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하나님 성부성자성령

[스크랩]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하나님아들 2015. 8. 23. 21:24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 번창교회 2007/06/03
산돌의집 http://planet.daum.net/990-9191/ilog/3860266 복사
 

2007.6.3.                                                                                      삼위일체주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 마태복음 28장 16∼20

 

  1.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에 이르러
  2.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3.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4.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5.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기념하는,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교회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으로서의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안에서는 이 문제로 많은 논란이 계속되어 교회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회의 교부들은 주후 325년에 니케아에서 모여, 예수님은 하나님과 본질상 같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고 그분의 위격에 있어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나타나신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결정은 381년 지금의 터키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재확인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론이 제기될 때마다 교회는 회의를 열어 삼위일체 신앙을 재확인했습니다.

  

  그러면 왜 고대로부터 교회가 삼위일체 신앙을 중요하게 여겼을까요? 삼위일체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기둥입니다. 왜냐하면 그중 어느 것 하나라도 인정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는 것이 헛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께서는 태초부터 함께 일하셨고 오늘도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언제나 이 하나님의 동일하고도 동시간적인 역사를 통해 일어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불리우시지만 그 하나님은 한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하심이 없었으면 인간의 구원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도 없습니다. 성령의 강림도 없습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천지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아들 하나님>은 아버지와 함께 창조에 동참하신 그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오시고 자기 몸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구속의 주 하나님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오늘까지 믿는 자들을 위하여 간구하시고 도와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그 본질에 있어서는 한 분이시지만 그 일에 있어서는 세 가지 모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신 바에 따라 하나님을 때로는 아버지, 때로는 예수님, 때로는 성령님으로 부릅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을 일컬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부분이 당황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바른 대답입니다.

  사람들은 제 각기 서로 다른 종류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들마다 그 특징이 서로 다릅니다. 특히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야훼, 알라)을 믿는 반면에, 우리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성부-성자-성령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나 이슬람교는 두드러지게 가부장적, 즉 남성적인 특징을 지니는 하나님을 신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남성적인 아버지의 모습만이 아니라 여성적인 성령의 모습도 지니고 계시며,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친구, 형제자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는 사람과 분명히 다른 모습의 삶을 살겠지만,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삶의 모습도 각양각색과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리스도인을 다른 종교인과 구분시켜 주는 결정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확정하고 지키기 위하여 교회는 수 세기 동안 매우 큰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 사활이 바로 이 진리에 걸려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논리적으로 안 맞습니다. <3=1>이다 하는 수식은 틀린 수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믿으려고 합니다.

  그 동안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교회는 두 가지의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첫 번째의 입장은 “잘 모르니까 무조건 믿으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믿는 것이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최선의 방편은 아닙니다.

  또 한 가지의 방편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알려고 덤비는데 여전히 명쾌하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하는 삼위일체론을 만들어서 배포하기도 합니다. 


 

1. 왜 삼위일체 하나님인가

 

  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까?

  그것은 성경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26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11장7절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이사야 6장8절에는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렇게 구약에서는 한 분 하나님께서 스스로 말씀하실 때 <우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이 계심을 증거하는 구약성경의 증거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3장21~22절에는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 받으시는 성자 예수님이 거기 계셨고, 하늘에서 소리를 말씀하시는 성부 하나님이 계시고, 비둘기같이 임하신 성령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지상명령을 주실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축도의 원형인 고린도후서 13장13절에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강복을 선언할 때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교회 역사적으로 보아도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어 왔습니다. 우리가 이단에 빠지지 않고 바른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좋은 길의 하나는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공교회의 신앙에 충실한 것인지를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공교회의 신조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인 신조는 2세기 로마 교회의 세례 때에 신앙고백문으로 사용된 이래로 많이들 사용되어 온 <사도신경>입니다. 이 사도신경의 내용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성자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즉, 성부와 우리의 창조에 대한 부분, 성자와 우리의 구속에 대한 부분, 그리고 성령과 우리의 성화에 관한 부분으로 나누는 것입니다(제 24 문답). 다른 말로 하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사도신경을 삼위일체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자체가 삼위일체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것도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닙니다.

