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와 창세기 1-2-3장의 언약적 상호 연계성 고찰
----저작자 : 미상(저작자 연락요망)
1. 들어가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서(啓示書)로서 언약적 구속사(covenantal history of redemption)의 성격을 띠고 진행됩니다. 여기서 계시라 함은 창세전 영원세계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수립된 영원하신 목적으로서 우주 만물에 대한 작정과 계획이 성경기자들을 통해 포괄적으로 세상 역사 속에 드러내신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 과정에서 언약을 구속계시의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구속사라 함은 아담의 범죄 안에서 죄인 된 인류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속사역 안에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이들을 통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공동체를 이루시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심으로 종말론적 영광을 받으시고자 세상역사를 섭리적으로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활동사역을 가리킵니다(엡 1:4-6, 사 48:11, 겔 36:22).
이런 일련의 상호 불가분의 계시적 정황상, 계시사와 언약사 및 구속사란 표현은 본질에서 동질성을 띠면서 궁극적인 목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현 및 하나님의 영광구현을 향해 서로 밀접하게 연계돼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역사는 바로 이런 종말론적 구속사를 예시(豫示)적으로 진행해 나가기 위해 앞서 세상 가운데 드러내신 계시의 도구로서 모형적이며 예표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 속에 기록된 하나님의 제반 언약들은 성격상 다양성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이 신적(神的, divine)인 것으로 인해 통일성을 지향하는 가운데 상호 밀접하게 연계된 상황에서 갱신, 확장, 발전을 거듭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창1-2-3장에 기록된 중심 사건들이 신적 언약을 중보적 매체로 상호 깊이 연관돼 있음을 바르게 확인하게 될 때, 비로소 창세 전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으로서 삼위(三位) 일체적 구속계시의 본의(엡 1:3-14)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나머지 성경역사 전체를 하나님의 심정으로 일관성 있게 해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와 지침을 제공한다 하겠습니다.
2. 펼치면서
① 문화명령으로서 창조언약(창 1:28)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따라서 세상을 지으시고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좇아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친히 지으셔서 에덴에 거주케 하십니다. 이들에게 모든 창조물의 통치권을 하나님을 대신해서 위임해 주십니다(창 1:28). 아담과 하와는 그야말로 창조의 절정과 극치와 면류관으로서 만물을 향한 하나님의 대리적 통치권자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아담 부부가 타락하기 전, 에덴은 처음부터 하나님 나라를 예표적이며 성례전적으로 계시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보다 온전하고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막중한 책임과 사명이 저들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창 1:28의 창조언약을 통해 주신 소위 ‘하나님의 문화명령’(cultural mandate, creation mandate, christian stewardship) 속에 담긴 계시의 비밀의 실체가 이랬습니다. 이는 인간의 문화 활동으로서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생명적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나님 나라 사상에 집중돼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신 하나님의 문화명령으로서 창조언약의 중심사상은 본질에서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암시적으로 시사합니다. 다른 한편 문화명령은 자체 속에 내포된 복으로서의 언약적 성격상 ‘자손과 땅과 통치권’을 지속적으로 발휘시켜 나가게 될 때, 그 결국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완성이라는 동일한 목표에 도달할 것을 시사합니다.
