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생각! 말!! 행동!! 영성!!

[스크랩] 언어

하나님아들 2012. 9. 4. 12:25

그리스도인들은 부정적인 말이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고? 그러한 것들은 창조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언어나 생각은 컴퓨터에 자료를 입력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나쁜 자료를 입력해놓고 컴퓨터가 보여주는 내용을 보면서 흥분하면 되겠는가? 컴퓨터가 무슨 죄가 있는가?


  멍청하게 컴퓨터를 관리해서 악성 바이러스를 먹은 다음에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 마구 컴퓨터를 때리는 사람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컴퓨터는 아무런 죄가 없다. 주인을 잘 못 만나서 그렇게 부서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진다고 해도 그것은 컴퓨터의 죄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아주 무능력하고 소극적이며 어둡고 눌린 삶을 살고 있다고 하자. 그의 문제는 무엇이겠는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언어를 말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자기 안에 가득 채우면서 살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컴퓨터는 입력된 대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나는 무능하다. 나는 무능하다..' 하고 계속 입력하지 않는다면 그가 무능해질 리가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그를 불량픔으로 만드셨겠는가?


  그것은 말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삶을 개척하고 다스릴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을 주셨다. 그러니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가 그 마음과 생각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컴퓨터에 계속 쓸데없는 정보만 입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중충하고 어둡고 비참하게 살아온 사람을 만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당신 안에 입력된 생각과 말, 여태까지 배운 것은 다 오류입니다. 이제 다 삭제하시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십시오. "
  그렇게 말이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을 다 삭제하고 새롭게 빛과 은혜와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하게 채운다면 나는 누구든지 새롭고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이다.

 

  자, 그런데 그 이야기는 그만 하기로 하자. 이번 장의 주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이것이다. 내가 열심히 자신에게 좋은 정보와 자료를 입력하려고 하는데 외부에서 자꾸 좋지 않은 자료가 오는 것이다. 마치 원치 않는 스팸메일처럼 말이다.


  그러면 어떡해야 할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입력해야 하나?
  물론 그것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좋은 생각을 가지고 창조력을 아름답게 사용하려고 애를 써도 바깥에서 좋지 않은 바이러스가 온다면 그것도 역시 잘 관리하고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 입력한 것도 고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오는 나쁜 입력도 우리는 제거해야 한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일체의 비난과 정죄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이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비난이나 정죄도 받아들이지 말라고 나는 조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천국이 아니므로 천국의 영으로, 주님의 영으로 사는 이들은 드물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한 이들을 찾기가 사실 어렵다.
  그리스도의 영은 사랑의 영이며 긍휼과 자비의 영이다. 지혜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사는 이들은 날마다 그 생각과 언어를 주님께 의탁하며 주님께 통제 받으면서 살 것이다. 남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사랑과 섬김으로 대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보통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디 그런가? 남들을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자세,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아니다. 그것은 빛에 속한 영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속한, 육체에 속한 영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혼을 지켜야 한다. 주의 영이 아닌 세상의 영으로 인한 공격과 악함이 우리 안에 들어오려고 할 때 우리는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나는 어쩌다 티브이의 드라마를 쳐다보게 되면 그 속에서 나오는 일상의 대화들이 거의 저주나 폭력에 가까운 무례하고 살벌한 언사들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아주 놀랜다.
  정말 그러고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대단할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드라마 속의 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경험하고 부딪치는 많은 관계,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사랑해야할 가족들의 만남이나 친구들과의 대화가 그렇게 서로를 아프게 하고 상하게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얼마 전 나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을 비난하는 어떠한 말도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쳤던 적이 있었다.
  그것은 정말 중요한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 있는 이들이 우리에게 비난과 정죄를 퍼붓는 일은 흔하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야기는 결코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비난이나 정죄는 결코 주님의 음성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그러한 말들을 통해서 겸손해져야 하지 않느냐고 말한다. 물론 그러한 자세는 좋다.
  그러나 그 비난과 판단은 대부분 악한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의 영혼이 질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이들은 아주 많을 것이다.
  "너는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너는 엄마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태어났니?"
  "너는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니?"
  이런 표현을 늘어놓기 시작한다면 한이 없으니 그만 하자.
  이러한 말은 비난이기 보다 저주에 가깝다.


