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의 조건
본문: 마 10:5-15
요절: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우리는 1절에서 예수님께서 새 이스라엘을 세우시기 위해 열두 제자를 부르시며, 그들에게 예수님의 전권을 주셨음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내시어 이들이 사역을 하게 하셔야 합니다. 이들은 앞으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공식적으로 오순절 이후 시작되지만, 12제자를 통해 교회의 기초는 벌써 이루어졌으며, 전도 여행을 통해 각 처에 원시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그들이 지금 파송받아 어떻게 사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시를 주요 내용으로 합니다.
우리는 이 지시에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항상 유효한 선교/ 전도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독교, 혹은 기독교로 가장한 이단 집단은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전도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오늘날에도 다양한 전도 방법이 사용됩니다. 한국교회가 그간 많은 선교사를 전 세계로 파송하고 양적으로도 크게 성장했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윈칙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시한 것을 잘 연구하여, 먼저 합당한 전도 원칙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5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그러면, 제자들의 선교 대상은 누구입니까?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입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절대적인 우선권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구속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모든 사람 중에서 이스라엘의 육신적 조상인 아브라함 단 한 사람만 선택하신 것과 같습니다. 구약에서도 메시아를 통해서 먼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것을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은혜의 시기가 왔다는 의미입니다! 이로써 이사야서에서 수없이 예언된 것이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구원이 강물처럼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일차로 이스라엘이 구원받아야 한다는 것은 순서의 문제입니다. 이방인을 전도하지 말라는 의미도 아니고 이방인이 차별받는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다만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주어진 구속사의 임무를 다하여 교회를 세우게 되면, 그때부터 이방인의 선교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이해할 때에 시간과 장소를 혼동해서 모든 것을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아마도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사역 모델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거룩한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해 볼 때에 대부분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섬기지도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약 1400년간 동안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잃어버린 자로 보시고, 선지자들을 통해 구하려고 애쓰셨습니다. 예레미아 50:6-7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심정과 이스라엘의 상태를 잘 나타냅니다: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그들을 만나는 자들은 그들을 삼키며 …“
그러므로 예수님은 엄청난 열심으로 이스라엘의 어린 양을 찾으십니다. 구약 전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를 배신하고 떠난 자기 백성에게 선자자들을 통해 호소하신 것과 똑같이, 이제 성자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이 일을 하십니다. 그 이유는 백성이 계속 반항했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입니다(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에게는 모든 것을 만회할 기회가 왔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꿈에도 그리워하던 그 메시아께서 이스라엘에 나타나셨는데, 백성들이 이러한 분, 선한 목자를 또다시 버린다는 것은 이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악한 백성이 비록 자기들을 버리고 죽였을지라도 그 선한 목자만은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전파입니다. 무엇을 전파해야 합니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하나님 나라“라는 말로 압축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이스라엘에게 중요한 이슈입니다. 구약의 많은 예언에서 메시아가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셨는데, 바로 이것이 성취되었다고 하십니다. 죽어가는 인간에게 생명을 주는 하나님 나라, 이것이 또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찾아서 다시 원래의 관계 속으로 데려오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즉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의미입니다. 이리고 이것은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줄곧 해오신 일입니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이 말씀이 지금 예수님에 의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삶, 즉 자기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삶으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삶으로 전향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며,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받은 능력을 시행하라고 하십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분명히 왔다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 말씀을 읽고 아무런 기적을 체험하지 않고서도, 단지 믿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우리와 입장이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말씀에 따라 하나님 나라가 올 때에는 이와 함께 반드시 가시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대부분 이러한 방식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이것은 의심많고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도우시기 위한 방법입니다. 즉, 연약한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교육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가 왔음을 분명히 선포하시고, 이것이 진짜 왔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아무도 자신의 불신에 대한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갖추어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진실로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 더할 수 없이 큰 참화가 옵니다.
9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10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이제 예수님께서는 선교사들이 어떠한 자세로 사명에 임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5-8절이 선교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셨다면, 9-14절은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행동규칙, 방법론을 가르치십니다.
우선 예수님께서는 금지목록을 주셨습니다: 전대(허리끈)는 동방에서 여행할 때 귀중품, 특히 돈을 보관하는 곳이며, 배낭은 여행 시 필요한 음식을 담는 곳입니다. 길고 고된 여행을 위해서는 옷 두 벌은 있어야 갈아입을 수 있어서 여행이 편해집니다. „신“이란 끈으로 발에 묶는 샌들입니다(참조: 마 3:11). 지팡이란, 우리가 산보나 등산할 때에 사용하는 지팡이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데, 동방에서는 주인 없는 돌아다니는, 사나운 개를 쫓기 위해 여행에 필요한 무기입니다.
여행이란 집을 떠나는 일이므로, 최대한 많이 가져가야 하고, 충분히 가져갈 수 없으므로, 반드시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돈도 없이, 비상식량도 없고, 샌들도 없이 맨발로 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선교사가 개인적으로 지녀야 할 것을 최소한의 것 이하로 낮추신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 역사에서 가장 허술하게 무장한 군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이것을 여러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이것은 예수님 가르침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혹은 가난한 자(누가복음)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당연히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의 왕은 „가난하고 나귀를 타고“ 시온으로 오시는(슥 9:9) 분입니다.
