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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하나님아들 2014. 11. 19. 00:14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 시간의 不可思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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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란 무엇인가? ... 크로노스 (chronos) 와 카이로스 (kairos)
  작품명:   G.De Chirico (Italian, 1888-1974) - The Enigma of the Hour. 1911
크로노스(chronos) 와 카이로스(kairos)

Kairos is an ancient Greek word meaning the right or opportune moment (the supreme moment). The ancient Greeks had two words for time, chronos and kairos. While the former refers to chronological or sequential time, the latter signifies
a time in between, a moment of indeterminate time in which something special happens. What the special something is depends on who is using the word.
While chronos is quantitative, kairos has a qualitative nature.
Kairos also means weather in both ancient and modern Greek.
The plural, καιροι (kairoi or keri) means the times.


헬라어에는 시간(때)을 두가지로 표현한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가 그것이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이요 일련의 연속적인
절대적인 시간을 뜻하고 ‘카이로스’는 때가 꽉 찬 시간으로 구체적인 사건의 순간, 감정을 느끼는 순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의미있는 순간이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의미를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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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no.jpg  기회의 신 카이로스


그리스에 가면 고대 그리스 신화를 나타내는 유적지에 우스꽝스러운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모습은 사람 같기도 하고 있는 형상은 짐승 같기도 한 모호한
동상입니다.

기괴한 모습의이 동상은 보시는 것 처럼 앞머리는 숱이 무성하고, 뒷머리는
완전한 대머리이며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있습니다. 또한 동상의 손을
살펴보면 한손에는 저울과 다른 한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습니다.

동상 앞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며, 또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금방 알아차릴 수는 없으나 발견하면 쉽게 붙잡을 수도 있는것.
그러나 지나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는 것.
그것은 바로 "기회"
입니다.

이 동상의 주인공은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 『기회의 신』입니다.
앞에서는 누구나 쉽게 머리털을 움켜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처럼
한번 지나가면 뒤에서는 잡아 챌 머리털이 없습니다.
기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깊은 뜻이겠지요

한손에는 저울과 다른 한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앞에 있을 때는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고,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
라고 합니다. 그래서 카이로스 개념 연구의 권위자인 제임스 키니비는 카이로스를 "The rignt time and due measure (적시와 척도, 계량)" 이라고 정의내렸다 합니다.

카이로스의 발 뒤꿈치는 항상 들려있고 날개까지 달려있는 것은
카이로스는 늘 달아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기회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사람은 결코 카이로스의 머리털을 움켜질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카이로스는 당신 옆을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기회는 준비가 행운을 만날 때 생기는 것" 이라 했습니다. 항상 준비하고 있다가 카이로스가 옆을 지나는 그의 머리채를 잡으면
당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항상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기회도 잡을수 없고, 꿈도 이룰수 없습니다.

‘소중한 것을 먼저 하라’ 는 책을 보면 '시간' 을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로 표현
한다. 희랍어에서 크로노스는 달력이나 시계로 표현되는 연속적인 시간 개념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며, 저장할 수 도 없고 빌려 주기도
받지도 못한다. 모든 사람에게 시계는 똑같은 비율로 흐른다. 이 크로노스 시간은 측정이 가능하고,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지속적인 특성을 지닌다.

시간관리 워크숍 중에 참가자에게 흔히들 이런 질문을 한다.
“5년전의 일년간을 되돌아보면 어떤 것이 기억납니까?” 그러면 대부분
특별한 사건 외에는 별로 기억 하지 못한다. 보통은 시간의 길이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짧게 느껴지고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시간이 느리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상황이나 가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감각적 차원의 시간을 카이로스라고 말
한다. 때로는 '기회' 라고 표현되는 입체적인 시간의 개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시간 관리는 개인의 삶의 목적과 의미를 나타내는 가치에 따라 하루하루를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맞이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즉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선물’ 즉 시간을 카이로스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삶은 일상적인 크로노스의 연속적인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카이로스 시간의 연속이다.

