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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C.S. 루이스에 대한 소개

하나님아들 2015. 2. 8. 06:38

 

 

 

             C.S. 루이스에 대한 소개|

 
기독교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스스로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의 구원은 철저히 초월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기독교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야말로 합리적이며 타당성 있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 스스로가 정직하기만 하며, 합리적인 접근으로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도 당신을 계시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바로 C.S 루이스가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취해 하나님께로의 갈망을 깨 닫고, 자신의 유년 시절의 신앙을 되찾은 사람이었다.

C.S 루이스는 1898년 11월 29일 북아일랜드의 수도인 밸파스트에서 아버지가 변호사 로 성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북웨일즈의 노동자 출신으로서 교육을 받 았고, 어머니는 아일랜드의 상류계층 출신의 경건한 가문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루이스 는 그의 부모를 말하길, 아버지는 감정적으로 고독하고 어둡게 보이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밝고 재미있는 분 위기를 가진 분이셨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그가 어린 시절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루이스는 아버지의 양육을 받았고, 아버지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자랐다. 예컨대 그의 감수성이 예민한 문학적 소양은 그의 아버지에게 영향받은 좋은 유산이었다. 원래 그의 부모는 아일랜드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지만, 루이스의 신앙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유년기에 가졌던 기독교 신앙을 곧 버리고 만다. 그는 제 1차 세계 대전에는 영국군으로 복무했고, 제대 후 옥스퍼드에 입학하여 고전학과 철학을 전공하여 1923년에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는다. 1925년에는 곧바로 옥 스퍼드의 막달렌대학의 평의원으로 당선되었고, 1954년 캠브릿지대학교 에 신설된 중세 및 르네상스 영어교수직에 초빙되기까지 줄곧 막달렌에 서 지냈다.

1920년대의 청년 루이스는 자신의 기독교에 대한 태도를 신중히 검 토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히고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고 회심하여 신앙을 회복하는데, 인간 의 이성과 경험을 의지하여 하나님을 깨달으려는 태도로부터 지적으로 정직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하나님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회심을 이렇게 말한다.

"막달린의 기숙사에 있을 때였다. 밤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휴식을 취 할 때면 그토록 부딪치기를 원치 않았던 그분이 무정하게도 끊임없이 내 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두려워하던 그분이 드디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1929년의 마지막 학기에 나는 그분께 굴복하고 말았다. 결국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어 기도했다. 그날 밤의 사건 은 가장 더디고 맥빠진 회심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회심의 휘황찬란하 고도 분명한 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 지 그런 회심자라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받으셨던 것이다. 성경 에 나오는 탕자는 그래도 제 발로 집에 찾아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틈만 나면 탈출기회를 엿보는 이 탕자에게 하늘의 문을 활짝 여시고 나선 분의 이 사랑을 그 누가 마땅히 찬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회심한 후 루이스는 중세 및 르네상스 영문학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는 권위자로서 명성을 세워가기 시작했 다. 그의 생애를 돌아볼 수 있는 뚜렷한 사실로써 그의 저술을 통한 활동을 들 수 있다. 그는 학문적인 저술 활동 외에도 그것과 전혀 다른 성격의 책들을 쓰기도 했다. 특히 루이스는 당대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합리 성을 설명하기 위해 명쾌하고도 확신에 찬 여러 권의 책들을 펴냈는데, 그런 책들이 나옴에 따라 그의 대중적 명성과 인기는 한껏 높아만 갔고, 그의 책들은 논리의 선명성과 지성적 호소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 을 얻는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편이 믿지 않는 편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내가 믿는 기독교]라는 책은 그의 기독교 변증서들 가운데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과 도덕성을 변론한 가장 탁월한 책일 것이다.

그는 아주 이색적인 사상가였는데, 인간이 가진 상상력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상상력이 현실을 이해 하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도 잘 알았던 사람이었다. 더구나 그의 저서들의 독창성은 종교적 상상력에 대한 끈기 있고도 힘찬 호소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인간 실존의 한 국면을 나타내 주는 심오한 인간적 정서가 무엇인지를 깊이 인식했던 것이다. 루이스는 이것을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진한 그리움의 감정이라 했는데, 이는 세상의 경험이나 다른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감정이라고 표 현했다. 그는 그 감정을 '기쁨'이라고 한 다음, 그 기쁨의 근원적이며 최종적인 목표인 하나님께로 향하는 그 리움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것을 추구할 때 우리의 찾고자 하는 것은 언제나 손에 잡히는 곳에 있지 않고 그것을 넘어선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경험 속에는 이처럼 '신적 불만족'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 안에 자리잡은 이 욕망을 어디에 가면 채울 수 있는가를 되묻는 것이다. "우리가 사 랑하는 모든 것의 하나의 암시, 혹은 상징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나그네가 문설주 한 귀퉁이 에 새겨놓은 뜻모를 낙서라고나 할까? 혹은 수없이 많은 행인들의 발길에 닳디 鑧은 길가의 포장석이라고나 할까? 너와 나는 그런 암시나 상징들을 좇는 무리들 중의 한 표본일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 나설 때 서 로의 모습 너머에 있는 그것의 그림자라도 보고 싶어서 함께 달려가 보지만 그것은 벌써 한 쪽 모퉁이를 돌아 제 모습을 감추고 만다."

그러나 루이스는 이러한 갈망도 결국은 채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배고픔이나 목마름의 갈망이 음식과 물의 존재로 채워질 수 있듯이, 인간의 갈망은 진정한 궁핍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 궁핍을 채워줄 수 있는 진 정한 대상을 바라봄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관념이 단순한 추상적 정 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선이나 미와 같은 현실적 지각 대상이기도 하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 는 사람들만이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나 음악이나 시 등을 통해서도 막연하게나마 바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태양의 동편 혹은 달의 서편에 있는 나라'와 같은 비종교적인 용어로 표현할 수 있기도 하 다. 그러나 그 욕망은 어떤 유한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기에 그 욕망의 대상을 우리의 상상력의 산물쯤으로 봐서는 안 된다." 루이스는 그러한 갈망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보고, 그 감정의 충족은 하나님 안에서 찾 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에서 그는 인간 본성의 기원과 궁극적 지향점에 대한 어거스틴의 전통적 기독교 사상을 되풀이하는 셈이다. "주여, 당신은 우리를 지으실 때 당신을 위하여 지으셨으므로 우리의 영혼은 당신 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하기까지는 쉬지 못하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깊은 갈망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을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42:1) 루이스는 또 다른 그의 책에서 인간이 갖는 이 깊은 갈망의 신학적 의미를 아주 세련되게 표현하기 도 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그분 과 교제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쉼이 없다는 것이다.

출처 : 생명의 삶 1993년 1월호

 

 

 

출처 : 개혁하는 마음
글쓴이 : 청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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