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고난
사 53:1-6 마 27:45-50
오늘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이며,
이 주간은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고난주간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며 나아가셨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이기에 오직 십자가만 바라보며 나아가셨는가?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보고 나아갔던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고, 기독교를 십자가의 종교라고 합니다.
1. 십자가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장식물로 전락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것을 봅니다. 차에도 달려있고, 목에도 달려있고, 손목에도 달려있고, 반지에도 달려 있고, 옷에도, 집에도 십자가의 문양들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성공으로, 축복으로, 명예로 바라보고 나아갔는가?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십자가는 세계에서 가장 끔찍한 사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수들을 처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저주의 장소입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십자가형은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것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땅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쁜 죄인은 땅에 놓고 죽이면 땅이 더러워진다고 해서 죄수의 몸이 땅에 닿지 않고 죽이기 위해 고안해낸 사형 방법이 십자가라고 전해집니다.
땅에 몸이 닿지 않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시신을 내리지 않고 그냥 매달아 두어서 새들의 밥이 되게 했다고 합니다. 이 사형방법이 로마에 건너와서 그냥 죽여서는 안 되는 죄수들, 어떠하던지 고통을 주어서 죽여야 하는 최악의 죄수들을 처형하는 사용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인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십자가에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크리스천이면서도 베드로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십자가에 처형당했지만,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에 십자가형을 받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사람들 중 가장 죄질이 나쁜 자들을 처형했던 것이 십자가형이었다. 십자가는 저주이고, 죽음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시므로 말미암아 이제 더 이상 십자가는 사형틀, 저주의 상징이 아닌 평화의 상징, 생명의 상징, 구원의 상징으로 바뀌었습니다. 십자가는 교회를,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복음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십자가를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가장 저주스러운 것이 가장 복된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특징입니다. 기독교는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것이고, 땅에 속한 자를 하늘에 속한 자로 바꾸고, 마귀의 종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꾸고, 죽은 자를 살아있는 자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이루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무엇을 하셨는가?
2. 고난의 십자가
예수님은 공생애를 살아가시면서 끊임없이 고난당하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에 의해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진리가 선포된 이후에 고난당하실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17: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아니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선지자들이 이미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 53:3-4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러면서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찔림, 상함, 징계, 채찍 .......
예수님이 공생애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에게 고난이 왔는데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군중들의 외침에 의해, 빌라도의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십자가 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기적을 행하시거나 능력을 행하시거나 역사를 일으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극적인 역사를 일으켜서 반전의 역사를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온전히 고난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3.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고난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은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가 당할 모든 고난을 주님이 당하셨습니다.
육신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마 27: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십자가형이 선고되면 먼저 채찍에 맞습니다. 그리고 그 채찍을 맞는 가운데 생명을 잃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미 고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채찍에 맞은 후에는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은 너무 힘이 없어서 자꾸 넘어지고 더디므로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지었습니다.
마 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형장에 오면 십자가를 눕히고 그 위에 죄수를 눕혀서 먼저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발밑에는 비스듬한 발판이 있어서, 살갖이 찢어져 죄수가 형틀에서 떨어지는 것을 막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워 놓으면 못자국으로 피와 물이 흐르고 극심한 고통 가운데 죄수는 서서히 죽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몸 안의 물과 피를 너무 많이 쏟음으로 죽든지 아니면 질식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어떤 죄수들은 몇 일씩 달려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6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땀흘려 기도하셨고, 밤새 한잠도 못 주무시고 이리 저리 끌려 다니시면서 심문을 받으셨으며, 채찍에 맞고 가시 면류관을 쓰실 때 이미 많은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그래서 불과 6시간 만에 운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큰 육신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정신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마 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십자가는 생명을 빼앗기에 앞서 의와 명예를 빼앗습니다. 십자가는 굴욕입니다. 부끄러움과 수치를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 죄수의 옷을 벗깁니다. 화가들이 십자가 그림을 그릴 때에 너무나 민망하여서 옷자락으로 치부를 가렸답니다. 실제로는 벌거벗겨져서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명예를 빼앗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고난은 대제사장의 집에서 심문을 받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예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었다고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낼때도 절대 뺨을 때리지 말라고 한답니다. 그것은 모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것은 최대의 모욕을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사람들은 주님을 조롱하고 희롱했습니다.
마 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마 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지나가는 자들이 조롱을 합니다. 머리를 흔들면서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한 자여!’ 하면서 갖은 조롱과 욕을 보였습니다. 며칠전에 호산나 외치던 사람들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자리에서 떡을 먹던 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합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욕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인생들에게 모욕과 조롱과 회롱을 당하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참고 인내하시며 그 모든 모욕과 회롱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영적인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하나님의 자녀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은총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행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큰 약속 혹은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는 가장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영적인 고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십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 철저하게 버림받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면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손길이 가장 필요한 때가 언제일가요? 아마 죽음의 순간일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원수 같이 살다가도 죽음의 순간에는 화해를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의 순간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필요한 그 때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른 어떤 고난보다 큰 고난입니다. 영적인 고난입니다.
영적인 고난은 예수님에게 있어서 다른 어떤 고난보다 힘든 고난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4.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이루신 은혜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심을 표현한 본문은 예수님의 고난당하심은 모두 우리와 관계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물,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우리의 화평과 우리의 나음을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고난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 예수를 믿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고난 당하신 것은 주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그렇게 철저하게 고난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는 의로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우리의 죄악을 짊어진 결과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의 형벌을 십자가에서 당하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고, 십자가 주님을 사랑하며, 내 십자가 나도 지고 주님 따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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