어떤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효과적으로 관리, 즉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을 먼저 관리하여 가치 있는 일에 집중하여 24시간 그 이상으로 살아가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긴급성에 기초하여 비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하루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거나 그저 주어진 의미 없는 일에 연연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여유 있게 행동하면서도 보람 있는 성과를 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항상 바쁘다고 말하며 허둥대기는 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왜 일까? 그것은 의미 있는 내 인생의 가치를 바탕으로 한 방향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면 너무나 흥분이 되어 아침 식사를 할 수 없다." 라고 말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라는 ‘사명’ 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침이 되면 그렇게 흥분할 수 있었고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코칭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가끔 하게 된다.
“아침에 침대에서 당신을 끌어내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보통은 자명종이나 깨우는 소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매일 주어진 시간
‘현재(present)’ 를 의미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주어진 ‘선물(present)’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와 같은 답변을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크로노스(오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기회) 시간을 만들어 가는
효과적인 시간 리더가 되어 보기로 다짐해봄도 나쁘지는 않지 않는가?


Kairos as portrayed in a 16th century fresco by Francesco Salviati,
Oil Paintings,1552-1554.(Detail einer Wand: Kai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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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b.jpg   The Enigma of the Hour
시간의 不可思議 · 수수께끼
Giorgio-de-Chirico / The Enigma of the Hour, 1911
·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
·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


경이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들은 의미로 가득찼고 특별하였으며 일어난 일들에 맞는 
질적인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모든 것이 시들해가며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을 살게된다.

세슘 원자의 92억번 진동을 1초(秒)로 정한 인간들의 측정가능한,
사회적 약속의 양적인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간들이 그 크로노스에 끌려다니며 살게 된다.
Alarm시계에 맞춰 허겁지겁  눈비비고 일어나 잠들 때까지 시간의 노예로 산다. 급기야 그 크로노스에 지극한 의미를 부여해 억지로 카이로스를 만들기까지 한다. 0.01초- 육상.수영.사이클.숏트랙.버저비터,지각.개근,모범..
여기에 울고 웃고 흥분하고 한탄하고... 어쩌면 카이로스를 잃고
크로노스를 사는 인간의 자위일런지도 ㅡ.ㅡ

의식적. 무의식적 카이로스에의 귀향(歸鄕), 그래서
옛날이 더 아름답고 복고가, 보수가 늘 주류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시간은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인간의 존엄이다.
그 존엄에, 크로노스에 목을 매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때는 바야흐로 오후 3시경.
크로노스로서 이 시간이면 당연히 북적거려야 할 곳에
무슨 일인지 스산하고 괴기한 음울한 분위기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만나지 못한 시간.
그 괴리의 시간이 소름 돋는 우울을 안개처럼 피워내는 오후 3시..!
나는 오늘도 크로노그라프(chronograph) 시계를 들여다 본다.

    kairos.gif

      / 카이로스(Kairos)의 시간 ·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 /
    ※ 세슘(caesium. 미국: cesium)은 알칼리 금속에 속하는 화학 원소로
    원소 기호는 Cs, 원자 번호는 55이다. 무르고 밝은 금색의 알칼리 금속으로 실온 부근에서 액체 상태로 있는 세 금속 중 하나로, 원자 시계를 만드는 용도로 쓰인다. 원자시계(原子時計)는 원자의 전자기에너지 주기가
    일정한것에 착안하여 만든 가장 정확하게 시계이다. 그중 국제원자시의
    기준으로 세슘원자시계를 사용하고 있는데, 세슘원자가 1초동안 진동하는 횟수는 9,192,631,770번(약92억Hz)으로 30만년에 1초의 오차를 보인다.


