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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열두 제자를 부르심(마 10:1-4)|

하나님아들 2016. 4. 20. 14:09

열두 제자를 부르심

본문: 10:1-4

요절: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자기 백성으로 부르신 후에, 목자를 세우시고 그들을 통해 백성을 다스리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란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돌보는 자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백성을 어떻게 돌보았습니까? 그들 중에 다윗과 같은 선한 목자도 있었지만, 대체로 삯군 목자들이 훨씬 많아서, 하나님께서는 자주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를 고소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가 선지자의 고소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합니다: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기뻐하여 백성의 가죽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가죽 벗기며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가운데에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3:2-3)

결국 이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로 잡혀가고 국가는 멸망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은 각성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지만, 이들도 실패합니다. 이들은 과거와 같이 백성을 무력과 거짓으로 지배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앞에 매우 위선적이 되고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양들을 보살펴주지도 않고,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어주신 구원자이신 메시아의 가르침까지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주 본문에서 영적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사단의 종으로 몰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공격은 더욱 심해집니다. 결국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박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완전히 새롭게 일을 시작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수없이 많은 영적 지도자가 있었지만, 그들을 모두 버리시고 전혀 다른 사람을 영적 지도자로 세워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시작하신 새로운 역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며,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해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은 기도하신 후에 제자를 자기에게로 부르셨습니다.“ 기도하셨다는 사실은 6:12 명시되어 있으며, 우리는 9:38 통해서도 예수님이 기도하셨음을 추측할 있습니다. 6:12-13 보시겠습니다: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제자들을 부르사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기도를 하셨을까요? 기도 제목은? 그렇게 오랫동안, 밤새도록 기도를 하셔야 했을까요?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예수님께서 밤이 새도록 기도를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열두 제자의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밤새워 가면서 기도하신 결과이며, 그만큼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성은 예수님이 선정하신 사도의 숫자인 열둘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임의의 숫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참조: 19:28). 무슨 특별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굳이 열둘을 불러서 사도로 세우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벌써 오래전부터 많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양육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시고 활동하신지 벌써 년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신 것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는 열두 지파에 상응하는 열두 사도를 부리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요한복음 1 35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시려고 때에 벌써 다섯 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나다나엘.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부르심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단계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기 전에 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사역하셨습니다. 이들은 가나의 결혼잔치 때에도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요단 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도 주었습니다( 4:1-2). 그러다가 그들을 정식 제자로 부르신 것은,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힌 ,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독자적으로 활동하시기 시작했을 때입니다( 1:14 이하). 이때에는 베드로도 예수님을 금방 따른 것이 아니라, 깊은 고백을 다음에( 5:8: „시몬 베드로 이를 보고 예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본격적으로 따랐습니다. 요단 가에서 부르시고,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부르시기까지 적어도 개월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후부터 오늘 사도로 임명받기까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제자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분명한 자세로 예수님을 따를 준비가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메시아로 임명받으시고,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역사를 이루어나가시려고 결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이제 이것이 오늘에서야 실현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은, 단순한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매우 중요한 약속을 성취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 메시아와 메시아 왕국에 대한 구약의 예언 성취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열두 지파가 다시 세워진다는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 지파는 산산조각이 났으며, 부분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예언서에는 이러한 이스라엘이 완전히 회복된다는 예언이 많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은 이러한 영적 회복을 정치적, 민족적, 종교적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이방인을 구원하러 오신 진정한 메시아를 배척한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세우실 나라에 대해서는 60:1-4 예언되어 있습니다:

