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두 목사의 성령관
김익두의 (성신을 받으라(행1;1-12)는 설교에서 우리는 그의
성령론을 엿볼 수 잇다. 그의 설교에는 성령을 받아야만 완전한 교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받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구별하고 있다. 성령 세례는 불이나 비들기가 상징하는 것처럼 인간의본질적인 변화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또한
깨끗하게 씻는 것을 의미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의 죄를 씻는 것이 성령의 세례란 것이다 몸에 열기가 없는 이가죽은 것처럼 불이 없는
교화는 죽은 교회이며, 개인도 잘못된 설령운동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익두 목사는 이른바 잘못된 성령운도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된 성령운동을 극복하는길은 성경을 읽고 바로 깨달아야 할 것을 지적하고 있다.
정성구 160면.
" 불세례를 이상하게 해석하는
이가 있습니다. 요새보니까 어떤이는 [나는 기도하다 불을 보았다]합니다. 이것 다 성경에 무식해서 그렇습니다 성신이 지금 하늘에서 나려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이 세상에 이미 와 있어서 우리 마음 문만 열면 들어 올려고 무리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
김익두, "성령을 받으라," [김익두
목사 설교 및 약전집](혜문사,1969), 46면.
그는 여기서 성령운동을 오늘날의 오순절 운동의 사람들처럼 현상적인
것에 집착하는 것을 거부하는 예리한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김익두 목사는 그이설교를 통해서 슬픔과 죄절의 늪에 허우적거리는 이 민족에게 구언의
소망과 확시을 주었다. 김익두 목사의 설교의 중심은 주님의 십자가와 보혈, 주님의부활, 천국에 갈자는 회개 등 순수한 복음을 증거했고, 암매한
군중울 일으키고 깨우쳤다. 정성구 162면.
김익두의
부흥기
"가슴을 칼로찢는 "것과 같은 성령의 내적 임재를 경험하고 나서,
그는 1901년 재령을 거쳐 신천교회에 시무하면서부터 불같은 성령의 임재, 기적의 신유를 가져오는 부흥 목사로 등장했다. 1919년 심각한
민족적 좌절의 아픔, 몰려드는 세속 문명의 도덕적 황잡, 신선한 기풍으로 휩쓸려 넘친 사회주의의 무신론적 투쟁 감각, 여기 신앙의 동요는 격류에
휩쓸리는 듯 걷잡을수 없었다. 그 날에 김익두는 저 지평선에 거인처럼 선 것이다.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독특한 사명을 지고 나선 한국교회 전환기의
인도자였다.
민경배,[한국기독교회사](연세대학교 출판부, 1995),
398면.
성신의 능력과 기도의 힘,
그리고 소박한 신앙 고생후엔 낙이라는 소식을 계속 전했다. 교육적 배경이 별로 없는 한 촌의 신앙인 김익두를 1919년 이후 사회 전환지에 보낸
신의 섭리와 경륜은 따로 있었을 것이다.
민경배 400면.
김익두 목사의 신학
민경배 교수는 그의 신앙을 '복음주의적 경건의보수 신앙'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기 선교사들의 신앙과 신학을 통한 한국 초기 교회의 분위기와 형양
신학교의신학의 영향을 받은 김익두복사의 신앙양태는 성서의 권위에 대한 부동으 신앙, 예민한 죄의식과 회개, 개인의 인격적 신앙, 부흥회적 열정
교회 문답식 성서교육, 기독교인으로서의 헌신과 봉사, 시일조, 헌금, 강렬한 주체적 신앙 때문에 겪는 환란, 그리고 선교의
열정등이다.
기도의 강조로 나타난 하나니의 능력은 김익두 목사의 독특한 신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는 기독교는 기도의 종교하고 한다
김익두, "기도의 종교" [김익두 목사 설교 및 약전집](혜문사,
1969), 9-19면 참조.
그는 또한
한 '칠중의 좁은 문'이라는 설교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7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네 번째문이 바로 기도의 문이라는 것이다. 김익두는
성령에 대해서도 폭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성령에 대히 불의성령, 비둘기의 성령, 물의 성령, 바람의 성령, 기름의 성령으로 구 분하고
성령받은 것을 4가지 조목으로 설명한다.
김익두, "성령의 세례" [김익두 목사 설교 및 약전집](혜문사,
1969), 58-63면 참조.
첫째
일시적 감화, 둘째 외감 셋째 내감 넷째 성령의 충만이다 그리고 그는 성령충만의 다섯가지 특징을 말하는데, 첫째는 이길수 없는 열심이고 ,두째는
이길수 없는 사랑이고, 세째는 넘치는 진리이며, 그리고 넷째는 넘치는 기쁨이며, 다섯째는 말할 수 없는 능력이다.
김익두, "성령의 나타나심과 그 감동 여부" [김익두 목사 설교 및
약전집](혜문사, 1969), 51-57면.