    / 상용 세슘 원자시계의 원리 /
    한국 시간주파수 연구실은 현재 4대의 상용 세슘 원자시계를 보유하고
    있으며 수소메이저를 함께 이용하여 한국표준시와 한국표준 주파수를 생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세슘원자시계들과 수소 메이저는 국제 시각비교를 통해 세계표준시를 생성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카이로스(Kairos)' 신

      리시포스(Lysippos)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다.
      그는 앞머리에 숱이 몰려 있고 뒤는 대머리인 조각상을 만들어 집 정원에
      놓아두었다. 조각을 본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처음에는 웃다가,
      동상 밑에 새겨진 시구(詩句)를 보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고 전해진다.
      문답으로 이루어진 그 시의 일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너는 누구인가? /
      나는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간이다 / … /

      왜 앞머리가 머리 앞으로 내려와 있지? /
      내가 오는 것을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뒷머리는 대머리지?/
      내가 지나친 다음에는 누구도 나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지…"


      발뒤꿈치와 어깨에는 날개가 달리고, 손에는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이 조각은 '적절한 시간' '상황(aspect)' '기회(opportunity)' 등을 뜻하는
      그리스 '카이로스(Kairos)' 신의 형상이다.

      때를 맞춰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특종 뉴스의 가치는 전적으로 시간에 달려 있다. 김치의 맛을 유지시켜
      주는 김치냉장고의 발효과학은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잡아 두는 기술에서
      나온다. 동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시간이 갈라놓는 연인들의 이야기다.
      마녀는 오로라 공주에게 100년 동안 잠을 자야 마법이 풀리는 저주를
      걸면서 "그때가 되면 왕자는 너무 늙어 있을 것"이라고 고소해한다.

      말의 설득적인 힘 역시 적절한 시간과 상황에서 나온다.
      로마시대 웅변가인 키케로는 "가장 잘하는 스피치는 상황에
      가장 자연스럽게 맞는 스피치"라고 했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제의 증명을 가능케 하는 것이 시공간적 맥락에 있다고 했다. 그 전통을
      이어 광고나 홍보, 위기관리를 비롯한 현대 설득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서도 '시간' 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조선일보 2008/6/5. 아침논단 'Aphorism Today' (박성희 이대교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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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 전 4세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Lysippos)
      '카이로스'(Kairos) 조각상


      카이로스(Kairos) 조각상

      기원 전 4세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의 카이로스 조각상을 보면
      "앞머리는 머리카락이 무성한 반면
      뒷머리는 대머리인 우화적 형상을 하고 있다.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고,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있으며,
      어깨에는 커다란 날개가 달려 있고,
      발에도 작은 날개가 달려 있다. "

      이를 두고 이솝(Aesop)은 우화로 쓰고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그를 발견하였을 때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그가 지나가고 나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왔다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왼손의 저울은 그가 왔을 때 그 옳고 그름을 형량토록 함이고,
      오른손의 칼은 옳다 판단할 때 칼같이 결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그의 이름은 기회(Opportunity)다.

      제우스의 아들 카이로스(Kairos)는 '기회의 신'이다.
      앞에서는 누구나 쉽게 머리털을 움켜쥘 수 있지만
      한번 지나가면 뒤에서는 잡아챌 머리털이 없다.
      기회는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기회가 앞에 있을 때 저울을 꺼내들어
      신속히 분별하고 판단한 후 칼같이 결단해야 한다.
      기회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사람은
      결코 카이로스의 머리털을 움켜쥘 수 없다.
      지금도 기회의 신은 우리 옆을 그렇게 바람처럼 지나가고 있다.

      올림푸스 신전에는 카이로스의 상이 세워져 있다.
      벌거숭이 젊은이가 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오른 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다.
      이마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지만
      뒷머리와 목덜미는 보숭보숭하다.

      관광객들은 너무 우스꽝스러워 처음에는 웃고 말지만
      그 아래 어느 시인이 풀이해 논 글을 읽고 나면 절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시간은 쉼없이 달려야 하니 발에 날개가 있고
      시간은 창끝보다 더 날카롭기에 오른손에 칼을 잡았고
      시간은 만나는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앞이마에 머리카락이 있으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누구도 잡을 수 없도록 뒷머리가 없다."
      참으로 숙연해지는 시구가 아닌가.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은 '크로노스'(Chronos)다.
      제 자식은 물론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는 신으로 묘사돼 있다.
      그래서 연대기(Chronology) 등 시간을 나타내는 영어는 모두 이 신의
      이름에서 나왔다.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하루 24시간 이상은 가질 수 없는 게 시간이다.
      이처럼 단호한 시간의 속성을 표현하기 위해
      크로노스가 칼을 높이 쳐든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옛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둘로 구분했다.
      '크로노스'가 1초 1분 1시간 1주일 처럼
      기계로 측정할 수 있는 물리적.객관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Kairos)는 사람이 어떻게
      관리,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주관적인 시간이다.
      ‘단순한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Chronos)
      ‘기회’  ‘무르익은 때’ 를 의미하는 ‘카이로스’(kairos)로 구별한 것도
      시간상의 ‘새것’과 옛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것’을 차별하기 위해서였다.