② 선악과 금령법(선악과 언약)으로서 아담언약(창 2:17)
그렇다면 창1:28에 담긴 이런 원대한 하나님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이 어떤 방식을 통해 실현 가능할까요 이는 창조의 원리상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가운데 이를 생명의 도리로 붙들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통해 비로소 가능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통치적 성격은 하나님의 말씀이 권세 있게 시행될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적극적인 반응으로서 자원하는 순종의 삶을 특징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의 당위성을 극명하게 계시하고 있는 표상(表象)적 사건이 다름 아닌 선악과 금령에 담긴 선악과 언약(행위언약)의 비밀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이런 이유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 금령(선악과 언약)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 순종을 관장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이는 아담부부의 생명의 근원이 말씀에 기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명의 지속적인 존속여부 또한 철저하게 말씀의 순종에 의존돼 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선악과 금령은 순종을 요구하고 있으나 순종을 조건으로 영생을 보장하고 있지 않음에 유의/영생은 생명나무와 연관돼 있기 때문임).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과 작정 속에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이들에게 이후 문화명령을 적극 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선악과 행위언약이란 자체 속에 조건부적인 단서조항을 포함함으로 일종의 선의적인 시험(favorable probation)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 2:16을 통해 이미 저들에게 허락된 자유의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자율적이며 독립적인 성격의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본질적 관계상, 하나님의 뜻을 적극 이루어 드리는 일에 의존적이며 종속적으로 선용되어야 하는 제한된 자유의지입니다. 17절의 선악과 금령법에 의해 아담의 행동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음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런 사실은 아담이 각종 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데서도 극명하게 확인됩니다(창 2:19-20). 다시 말해 아담은 각양의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줄 때 임의대로 명명(命名)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부합되게 지어준 것입니다(자유의지의 선용). 이는 또 다른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되는 경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만일의 경우 아담부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제한된 자유의지를 오남용함으로 월권을 하게 된다면, 선악과 금령법에 담긴 하나님의 요구는 경우에 따라서 무시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악과 사건이 시험적 성격을 담고 있다는 관점이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존재이유와 가치와 본분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성’안에서 그 분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복하는 데서 비로소 찾아짐을 확인하게 됩니다. 전 12:13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따라서 아담부부는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16절의 범주 안에서 만끽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7절과의 관계 속에서는 철저히 제한적으로 사용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만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에게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안에서 한정적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예를 들면, 주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실까, 주님이시라면 이 일을 행하실까,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이 일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될까 등등의 질문을 사전에 던져본다).
③ 원시복음으로서 여자의 후손언약(창 3:15)
한편 하나님의 보좌를 찬탈하려다 실패한 사단과 그의 졸개들에게 세상은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저들에게 허락된 통치의 영역입니다(요12:31, 16:11, 마 4:8, 엡 6:12).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아담부부와 그들의 후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는 계획을 감지한 사단은 천상의 영계(靈界)에서 이루지 못한 사욕(邪慾)을 채우고자(유 6, 벧후 2:4, 사 14:12-15) 이번에는 뱀을 하수인으로 삼아 창조의 면류관인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합니다. 이번에는 직접 공세를 포기하고 우회전술을 시도합니다. 이 시험에 아담과 하와가 빠지고 맙니다(창 3:1-6). 이로 인해 에덴에 죄가 유입됩니다. 이제 에덴은 더 이상 하나님께서 안식하실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천상적 모습과 성격을 잃게 됩니다. 인류에게는 실낙원이 돼버린 셈입니다.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한 순간에 깨져버립니다. 이들에게는 선악과 행위언약 속에 형벌로 주어진 죽음만이 찾아올 뿐입니다. 사단이 승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듯합니다. 따라서 창 1:28에서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로서 신정왕국의 건설을 위한 문화명령적 언약은 무효화된 듯합니다. 상대적으로 사단은 천상에서 못 다한 한(恨)을 여기 지상에서 보상받는 듯합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하나님의 딜레마’(God's dilemma)가 제기됩니다. 창 1:28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에 근거하면 이 언약이 성격상 은혜성을 띠고 있기에 어떤 경우라도 중도에서 파기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하나님은 기어코 아담과 하와 부부 및 그의 자손들을 통해 문화명령의 결국인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만 하십니다. 