  이러한 말을 반복적으로 듣는 이들의 삶이 잘 되어간다면 그것은 정말 기적이다. 그것은 그의 안에 악성 바이러스를 스스로 잘 처리할 수 있는 백신 시스템이 잘 되어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는 한 그러한 재앙의 말들은 그의 안에 깊이 스며들어 인격과 삶과 미래에 대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너는 너무 교만해."
  "네가 그러고도 주님을 믿니?"
  "기도만 하면 뭐 하니?"
  "네가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이런 비아냥거림을 들어본 이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의 믿음을 실족시키기 위한 메시지는 정말 많이 있다.


  이러한 열거는 끝이 없다. 사랑과 격려의 표현보다 이러한 표현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이다.     
  물론 그러한 말들도 대부분 어둠의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가 미워서 그러한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어리고 주님의 실체를 알지 못한다면 그의 입이나 생각은 할례받지 못한 것이며 그는 원하지 않더라도 남에게 상처를 주는 도구로 쓰여지게 된다.

 

  주님의 음성은 어떠한가?
  그의 음성은 사랑스럽고 따뜻하며 우리의 연약함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해도 거기에는 사랑과 친절과 격려가 있다.
  거기에는 부드러움과 아름다움이 있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독화살과 같은 가시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음성이 아닌 악한 비난의 말을 받아들이고 '맞아. 나는 역시 아직도 멀었어.' 하면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영혼은 파괴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로부터 이러한 말을 들을 때 화를 내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러한 말을 들을 때는 상처를 받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막상 자기 혼자가 되면 그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래서 그는 생각한다.
  '그 말이 맞아. 역시 나는 이 모양이야.' 하면서 그 말을 받아들이고 자기 정죄에 빠진다.


  그것은 어둠의 영들에게 속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악한 영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다음부터 마음놓고 우리의 영혼을 누르고 유린할 수 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말들은 악한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악의 도구가 되는 가까운 이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도 예전에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을 수도 있는 일이고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그들의 의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영적으로 어리면 남을 정죄하고 상처를 주는 도구로 쓰여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워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한 말들은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 것은 그 말을 믿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말을 들을 때 속으로 저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저것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고 있으면 그 말은 우리 영혼에까지 침투하지 못한다. 그리고 우리의 평화도 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화를 내는 것은 그 말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분노하고 넘어진 후에 다음에는 자신에 대한 정죄감에 빠진다.
  '내가 이러한 말도 수용하지 못하다니..'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다 영적인 무지에서 오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수용하게 되면 큰일이 난다.
  어둠을 받아들이는데 우리 영혼이 어찌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한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외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반드시 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하고 대응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의 마음 속으로 '저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저 말을 받지 않겠다.' 라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우리가 속에서 말려 들어가지 않게 되면 악한 영들은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감정적으로 흥분하게 되어 화를 내거나 아니면 침체에 빠지는 식으로 흔들리게 되면 악한 영들은 승리감에 도취되어 더 계속적인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말들이 우리 안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그 영을 분별하고 깨어있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


  특별히 흡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머리가 좋으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다.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들은 자신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타인의 부정적인 언어에 의해 삶이 희생될 가능성이 아주 많다.


  그들은 흡수성이 뛰어나므로 악한 말을 들을 경우 그 말이 그의 심령의 깊은 곳에 가라앉는다. 그래서 기가 죽고 눌리며 생기를 잃어버린다. 그들은 속으로 되뇌인다. '맞아.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어. 나는 반드시 실패할거야.'