또한, 전도자의 삶은 기거하는 그 집에서 주는 대로 먹고 사는 삶입니다. 그러나 „일군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라고 하심으로써, 결코 굶기시지 않으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막에서 일하는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주시었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종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하나님만을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선교사, 목사, 교황이 가져야 할 기본 자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교가 잘 되고, 다른 도시 사람까지도 와서 사람이 급격하게 늘어나서, 할 수 없이 사람들이 돈을 모아 대궐과 같은 집을 교회로 샀다고 한다면, 그 대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당연히 목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목사의 탁월한 개인적인 능력이 아니었다면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확장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앞으로 에쿠스를 타고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선교사나 목사는 주인이 아니라 얻어먹는 객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주인이 되어 돈을 관리하는 곳은 이미 교회가 아닙니다. 회계집사를 둔다고 할지라도, 목사가 일일이 간섭하여 자기 뜻대로 돈을 사용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신 일군이 아닙니다. 물론 재정이 어려워 운영비도 부족한 교회는 문제가 좀 다릅니다.
이로써 전문적 설교자나 선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에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씀 선포와 선교에 전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영적 도움을 받거나 이 일을 섬기는 사람은 그의 생활비를 조달해야 합니다. 목사제도가 문제가 많다고 해서 이것을 폐지해서는 안 됩니다.
11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이곳에서도 우리는 하나의 선교의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가정을 사역의 중심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 집을 사역의 중심지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이 본부를 바꾸면 안 됩니다. 이로써 떠돌아다니면서 설교하시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조건이 더 좋은 다른 사람이 오라고 해도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제자는 그 집에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서 핵심적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넓게 퍼져나간다는 원칙이 나타나 있습니다. 대중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소수의 핵심적인 사람을 중심으로 교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일단 이것이 잘 이루어지면, 그 교회가 성장하고,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습니다.
12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이제 제자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찾아 들어가서 주인의 의사를 물어야 합니다. 이 방법은 평안하기를 비는 것입니다. 즉 인사하는 것인데, 동방에서의 인사는 우리들의 인사와는 달리 약 30분이 걸리는 긴 인사입니다. 그 시간이면, 제자가 왜 그들을 방문했는지, 그리고 주인이 자기를 받아줄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주인이 제자를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면, 제자가 빈 평안이 그 집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평안은 다시 뺏긴다고 했습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이것은 먼저, 평안은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특별히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이제 그 선물을 가지고 그 집에 왔으며 그 선물을 제공했는데, 주인이 이것을 거절하자 그 선물을 회수한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예수님 제자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 따라서 그의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제자가 이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가 이렇게 큰 하나님의 선물을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 더이상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14절이 가르치는 대로 심판 외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는 하나의 단일체와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중(40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의미는 이것과 관계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머리가 그리스도인 몸“의 비유도 이곳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그 집이나 도시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이는 행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와 그들의 제자를 영접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날을 고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 이 메시아를, 그리고 그분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의 평안을 거부했다면,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는 말씀을 다시 보면, 이것은 예수님과 먼지를 털어버린 제자들이 그 사람들과 전혀 관계없다는 것을 외적으로 나타내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 집“, 혹은 „그 도시“와는 길거리에서 뭍은 먼지 하나라도 함께 소유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자는 예수님과 완전히 분리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해당하는 사람이 심판받는다는 예언적인 선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단호하실까요? 죄인이 영접을 한 하면 영접할 때까지 수없이 두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하나님에 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거지처럼 „제발 나를 믿어다오“라고 붙들고 통사정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성자 하나님을 죄인에게 보내심으로써 하실 일은 이미 다 하셨습니다. 이제 그분을 영접하는가, 아닌가에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보낼 선지자는 이미 다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죄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마지막 카드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마 21:33이하의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40-41에 그 결론이 나옵니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이스라엘에게 엄청나게 분노하십니다. 지금이 마지막 구원의 때이므로, 예수님께서는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자 예수님의 이 예고대로 심판이 와서 70년 경에 예루살렘은 함락됩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시대는 끝나고 이방인 전도시대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을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들의 구속사적인 의미는 끝이 났다는 의미입니다. 즉, 더이상 특별한 백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금도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언제든지 하나님께 돌아오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다는 이유로 그들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소돔과 고모라“는, 성경에서 죄악되고 심판이 무르익은 사람의 상징언어로 사용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는 극악무도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죄악과 그들이 받은 끔찍한 심판은 우리에게 큰 경고를 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 아들로 영접하기를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도시“가 최후의 심판에서 소돔과 고모라 주민보다 더 무섭게 벌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무서운 벌을 받는다는 것은, 꼭 복음을 믿어야 할 자들, 혹은 복음을 전달할 책임을 진 자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 차려 들어야 할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른 불신자들보다 더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시대에 적용되는 전도자, 목사 혹은 선교사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올바른 복음 전파는 어떤 것인지를 정리해보겠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 복음 전도의 핵심입니다. 믿음을 통해 무엇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전도자는 외적으로는 가장 허술하게 무장한 군인과 같아야 합니다. 사나운 개가 달려와서 물면 물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단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다. 교회가 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 많은 것을 얻어먹기 위해 조건이 좋은 교회로 가면 안 됩니다. 그러나 모든 목사가 가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되고, 목사는 가르치기만 해야 합니다.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관장한다는 것은 재벌문화에 익숙한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 기거하는 사람이, 그집에서 주인 행세를 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핵심 그룹을 형성해야 합니다. 핵심그룹이 없는 복음전파는 변질된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목사가 자기 세력을 구축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분명하게 말씀을 영접하지 않는 자에게는 더이상 전해서는 안 됩니다. 감언이설로 전도해서도 안 됩니다. 전도자는 사정하거나 설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거짓 선지자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사람이므로 분명하고 확신있게 전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면, 기독교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감사와 평안과 기쁨이 없다면, 이것은 큰 문제입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churchs/AQmI/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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