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이란!

[스크랩]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아들 2014. 9. 11. 19:45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이 말씀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이 바울의 일관된 주장이요 전 성경의 교훈이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들이 하나같이 강하게 주장했던 선언도 은혜로만, 믿음으로만이었다.  그들은 로마교회의 믿음 위에 선행이나 공로를 더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배격하였다.
  
그런데 이 본문에 와서 바울은 그의 주장을 바꾼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는 오히려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 바울은 구원의 방편에 대해 모순되게 가르쳤는가?  구원은 우리가 하나님과 협동해서 이루는 것인가?  믿음의 구원은 불완전하거나 미완성이어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부분이 아직 남아 있다는 말인가?
  
먼저 이 문제에 관한 바울의 입장을 살펴보고 문제를 풀기로 하자.
바울에게 있어서 구원은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하나님의 일이었다.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며 유지되고 완성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활동의 대상인 우리 인간은 로보트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이며(창 1:26-27) 창조주께 믿음과 사랑으로 반응하도록 소명받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목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바울은 신적활동과 인간의 반응과 참여의 이중 조망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에 대한 바울의 선언의 중심 구절은 에베소서 2:8-9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조건없는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모두 은혜일 뿐이다(롬 5:8).
  
그런데 에베소서 2:1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를 갖게 될 때 우리의 존재와 삶이 변하게 된다. 또 로마서 6장에서는 우리가 생명의 새로움으로 행하기 위해 그리스도로 세례 받고 장사되고 그와 함께 살아났다고 하였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며(6:5-11) 의의 병기가 되었다(6:12-13).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강조하면서 서로 사랑으로 봉사하라고 하였다(5:13). 이런 맥락에서 구원은 과정 중에 있는 실재였다.
  
또 로마서 1:16과 에베소서 1:13에서 구원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포괄적인 의미로 쓰였으며 복음을 위한 동의어로 쓰였다. 고린도후서 7:10에서는 회개가 구원으로 인도한다고 하였다. 또 데살로니가후서에서 우리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를 통하여 구원받도록 선택되었다. 그 밖에도 구원을 소망으로 말씀하는가 하면(살전 5:8)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구원이 더 가까워졌다고도 하였다(롬 13:11).
  
이런 모든 구절들을 참고해 볼 때 바울의 입장은 아래와 같았다.

바울에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유롭게 그 말을 구원 전체의 다양한 부분을 가리키는데도 사용하였다.  그는 로마서 5장에서 그 전체로서 구원을 이해할 때 구원의 다양한 단계에 대한 말로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되었으며(롬 5:1)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의 반응으로 하나님과 평화한 상태다(롬 5:1). 신자의 생활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지속적인 역사가 마지막 구원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5:10).
  
브라크(Manfred T. Brauch)는 이상의 바울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에는 세 가지 요소들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1) '이미'와 '아직'의 이중성

(2)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의 현실성과 생활의 새로워진 삶의 필연성

(3) 그 안에서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하여 참여한 하나님의 포괄적인 역사로서 구원의 이해.  

이 배경 안에서만 본문은 최선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1)
  
다음으로 이 본문은 개인의 구원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회중으로서 교회의 갱신을 권면하는가?


일반적으로 이 본문은 빌립보에 사는 성도들에게 개인적 구원에 연관된 권면으로 이해해 왔다.2)  그래서 흠정역에서는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이루라고 번역하였다.

그리고 그 경우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구원의 단계(성화)에서 영적 진보를 보이라는 뜻이다.3)  

뮬러(Jac J. Muller)도 자신의 영적 안녕이나 구원을 이루라는 뜻으로 본문을 보았으나 사람이 이 구원을 이룰 수 있다거나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신자는 자신의 구원을 마쳐야 하며 결론에 도달해야 하며 충만한 결과 즉 원리로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의 충만한 결과로 적용해야 한다고 보았다.4)  

핸드릭슨(Hendriksen)은 여기 계속하여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결국 구원이 하나의 과정임을 가리킨다고 보고(눅 13:23; 행 2:47), 구원의 한 국면으로서 성화를 이루라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므로 가능하다고 보았다.5)
  
그러나 이 본문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빌립보교회의 회중을 향한 권면으로 보기도 하는데 최근의 경향은 이 해석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경우에 구원을 이루라는 권면은 어려운 말씀이 아니다.  그러면 이렇게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로서 호손(G. F. Hawthorne)은 아래 네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1. 바울은 그들 자신의 개인적 유익을 추구하는 신자를 향해서 날카롭게 반대하였다(2:4). 그러므로 여기 와서 그 자신에게 반대되게 그들 자신의 개인적 구원에 초점을 맞추도록 명령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다.
  
2. 바울이 쓴 동사 카테르가제스테(     )는 무슨 일에 종사해서 그것이 완성을 이룰 때까지의 뜻을 가지며 여기서 `성취하다, 이루다, 일으키다' 라는 뜻이다. 이 동사의 시제는 현재로 지속적인 행위를 가리킨다.  그들의 구원이 성취될 때까지 지속하여 결코 그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다.
  
3. 그 동사 카테르가제스테와 재귀대명사는 모두 복수이다. 그러므로 여기 권면은 개인에게가 아니라 협력하는 행동,

공동체로서 함께 공동생활 안에서 협력하는 노력을 가리킨다.
  
4. 구원은 일반적으로 건강과 안녕의 사상을 전달하는데 쓰였다. 여기 구원은 비종말론적으로 쓰였다. 이러므로 빌립보교회는 그 교회의 복지가 완성되고 그 교회의 건강이 완전히 확립되고 영적 질병의 모든 흔적-이기심, 알력 그리고 등등이 사라질 때까지 그 교회의 영적 안녕에 힘쓰도록 격려되었다(J.H. Michael).6)  

마틴(Ralph P. Martin)도 여기 구원을 개인적 용어가 아니라 빌립보교회의 공동생활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였다.7) 그러나 물론 이런 교회 공동체의 영적 안녕도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주
   1. Manfred T, Brauch, Hard Sayings of Paul(Downers Grove: IVP, 1989), pp.219-221
   2. Robert P. Lightner, Phillippians, Bible Knowledge Commentary, New Testament, p.655
   3. Homer A. Kent, Jr., Phillippians, E.B.C. 1978, p.128
   4. Jac J. Muller, The Epistle of Paul to the Phillippians(Grand Rapids: Eerdmans, 1984), p.91
   5. Williams Hendriksen, The Epistle to the Phillippians(London: Banner, 1963), p.120
   6. Gera;d F. Hawthorne, Phillippians(Waco: Word, 1983), pp.98-99
   7. Ralph P. Martin, Phillippians(Grand Rapids: Eerdmans, 1987), p.115  여기서 마틴은 일반적으로
      Hawthorne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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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혁주의 마을
글쓴이 : 이지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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