  

  삼위일체(trinitatis)라는 말은 초대교회의 신학자 터툴리안이 처음 사용했습니다. 그를 따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서 교회 안에서 <삼위일체>는 일반화된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의 <제25문>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한 하나님이 있을 뿐인데, 왜 당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에 대해서 말합니까?”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말씀 가운데서 당신님을 계시하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구별되는 위들이(these three distinct Persons) 하나의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제 25문 답).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신․구약 성경이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고,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2000년 동안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신앙인들의 믿음입니다.


 

2. 삼위일체의 핵심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단번에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계시하여 오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한 분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이 유월절마다 암송하는 소위 <쉐마>(shema)에서는 “이스라엘아 들으라(shema Israel),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6:4)라고 하나님의 하나이심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계속되는 가르침이어서 이 한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거나 그와 더불어서 다른 것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이 구약의 중요한 가르침이었습니다.

  오직 하나이신 이 여호와는 그가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 한 하나님에 대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즉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아주 필수적인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신약에서도 명백히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딤후 6:15-16). 여기에는 하나님이 홀로 한 분이신 분으로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가장 현저하게 계시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이 한 분이신 하나님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분이 있다고 하면 그에게 하나의 인격(person)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한 인격이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계시의 빛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와는 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그 한 신성이 세 위격(three persons, three hypostasis)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본질(ousia, essentia)은 하나이지만, 이 본질이 구현되어 있는 위격(person)은 셋이시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위격들의 삼위일체가 있다” (in the one essence of God there is a trinity of persons)고 했습니다.

  

  우리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그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신약 성경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자신과 아버지를 구별하시면서도 또 자신을 그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시하시기도 합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때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죄의 선언을 하심으로써 자신이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십니다(막 2:1-12). 그리고 그를 신적인 분으로 인정하는 고백을 받아들이시기도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마16:16)이라는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다고 하시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도마가 “나의 주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는 고백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아버지라 부르신 하나님과 자신을 구별하시면서도 자신을 그 아버지와 동일시하시는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가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시나, 또 아버지와는 구별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역을 마치실 즈음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15:26, 16:7-14 )고 하셨습니다.

  과연 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역을 마치시고 승천하신 후에 오셔서 교회를 인도해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 가운데 계셔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지도해 가시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였습니다(행5:1∼11).


3. 삼위일체 신앙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은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도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는 일이 초대교회의 최대 과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멸시받은 분, 십자가를 지신 분, 바로 그 분이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신관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신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낮아지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낮아지지 아니하면, 즉 섬기지 아니하면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낮아지지 아니하고 섬기지 아니하면서 하나님을 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삼위일체 하나님을 모르는 신앙입니다.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인 빌립보서 2장에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5~11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철저히 자기를 낮추기 위해 처녀의 몸을 빌어 마구간에서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낮은 곳을 찾아다니시며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상처난 사람, 소외된 사람, 혼자 설 수 없는 사람들을 찾아서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그 못난 인간들을 위해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그가 누가입니까? 인간 예수의 몸을 입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신앙은 우리에게 나사렛예수를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은 “성령도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궁극적인 사역은 하나가 되는 것, 즉 일치에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핵심은 연합, 하나 됨, 일치입니다. 세 분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 됨으로 일치하느냐? 그것은 논리와 사변으로 절대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하려다가는 오히려 더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간단합니다. 세 분 하나님이 서로 사랑함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7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21~23절)

  삼위일체를 푸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신비가 무엇입니까? 사랑하면 일치되고 연합하고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신비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마음껏 받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면서 주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주님과 연합합니다. 주가 내안에 내가 주안에 거하게 됩니다. 주님과 내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는 우리의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도  삼위일체로 오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낮아질 때까지 낮아지십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듯이 우리도 사랑함으로 주님과 연합하고 성도들 간에도 화합하고 연합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산돌-

  

              2007년 6월3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건강한 셀교회

      제5기 2-3단계 정착과 양육 집중훈련 참석

                 장소 : 풍성한교회(김성곤 목사)

                 일시 : 2007년 5월28일-31일   

 

 




















출처 : 산돌의집
글쓴이 : 산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