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오경

[스크랩] 창세기(21-25,36장): "이삭"

하나님아들 2015. 7. 14. 14:57

                 창세기(21-25,36장): "이삭"

우리는 지난 시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랜동안의 연단을 통해 아브라함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연단해 주셨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이러한 연단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만났으며, 또 실수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이 성도들의 본이 될 믿음을 갖게하시는 일에 성공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브라함에 이어 언약을 계승한 이삭과 야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창세기 후반부인 (창 12-25장)에는 다음과 같은 4명의 족장에 대해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창 12-25장

창 21-27, 35장

창 25-36장

창 37-50장


2. 이삭(21-27장, 35장)
(참고지도: 이삭의 생애)

1) 이스마엘과 이삭의 대립(21장)
  이삭이 자라게 되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괴롭히게 된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대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육신과 영
  여기에서 이스마엘은 육신의 열매를  상징하고 이삭은 성령의 열매를 상징한다. 육과 영, 옛본성과 새로운 본성은 언제나 대립되기 마련이다. 옛본성은 절대로 길들여지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옛본성을 그대로 두는 한 갈등은 계속된다. 옛본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내쫓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집에 두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내보내도록 지시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을 좆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 옛언약과 새언약
  또한 바울은 이스마엘과 이삭의 갈등을 옛언약과 새언약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갈 4:21-33 참고). 종인 하갈은 옛언약인 율법의 상징이었으며, 자유인인 은혜의 새언약의 상징이었다. 율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종으로서 봉사했지만,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된다. 성도들은 옛 율법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자유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 인간의 방법 대 하나님의 방법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방법을 포기하고 인간의 방법을 통해서 얻은 아들이었다. 그러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주신 아들이었다. 인간의 방법과 하나님의 방법은 항상 대립하게 되어있다. 성도들은 믿어지지 않을 때에도 인간의 방법을 취하지 말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2) 모리아 산과 갈보리 산(22장)
  이삭은 인류를 위해 희생된 그리스도의 상징이었다. 이 일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사건을 통해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삭은 자신을 번제로 드리려는 아버지의 뜻에 반항하지 않고 순종했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의 죄를 위해 번제로 드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삭은 죽지 않고 살아났지만, 그리스도는 실제로 죽임을 당하셨다. 이삭은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려질 뻔 했지만, 그리스도는 갈보리에서 실제로 십자가에 달리셨다. 이삭은 죽지는 않았지만 그는 죽었다가 다시 생명을 받은 것과 같았다(히 11:19). 그리스도를 실제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이삭 대신 수양이 희생된 것은 그리스도만이 인류를 위한 속죄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삭의 번제 사건이 그리스도와 관계있는 것은 이 사건 후에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선포된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 같게 하리라. 네 씨(단수-그리스도)가 그 대적의 문을 얻을 것이며, 네 씨(단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 22;17-18)"  


3) 이삭과 리브가-그리스도와 교회(23-25장)
  아브라함의 믿음이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한 후에, 아브라함의 사명이 완수되고, 구원역사는 이삭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이 사건 후에 사라가 죽었으며, 아브라함은 헷 족속 에브론으로부터 밭을 사서 그 곳을 가족의 매장지로 삼는다. 그리고 그 곳에 가장 먼저 사라의 시체를 장사했다(23장).

  그 후 아브라함은 이삭을 위해 사환을 고향으로 보내서 이삭의 아내가 될 여인을 데려오도록 부탁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여 그들과 혼합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구별된 민족으로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기업으로 얻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종은 아브라함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아브라함의 고향에 가서 리브가를 데려왔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이삭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40세에 리브가와
브엘세바에서 결혼하고 새 가정을 꾸미게 된다(24장).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후에 교회를 신부로 취하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해 정결한 신부인 교회를 준비하셨다. 그리고 이 일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졌다. 여기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그리고 그의 종은 성령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니의 뜻을 따라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교회인 성도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옛 고향을 떠나 성령의 인도를 좆아 그리스도께로 나오게 되었다. 교회는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속해야 한다.  

