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 8가지/언약의 선물
김정우(총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그래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비록 전직 대통령이 순간적인 고독과 고통을 이기지 못 하고 자신의 인생과 화해하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북한에서는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며, 온 세계는 여전히 예측할 수 없는 경제적인 위기 가운데 소용돌이치고,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움 가운데 살고 있다 할지라도, 내일 아침에도 여전히 해는 동녘에서 솟아오르고 달과 별도 밤에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은 구약시대에 가장 비극적인 포로기를 경험한 예레미야 선지자가 깨달은 말씀이었다. 그는 나라를 빼앗기고 예배드리던 성전이 불타며, 다윗의 후손 시드기야 왕이 눈이 뽑힌 채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포로로 잡혀가는 역사의 대 혼돈 시대에 살면서도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는 말씀을 듣는다(렘 33:20-21).
그는 한 마디를 더 덧붙인다.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25-26절).
예레미야는 어디를 보아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창조의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여 그 어떤 인간도 깨뜨릴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맺은 언약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징계가 끝날 때에는 포로된 나라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 때 하나님께서 그들과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을 바라보았다(렘 31:31). 즉,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는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유일하고도 가장 확실한 희망이었다.
언약이 희망의 원천이 되는 것은 단지 예레미야에게 뿐만이 아니다. 사실 언약은 신구약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기독교회에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성경전서를 각각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으로 나누어 부름으로써 언약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고 있음을 증거해 왔다. 성경전서를 구약과 신약으로 구분하는 것은 제롬의 라틴 불가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것은 신약성경의 히브리서에서 구약의 역사를 ‘첫 언약’으로 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새 언약’으로 보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히 8:7, 13; 9:1, 15, 18). 이와 같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이 신구약성경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고, 언약의 관점에서 두 성경의 통일성과 구원 방식의 동일성을 고백하여 왔다.
그렇지만 언약(言約)이라는 말은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단지 ‘말로 하는 약속’ 정도로 이해되므로, 모든 성경의 중심 사상을 표현하고 있는 이 단어는 번역하기조차 어려워 계약(contract), 협약(pact), 조약(treaty), 약속(promise), 맹세(oath), 헌장(charter), 유언(testament)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고고학의 발전으로 주전 2000년대와 1000년대 고대 근동아시아의 여러 조약 비문들이 발견되었으며, 특히 힛타이트 제국(주전 1400-1200년)의 국제조약 문서들이 방대하게 발굴되고 번역됨으로써, 당대의 종주권(宗主權) 조약에는 (1) 전문(前文), (2) 역사적 서문, (3) 조약 규정들, (4) 문서 보존과 공적인 봉독 규정, (5) 증인들의 목록, (6) 축복과 저주, (7) 동물 제사를 드리는 비준 의식으로 공포되고 효력을 발생하게 됨을 알게 되었다. 즉, 구약시대의 언약은 언약을 맺는 두 당사자가 ‘피로 맹세한 상호적 헌신’이었으며, 그들은 자신의 목숨과 명예와 가문을 걸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헌신을 다짐하였다. 이리하여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들인 신인관계, 부자관계, 부부관계, 군신관계가 이 용어로 표현되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이 네 가지 관계들은 각각 독자적인 삶의 영역을 갖고 있지만, 모두 동일한 형식을 공통분모로 갖는다. 즉, 신인관계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라는 언약형식은, 부자 관계에서 “나는 너의 아버지이며, 너는 나의 아들이다”, 부부 관계에서 “나는 당신의 남편이며, 당신은 나의 아내입니다”, 군신 관계에서 “나는 너의 왕이며 너는 나의 종이다”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관계가 부자와 부부와 군신 관계의 은유로 묘사된 것은, 이 세 관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인격적이면서도 친밀하고 항구적이기 때문이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과 온 세상 및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관계는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제시될 수 있으며, 이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1. 창조 언약
구약성경을 열어주는 창세기의 천지창조 이야기에는 ‘언약’(berit)이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예레미야서에는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33:20), ‘달과 별들이 밤을 비추는 규정’(choq 31:35), 그리고 ‘주야와 맺은 언약’(berit)과 ‘천지의 법칙’(chuqot 33:25)이 나타나고 있다. 즉,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밤낮의 순환을 이루도록 한 창조의 질서는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세운 언약으로서 결코 파기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것을 창조 언약이라고 부른다.
