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주님의 명령
요 20:19-23
누군가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찾아내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전파하는 것도 다 헛것이요, 우리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승천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 땅의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여 생명의 주가 되셨습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부활
불교가 기독교를 제일 많이 밴치마킹 합니다.
교회는 주로 도시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 세워집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절도 교회를 모방하여 산에서 내려와 도심에 한 가운데 절간을 세움으로 기독교 신앙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니까 저들은 조용히 수양하면서 염불을 외우는 대신 찬불가를 만들어서 노래합니다. 우리가 성경학교를 하니까 저들도 아이들을 모아놓고 불교 학교를 합니다. 주일마다 우리는 모여서 예배합니다. 저들은 원래 1년에 한 두 번 산사를 찾는데 이제는 주일마다 정기 예불 집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방을 다니는가 하면, 평신도 모임, 단체를 조직하기도 하고 속회같은 조직까지 갖춰 논 모양입니다.
5월이면 초파일이 있습니다. 온 인류가 기뻐하며 성탄을 지키는데, 불교는 석탄일을 지킵니다. 그러면서 성탄절이 공휴일인 것처럼 석탄일도 공휴일로 해달라고 정부에 몇 년 동안 건의해서 지금은 공휴일이 되었습니다. 세계 역사를 구별하는 서기(주후)를 대신해서 불기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불교는 기독교의 신앙을 엄청나게 흉내냅니다. 밴치마킹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흉내 낼래야 낼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죽으심이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입니다. 불교가 기독교의 부활절은 흉내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의 무덤이 있고 시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라는 말씀을 통하여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평강이 있을지어다.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요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강을 비셨습니다. 주의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그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12시간 이상 지났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부활하시어, 잠잠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 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요 20:18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와 그 여인들은 너무나 흥분되서 그 소식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삽시간에 그 소식이 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고 숨어 있었습니다. 말씀에 보면 문들을 닫고 하는 것을 볼 때에 이중 삼중으로, 그리고 모든 문들을 다 닫고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단지 문들만 닫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마음의 문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소문이 들리고, 직접 만났다는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주어도 그 말씀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주님이 하셨던 말씀,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강조하여 하셨지만 그 말씀을 기억하는 제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음을 열면 말씀이 은혜가 됩니다. 축복이 됩니다. 깨달아 집니다.
마음이 닫힌 것이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주님이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찾아오셔서 가운데 서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직접 주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직접 만나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능력의 주님으로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버리고 도망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책망하시거나 징계하시지 않으시고 평강을 빌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죽음이 자신들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 누가 그들을 밀고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반복하여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21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평강을 빌었다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평강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누리신 평강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누릴 하나님과의 평화를 말합니다. 부활한 주님을 믿는 자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평화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이 선포한 평강은 제자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며, 부활한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누려야 할 축복이며, 선포할 메시지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불안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 사랑하는 성도들이 평강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으라고 선포하시고, 명령하셨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습니까? 질병과 사고에 대한 공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부활하신 주님을 통해 선포하신 평강이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주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생명이십니다. 부활이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이 허락하시고, 선포하시고, 명령하신 평강이 있기 바랍니다.
2.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나면서 자기들의 인생을 모두 예수님께 걸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제자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며, 배와 그물과 아버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는 돈을 많이 벌고 잘나가던 세리장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놀라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년 만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들의 인생을 걸었던 것이 한 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예수님께 올인했는데 그것이 십자가에서 모두 무너지는 엄청난 일을 겪은 것입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사람의 인생이 무의미해집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아무 것도 하기 싫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런 제자들은 찾아오셔서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보냄을 따라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시고,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따라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세상 죄를 지신 대속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명으로 살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의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제자들에게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살아갈 이유와 삶의 의미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전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성공, 명예, 자리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자리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기도 하였으며, 실망하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버리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이제 사명의 사람으로 세워졌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이제 삶의 목적이 내가 아닌 나를 보내신 주님이 되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아도 보내신 주님을 위하여 죽어도 보내신 주님을 위해 사는 사명의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구체화시키는 것이 마 28:18-20의 지상대명령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한 주님은 믿는 우리가 사명의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위해, 나의 성공, 나의 명예, 나의 목적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보내심을 받은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를 보내십니다. 우리를 보내신 자리가 어디든지 우리는 주님이 보낸 자로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삶이 되야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힘쓰는 삶이 되야 합니다.
3.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에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주셨는데 그것이 성령에 대한 말씀이셨습니다. 요 14-16장까지 성령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17장에서 기도하시고, 18장에서 고난이 시작됩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시고, 성령의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그 말씀의 결론을 맺는 것입니다.
요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바로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셨지만 그 말씀이 지식의 말씀, 이론의 말씀이 아니라 너희 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이 되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은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에 이어 바로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명의 사람으로, 주를 위해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나로 가득해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사명의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까? 나만 위해 살던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바뀔 수 있습니까? 성령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바울이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은 다멕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다메섹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예수를 증거하는 사람으로, 주님의 사람으로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아주 상징적인 사건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공생애를 살아가셨습니다.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사명을 위해 살아가실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행하셨습니다.
사명을 받은 사람은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은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었으며, 계속된 가르침이었고, 부활하신 주님의 마지막 명령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성령세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하신 “성령을 받으라”는 명령은 사명을 받은 자에게 너무나 중요한 명령이기에 강조하시고, 강조하신 줄 믿습니다. 축복받기를 소망하는 시대에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하시고 제자들을 찾아가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다 제자들을 위한 것이고, 믿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를 보내셨음을 확신하며 주님을 위해 사는 사명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받고 충만하여 부활의 증인으로, 부활의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마 28:8
1. 막달라 마리아
마28: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 큰 사랑을 입었던 여인입니다. [눅8:2]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그 이후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자리에도 함께 했으며,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시신을 찾았던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잃은 슬픔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이라도 보려고, 마지막 장례라도 잘 치러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돌이 굴려져 있고,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눅24: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요20: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요20:13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의 시체가 사라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며 슬퍼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주셨습니다. 막16:9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막달라 마리아는 큰 기쁨을 가지고 달려가 예수님을 부활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우는 자들에게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막16:10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부활의 주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는 우는 자에서 큰 기쁨을 가진 자로 변화되었습니다.
2. 절망에 빠진 두 제자
눅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예수님의 제자 중에 두명이 엠마오 마을로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눅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안식일이 지나자 마자 예루살렘을 피하여 엠마오 마을로 향하여 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고향이나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사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눅24:22-24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떠나고 있다는 것은 실망과 두려움에 빠진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소망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이야기가 있음에도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입니다.
절망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는 그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눅24:30-31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그들은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 눅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절망에 사로잡혔던 도망치던 사람이 사명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낙심하던 자가 소망의 사람으로, 절망의 사람이 희망의 사람으로 ... 사명의 사람으로
3. 베드로
요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베드로는 주님의 일에 언제나 앞장섰던 제자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사람입니다. 반석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천국열쇠를 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죽을 각오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에 주님을 버리고,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배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가 만나주셨습니다.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찾아가 책망하시지 않으시고 사랑을 확인하셨습니다. 세 번이나 같은 질문을 하시므로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고, 세 번이나 사랑을 고백하게 하시므로 그의 허물을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주님의 양을 치라고,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배신자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이제 사명자로 바뀌었습니다. 배신자가 사명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사명자로 어떻게 살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 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그 말씀대로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고, 십자가에 거꾸로 잘려 순교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활한 주님을 만나니 배신자가 사명자로
핍박자가 사명자로 바뀌는 은혜가 있습니다.(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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