      육체의 변화와 잘맞는 듯한 시간측정법인 크로노스는
      상황적 시간측정법인 카이로스에 비해 삶을 잘 대변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카이로스는 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공 위에서 머무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다.

      크로노스는 가만 있어도 똑딱 똑딱 흘러가지만
      카이로스는 염원과 갈망에 의해 흘러가는 것이 다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간이 바로 카이로스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 기회의 신은 바람처럼
      우리의 곁을 스쳐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카이로스의 삶


      헬라어에는 시간 (때)을 두가지로 표현한다,
      '크로노스’ (Chronos)와‘카이로스’ (kairos)가 그것이다.
      하나는 물리적인 시간을 지칭하는 '크로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때, 기회를 의미하는 '카이로스'이다.

      카이로스의 어원을 보면 "활시위를 당기다" 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활시위는 당기다의 뜻안에는 화살이 목표(타겟)에 맞았다는
      의미가 내포돼있다. 쉽게말해서 미래(종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다.
      미래(종말)에 대한 확증을 가지고 시간개념을 바라보기 때문에 활시위를
      당기는 때(시점)이 벌써 타겟에 맞추었다는 전제(목표)가 가능한것이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시계로 표시되는 흘러가는 시간이요,
      일련의 불연속적인 우연한 사건들이 지나가는 시간을 뜻하고,
      ‘카이로스’는 때가 꽉 찬 시간으로 구체적인 사건의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중요한 뜻이 담긴 시간을 의미한다.
      카이로스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승화시켜서
      이 시간을 값있게 사용하게 되면 이 사람은 자기 인생의 위대한 가치를
      실현하게 된다. 모든 사건에 대하여 순간순간 카이로스적 접근을
      통해 우리들의 삶의 자리를 의미 있게 형성해 나가야 한다.
      {노년의 인생도 젊었을 때와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카이로스적 시간 속에서 사느냐 아니면
      크로노스적 시간 속에서 사느냐 는 각자의 생각에 달려있다.



      우리가 하루에 몇번이나 시간을 볼까 생각해보면 그리 많은
      횟수는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우리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다.

      사람은 나이로 살 것이 아니라 카이로스로 살아야 한다.
      젊은 사람이라도 시간을 크로노스로 보내면 죽어가는 물고기가 물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듯 인생이 시간의 흐름에 떠내려가는 죽어가는
      인생이 된다. 허나 나이가 비록 노년이라 하드라도 카이로스로 살아가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같이 생동감 넘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성경 속 969세를 산 므두셀라의 시간이 크로노스였다면
      33년의 짧은 생애동안 위대한 삶을 산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은
      카이로스였다고 할 수 있다.

      임신부가 임신한 후 열달동안 아이를 복중에 간직하고 있다가
      아이를 낳았다고 할 때 그 열 달은 흘러가는 시간으로서의 ‘크로노스’이고
      해산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아이를 잉태하는 바로 그 순간, 즉 산모의 생명에 대한 기쁨과 다 이루었다는 안도의 평온함을 갖는 순간이 곧 ‘카이로스’이다.

      역사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자에게 의미가 있다.
      그때 그 시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는 교과서에서 다 알 수 있다.
      그건 크로노스적 시간이해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속에 사는 사람은 비록
      ‘그 때 그 일’을 경험하지 못하였다해도‘살아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부정과 불의, 투쟁과 타협,
      전쟁과 싸움, 가난과 억압 등의 수많은 사건들을 경험한다.
      크로노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역사가 자신을 어떻게 판단할 지에
      관심이 없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끊임없이 자신을 반추하며 사는 사람이다.