  그 후 아브라함은 재혼하여 후처인 그두라로부터 미디안의 조상이 될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이 이삭이 가계를 잇는 일을 방해하지 않도록 미리 그들을 동쪽 나라로 분가시켰다. 이러한 행동은 이삭을 통해 구원역사가 계승될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에 취한행동이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안에서 1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한 마음이 되어 아버지의 시신을 가족매장지인 막벨라 굴에 장사지냈다(25:1-11). 그후에 이스마엘은 천사의 예고대로 12아들을 낳았으며, 그들이 족장이 되어 이스마엘의 12족속을 이루게 되었다. 이삭과 리브가가 그리스도와 교회를 상징한다면, 이스마엘과 그의 후손은 육신을 좆아 사는 세상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정욕과 세상 풍습을 따라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스마엘은 137세를 일기로 하여 육신의 삶을 마치게 되었다(25:12-18).


4)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25장)
  이삭은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했으나 거의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가 될 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했던 연단의 과정을 다시 겪어야 했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19년이나 아이를 주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아이를 주지 않으셨다. 마침내 이삭은 약속을 붙들고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으로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임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그 아이를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가르쳐 주셨다. 이 아이는 이삭과 같이 약속으로 주신 아이었던 것이다.

  리브가는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두 아이 중에서 한 아이는 약속의 자녀였지만, 한 아이는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두 아이들은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러했듯이 어머니의 태 중에서부터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이 다툼은 영적인 자녀와 육신의 자녀의 다툼이었다. 리브가는 이 일로 근심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때에 하나님은 그 아이들이 다투는 이유를 가르쳐 주셨다.
"두 국민이 네 태 중에 있으니, 형보다 동생이 더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25:23). 리브가의 태 안에 있는 아이들은 자라서 번성할 것이며 둘 다 모두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습과는 달리 동생이 형보다 더 강한 민족이 될 것이다. 그리고 형이 오히려 동생을 섬기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할 아이가 형이 아니라 동생임을 가르쳐 주셨다. 두 아이의 다툼은 영적 백성과 육적 백성이 주도권을 놓고 싸우는 다툼이었다. 바울은 이 사건을 하나님께서 선택에 있어서 주도권을 가지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로 제시하였다(롬 9:10-16). 하나님은 이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한 민족을 다른 민족보다 더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던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랑하지 못하도록 행위를 근거로 우리를 구원하지 않으신다(엡 2:8-9).

  마침내 리브가는 이삭이 60세 때에(결혼한 지 20년만에) 예언대로 쌍둥이를 낳게되었다. 형은 털이 많이 나서 이름을 "에서"(털보)라고 지었고, 후에 붉은 팥죽과 관계되어 "에돔"(붉다)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아우는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따라 나왔다. 야곱은 먼저 태어난 에서의 발을 붙잡아 그가 가진 축복을 빼앗으려는 모습으로 태어났다. 이러한 이유로 아우의 이름은 "야곱"(발꿈치를 잡는 사람-사기꾼, 책략가)이 되었다. 야곱은 집에 머무는 조용한 사람이었으나, 에서는 정력과 모험으로 가득찬 세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에서에게는 영적 축복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다. 그는 장자로서 사냥을 하여 가족들에게 양식을 공급하였다. 그러나 그는 영적 축복보다 육신적인 축복을 더 좋아했다. 그는 거룩한 여인이 아닌 세상적인 여인들을 사랑했다. 이로 인해 히브리서기자는 그를 가리켜 "망령된 자"(profane )라고 불렀다(히 12:16). 여기에서 "망령된 자"로 번역된 단어는 거룩한 것이 아닌 세속적인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에서는 세상에서는 성공적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는 실패했던 것이다(25:19-27). 에서는 이스마엘을 따랐고 야곱은 이삭을 좆았다.    


