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9. 10. 주일 낮설교
설교제목 :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성경본문 : 야고보서 3 : 1~12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의 우화작가 이솝은 사모스에서 철학자 쿠잔토스의 노예로 있었는데 하도 지혜와 총명이 뛰어나 주인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주인이 이솝에게 명령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휼륭한 고기를 음식으로 만들어 오라”고 말하였습니다. 얼마 후 이솝은 소의 혀로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솝은 “혀로 만든 음식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훌륭한 음식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으로 우리는 남을 축복하고 행복을 말해주며 실망한 사람에겐 용기를 북돋아주고 남을 격려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주인은 다시 이솝에게 그럼 이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이솝은 다시 소의 혀로 만든 음식을 접시에 담아가지고 들어오면서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고기를 준비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남을 깍아 내리기도 하고 이것으로 인간의 마음을 찢어놓기도 합니다. 또한 하루아침에 남의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기도 하고 서로 이간을 붙여 분쟁을 하고 싸우게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 혀는 가장 나쁜 고기입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고개를 끄덕끄덕 하드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지만 언어만큼 위대한 선물이 없는 줄 압니다. 언어는 동물 세계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입을 만들어 주셨고 의사소통을 하도록 말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통하여서 인간관계를 맺기도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음식을 먹어서 생명을 유지하기도하고 입으로 말을 하면서 관계를 만들며 살아갑니다.
입으로 나오는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하고,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우리는 말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고 마음대로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 대한 책임이 있고 또한 말에 대하여 훗날에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말을 하느냐는 매우중요합니다. 찬양과 저주도 말로하는 것이고 감사와 불평도 말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며 인간의 운명도 결국은 자신이 내 배튼 말로 결정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에머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가 하는 말에 의해서 자기의 초상을 그려 놓게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은 곧 그사람의 인격이요, 삶이요, 운명입니다. 말이 입을 통해 상대방에 전달되면 언어요, 말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은 행위이고 말이 가슴속에 깊은 생각을 담고나오면 사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따금 노무현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의 말이 큰파장을 일으키고 논란이 벌어지는것도 그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은 그사람의 인격을 대표하는 것이고 내가 어떠한 말을 하여야 할것이며 어떻게 언어 관리를 하여서 인생을 행복하게 성공적으로 살수가 있을 것인가를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잘 교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자를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고 너희는 온 몸을 굴레를 씌워 말을 통제할 수 있을 때에 신앙에 성숙한 사람이 될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성숙도나 신앙의 성숙도를 알려면 자신의 언어 관리를 어떻게 관리 하는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언어 관리의 구체적 방법을 두 가지 비유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말의 재갈과 배의 키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재갈은 말이라는 동물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이고 배의 키도 배 전체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재갈로 말의 방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으며 수십만톤의 엄청난 큰 배도 작은 키에 의하여서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능이 좋고 견고한 배라 할찌라도 배의 키가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지 못하면 잘못된 길로 가다가 암초에 부딪쳐 파손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혀가 인생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주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파멸할 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굴레벗은 망아지와 같이 마구 뛰어다니게 하지 말고 재갈을 물리고 굴레를 씌워서 절제하고 훈련하는 성도가 될 때에 말에 실수가 없는 성숙한 신앙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언어는 잘 길을 들이고 바르게 활용이 될 때 참으로 값지고 소중한 것이지 언어가 바르게 쓰여지지를 못하고 마구 남발이 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히게 되면 무서운 흉기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내년이 되면 대통령을 뽑는 대선인데 언제나 정치권을 보면 각당의 후보들간에 서로 헐뜯고 약점을 들춰냅니다.
상대방 후보의 도덕적인 흠집을 내어서 어떻게 하면 상대를 짓밟고 올라서려고 음모를 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작당을 합니다. 서로 진흙탕 싸움을 합니다.
국민들의 삶의 현장은 불황이 되어서 기업들이 무너지고 도산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민생치안과 경제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계속 헐뜯고 음모하고 서로 대권만 잡으려고 싸움만 합니다.
그래서 온 국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적지 않은 실망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이런 싸움이 그쳐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눅11:17에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진다고 하셨는데
오늘 이 민족의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사회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끌어안지 못하고 잘못된 이념과 사상으로 사회를 온통 편가르기와 대결구도를 만들어 있는자와 없는자, 강남과 강북, 노동자와 기업 반미와 친미 경상도와 전라도, 가진자와 갖지 못한자로 갈등과 대결구도로 온통 국민들의 마음을 분열을 시켜 지역갈등 계층갈등과 이념갈등으로 몰아가고 있으니 온통 나라가 조용한 날이없이 어디를 가나 데모와 분열로 이 나라가 멍이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이 내가 먼저 화합하고 양보하여서 서로 일치하고 하나로 뭉쳐나가는 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서로 물고 뜯는 분쟁과 싸움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혀 끝에 붙어서 거짓말로 이간질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렇다면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언어 생활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항상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시편34:12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실 때에 귀는 두 개를 주셨으나 혀를 하나만 주신 것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1:19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나 말을 많이 하고 삽니다. 이 많이 하는 말 때문에 가정이 복잡해지고 마구 뱉어내는 말 때문에 사회가 혼란해집니다. 혀를 삼가지 못하고 마구 뱉어낸 말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상대방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국의 격언에는 한 번 말하기 전에 두 번 생각하라고 하였고 다윗은 시편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였다.
