도, 겸손히 세상을 섬기는 성도, 겸손히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 겸손히

 

2. 자기를 비워야 낮아집니다.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낮아지셨는데, 그 낮아지심은 바로 자기를 비웠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다, 나는 천지를 창조한 말씀이다. 나는 신이다.”는 것이 예수님 안에 가득차 있었다면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종의 형체로 낮아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비웠기에 낮아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고 그 안에 하나님의 뜻으로 채우셨기에,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우셨기에 낮아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낮아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우고 낮아지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내세울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욕심이 가득하고, 내 자신이 가득하여서 낮추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실패했던 이유는 바로 그 안에 돈이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실패했던 이유는 바로 그 안에 자기가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각각 자기 안에 무엇인가 가득 채우고 살아갑니다.

(욕심, 명예, , 미모, 자기만족 .....)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가시나무라는 노래가 지적하고 있습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가시나무 - 내속에 내가 너무 많아 우리 주님이 계실곳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나를 비우고 낮아지지 않기에 결국 욕을 먹고, 부끄러운 곳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랑으로, 욕심으로, 숫자로 채우려는 교회의 모습이 결국 실패한 모습으로, 부끄러운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를 비워야 예수님이 오시며, 나를 비워야 성령님이 역사하십니다. 그 때 겸손하게,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모습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나를 비우고 예수님을 모시며,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채우며,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영광을 채우며, 나를 비우고 하나님의 뜻을 채우며 낮아져서 겸손히 섬기며, 헌신하며, 봉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낮아짐의 결국은 십자가입니다.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이 낮아지셨는데 그 낮아지심의 결국은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단지 이 땅을 보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체로서의 자리를 버리시고 낮아지신 이유는 바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낮아지셔서 사람을 통치하거나,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으시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개화하거나 가르치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심은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위한 대속재물로 당신의 몸을 주시기 위해서 낮아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낮아지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낮아지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철저한 헌신이며, 자기 희생이며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심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낮아지셨고,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하여 낮아지심을 완성하셨습니다.

 

낮아지신 주님을 통하여 오늘 교회와 성도가 가야할 길을 생각해 봅니다. 십자가 불을 높이 밝히는 것이 교회가 나갈 길이 아닙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나를 비우고 내 안에 주님을 채우고, 하나님의 뜻을 채우고 낮아져서 봉사와 섬김과 헌신과 희생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낮아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듯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낮아져서 주님만 위하여, 주의 영광을 위하여 섬김과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 하나님이 높여 주셨다

예수님이 낮아지셨을 때, 철저하게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낮아지셨을 때 하나님이 높여주셨습니다. 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나는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위해, 주의 영광을 위해 낮아지고, 하나님이 높여주는 성도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나는 낮아지고, 하나님이 높여주심을 입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신 모습들

2:23

 

 

1. 탄생이 낮아지심

나신 곳 고향 가장 작은 동네,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땅.

베들레헴 -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나사렛 -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말구유 - [2: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 말구유 아기가 태어나기 합당한 곳은 아니다.

 

목수의 아들

[2: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성전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셨다면 적어도 성전에서 제사장의 가문에서 태어나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살아가셨다.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목수는 당시에 가장 비천한 직업 중에 하나에 속하였다.

 

 

2. 세례를 받으심

3: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많은 사람들

3: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3: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세례를 받는 것은 죄를 자복, 씻음 받기 위함.

세례는 죄인이 받는 것 사두개인, 바리새인이 받으러 왔다.

 

요한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어머님의 태에서부터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1: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이 나보다 크시다고 하였습니다.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3: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그리고 세례는 죄인이 받는 것입니다. 인간이 받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에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습니다.

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낮아지셔서 죄인이 받는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3. 십자가를 지심

[3: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십자가는 죄인의 형틀입니다. 가장 흉악한 죄인을 죽이는 자리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

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14, 22에서도 죄가 없다고 말하는 빌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하는 대제사장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군중들의 외침에 의하여 ------ 십자가 형을 선고 받으셨다.

 

온갖 회롱을 당하신 예수님.

군병들의 회롱, 지나가는 자들의 회롱,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회롱

같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자에게 당하는 회롱.

천군을 명하여 멸하실 수 있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께 철저히 외면당하신 예수님.

가장 큰 아픔, 고통, ---- 죽음 = 인간에게 가장 큰 형벌인데 --- 예수님이 그 형벌을 받으셨다. 인간의 모든 질고를 지고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낮아지셨다.(죽어서 장사지내심)

 

 

왜 예수님이 낮아지셨는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 예수님 사랑, 예수님께 감사

출처 : 주사랑감리교회
글쓴이 : 이우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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