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 에베소서

[스크랩] ?[에배소서강해-1] 하나 되라 (엡 1:15-23)

하나님아들 2014. 10. 26. 23:02

[에배소서강해-1] 하나 되라 (엡 1:15-23)


1.하나 되라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21) 모든 정사(政事)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15-23)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며, 삶의 가치가 영원한 사람입니다.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셨는데 하물며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다 한들 거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과 목적이 없겠습니까?(마 10:29-3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제자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예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일을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9:1-3) 자신이 흑인으로 태어났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든, 신체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든, 태어나 부모의 버림을 받아 고아로 자랐든, 엄청난 병고 끝에 의사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았든, 현재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일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자신이 죄에서 깨끗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신체 건강한 자이든 신체 장애자이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거룩하고 흠없는 하나가 될 것임을 믿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거룩하고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장차 기업으로 들어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서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계 21:1-4) 그리스도 안에서 이와같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약속의 보증으로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여러분의 삶을 거룩하고 흠없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깨끗하게 사는 것입니다.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깨끗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지위가 높든 낮든 깨끗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인류가 깨끗함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지 더러움으로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깨끗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길게 살든 짧게 살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는 것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7:3)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가장 정확하게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도와주십니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성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므로 여러분의 삶을 가장 행복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룩하고 흠없는 삶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인간의 마음의 눈을 밝게 하여 주십니다. 돈이 많아도 마음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돈이 별로 없어도 마음 눈이 밝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병들었어도 마음 눈이 밝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건강해도 마음 눈이 어두운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많이 배웠다고, 높은 자리에 있다고 모두가 다 마음 눈이 밝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눈이 밝아지게 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될 때입니다. 자신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뜻을 깨닫고 그 뜻 가운데 자신에게 주어진 소망을 알게 될 때 마음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미국이 낳은 위인 부커 워싱턴은 어려서 노예로 있을 때 낡은 오막살의 청소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이 청소를 해도 주인은 더 잘 하라고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부커는 세 번 퇴짜를 맞은 후에 이제는 자신을 가지고 주인을 오막살이로 데려왔습니다. 주인은 들어서자마자 고함을 질렀습니다. "창문은 왜 닦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있으면서도 그 오막살이에 창문이 있는 것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부커는 나면서부터 유리 창문이 있는 집에 살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그 창문에 너무 먼지가 많이 앉아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커는 부지런히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그 순간 찬란한 석양빛이 오막살이의 어둠침침한 방안을 환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렸을 때의이 경험이 부커 워싱턴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도록 하였습니다. "창문을 닦읍시다. 창문을 닦읍시다. '미래'라고 하는 창문을 닦읍시다. 양심의 창문, 신앙의 창문 거기에 먼지가 앉으면 암담할 뿐입니다. 미래도 보이고 현재도 밝아지도록 빛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창문을 닦읍시다." 마음의 눈을 항상 밝게 하시는 성령이 충만하시므로 자신의 삶을 밝게 할뿐만 아니라 이웃들의 마음도 밝게 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은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소망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세상에 미혹되지 아니하고 약속과 축복의 땅인 가나안, 곧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킨 목적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했고 그 결과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영광과 축복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출애굽시킨 목적에 대해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가나안 땅에 들어갈 가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소망을 확실하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목적, 자신을 왕으로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신하고 있었기에 끊임없이 몰려오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또한 주위 이방 국가들과 싸워 완전한 승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시 18:1-6). 이처럼 성도는 영적인 눈을 통해 부르심의 소망을 잃지 않을 때 어떤 고난이나 대적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현재 당하는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소망을 확실히 하여 어떠한 고난과 역경 중에도 그 소망을 성취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롬 8:18).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모든 인류가 각자를 부르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 소망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군 중 10명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자신들을 가나안 민족들에 비해 메뚜기같이 매우 미약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있었기에 '그들은 우리 밥이다'(민 14:9)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고백은 인간적인 만용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난관이 닥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이런 성도는 일이 잘 풀려 나가면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고난이 오면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살펴보아 지금까지 그런 신앙 생활을 해왔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두 죽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 성경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믿으시고, 여러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이라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이와같은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성도 여러분이 하나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지혜와 계시의 성령이 충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마음의 눈을 밝게 하며, 부르심의 소망과 하나님 나라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 그리고 그 능력의 크심을 알게 하여 하나 되게 하는 곳입니다.

요즈음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 소위 <벤처 기업>입니다. 아이디어 하나로 기업의 승부를 걸어 회사를 세우고, '정신없는 돈들'이 떼로 몰려드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여 하루 아침에 수 천억 원을 거머쥔 20대 초반 <벤처 사장>들이 이름하여 <뜨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벤처 거리로 알려진 서울 테헤란로 일대의 술집에서 하루 저녁 술값으로 현금으로만 1천만 원을 거침없이 던진다고 하니 어찌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남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하는 튀는 아이디어가 없으면 어느 분야에서건 <뜰 수가 없는 시대>입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존경과 부러움을 샀던 의사나 검사라도 튀지 않으면 뒷전에 밀리고 맙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서 교회도 <벤처 목회>를 해야한다는 기사를 보고 큰 일 났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목사도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목회에 승부를 걸어야한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감히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나 다른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튀는 이벤트>로 목회에 승부수를 띄워야 '정신없이'(?)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벤처 목회>로 성공하여 교회가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벤처 교회>를 팔아 먹을 일이 있습니까? 교인들이 무슨 주주(株主)들인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2000년전 예수께서 튀는 아이디어 하나로 성공시킨 교회입니까? 예수가 가시면류관을 쓰고 채찍에 맞고 창으로 옆구리가 찔리고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며 십자가 죽으시는 행동이 튀는 <벤처>입니까? 예수는 이름도 빛도 없이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로부터 싫어버린바 되었습니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고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것이 튀는 행동이었고 튀는 아이디어였습니까? 십자가가 무슨 벤처인줄 아십니까?