      크로노스는 영어의 chronology와 관련되는 것으로 연대기란 뜻이다.
      순차적인 역사를 말한다. 고려시대, 조선왕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분단시대, 이렇게 연대기적으로 역사를 기록하고 이해하는 관점을 chronology라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오늘은 21세기 초반이다.

      카이로스 역사관은 질적으로 다르다.
      카이로스는 삶과의 관계성 안에 있는 시간이다.
      그것은 또한 더불어 사는 삶의 연대성 안에 있는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끝이 없다. 그러나
      카이로스의 시간에는 그 마지막(有限)이 있다.
      즉 자연만물의 정해진 때가 있다는 말이다.
      그 때를 일컬어 파루시아라고 한다.
      파루시아라는 단어는 헬라어 Para와 ousia가 결합된 말로서,
      Para는 "along side" 즉 '나란히' 라는 뜻이고
      ousia는 "substance" 즉 '본질 혹은 실재'란 뜻이다.
      이 두 단어를 결합한 뜻은 '본질과 나란히 온다'라는 뜻이다.

      카이로스의 시간이 끝나는 지점. 즉 파루시아의 때를 알고 있는
      사람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살지만 동시에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 있다.
      누구나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을 사는 사람은
      역사와 자연 앞에서의 책임을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The Castration of Uranus: fresco by Cronus (Saturn) / Vasari, Giorgio
    & Cristofano Gherardi, c. 1560. (Sala di Cosimo I, Palazzo Vecchio, Florence).


      '크로노스'라는 말은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신의 이름인데
      '크로노스'는 자기의 친 아버지인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추방하고,
      그도 역시 자기의 자식들에 의해 추방된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 '크로노스'라는 이름이 '시간'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시간은 자식들에 의하여 추방되도록 운명되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크로노스'입니다. 자식은 누구입니까?
      오늘은 어제의 자식. 어제의 자식은 또한 내일의 아버지입니다.
      아비는 자식을 낳고, 자식은 아비를 추방합니다. 그 자식은 다시
      자식을 낳고 자기의 자식에 의해서 밀려납니다. 이것이 '시간'입니다.

      시계의 모형이 원형이라고 해서, 그 시계 바늘이 반복적으로 회전한다고
      해서 그에 기만당해서는 안됩니다. 역사관에는 크게 직선적 역사관과
      윤회적 역사관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세월이 반복되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 춘하추동의 계절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올해의 겨울과 내년의 겨울은 그 개인에게 있어서 분명 다릅니다. 의미가 다르고, 느낌이 다릅니다.

      곧, 시간은 반복이 아니라 오히려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한 번 흘러간 물은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 올 수도 없고, 흐르는 물을
      토막 낼 수도 없습니다. 멈추게 할 수도, 보관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긴 선이 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릴 뿐입니다.


      시간은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 과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있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연대기를 말할 때
      영어로 '크라너클'(Chronos) 또는 '크러날러지'(chronology)라고 한다.
      이는 천문학적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며,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매일 한 번씩 어김없이 낮과 밤이
      찾아오고, 매년 한 번씩 봄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식물이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시간이다.

      『크로노스 시간』이란 1초, 30분, 한 달처럼 우리가 그냥 말하는
      물리적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벌써 30분이 지났군!",
      "내일 두 시에 만나자"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한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
      이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른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이것이 역사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 속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의미있는 시간으로서 진정한 시간이 되는데
      그 시간을 가르쳐서 '카이로스'라고 합니다.

      『카이로스 시간』은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을 말한다.
      즉, 시간을 느끼는 감각적 차원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화살처럼 흐른다.",
      "지금이 바로 그 일을 할 때야!"라고 말하는 경우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의 차이점은
      크로노스는 시간의 길고 짧은 개념만이 있다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선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을 해야 할 적당한 때를 아는 것은 바로 카이로스의
      시간 개념을 아는 것이다. 선택에 따라서 얼마든지 늘릴 수도 있고 얼마
      든지 의미있는 것으로 바꿀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카이로스 시간이다.