2. 노아 언약(보존의 언약)
노아는 “주님께 은혜를 입은 자로서 당대에 의인이며, 완전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으므로(8-9절), 대홍수 심판에서 온 가족이 건짐을 받게 되었다. 홍수 심판이 끝났을 때 주님께서는 노아가 드린 제사를 받으시고, 다시는 사람의 죄 때문에 온 세상의 생명들을 멸하지 않고, 자연 질서를 보존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였다(9:8-11). 그리고 하늘
에 무지개를 두어 ‘언약의 증거’로 삼으시고(12-13절),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을 보존하는 영원한 언약’(16절)을 세우셨다. 즉,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근본적인 질서를 인간의 죄와 상관 없이 보존해 주시는 ‘보존의 언약’을 노아에게 세워주셨다. 여기에서 ‘무지개’는 히브리어에서 ‘화살’을 의미하므로, 만약에 다시 온 세상을 홍수로 심판한다면, 창조주께서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3. 아브라함 언약(약속의 언약)
노아 홍수 이후 바벨탑 사건으로 온 세상 사람들은 흩어지게 되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기 위하여 그를 선택하셨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후손조차 낳을 수 없었으므로 두려움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밤의 환상 가운데 나타나셔서 ‘약속의 언약’을 맺어주셨다(창 15). 주님께서는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는 언약의 전문과 역사적 서문을 친히 말씀하시며(7절; 출 20:2; 신 5:6 참조), 이어서 언약체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제물을 아브라함에게 준비시킨다(9절). 그런데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는 놀라운 장면이 제시된다(17절). 여기에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는 자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고대근동 아시아의 종주권 언약 체결식에서 쪼갠 고기는 속주의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지나가야 했다(렘 34:18-20).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이로 지나가심으로써,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책임지시고 이루실 것을 맹세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날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고(karat berit) 땅과 후손의 약속을 주셨다(15절).
4. 시내산 언약(계명의 언약)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집트에서 바로의 학정 아래에 종살이 하고 있을 때, 주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시고(출 2:23-25)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시며 시내산에서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셨다. 그 때 주님께서는 주권적인 구원의 은총으로 그들을 이집트에서 건져 내셨음을 선포하시고 만약 그들이 언약을 지킨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셨다(19:5-6).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온 열국이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시내산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밀접한 연속성을 가지며, 본질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시내산 언약에는 십계명(출 20:1-17)과 온갖 종류의 판례들(20:22-23:33)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받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떤 도덕적 의지를 가진 존재이며, 그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이 실천해야 할 사랑과 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5. 다윗 언약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통일한 이후에 종교적 구심점으로서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삼하 7:1-3), 주님께서는 거절하시고 오히려 나단을 통하여 자신이 다윗의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하셨다(11절하). 그리고 주님께서는 다윗과 그 후손을 자신의 ‘아들’로 받아주시며, 자신은 그 가문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하셨다(14절상; 시 2:7). 즉, 주님께서는 다윗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여 주셨고, 다윗에게 영원토록 후손(zera')과 보좌(kisse')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2, 13절). 다윗의 언약에서 특이한 것은 다윗의 후손들이 만약 하나님께 범죄하면, 그들을 비록 징계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거두시지는 않겠다는 약속이 포함된 것이다(14절하-15절).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다윗의 언약은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영원한 은혜 언약으로 이해되었다(시 89:26-37).