그러나 창2:17의 선악과 금령법은 조건적인 행위언약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바, 이를 어기면 불순종의 대가로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부부에게 죽음은 필연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창 1:28의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상기 두 언약 사이의 상호 반목과 대립 및 충돌 과정에서 ‘하나님의 딜레마’란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런 이유로 문화명령적 창조언약(창 1:28)은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그러나 선악과 금령법의 행위언약(창 2:17)은 이를 어긴 아담부부의 즉각적인 죽음을 요구하면서 더 이상의 진행을 불허합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하나님의 딜레마’란 이런 양극단의 양상을 염두에 둔 데서 나온 수사(修辭)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창조자의 절대 주권적인 특성상 어떤 이유로라도 파기되거나 변개 될 수 없습니다(민 23:19). 더욱이 선악과 금령법은 비록 그것이 행위언약의 성격을 띠고 조건부적으로 주어졌다고 할지라도 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입장에서 창 1:28의 은혜언약에 의존돼 있음으로 죽음의 형벌이 언약적 징계와 심판의 성격을 띠고 주어질망정, 영원한 형벌로서 아주 사망에 처해질 수는 없는 법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된다면 이는 창 1:28의 언약이 식언(食言)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는다고 성경은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은 그 출처가 신적 기원에 근거하고 있기에(엡 1:4-6) 필연적으로 성취돼야만 하는 당위성을 이미 자체 안에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한편으로 창 2:17의 선악과 금령법을 어긴 이들의 죄책(罪責)을 해결해 주시며 다른 한편으로 창 1:28의 문화명령적 언약의 궁극적인 목표인 하나님 나라를 지속적으로 성취해 나가시는 방식의 일환으로 창 3:15의 여자의 후손(the seed of the woman)언약을 맺어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언약은 이상의 양자 간의 불가피한 상호 충돌을 동시적으로 극복케 해 주는 결정적인 해결책으로서의 이중적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자의 후손언약을 일컬어 복음의 원형, 곧 ‘원시복음’ 또는 ‘어머니 약속’(mother promis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 금령법을 어긴 아담부부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과 관련해 여자의 후손언약 속에 구속계시의 원리상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대속적 속죄사역의 의미가 암시적으로 내포돼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는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 구속 사역 안에서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마침내 성취되기에 이릅니다(갈 4:4, 렘 31:22).
3. 마치면서 : 구속의 원리를 방편으로 선용하셔서 창조원리를 지속시켜 나감
이제 당초 창조원리(창 1:28) 에 근거해 타락 전 무죄자로서 아담과 하와와 이들의 후손으로 인해 이루고자 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건설 계획은 이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죄를 구속해 주시는 속죄의 원리와 방식(창 3:15)을 통해 재정립되기에 이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으로 하나님 나라 건설이 창조원리에서 구속의 원리로 변경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갱신(更新) 될 뿐입니다. 다시 말해 구속의 원리를 방편삼아 처음 창조원리에 입각한 하나님 나라 건설 계획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죄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찾으시려는 창세전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이 이런 방식으로 성취된다는 사실을 간파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엡 1:4, 딤후 1:9, 행 2:23, 4:27-28).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이런 식으로 세상역사(표면적 사건)의 본질이 하나님의 구속사(이면적 사건)인 사실을 통해 인류의 유일한 구속자로서 성육신의 길이 예비 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상의 사실에 근거해 창 4장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세상역사는 표면적으로 보편적 인류의 역사라는 성격을 띠고 피조세계 속에 그 자취를 드러내게 되지만, 사실상은 여자의 후손(창 3:15)을 세상 가운데 보내시는 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문화명령의 결국이며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려는 구속사의 현장이요 무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창 1-2-3장에 각각 기록된 언약에 관한 상호 연계성과 이에 대한 정당한 해석여부는 이후 전개되는 성경역사 전반에 걸친 언약적 구속사의 내용을 하나님의 본의를 좇아 바르게 해명하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인 근간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상 창 1-2-3장에 각각 언급된 언약간의 상호 필연적인 연계성은 창 4장부터 시작되는 본격적인 인류의 역사 속에서 여자의 후손언약을 구체적으로 성취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언약적 구속사라 부릅니다. 여자의 후손을 세상에 출현시키려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언약을 수단과 방편삼아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자의 후손언약의 당사자로서 미래의 메시아는 계보적으로 당연히 아담과 하와의 혈통적 후손을 통해 세상에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눅 3:23-38). 세속사의 본질이 구속사인 사실이 이런 불가분의 상호관계 속에서 도출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 4장에 기록된 가인에 의한 아벨 살해사건은 단순히 제사의 열납 유무와 관련해 형제간에 일어난 시기질투의 결과가 아닙니다. 보다 본질적인 관점에서 여자의 후손언약 속에 이미 예언된 두 계열, 곧 여자의 후손(아벨)과 뱀의 후손(가인) 간의 상호 적대적인 투쟁과 대립 및 갈등과 반목의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표출돼 충돌한 사건입니다. 성경의 계시 역사를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으로 접근해 해석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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