      카이로스와 크로노스 시간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예를 하나.
      왕가위가 만든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영화 『아비장전』이다. 그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하는 일 없이 놀기만 하는 동네 건달인 장국영이 장만옥을 유혹하며
      함께 시계를 들여다 보는 장면. 장국영은 "이대로 1분 동안만 시계를
      보고 있자."고 말한다. 그리고 1분이 지난 후에 이렇게 말한다.
      "너와 나는 1분을 같이 했어. 난 이 소중한 1분을 잊지 않을 거야.
      그리고 지울 수도 없어.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크로노스는 그렇게 흘러버린 물리적인 시간 1분을 말한다.
      반면에 카이로스의 1분은 너와 나의 소중한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것을 함께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 『성공을 위한 모닝테크』/ 가재산 著 中에서 -

      인간은 시간을 연장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 크리스틴 리빈 코트 -
    The Red Tower (1913)
    Giorgio-de-Chirico / The Red Tower
    개 20년. 원숭이 40년. 코끼리 70년. 고래 120년. 거북 180년.
    그리고 인간은 최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 미국 텍사스의대 노화연구팀 스티븐 어스태드 교수 S. Austad -
    "현재 인류는 150살 이상 살 수 있다"
    고대 로마 제국 시대 평균 수명 25세.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시대 평균 수명 34세.
    산업혁명 이후부터 의학, 과학의 발달로 1년에 약 3개월씩 수명 증가
    1910 ~ 1940년 34.1세, 1960년 52.6세, 1971년 62.3세, 1987년 69.2세, 1991년 71.7세, 2005년 77.9세, 20세기 동안 평균 수명 50년 증가.
    "150살까지 생존할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 지금 일본에 살고 있다."
    (The first person to live to 150 years of age is probably already alive.")

    - 올샨스키 S.J. Olshensky -
    "Austad is out of his mind"
    "앞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은 감소할 수 있다."
    현대인의 사망원인 1위 암.
    사망원인 1위 암이 완치된다면? 인간수명 2년 증가.
    미래의 시한폭탄 소아 비만.
    비만아 중 지방간, 고지혈증, 고혈압 등 성인병을 지닌 아동 70%이상.
    "앞으로 10년 뒤쯤 성인병의 위험을 가진 비만 아동이
    성인이 되면 평균 수명은 2 ~ 5년 줄어들 것이다." (S.J. Olshensky)

    인간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늙는다는 것…
    75세 이후의 삶이란 인간이
    절멸된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노인 / 머리파이퍼

    나는 감정의 서민
    웬만한 감정은 내게 사치다.
    연애는 가장 호사스런 사치

    나는 행위의 서민
    뛰는 것, 춤추는 것,
    쌈박질도 않는다.
    섹스도 않는다.

    나는 이미 흔적일 뿐
    내가 나의 흔적인데
    나는 흔적의 서민
    흔적없이 살아가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리라


    2005년 12월 30일 밤 11시5분
    EBS 특집다큐멘터리 〈인간의 늙음〉


    Koyaanisqatsi: Life out of Balance
    How serendipitous is this? I was thinking about this movie a few days ago
    and happened to find it in one of my GReader feeds.


    the more ... “Koyaanisqatsi: Life out of Balance“ Music by Philip Glass
    Koyaanisqatsi(koy-yan-iss-katsi) means 'Crazy life"


    "시간이 마음 속에 있다고 ?"


    "… 회색신사들의 시간인 크로노스에서 마음을 해방시키십시오.
    그리고 모모의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속에 살게 하십시오.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찬 시간,
    가슴 뛰는 희망으로 가득 찬 시간인 카이로스(Kairos) ……"

    독일의 작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는
    ‘시간의 의미’ 곧 “우리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

    가르쳐주는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소설입니다.

    폐허가 된 옛날 원형극장에서 사는 모모는 뒤엉킨 고수머리에다 작은 키에
    마른 체격을 하고 언제나 자기 몸보다 커다란 외투를 걸치고 다니지만 무척이나 예쁜 눈을 가진 소녀이지요. 그녀에게는 별난 능력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남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달리 할 일이 없는 모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래서 모모를 찾는 친구들이
    언제나 많았지요.