6. 새 언약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 나라로 세워 열국에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지고 부패하여져 하나님을 배반하고 열국의 우상을 섬김으로써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이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장차 하나님께서 ‘새로운 언약’을 맺어 그들을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전한다(렘 31:31-33). 이 새 언약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핵심으로 갖고 있다.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 속에 새 영과 새 마음과 성령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새 힘을 얻을 것을 새 언약 속에 포함시켰다(겔 36:27). 즉, 그들은 새로운 본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뜻에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주의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위에 제시된 구약성경의 여섯 가지 중심 언약들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모두 성취되고 있다. 예수께서는 메시야로서 정의와 공평으로 온 우주에 참된 평화와 질서를 가져오심으로써 창조언약과 창조질서 보존 언약을 완성할 것이다(사 11:1-9). 예수께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이 바라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며, 시내산 언약에 부과된 모든 율법을 온전히 지키시고, 제사 제도를 십자가의 죽음으로써 완성하셨다. 또한 그는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가 바라본 새 언약을 자신의 피로써 세우시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엡 4:24)으로 구성된 그의 백성들에게 오순절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써 온 인류의 참된 구원자가 되셨다. 따라서 우리에겐 절망 가운데에도 소망이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
구원의 선물(시 130:1-8)
‘내게 아쉬움이 없으라’는 말씀을 남겨 주고 떠난 고 김수환 추기경의 고백처럼, 시편은 지난 수 천년 동안 모든 성도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초대교회 500년을 완성하고 중세 1000년을 열어준 어거스틴(354-430년)은 임종 직전에 몸이 몹시 아팠을 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시 130:4)란 말씀을 벽에 써 놓고 날마다 묵상하며 위로를 받았다. 종교개혁으로 근세의 문명을 연 마틴 루터(1483?1546년)는 동일한 시편 속에서 죄 사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1절 말씀을 따라 ‘내가 깊은 물 속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de Profundis)라는 찬송가를 지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시들어 가고 있을 때 요한 웨슬레(주후 1703-1791년)는 바로 이 찬송가를 런던의 성 바울 교회당에서 처음으로 들으면서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후, 그의 영적인 삶은 변화되고 감리교를 창설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이끌었다.
그렇지만, 이 시편의 중심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깊은 물 속’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상당히 낯선 느낌을 준다. 요즈음에는 스킨스쿠버 다이버들이나 깊은 물 속을 들어가 볼뿐 일반인들은 그 세계를 전혀 경험할 수가 없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구원을 설명할 때 ‘깊은 물 속에서 건짐 받는 이미지’를 중심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모세는 나일 강물에서 악어 밥이 되어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건짐 받고 ‘물에서 건졌다’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출 2:10). 선지자 요나는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져졌지만’(2:3), 주님의 은총으로 고래 뱃속에서 벗어나 니느웨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게 되었다. 다윗은 모든 원수들과 사울의 손에서 살아나게 된 것을 ‘죽음의 물살’에서 벗어난 것으로 노래한다(시 18:4). 우리의 상상을 좀 더 펼쳐보면, 인류 최초의 대홍수를 경험하고 살아난 노아도 우주적인 대혼돈의 물 속에서 일엽편주를 타고 건짐받고 새로운 인류를 시작하였음을 기억하게 된다. 그 때 ‘땅 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려서 사십 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땅 위로 쏟아졌지만’(창 7:11-12), 노아와 그의 식구는 구원을 받고, 이후 방주에서 나와 마른 땅을 밟고 감사의 제사를 드렸다(8:14-22).
홍수와 깊은 바다에서 건짐을 받는 구원은 구약성경에서 끝나지 않고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예수께서 한 번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널 때 큰 광풍이 일어나 파선의 위기를 당했지만, 친히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 잠잠하게 하셨다(막 4:37-39). 또한 요한계시록에 보면 하늘의 전쟁에서 ‘큰 용 곧 옛 뱀’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아이를 임신한 여인’을 죽이기 위하여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죽이려고 하는데 ‘땅이 입을 벌려 강물을 삼켜’ 아이를 건진다(계 12:15-16).
우리가 구약성경을 좀 더 자세히 읽어 보면, ‘깊은 물에서의 구원’은 창조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천지창조는 바로 태고의 심연을 가르고 마른 땅을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오늘날 창세기 1장을 읽어내려 갈 때, 먼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creatio ex nihilo)라는 교리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 용어는 중간사 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다(마카비 2서 7:28). 물론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입장은 구약성경 전체가 전제하는 신앙고백이며, 다른 성경 구절에서 명시되고 암시된다(시 148:5; 잠 8:22-27). 그렇지만, 창세기 저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고 말한다(창 1:2). 여기의 ‘깊음’은 ‘깊은 물’이다. 즉, 천지창조는 온 세상을 뒤덮고 있던 태고의 물을 ‘하늘 위의 물’(하늘 바다)과 ‘땅 아래의 물’(바다와 지하수)로 나누는 작업이 중심을 이루며,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하나님께서 바로 이 물을 정복하고 사람들과 생물들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주님께서는 땅의 기초를 바다 위에 견고하게 세워주셨기 때문에 그 터전 위에서 우리는 안심하고 일하며 살게 되었다(욥 38:4; 잠 8:29). 시편의 저자들도 깊은 물을 정복하고 땅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시 74:13, 17; 24:2 참조).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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