그는 성령의임재에 대해서 간조하며 기독교가 타종교와 확연히 구별되는
것이 성령이라고 한다.성령세례와 성려의 임재 성령충만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면서 성령받지 못한 교인은 교인이 아니라고 하고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완전한 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절대
무오성
김익두에 있어서 성경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신자의
즐거움'이라는 설교에서 신자는 9가지의 즐거움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얻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김익두의 종말론은 천년왕국 종말론이다. 그는 말세를 강조하면서
현생활에서 건덕을 강조한다.김익두의 종말론은 현질서의 종말론을 외치고 천국의 도래를 희구하는 것이지만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 현실의 토대위에선
종말론이다. 그의 설교'칠중의 좁은 문'이란 설교에서 천국에 들어가지 위해서는 일곱개의 문을 거쳐야 하는데 일곱문 중에는 성결의 문이 있다.
이것은 현실에서의 거룩한 삶을 요청하는 것이다.
그의 메시지는 내세지향적이었고 그의 종말론은 차세성을 배제한 것이라면
김익두에게서 사회개혁 정신을 찿기 어렵다. 그러나 민경배 교수는 김익두에게서 사회개혁적 정신의 비젼이 있다고 말한다. 김익두의 사회개혁 정신은
기도, 성령, 성경을 통한 하나님 신앙의 내적인 분출이다. 그것은 복음을 통한 사회개혁이요 종말론적인 사회개혁으로
연결된다.
2)김익두 목사의 신유적 부흥운동
김익두의 사역은 신유적 부흥운동으로 요약된다. 김익두는 1920년대에
대두된 新思想과 반기독교적 이데올로기에 맞서 정통신앙을 고수하면서 하층민들에게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의 기도중심적 신유사역에서는
많은 기적이 동반된다. 따라서 그의 부흥사역은 전국의 776개 도시와 읍 소재지로 확산된다. 그의 집회에서 병고침을 받은 사람은 모두 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의 부흥사역은 아래와 같이 4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①그의 부흥집회는 실로 대중적이다. 일제시대에 그의 집회처럼 많은
사람들을 동원한 경우는 없다.
②그의 집회는 새벽기도회, 아침 사경회, 오후 교리공부, 저녁 부흥회
등으로 짜여진다.
③그의 설교는 단순명쾌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설교 는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예수 보혈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④그의 부흥사역에 있어 신유는 가히 압권이다. 그는 거지들을 비롯한
하층민의 치유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는 교인들의 신앙을 북돋우기 위해 예배중 신유간증을 하게도 한다.
그의 이러한 부흥사역은 당시의 교회성장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무엇보다 가난하고 병든 하층민을 소생시키는 그의 설교는 가장 큰 특징을 이룬다. 그의 메시지는 내세의 삶, 종말론적 천년왕국, 罪와
富에 대한 회개 등을 핵심내용으로 한다. 그의 성령은사적 부흥운동은 당시 형식주의 속에서 무력증에 빠진 기존교회를 각성시키게
된다.
그의 부흥운동은 기존교회의 불신앙을 무너뜨리고 당시 교인들에게 기도와
전도의 열정, 생동하고 승리하는 신앙심을 불어 넣었던 것이다. 그의 사역은 감성과 기적에 지우쳐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성적 측면은 일제 하의 한국교회가 발산할 수밖에 없었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Young Hoon,Lee,"THE HOLY SPRIT
MOVEMENT IN KOREA : ITS HISTORICAL AND DOCTRINAL DEVELOPMENT," (Ph.D.
Dissertation,TEMPLE UNIVERSITY,1996), pp. 80-90.
(2)김익두와 조용기
목사
김익두 목사의 부흥운동은 조용기
목사의 신유사역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김익두 목사의 부흥운동에 있어 신유사역은 핵심중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의 신유사역은 박태선의
감람나무교회가 이단으로 정죄돼 장로교단에서 축출된 뒤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채 홀대돼 버린 아쉬움이 있다. 조용기 목사의 성령운동은 한국사람들의
샤머니즘적 특성을 교회성장으로 분출시킨다. 그러면서도 그는 성경의 원리를 고수함으로써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쓴다. 사실 치유사역에 있어
가장 큰 위험은 무분별하게 치유자체에만 관심을 갖는 샤머니즘적 경향성이다.
따라서 조용기 목사는 자신의 신유사역에서 샤머니즘적 영향을 배제하려고
노력하면서 치유의 성경적 원리를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도들이 성경적이건, 비성경적이건 상관없이 치유자체에 매달리기 때문에 오순절
교회는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익두 목사의 부흥집회는 실로 대중적었는데 조용기 목사의 경우도
전국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이다. 김익두 목사의 설교는 단순명쾌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감동을 준 것으로 평가되는데 조용기 목사의 설교도 그림을
그리듯이 명쾌해 특히 하층민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 무엇보다 양자는 자기 시대의 병자들과 빈자들에게 신유사역과 희망의 복음을 베푼 점에서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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