    하지만 이 도시에 회색신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모모의 친구들은 회색신사의 방문을 받은 후 돈을 벌기 위해, 혹은
    뭔가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시간을 아끼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도시는
    점점 예전의 따뜻한 인정은 사라지고 차갑고 삭막하기만한 회색도시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모모는 신비한 노인 호라 박사와 30분 후의 미래를 알고 있는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훔치는 회색신사들과 싸우게
    됩니다. 결국 모모가 그들을 물리치고, 마을사람들에게 다시 예전처럼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는 행복한 삶에 찾아준다는 게 이 소설의 줄거리...


    시계로 재는 ‘회색신사들의 시간’ - 크로노스

    우리는 소설『모모』에서 두 가지의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회색신사들이 가진 시간입니다. 이것은 시계로 재는 시간이지요.
    철학에서는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크로노스는 자기 아버지 우라노스를 몰아내고 왕위에 앉았기 때문에, 자신도 자식들에게 쫓겨날까 두려워 자식들을 낳는 대로 모두 잡아먹는 신이지요.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이 여섯 번째 아들인 제우스에게 밀려나게 되죠. 결국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쫓김을 당하는 이 신화가 뜻하는 것은,
    시간이란 뒤에 오는 것이 앞의 것을 밀어내게 되어 있다는 것, 아무리 머물려고 노력해도 머무를 수 없다는 것, 즉 만물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크로노스는 언제나 미래에서 다가와 현재를 지나 과거로 밀려 흘러가버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의 본질은 소멸, 파괴, 죽음이지요. 때문에 회색신사들의 말처럼, 시간을 저축하고 절약하여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도 ‘당연히’ 드는 겁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이런 시간에 맞춰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 산업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였지요. 그 이전 농경시대에 사람들은 훨씬 풍요롭고 성스러운 시간 속에서 살았지요. 해가 떠서 밝아지면 들로 나가고, 저녁이 와 어두워지면 멀리 교회당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그날 하루에 일어난 모든 것들에 대해 신께 감사드리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밀레가 그린 유명한 그림 「만종」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들이 생겨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은 - 소설 『모모』에서 회색신사들이 그런 것처럼 - 대량생산에 의한 물질적 풍요, 절대적 자유, 무한한 행복을 사람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교회의 첨탑에서 성스러운 시간을 알려주던 종(鐘)을 끌어내리고 그곳에 시계를 달기 시작했지요. 농경시대와는 달리 산업시대에는 커다란 공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시계가 필요해진
    겁니다.

    앨빈 토플러가 그의 책『제 3의 물결』에서 잘 표현한 대로, 산업사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희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처음으로 가난이나 굶주림, 질병이나 전제정치를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물질이 풍부한 산업문명 속에 평화와 평등이 올 것이며, 실업문제가 해결되고, 불평등이 사라지고, 수천 년에 이르는 농경문명 동안 변함없이 지속되어 오던 여러 가지 비참한 상황이 막을 내림으로써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물질적 풍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전보다 더 행복해지지도, 자유로워지지도, 평등해지지도 않았다는
    것에 있었지요. 소설『모모』에서 회색신사들이 한 일들이 바로 이것이고요.
    즉 회색신사들은 산업사회를 대변하는 인물들인 셈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산업사회가 가져다준 우리들의 황폐한 삶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심각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물질적 욕망의 충족이 결코
    행복에 이르는 길도 아니고, 최대 쾌락을 누리게 하는 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우리는 쾌락적이지만 불행하다는 경험도 널리 퍼졌고요.
    부자가 되었지만 동시에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는 생각도 생겨났습니다.
    경제적 발전은 부자 나라와 부유한 국민에게만 이루어져, 그 결과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한층 더 넓어진 것도 드러났지요.

    그러자 물질적 풍요는 분명 하나의 가치이지만 그밖에도 잃어서는 안 될
    많은 가치들이 있다는 생각들이 차츰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진정한 삶을
    살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되었지요.

    그래서 소설 『모모』가 태어난 겁니다. 저자 엔데는 자신의 소설에서
    산업사회를 사는 오늘날 우리들의 불행한 삶을 고발하고, 모모를 통해
    이러한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려 한거죠.