5) 부전자전!(26장)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겪었던 흉년을 같이 겪게되었다. 이때에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애굽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가 애굽에 내려가지 않도록 지시하셨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네가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줄 것이며, 내가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하고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2-5)

  하나님은 이삭이 아브라함이 겪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그러나 이삭은 약속의 땅에 머물지 않고 블레셋 땅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그랄에 머물렀다. 약속의 땅과 블레셋의 경계선에 살았던 이삭의 삶은 두 주인(세상과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날도 많은 크리스챤들은 세상과 교회의 경계선에 서서 살아가고 있다. 이삭은 그랄에 사는 동안에 물질적인 축복을 얻는 대신에 영적인 축복이 보류되었으며, 또한 많은 다툼에 시달려야 했다. 후에 하나님은 그가 그 땅을 떠나 약속의 땅에 머물게되었을 때에 비로소 영적인 축복을 회복해 주셨다. 이삭은 그랄에서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비멜렉이 이삭이 리브가를 안은 것을 보게하여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라는 것을 알게 만드셨다. 그 후 아비멜렉은 아무도 리브가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시하였다. 이로 인해 이삭은 선교사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 왕에게 책망을 받는 수치를 경험했다.  


6) 두 주인을 섬기는 삶!(26장)
  그 후에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농사를 지어 백 배의 소출을 얻었으며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이삭은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파묻어버렸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자기보다 더 강성해지는 것을 보고 그 땅을 떠나라고 지시하였다. 이삭은 계속 이동하면서 아브라함이 팠던 우물을 파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랄 사람들이 그를 시기하여 그가 판 우물들(에섹-싯나-르호봇)을 묻어버렸다. 성도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곳에 머물지 않으면 수고해서 얻은 열매를 모두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마침내 이삭은 블레셋 땅을 떠나 다시 약속의 땅인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가 브엘세바로 돌아오게 되자, 하나님은 그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영적 축복을 회복시켜 주셨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 머물 때에 그 곳은 확실한 기업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해 주셨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말라. 내 종 아브르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창 26:24)


7) 선교사 이삭(26장)
  이삭은 그후에 이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아갔다(26:24). 이삭이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자 그는 다시 이방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강당할 수 있게 되었다. 이삭을 지켜 보던 그랄 왕 아비멜렉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이삭이 우물을 덮은 일로 인해 이삭이 보복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므로 그는 이삭과 평화조약을 맺을 필요성을 느끼고, 군대장관과 함께 브엘세바에 있는 이삭을 찾아왔다. 이때에 아비벨렉은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심을 우리가 보았노라.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6:28-29). 아비멜렉은 이삭과 함께 평화조약을 맺었다. 그리고 이삭은 그 때에 다시 우물을 팠으며, 그 이름을 세바(맹세)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 곳 이름을 브엘세바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이 이삭이 약속의 땅에 머물 게 되자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해 주셨고, 이삭은 하나님을 알리는 선교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7) 이삭에서 야곱으로(27장)

 * 쇠약해진 이삭
  이삭이 나이가 많게 되어 육신이 쇠약해짐에 따라 점차로 영적인 분별력도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137세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예언을 잊어 버리고 성급하게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다. 이삭은 분명히 에서의 삶을 지켜보면서 그가 영적인 축복을 이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육적인 정 때문에 이를 눈감아 버렸다. 그리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뜻대로 에서에게 축복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성사되지 못했다. 이러한 이삭의 모습은 이미 그가 영적인 가족을 인도할 한계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속이는 어머니
  
이삭은 몰래 에서를 불러서 짐승을 잡아 음식을 준비해서 가져오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음식을 먹고 에서를 축복해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삭의 계획은 리브가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리브가는 이러한 이삭의 계획에 찬성할 수 없었다. 이때에 그녀는 이삭을 찾아가서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예언을 상기시켰어야 마땅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과연 누가 축복을 받을 대상인지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고 눈이 어두운 이삭을 속여 야곱이 축복을 받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후에 야곱과 리브가는 큰 대가를 치르어야만 했다. 리브가는 이 일로 인해 야곱을 피난시킨 뒤에 다시는 야곱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러한 리브가의 모습은 그녀 역시 영적인 가족의 안주인으로서 책임을 감당할 힘이 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영적인 가족의 주도권은 서서히 다음 세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주도권이 야곱에게 인계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8) 죽음, 장사(35장)
  후에 라헬은 에브랏(베들레헴)에서 죽어 장사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이삭도 기럇아르바(헤브론)에서 180세까지 살다가 죽었으며, 다시 돌아온 야곱과 에서에 의해 장사된다(185세).
 

출처 : 심규만의 블로그입니다
글쓴이 : 심규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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