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식이란 무엇인가?
1. 머리말
2. 금식의 어의
3. 금식의 기원
4. 금식의 목적
5. 금식의 결과
1) 죄에서의 해방이다
2) 즐거움의 회복이다
6. 금식의 복음적 의미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하기를 즐겨 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사야 58: 1∼6)
1. 머리말
금식에 대한 논란은 일찌기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선지자 이사야 시대를 비롯해서 그 후,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던 문제로서 현대 기독교 신앙계에도 적지 않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오순절 계통이나 신비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지도자들은 금식에 대한 구체적인 신학적 비판이나, 성경적 정립도 없이 각자가 나름대로 교리화 내지는 제도화하여 장려하고 실천해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혹자들은 금식한 기간의 길고 짧음이 신령한 능력의 척도가 되는 줄로 생각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금식이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의 만능열쇠 인양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고, 그런가 하면 금식을 만병통치의 비법으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러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예수께서 복음 전도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십 일을 금식하셨다 해서, 자신도 목회를 시작하기 전에 일단 금식을 해서 능력을 받은 후에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도 있다.
이러한 금식에 대한 그릇된 관념이 기독교 신앙의 변질은 물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 많은 과오를 초래하고 있다는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식에 대한 올바른 신학적 정립이 시급할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 역시 매우 큰 것이다. 그러므로, 금식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 정리해 보기로 하겠다.
2. 금식의 어의(語意)
구약 성경에 있어서, 언급된 대부분의 금식에 대한 용어는 하나의 동사의 어근과 그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를 사용하기도 하고, 다른 많은 단어들과 문구들로 금식의 의미를 전달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금식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 “춤”(Swm)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촘”(Som)이라는 말이 있고 (느9:1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이와 같은 어근을 가지고 같은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아나 네페쉬”(Ana neps)라는 용어이다. 여기서, “촘”(Som)이라는 명사의 의미는 음식에 대한 철저한 절제와 관련이 된 것으로 “식음의 중지”를 뜻하고 “아나 네페쉬”(Ana neps)라는 동사는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비교적 레위기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전문적인 어법이였다. (레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찌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신약 성경에 있어서는, 종교적 행위로서의 금식을 표현하는 단어로써 “네스테이아”(nesteia)라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은 궁핍으로 인한 굶주림을 의미한다. (마17:21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바울이 이 단어를 몇 차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후6:5 매 맞음과 같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어근의 기본적인 의미가 “식량이 없다”라는 점을 말해 주나 이 때에는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명사 “네스티스” (nestic)를 사용한다. 이 말은 주로 “굶주림”, “먹지 못함”을 뜻한다. (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가하여 굷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 금식의 기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은 금식에 대한 유래가 뚜렷한 하나님의 계명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다만 인간이 마음이 괴로울 때면 식음을 전폐하게 되는 생활 습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즉, 금식은 하나님께로부터 명령되어진 것이 아니고 족장 시대 또는 그 이전으로부터 생활 관습에 따라 점진적으로 규범화되어져서 결국에는 규범적인 명령에 따라 실시되어졌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언급되어지고 있는 금식은 어디까지나 생활 관습으로부터 유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유래되었음을 성경이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 에덴 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따먹지 말라”고 금식을 명하셨다. (창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명령을 거스리고 저주로 인한 괴로움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또 다시 생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내어 쫓아 버리셨다. (창3: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따라서, 성경이 말하고 있는 금식은, 근원적으로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하신 사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로 인도 하실 때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을 명하시면서, 영원히 지킬 규례중 하나인 칠월 십일 속죄일에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명령을 하셨다. (레23:27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말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식”이라는 말과 동의어로서 율법서에 있어서는 금식에 관한 전문적인 어법이였던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금식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율법이 그 기초가 됨을 확인할 수가 있다.
4. 금식의 목적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금식을 명령하셨는가에 대하여는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이론과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혹자들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기 위해서”라든가, “소원 성취를 해 주시려고”라든가, “목회를 성공하게 해 주시려고”한다든가, 등등의 많은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범죄한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하여 금식을 명하셨다고 밝혀 주고 있다. (레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찌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
타락 전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을 먹지 못하게 금하신 것은 죄로 인한 괴로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으나,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과를 먹지 못하게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으신 것은 죄로 인한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명하실 때 속죄일(7월 10일)에 백성의 죄를 속하려면 “스스로 괴롭게 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말씀 자체가 금식의 목적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레23:26-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금식은, 범죄자가 죄를 회개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경을 보면, 금식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는데, 전쟁이 났을 때, (삿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질병을 앓을 때, (삼하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사람이 죽었을 때, (삼하12: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며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재앙 또는 기근이 임했을 때, (에스더4: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대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에스더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욜1: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찌어다) 등인데 이러한 사건들을 모두가 인간의 범죄와 관련이 깊은 사건들이다. 즉, 범죄 함으로 여러 가지 재난을 당했을 경우에 금식하면서 마음을 괴롭히고, 죄를 뉘우치며 회개하는 일은 언제나 병행되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에게 죄에 대한 회개를 촉구하면서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 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된 날이라 하겠느냐” (사 58:3∼5)고 잘못된 금식을 책망했다. 즉 외모로 슬픈 척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이 바른 금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구약 시대에 율법적인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의 죄를 속죄해 주시기 위하여 범죄한 백성들로 하여금 죄값으로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려는데 있는 것이다.