일어나라 발하라 이는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으로, 왕들은 비치는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아들들은 곳에서 오겠고 딸들은 안기어 것이라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죄와 심판으로 말미암아 거의 죽어가며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메시아를 통해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임했으므로 그들은 일어나야 합니다. 비록 시대는 어둠이 땅을 덮고 있을 정도로 깜깜하고 소망이 없었지만,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광명을 받아 일어나고, 빛을 이방인에게 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 그들에게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메시아를 배척했습니다. 그러면 메시아는 어떻게 이스라엘을 열방의 빛으로 만드실 수가 있습니까? 심히 절망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바로 약속의 말씀이 사도들을 부르시고 파송하는 사건에서 성취됩니다. 9:36에서 이스라엘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피부가 벗겨졌음에도 치료받지 못하고, 먹지도 못해 쓰러져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빛이 되게 하셔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5:14-16에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빛이 되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이라이같이 너희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 계신 너희 아버지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께서는 12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이스라엘, 구원 공동체, 교회를 세우신 입니다. 앞으로 교회는 열둘을 주춧돌로 해서 이루어집니다. 이제 12 지파를 기반으로 하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역사에서 뒤로 물러나고, 사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 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사용되는 12 지파, 혹은 이스라엘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 12 지파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야고보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1). 야고보는 베드로가 예루살렘을 떠난 예루살렘 교회가 되어, 흩어진 유대 그리스도인에게 편지를 것입니다. 그도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가 회복된 이스라엘로 보았으므로 12 지파라는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초대 교회가 이루어지기 바로 전에 시편의 예언 말씀을 따라 가룟 유다가 남긴 공백을 채워넣은 것입니다( 1:20). 교회는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12명을 부르신 사건은 제자들을 개인적으로 부르셔서 교육시키신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구속사에 획을 긋는 결정적인 사역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사역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도를 부르셨는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사명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신 권능을 그대로 전달하신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의 행동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으로 율법의 본래의 의미를 가르치셔서 그들을 완전히 새롭게 하셨습니다. 후에는 이들이 가르침을 이스라엘에게 전달할 있도록 실제로 능력도 주신 것입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일은 하나님만 하실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능을 메시아께 주셨는데, 메시아께서는 권능을 다시 그분의 사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 나라는 분명히 능력으로 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와서 능력이 죄인을 지배하고 이들을 빛으로 만드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약해서 누워 있다거나, 환경과 운명, 시와 때를 한탄하고 누워 있으면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신자가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빛의 사도들이 너무도 연약해 자기 문제에 빠져, 그리스도께서 주신 거룩한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48 세계로 흩어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인류사에서 유일한 것입니다. 히틀러에 의해 600 명이 희생된 년이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틀림없이 이사야 12장을 노래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을 것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 우물들에서 길으리로다.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실제로 이스라엘을 세우는 역할을 데이빗 구리온 초대 수상은 이사야 선지자 예언을 따라서 자신이 이스라엘을 세상의 으로 만들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은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불화의 불씨가 되어 세계 3 대전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일어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아랍 국가는 어찌하든 이스라엘을 없애려고 하고, 이스라엘은 아랍 사람을 멸시합니다. 그런데 이보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세대주의 영향을 받아 이들의 불화를 부채질합니다. 이들은 메시아가 예루살렘에 재림하셔서 메시아 왕국을 세워 구약의 예언을 모두 성취하셔야 한다고 믿습니다. 메시아 왕국은 결단코 전쟁과 폭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펴본 대로 메시아 왕국은 이미 세워졌고, 우리는 메시아의 권능을 받아 왕국에서 일하는 일군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구속사에서 일을 했으므로 이미 의미를 잃었습니다. 1948년에 국가가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의 운명에 크게 신경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메시아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열두 사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열두 명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으며( 4:10 이하), 세상의 빛이 되며,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실 때까지 그분을 따르며, 이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적 사건을 보존하여 전달해주었던 자들이며,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이자 최고 결정기관이었습니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초를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모교회가 있는 예루살렘에서 무서운 핍박을 이겨내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기독교는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6:18). 이들은 자기가 매면 매이고 풀면 풀어지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역사상 있는 유일한 직책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어서 부활하면 들어갈 예루살렘의 기초석인 기둥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쓰여있습니다. 이것은 사도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가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 나라라는 것을 최종적으로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21:14)

예수님께서 위임하시어 사도들이 받은 능력은 더러운 귀신 초인적 능력, 모든 하나님께 대적하는 영적 능력보다 강합니다. 이것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사도들만 받은 능력이겠습니까? 아닙니다. 능력은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적대적인 모든 세력보다 강하므로 결코 무너지지 않으며,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갑니다. 그러면 열두 사도의 명단을 살펴보겠습니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3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4 가나나인 시몬 가룟 유다 예수를 자라

우리가 성경의 증언과 여러 고대 문서를 통해 열두 사도의 행적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상 우리는 매우 특이한 인물인 열혈당원인 시몬과 가룟 유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명단에서 제일 끝에 있는 사도입니다.

