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정의(히11:1~3) 히브리서의 전체의 주제를 찾는다면 히10:38절의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합2:4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신약성경에 세 번 인용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각각 강조점은 다릅니다. 첫 번째 인용은 롬1;17절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방편으로서의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당시 여느 사람들처럼 교부들의 전통과 유전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무릎으로 예배당의 높은 계단을 오르다가 위대한 성경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속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 바로 롬1:17절의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마틴루터는 인간의 구원이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된다는 성경의 진리를 깨달게 됩니다. 마틴루터는 이 체험을 한 이후에 그의 로마서 주석 서문에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성령님에 의해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깨달게 되었을 때 나는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열린 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낙원으로 들어간 것이다.” 두 번째 인용은 갈3;11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율법의 원리와 믿음의 원리를 비고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되는 것이지 결코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지금이나 동일합니다. 갈2:6~14절에서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아브라함도 행위로는 율법의 엄정한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도 율법의 시각에서 볼 때는 허물투성의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죄성과 연약함을 고백하기를 ‘띠끌 같은 나’ 라고 했습니다.(창18:27절) 아브라함의 ‘띠끌 같은 나’ 라는 고백은 자신은 죄악을 먼지와 같이 뒤집어쓰고 사는 허물투성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는 자신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선하게 살 수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선한 행위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거나 하나님의 의의 표준에 도달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행위구원의 불가능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까지 인간의 마음을 괴롭혀온 가장 악질적인 이단은 어떻게 해서든지 인간이 하나님과 함께 살만큼 스스로 선하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세 번째 인용은 히10:38절의 말씀입니다. 여기서는 믿음의 삶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도의 삶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삶을 마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장에서는 믿음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실제로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11장에서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며, 믿음의 선진들의 삶과 행동과 인격 속에 나타난 믿음의 참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히11장에 기록된 사람들은 대개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으며, 위대한 일들을 성취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지만 믿음으로 신앙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 빌4:13절의 사도 바울은 자신을 능력 있게 한 원동력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막9:23절을 보십시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의 대상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과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과 그 말씀에 기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원한다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에 삶의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고와 행동과 중요한 선택을 결정하는 척도가 하나님과 말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롬10:17절) 기독교의 믿음은 미신과 같은 맹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11:6절에는 믿음의 대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으로 교재하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그 믿음의 대상이 직업, 학위, 돈, 사업, 친구, 권력, 사람, 자신, 부모 등 일수 있을 것입니다.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아니라 믿음의의 대상이 하나님이냐 아니면 하나님 이외 다른 것을 믿느냐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갈라 놓는 것입니다. 믿음의 정의 히11:1~3절에서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삶에 있어서 믿음은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성도들은 서로를 신자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라는 말입니다. ①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성취될 것을 확신하면서 미래에 있을 하나님의 성취를 바라보고 믿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가능하게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바라고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성도들이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약속입니다. 믿음이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악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좋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항상 좋은 것을 예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것을 바라고 사는 사람들이고 이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은 다릅니다. 불신자들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막연히 바라고 소망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은 없습니다. 그것이 성취되어서 보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분명한 사실로, 증거로 나타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이 잘 풀리고 운이 좋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만 또 일이 꼬이고 안 풀리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과 함께 불안감을 동시에 품고 살아갑니다.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보고 성취했던 한 사람을 예로 들겠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잉태하지 못하는 불임여성이었고(창11:30절), 나이도 많이 늙어 경수가 끊어졌고(창18:11절), 아브라함 또한 나이가 백세가 몸이 죽은 것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셀 수 없는 뭇별을 보면서 자신의 후손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데로 셀 수 없는 하늘의 별들처럼 될 것을 믿었습니다. 추호도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실상’은 여러 가지 의미로 번역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근거(ground)’, ‘확신’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라는 말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근거(확신)”라고 해석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근거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실체화시킵니다. 둘째, ‘실상’이라는 말은 건축물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기초입니다. 기초가 건물 전체를 지탱해 주고 받쳐 주는 것처럼 믿음은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될 때까지 확고히 아래서 지탱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반듯이 성취케 하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리고 확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합니다. 우리가 믿고 신뢰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선포하신 것은 반듯이 이루실 것을 믿고 확신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 ‘실상’이라는 말은 ‘부동산의 권리증서’, 혹은 ‘유가증권’과도 같습니다. 아파트를 살 때 먼저 모델하우스를 보고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계약금을 치루고 증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건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증서를 가지고 있으면 아파트가 완공된 다음에 아파트에 들어가 현실로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이와같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처럼, 부동산의 권리증서를 소유한 것처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권리증서보다 더 확실한 보증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바라는 바를 실제적인 것으로 여길 수가 있고, 미래에 희망하는 바를 현재적인 것으로 소유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믿어지게 하시고 설득해 주심으로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3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들을 창조하신 것을 보지도 못했고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떤 과학적인 증거가 있거나 철학적인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 방편을 통하여 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확실한 것인 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깨달게 하시고 믿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할 때, ‘증거’는 ‘보여 줌으로서 확신시켜 준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확신시켜 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을 굳게 붙잡는 손이며,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실상을 보게 하는 눈입니다. 믿음은 육체의 감각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증거합니다. 또한 ‘증거를 얻었다’라는 말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과정 가운데서 여리고성과 전투를 예로 들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첫 번째 성이 여리고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해 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매일 한번씩 7일 동안 돌고 제 7일째 되는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고 다 큰 소리로 외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성이 무너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백성들은 믿음으로 여리고성을 돌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데로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을 확신했습니다. 성경주석가인 윌리암 바클레이(William Barclay)는 “이스라엘이 여리고와의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은 백만분의 일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분리한 싸움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막을 건너온 유목민들인 이스라엘이 철벽성 여리고성을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리고성은 굳게 닫혔고 무너질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을 기대하면서 성을 돌았습니다. 칠일 째 되는 날 성을 일곱 번 돌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들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들이 나팔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항상 믿음은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믿음의 영역에는 볼 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 믿을 수 없는 것, 바랄 수 없는 것을 다 포함합니다. 믿음은 미래를 현재처럼 느끼게 해 주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믿음은 상상할 수 없는 그리고 도저히 바랄수도 없는 것들을 바라게 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게 하고, 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볼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을 바르게 이해하게 될 때 현재 우리의 삶이 새롭게 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풍습을 좇지 않고 믿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바라보게 하고 거기에 대하여 분명한 확신을 가지게 합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현실을 반드시 일치시켜 주실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믿음의 아름다운 결과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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