5. 금식의 결과
구약 시대에 있어서 율법적으로 주어진 금식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게 되면 어떠한 결과가 맺어지게 되는지에 대하여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명하실 때, 죄의 용서를 위한 범죄자들의 괴로움을 목적하셨기 때문에 금식의 결과는 역시 죄에서의 해방은 물론, 그에 따르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고 성경이 증언해 준다. (레16: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로 정결케 하리니 너희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케 하리라)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바른 금식의 결과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바 있다.
1)죄에서의 해방이다.
금식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 중의 하나는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이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6)고 한 말씀은 참된 금식은 죄에서의 자유함을 얻게 하신다는 의미의 내용인 것이다. 계속해서 이사야 58:7∼8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의 결과는 유다 백성의 죄로 인한 상처의 회복, 즉 이방 민족에게 포로가 되어 겪는 고통에서의 회복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다. (사58:7-8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라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금식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유다 백성들이 범한 죄를 뉘우치고 괴로워 하는 바른 금식을 통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이방의 침략과 재난 속에서 구출하여 자유롭고 평화롭게 회복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2)즐거움의 회복이다.
금식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 중의 또 하나는 죄에서의 자유함과 더불어 따라오는 즐거움의 회복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속죄 일에 대한 규례를 명하실 때, 속죄일(7월 10일)이 지나고 7월 15일부터 7일 동안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실과와 종려 가지와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라” (레 23:40)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속죄 일에 죄를 용서받은 후 괴로움을 씻어 버리고 즐거움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후 용서를 받으려면 제물의 피를 흘려 속죄 제사를 드리기도 해야 하지만, 율법적 규례대로 금식도 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금식은 구약 시대의 속죄를 위한 방법 중의 하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의 결과는 죄에서의 해방과 그에 따르는 즐거움의 회복인 것이다.
6. 금식의 복음적 의미
지금까지는, 구약에 있어서의 율법적 금식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구약의 율법적 금식이 신약 교회에 시사해 주는 복음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성경으로 규명해 보려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신약 교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 커다란 힘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 당시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자주 금식을 했다. (막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님께서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신 일이 있다. (마4:1-2 그 때에 예수께서 셩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 9:14)라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 9:15)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비유로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있기 때문에 금식, 곧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며 신랑 되신 그리스도를 빼앗길 날, 곧 십자가에 죽으시게 될 때가 이르면 제자들이 슬퍼하게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러한 의미의 말씀을 하신 후 바로, 생베 조각과 낡은 옷 비유와 포도주와 가죽부대 비유를 들어 율법 아래서의 금식과 복음 안에서의 금식이 함께 할 수 없음을 말씀해 주셨다. (마9:16-17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즉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자는 금식, 즉 슬퍼할 것이 아니라 기뻐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구약의 율법적 금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형상(실체)으로 이루실 그림자(모형)이며 예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적 금식의 요구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의 죄를 대신하여 슬퍼하시고 괴로워하시면서 십자가의 최고의 고통을 참고 견디어 주신 것이다. (요19:28-30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해 담기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배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뿐만 아니라, 고통스런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고, 신령한 기쁨을 얻게 하셔서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 있어서의 그림자적인 율법적 금식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고 즐거움을 회복케 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참 형상적인 금식으로써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이 어찌 우리 성도들을 죄에서 해방시키지 못하며 영원한 즐거움을 얻게 할 수 없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고 죄 아래서 율법에 매어 살아가는 자들은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식음을 전폐하는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용서받은 성도는 당연히, 항상 기뻐하며,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거저 주시는 자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이다. (엡1:3-6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므로, 신약 교회 성도들에게는, 구약의 율법적인 낡은 금식이 아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의 성령의 법에 이끌려 자원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진정한 복음적 의미의 새로운 금식 즉, 고난이 있을 뿐이다. (빌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을 받게 하심이라) 이러한 복음적 의미의 금식, 즉 고난은 도리어 우리에게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 교회 성도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리라)
결국, 구약의 율법적인 금식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온전케 성취하신 것에 대한 예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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