가나안인 시몬 가나안이나 가나와 관계없습니다. „가나안인이라는 말은 열심이 있는 라는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의 그리스식 발음입니다. 누가는 이것을 아예 젤롯이라는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표기했습니다( 6:15; 1:13). 그래서 우리는 가나안인 시몬이 아니라, 젤롯 시몬이라고 해야 합니다. „열심이 있는 “, 혹은 그리스어 젤롯은 유대의 하나의 당파를 말하는데, 이것은 구약에서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있는 알려진 유명한 비느하스로부터 그들의 이름이 유래합니다( 25:7 이하. 왕상 19:10,14에서의 엘리아도 참조하라). 그들은 비느하스와 같이 이스라엘로부터 악인을 무력으로 뿌리 뽑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악인이란, 일차적으로 외국인과 로마인, 로마와 협조하는 유대인입니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목숨을 바쳐 악인을 쫓아내는데 헌신할 때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메시아와 말세의 구원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 적극적으로 악인에 대항하여 무력으로 싸워야 메시아가 오신다는 생각입니다. 가지, 폭력과 인간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노력은 교회에 항상 유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에도 무력을 사용하고 혁명을 통해 하나님 나라 건설에 기여하려는 신자는 젤롯이라고 있습니다. 만약 세리인 마태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시몬과 마주쳤다면, 시몬은 젤롯의 헌장에 따라 레위를 칼로 찔러 죽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세리와 젤롯이 폭력없이 믿음과 순종에 하나가 되어 열두 제자에 속했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사에 있어 가장 급진적인 혁명이 시작됩니다. 내용적으로는 볼셰비키 혁명보다 급진적입니다. ,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셔서 이루신 새로운 구원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지 36 후에 젤롯들이 폭동을 일으켜 유대전쟁이 발발했는데, 이것을 통해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국가의 멸망을 초래합니다. 이로써 이러한 젤롯주의는 하나님적인 잘못된 길임이 드러났습니다(참고: 16:22-23).

이렇게 자기 출세와 재물을 위해 이웃과 종족이 멸시하는 일도 마다치 않는 세리와, 이들을 죽이는 것을 일삼던 열심당원이 예수님 안에서 회개하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메시아의 언약 공동체입니다. 이로써 이사야 11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때에 이리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 어린 염소 함께 누우며 송아지 어린 사자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11:6)

이리와 어린 , 표범과 어린 염소가 같이 누워서 산다는 것은 어떤 이상적인 세계나 천국을 그린 것이 아니라, 바로 메시아 공동체의 성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평화와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에서 주인과 노예가 함께 교회에 모여서 서로 섬기는 일이 종종 있었고, 한국 교회 초기에도 신자 간에는 양반과 상인의 차별이 금지되었습니다. 아내는 마음이 약해서 조금만 소리가 나도 겁을 먹는 순한 양과 같은 사람인데, 저는 표범과 같이 성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서로 자기부인 하면서 살다 보니, 아내는 강해졌고, 저는 부드러워져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메시아 공동체는 원수와 같은 사람도 서로 주님 안에서 만나서 화해하고 사랑을 배우는 곳이며,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시고 목자시므로, 우리는 자신을 항상 내려놓고 목자님을 좇으므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천국을 맛보고 삽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루신 공동체에서 이루어집니다.

제자 목록에서 항상 제일 끝에 등장하는 이름은 가룟 유다입니다. 모든 복음서 기록자는 그의 이름 뒤에, „ 예수를 자라“, 혹은 배신자가 이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배신할 자를 사도로 삼으신 것은 아닙니다. 유다는 분명히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른 자이며, 예수님도 그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배신자가 것은, 온전한 회심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수록 자기 죄가 드러납니다. 그러다가 분명히 자기 죄를 회개해야 때가 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는 한두 오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오는 것입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온전히 회심한 같지만, 예수님께서 자기가 기대하는 메시아가 아닌 것을 보고, 서서히 그분과 멀어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는 것을 거부하시고 갈릴리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잃어버리신 후에( 6:15, 60, 70-71), 예수님과 거리감을 같습니다. 그때부터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자가 것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성찬 때에 그의 발을 씻으셨습니다( 6:70-71; 13:2 이하). 성찬 후에 유다는 밤의 어둠 속으로(실제로 그리고 영적으로) 나갔습니다( 13:21 이하). 예수님은 그가 배신자임을 밝히시고, 그가 가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13:26 이하).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시지 않고 버려두셨습니다( 17:2).

유다 사건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유다는 가짜 사도가 아니라 진짜 사도였다는 것이고, 그도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했으며, 예수님 외에는 같이 따르던 동료들은 전혀 그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팔아 넘긴 유다와 같은 사람은 가장 경건한 그룹에서도 나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있어야 사람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빵을 먹는 자가 발을 밟으리라“( 41:10; 13:18) 말씀을 가룟 유다로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교회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 많은 위선자가 있으며,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전혀 예기치 않은 사람이 교회를 배반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유다는 우리의 반면교사가 되며, 또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했던 형제가 배신하는 그러한 위기의 때에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심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여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대교회의 기둥인 열두 사도에게 특별한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예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이끌어나가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열두 사도의 삶이나 프로필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다양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사역을 감당하도록 특별한 권능을 부여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교회 지체에게 주어지는 은사로 나타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모든 지체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심으로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나가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주님의 사역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교회를 섬길 있는 권능, 은사를 주십니다. 각자 받은 은사를 발견하여 주님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churchs/AQmI/108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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