    마음으로 재는 ‘모모의 시간’ - 카이로스

    소설『모모』에 나오는 다른 하나의 시간은 호라 박사와 모모가 가진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은 시계나 달력으로 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마음으로만 잴 수 있는 시간이지요.
    호라 박사는 방안을 온통 시계로 장식해 놓은 이유를 묻는 모모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야 모모, 이 시계들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야.
    이 시계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 속에 갖고 있는 시간을 엉성하게 묘사한 것에 지나지 않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는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는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는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철학에서는 이런 시간을 흔히 카이로스(kairos)라고 하지요.
    카이로스는 과거, 현재, 미래로 자꾸만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즉 과거는 ‘기억’ 으로 언제나 현재 안에 있고,
    미래도 역시 ‘기대’ 로 언제나 현재 안에 있지요.

    정말이냐고요? 그럼요! 한번,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누군가 그의 마음이 지금 몹시 기쁘거나 매우 슬프다면,
    그것은 현재 이 순간 때문만이 아닐 겁니다. 그것은 분명
    과거의 어떤 일 또는 다가올 미래의 어떤 일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죠?
    이렇듯 우리의 마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사는 겁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불리는 성(聖) 아우구스티누스
    (St. Augustinus, 354~430)는 그의 『고백록』에서
    이런 시간에 대해서 다음같이 설명합니다.

    “내 마음아, 결국 네 안에서 내가 시간을 재는구나!
    사실이 그럴진대 너는 결코 이를 부인해서는 안 된다. 거듭 말하거니와
    나는 네 안에서 시간을 잰다. 지나가는 사물들이 네 안에 이루어 놓은 인상을
    - 그것들은 지나가도 남아있다 - 나는 현재처럼 재고 있는 것이다. ……
    미래 일들이 아직 존재하지 않음을 누가 부정하는가?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래의 것들에 대한 기대가 존재한다. 과거의 일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누가 부정하는가? 그러나 여전히 마음속에는 과거의 일들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은 회색신사들의 시간인 크로노스를 살아가지만,
    마음은 모모의 시간인 카이로스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알 수 있지요.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희망차고 바람직한 기대들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카이로스 속에서 살고 있고, 카이로스란 과거가 ‘기억’으로 언제나 현재 안에 있고, 미래도 ‘기대’로 언제나 현재 안에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누구든 추하고 나쁜 기억들만 많이 갖고 바람직한 희망은 전혀 없으면서
    행복할 순 없지 않겠어요?

    그래서 “추억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불쌍하다.”라는 말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보다 더 비참하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앓을 ‘불쌍하고도 비참한’ 질병에 대해 호라 박사는 다음같이 말합니다.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마디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기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더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 거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 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그 지경까지 이르면 그 병은 고칠 수가 없어. 회복할 길이 없는 게야. 그 사람은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바삐 돌아다니게 되지. 회색신사와 똑같아 진다.”


    모모가 그려낸 기적적인 풍경들

    혹시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나요? 만일 그렇다면,

    회색신사들의 시간이자 물질의 시간인 크로노스에서 마음을 해방시키십시오.
    그리고 모모의 시간이자 마음의 시간인 카이로스 속에 살게 하십시오.
    사랑과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 찬 시간, 가슴 뛰는 희망으로 가득 찬 시간인
    카이로스 말입니다.


    엔데는 모모의 활약을 통해 다시 카이로스 속에서 살게 된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그리고 있지요.

    “이제 대 도시는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들이 길 한복판에 나와서 놀고, 아이들이 비키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전사들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사람도 있었다. 어디서나 사람들이 서서 다정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자세히 물었다. 일하러 가는 사람도 창가에 놓인 꽃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거나
    새에게 모이를 줄 시간이 있었다. 의사들은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정성껏
    돌 볼 시간이 있었다. 노동자들도 일에 대한 애정을 갖고 편안히 일할 수 있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가능한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란 마음의 삶이다”    - 플로티노스(Plotinos)

    The Nostalgia of the Infinite by Giorgio de Chirico, oil on canvas, 1911
    출처 : 에듀프라임 순천지사
    글쓴이 : 어드밴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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