<벤처 기업>에 성공하면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멀리 미국 나스닥 증권 시장에까지 상장되어 가히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기업의 세계화, 경제의 세계화가 인류가 꿈꾸고 있는 경제의 분배 정의를 통한 함께 사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골만 더욱 깊어지고 서로간에 괴리감만 깊어지고 있습니다. <벤처목회>로 교회가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는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곳입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능력자 무능력자, 건강한 자 병든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젊은 자와 늙은 자, 백인과 유색인종, 남자와 여자 이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우리 나라의 여러 선각자 중 <씨알의 소리>로 널리 알려진 함석헌 선생이 있습니다. 그는 그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시대가 새로워지는 것은 결국 기적이 일어나야만 했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은...결국 종교 문제입니다. 유럽이 새로워진 것은 종교개혁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때의 동양의 한국에서 종교는 어떠하였느냐 하면 불교에서도 유교에서도 새로운 것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유교나 불교 모두 지배 계층인 특권층과 함께 썩었으므로 도저히 나라 민족을 새롭게 할 힘이 없었습니다. 두 종교가 다 특권층에 붙음으로 씨알의 양심을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때의 형식으로 굳어진 유교 교리나 고루한 선비의 유교 사상을 가지고는 아무리 뒤집고 고쳐 보아도 씨알을 흔드는 새 것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새벽 공기가 밖으로부터 들어와 온 집안 사람을 다 불러 일으켜 새 날의 활동을 시작시키듯이 어디서 새 종교가 와야 했습니다. 단군조선을 일으킨 단군 종교나 기자조선을 일으킨 유교나 삼국시대 문화를 풍미했던 불교 등 이모든 종교가 다 썩어 버렸습니다. 씨알을 건질 새 종교는 그럼 어디서 오겠습니까? 사실 이때에 새 종교가 올 길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일찍이 위대한 바울은 기원 초에 있어서 서양문화의 샘 구멍인 아테네의 아레오바로에서 역사적 대 웅변을 한 일이 있습니다.

"각 나라 백성을 한 혈맥으로 지으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하는 지경을 한정 하셨으니 하나님을 찾을 때라..."

수많은 나라 민족의 흥망성쇠에는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있는데 그 뜻과 목적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사상입니다. 이때까지 우주와 인생의 뜻을 가르치는 깊고 넓은 철학이나 종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 인류와 모든 시대를 종합하는 통일적인 역사철학을 분명히 말하여 준 것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참 놀라운 선언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있은 이래 오랫동안 각 민족은 제각기 살고, 생활하여 왔습니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내 민족은 내 민족, 네 민족은 네 민족이라 하여 아무 근본적인 연락이나 통일 없이 제각기 독립된 문화권 속에서 살아왔으며 역사는 꼭 같은 바퀴를 돌아 되풀이하는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동양과 서양,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이 모든 것들을 통합하여 새롭게 하나되는 능력이 기독교에 있음을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기독교야말로 동양과 서양,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 그 모든 것들을 통합하여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 능력이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에서 생긴 일입니다. 미국 군인 세 명이 형제와 같이 지냈는데 그 중 한 명이 전사했습니다. 남은 두 친구가 일선에 있는 교회당을 찾아가 죽은 친구를 교회 묘지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신부는 "교회법에 의하여 기독교인을 천주교 묘지에 묻을 수 없다."라고 말하며 울타리 바깥 편에 묻게 했습니다. 3년 뒤 친구가 전사한 날, 두 사람은 친구의 무덤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성당 묘지에 온 그들은 놀라고 화가 났습니다. 울타리 바로 바깥에 있었던 친구의 무덤이 없어진 것입니다. 흥분한 미국 청년들에게 신부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무덤은 저 안쪽에 있습니다. 울타리를 넓혔기 때문에 그 무덤도 울타리 속으로 들어왔는데 기독교인을 것을 알았지만 슬쩍 넘어갔습니다." 예수는 교회 울타리를 어디까지 넓히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결국 모든 울타리를 철거하라는 것입니다. 성문 밖으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성문밖에 참된 신앙이 있습니다. 예수는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 갇힌 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울타리를 제거하고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으로 여러분 마음의 눈이 밝아져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을 알아 목적이 분명한 삶을 사시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망을 확실히 하고 하나님의 능력의 크심을 체험하여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믿음을 간직하여 약속의 가나안 땅인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으시며 온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동희 목사)



 

출처 : 영육을 강건하게
글쓴이 : 이드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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