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내리신 언어의 정의 (마12:30-37)
(요약)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 쓰기를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언어는 의사소통의 기능 이상으로 인격의 표현이다. 말은 내 마음의 가득한 것의 표현이다. 언어에 생과 사의 권세가 있다. 입으로 성령을 훼방한다면 그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 반면 입의 말로 전도함으로 사람을 살리고 용기를 줄 수 있다. 언어는 반드시 책임질 날이 있다. 내가 한 말의 열매는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에서 반드시 열매를 맺힐 것이기 때문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우리 주님처럼 아름다운 언어생활을 하자.
(설교)
오늘 본문은 말조심하지 않고 성령훼방죄를 범한 유대인들에 대한 주님의 경고입니다. 우리 인간은 말하는 동물이며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인지 모릅니다. 한 통계에 의하면 한 사람이 18,000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미국 미네소타주의 팀 하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말을 한 사람으로 그는 무려 144시간을 쉬지 않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사실 말처럼 힘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말들이 끼치는 영향들을 생각해 보면 끔찍합니다. 잠언 18: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말씀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말조심하지 않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만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교훈해 주십니다.
그럼 언어란 무엇일까요?
1. 언어는 인격의 표현입니다.
34-35절에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은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보여 준다고 말씀합니다. 누구나 마음 가득한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최봉석 목사님 아시죠? 일제 순사가 때리면 예수천당을 외쳐댔습니다. 자기 속에 예수로 꽉 차서 건들기만 하면 예수천당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꽉찬 것이 말로 나옵니다.
35절과 같이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냅니다. 이처럼 말은 내 안에 쌓아 두었던 것, 기존에 내가 경험하고 늘 생각 했던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말을 들어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분별이란 말을 분별해 보면 참 성도다 이단이다 겸손하다 교만하다 성령이다 악령이다 믿음이 좋다 나쁘다 곧 나타납니다.
잠15:28에 보면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외경인 집회서에 보면 이런 말이 더 실감이 납니다. “매에 맞아 죽으면 매 자국이 날 뿐이지만 혀에 맞아죽으면 뼈가 부러진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지만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매나 칼보다 혀가 더 큰 상처를 내고 사람을 죽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말은 인격의 표현이지만 반대로 언어를 고치면 인격도 고쳐진다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좋은 말씀을 늘 듣고 또 좋은 말을 늘 하면 우리 인격도 크게 순화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우리의 말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잘못되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악한 말은 물론이고 종일 살아도 우리의 입에서 성경 구절 하나 나오지 않고 감사와 찬송 한곡이 나오지 않는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가득 찬 은혜의 말이 나와야 합니다.
2. 언어는 생과 사의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31-32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천 냥이 있으면 노비에서 평민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즉 이 속담은 말 한마디가 팔자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말은 생과 사를 결정할 만큼 중합니다. 우리가 구원 얻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함으로 되었습니다. 천지가 말씀으로 되었듯 구원도 말씀으로 됩니다. 한 강도는 “주여 낙원에 이를 때에 나를 기억 하옵소서” 이 한마디로 구원 얻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입으로 안다고 시인하면 주께서도 하나님 앞과 사자들 앞에서 시인하실 것이고 모른다고 하면 주님께서도 하나님 앞과 사자들 앞에서 나도 너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특히 입으로 성령을 훼방하면 그 죄는 사하심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 비방하고 복음을 방해할 때 성령훼방죄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붙들림 받아 하는 일을 말로서 방해하면 그게 큰 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부정하고 자기를 하나님이라 예수라 성령이라 하는 사람들의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요즘 시대는 평신도들의 참여가 극대화 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말로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잠6:2에 “네 입의 말로 내가 얽히게 되었으며 네 입의 말로 내가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말은 자신을 흥하게 할 수도 망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를 세울 수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말로서 평화롭게 혹은 전쟁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말로 신앙을 고백하거나 말로 예수를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말조심합시다. 그래서 야고보는 "입에 재갈 먹여 온몸을 어거하라(약 3:3)"고 말씀합니다.
3. 한 말은 반드시 책임질 날이 있습니다.
36-3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가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우리의 말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대한 책임은 심판 날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당해야 합니다.
덴마크의 저술가 데어도어 라인킹이라는 저술가는 당시 덴마크 국왕 크리스쳔 4세를 헐뜯었다는 이유로 1646년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최종 결심에서 국왕은 그에게 "네가 쓴 책을 씹어 삼키든가 사형을 당하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라인킹은 하는 수없이 자신의 책을 갈기갈기 찢어 스프에 넣어 끓인 다음 그 책을 다 먹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길 수 없다고 부정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다 죽고 믿음의 말을 했던 사람은 모두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민14:28의 말씀이 아주 의미 깊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리는 대로 그대로 갚아 주리라” 자기가 한 말은 어떤 말이든지 하나님 앞에서 한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하셨습니다. 엡4:29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라” 했습니다. 우리 때문에 한 생명이라도 실족한다면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말조심해야 합니다. 요즘 명예훼손죄가 더 강화 되어 법적으로도 중한 처벌을 받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거룩한 백성인 성도입니다. 성도는 불신의 말, 거짓말, 더러운 말, 희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비방과 불평과 원망과 저주와 포악하고 교만한 말이나 패역한 말이나 궤사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투는 말이나 헛된 말이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이나 남을 참소하는 말이나 불의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첨하고 망령되고 무익한 말도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말에는 결과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도는 부드럽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야 합니다. 온량한 혀는 생명나무라(잠15:4)고 했습니다. 사랑의 말이 사람을 살린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말이어도 좋게 말하고 감싸는 말을 해야 합니다. 듣는 자들에게 은혜 끼쳐야 합니다. 좋은 점을 발굴하여 칭찬해야 합니다. 진실 되고 선한 말을 하여야 합니다. 명철하고 슬기롭고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합니다. 도움과 용기와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맘에 들지 않는다고 쏘아버리지 마세요. 말 때문에 상처 받고 속상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속상하면 사람에게 말하지 말고 하나님께 말하세요. 그러면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농담도 안 하는 것이 좋지만 하더라도 좋은 내용으로 해야 합니다.
요즘 기업마다 친절 교육에 애씁니다. 더 허리를 굽혀 숙이려고 하고 더 예절 바르고 친절하게 합니다. 가령 “아가씨, 발이 너무 커서 이 구두가 맞지 않는데요?” 이렇게 말하지 않고 “아가씨 죄송하지만, 이 신발이 아가씨의 발에는 너무 적군요.” 발이 크다고 하지 않고 신이 작다고 말합니다. 얼마나 지혜로운 말입니까?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그러나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평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교육 심리학자 벤자민 블름은 환경을 물질환경과 언어환경으로 구분했습니다. 물질 환경이란 안락한 의식주생활과 풍부한 용돈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언어 환경입니다. 얼마나 친절하고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으며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 환경은 어떻습니까?
사사시대에 에브라임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자기들의 책임은 다하지 못하면서 내용도 모르고 자기들을 무시했다고 불러도 나오지 않았으면서도 승리하고 나니 부르지 않았다고 불평 불만했습니다. 그렇다 해도 목숨 걸고 싸운 다른 지파를 격려부터 해야 할 것입니다. 교만이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언어환경을 시끄럽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을 본받으십시다. 주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셔서 그 소리가 밖에 들리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언어는 마음의 표현이요, 생과 사의 결과가 따르는 것입니다. 언어는 우리 인생을 좌우하며 마지막 심판 날까지도 책임지는 것입니다. 말 가지고도 천국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자신의 말로서 자신을 진단하면서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믿음의 말 사랑의 말을 하고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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