  그들은 어떤 일이 잘 진행되고 있으면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러다가 길이 막히면 그들은 말한다. '어쩐지 이상하더라니까'
  그들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겨도 실망하지 않도록 모든 일에 대해서 항상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하고 대비한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이고 어두운 의식이 왜 생긴 것일까?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당연하다. 그것은 잘못 입력된 외부 의식이다. 이들은 흡수력이 뛰어나므로 그 어두움의 메시지가 그의 안에 깊이 입력된 것이다. 그러한 어두움의 입력을 바꾸지 않으면 그들의 삶이 평생 피곤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아예 컴퓨터의 탐색기에 들어가 자신의 깊은 의식 속에 있는 중심 사상, 중심의 어두운 사고를 발견해내고 모조리 삭제해 버려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의식을 집어넣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컴맹이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러한 이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기본 의식을 바꾸어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람들은 왜 흡수력이 좋은가? 영혼은 비교적 발전이 되어 있으나 영혼을 담는 그릇인 몸은 별로 발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영혼의 껍질이 얇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들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그것을 바꾸어서 자꾸 활동을 해야한다. 그래야 영혼의 껍질이 두꺼워져서 외부 에너지가 침투하는 것이 적어지게 된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저서 <심령이 약한 자의 승리하는 삶>을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어떤 치유팀이 있었다.
  이들은 어떤 소녀의 다리를 위해서 기도사역을 하고 있었다.
  다리의 회복을 위해서 한참 열심히 기도를 하고 있는 데 초기에는 회복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가 어느 정도 지나니까 더 이상 기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치유팀의 리더가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주님께 묻는 기도를 드렸다. 그러자 이 소녀의 마음 속에 어떤 방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소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마음 속에 다리를 낫는 데 방해가 되는 어떤 것이 있느냐고. 
  그러자 소녀가 주저하면서 두려워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녀는 오래 전에 오빠의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고 한다.  '오, 주님. 제발 오빠를 구원해주세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저의 다리는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마음 속에 이 다리가 회복되는 것은 주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도대체 오빠의 구원과 그녀의 다리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오빠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녀의 다리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하나님은 반드시 다리가 있어야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가?
  하지만 이와 비슷한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자기의 희생을 통해서 다른 이가 잘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한 생각들은 악한 영들에게 하나의 공격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죄책감이나 두려움을 일으켜 우리를 괴롭힐 수 있게 된다.

  그 소녀의 경우 악한 말을 들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안에 입력된 어두운 생각이 주님의 역사를 방해했던 것이다. 이처럼 잘못 입력된 생각은 주님을 방해한다.


  어떤 환자의 경우에는 치유를 방해하는 것이 의사의 말이었다. 의사가 '당신은 거의 낫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그의 안에 깊숙이 박혀서 그는 회복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그 말을 끄집어내고 '나는 이 말이 주는 힘을 거부한다. 나는 이 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 고 선포한 후에 그는 회복될 수 있었다.

이처럼 어두운 언어가 일단 우리 안에 들어오면 그것은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이 공개적인 시인과 선포가 필요하다.
  "나는 내 안에 들어온 모든 어두운 말, 모든 어두운 생각과 그 힘을 거부하겠다!"
  "내 안에서 그것들은 더 이상 힘이 없다!"
  이러한 시인과 외침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전체적인 선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부정적인 생각과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하나 하나 발견하고 제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잡초를 제거하는 것과 같다.
  "아, 내 안에 '나는 무능하다' 가 있구나. 나는 이 잡초를 제거한다.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아. 내 안에 '너는 왜 한번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니?'가 들어 있구나. 나는 이 잡초를 제거한다. 나는 약속을 잘 지킬 수 있다!"   
  "내 안에 '네가 잘 되는지 어디 두고 보겠어'가 있구나. 나는 선포한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분이 나를 잘 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


  이러한 잡초의 발견과 제거는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의식으로 아름답고 밝은 빛의 의식으로 가득 채워져야 한다. 주님은 밝고 아름답고 풍성하시고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다. 그 분의 말씀과 빛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들이 주의 영 가운데서 이루어지며 서로 세워주고 격려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풍성해지고 행복해지고 서로를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얼마나 즐거운 일일까.


  하지만 그것은 희망사항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열심히 기도 해야할 것이다.
  오늘날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주님의 영으로 사는 이들이나 그러한 관계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주님의 영을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영을 경험하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은 어떤 신비적이고 황홀한 느낌 속에서 항상 붕 떠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날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주님의 친절하심과 사랑과 긍휼과 자비, 순결함, 지혜의 영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관계가 그렇게 서로 축복하고 격려하며 세워주는 관계가 되어간다면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그것은 바로 천국적인 삶이며 천국의 영으로 사는 것이다.


  아직 그러한 실제가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관계들이 서로 정죄하고 깨뜨리고 치는 지옥적인 관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부 입력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결코 아무 말이나 함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아무리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리 우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빛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 한 우리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어둠으로 떨어지게 한다.

 

  우리가 주님의 실상을 경험하게 될수록 우리의 삶 속에서 그러한 지옥의 요소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정죄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격려하는 분이시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
  주님은 우리를 세워주시며 빛과 생명을 공급하는 분이다.


  우리의 무능함과 부족함을 아시며
  그것에 대하여 정죄하지 않고 채워주시는 분이다.
  우리도 주님으로 채움을 받고
  그렇게 다른 이들을 격려하고 채워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이 땅에서 천국은 더욱 더 확장되어 갈 것이다.

 

 

 

출처 : 두나미스치유상담원
글쓴이 : healing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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