유대인들은 속담에 자기 입에 천사를 세워 자기가 말할 때 3가지를 검토한 후 말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①진실된 말인가? ②나와 남에게 덕이 되는 말인가? ③꼭 해야만 할 말인가?
이처럼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되는 말을 구분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해서는 안되는 말들을 마구 해 버리고 그것도 거짓말을 하고 과장을 하고 부풀려서 말을 할 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옛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대성학교를 세우셨는데 이 학교의 교훈이 “죽을찌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미국에 들어가서 독립운동을 하실 때에도 한국 국민들에게 강조하시는 말씀이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야 하고 한번 약속한 것이면 손해가 갈지라도 신용을 꼭지키라고 교훈을 하였습니다.
언어생활이 거짓이 없고 진실해야지 신용을 얻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질줄 모르고 거짓말을 하면 대인관계가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언어생활이 진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뢰를 얻습니다. 그래서 잠언의 아굴은 기도하기를 “내게서 헛탄과 거짓말을 멀리하게 해 달라”(잠언 30:8)고 기도하였습니다.
(2) 항상 덕스러운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은 한 입으로 하지만 그 나오는 말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합니다. 그래서 본문에도 한 샘에서 쓴물과 단물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열린 입이라고 하여서 아무렇게나 마구 지껄여서는 안 됩니다. 남의 말을 여과없이 마구 지껄이는 말은 세상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고 칼을 마구 휘두르는 것과 같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사람은 평상시 말하는 대로 그환경이 조성되고 그의 삶의 모습이 이루어 지기가 쉽습니다. 마치 누에가 그 입에서 300미터나 되는 실을 뽑아서 집을 짓고 결국 그속에 들어가 사는것과 같이 사람의 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영향력이 크고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과학자는 뇌세포의 98%가 말에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에는 행동을 유발하는 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즉 말이 뇌세포에 전달이 되고 뇌는 척수신경을 지배해서 행동을 나타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 18: 21절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상시 이웃과 더불어 좋은말 덕이 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그 입술에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나가려면 언어의 3가지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첫째원리는 말은 씨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잠언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여기에서 열매라는 것은 말이 씨가되어 심겨져서 열매로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얘기입니까? 공동번역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입을 잘 놀리면 단 것을 실컷 먹고 입술을 잘못 놀리면 쓴 것을 들이키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 끝에 달렸으니 혀를 잘 놀려야 잘 먹을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심는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속에 몇 가지원리가 있습니다. 심으면 반드시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그리고 심는 종류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마 7:16-18) 내가 어떻게 말을 심느냐에 따라서 그 열매를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안들이고, 힘 안쓰고, 큰 재주없이 잘될 수 있는 비밀이 하나 있는데 입으로 좋은 씨를 많이 심는 것입니다. 남을 칭찬해주고 세워주고 격려해주고 높여주면 그것이 다 내게로 돌아오게 되여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34: 12절에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꿰사한 말에서 금할찌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 찌어다.
성경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심하라는 말은 좋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 할말과 해서는 안될 말들을 잘가려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하기를 내입에 파수꾼을 세워서 할말과 안할말을 잘 구별하고 혀를 바르게 제어 할수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원리는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들으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말을 우리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응답해주시기 때문에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하는 말을 하나님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할것은 내 말을 하나님께서 다 들으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지 않고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가 한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물으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 12: 36-37보면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심문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온전한 사람이라”(약 3:2) 우리는 온전해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온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말로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한 자매가 유능하고 인물 좋은 남자와 교제하다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워낙 인물이 좋았기 때문에 주위에 여자들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애정관계가 복잡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부인이 속으로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좋겠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버려라’ 그런데 어느날 밤 남편이 한강변 조용한 숲속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다가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부인이 이제는 울면서 “일년내내 바람을 피워도 좋으니 살아만 주시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말한대로 응답된 것입니다.
셋째원리는 다른 사람에게 심은대로 나에게 돌아온다는 원리입니다.
왜 말을 조심해야 되느냐? 다른 사람에게 심은대로 내가 거두기 때문입니다. 좋은 말 심어주면 좋은 것으로 거두어지고 친절한 말은 친절한 것으로, 선한 말은 선한 것으로 거두어집니다.
우리의 인생은 모든 삶이 심은대로 거둡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보면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 15:1)라고 했습니다. 부부가 살면서 언제나 말로 행복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해” 그 말을 해야 합니다. “늙어가지고 뭐 간지럽게 그런 말을 합니까?” 그런데 늙었다고 그런 말을 안하면 안됩니다. “여보, 당신은 나이가 들수록 고상해져” 이런 말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꼭 기꺾는 말만 골라가지고 합니다. 우글쭈굴해서 할망구가 다되었다고 합니다. 좋은 말 하고 살기도 인생이 짧은데 나쁜 말 하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말로 대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에게 존경하는 말을 써야 합니다. 그래서 매사에 긍정적이며 창조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대문에 이런 말을 써 놓았다고 합니다. “이 문안에 들어오는 자는 모두 긍정적인 말을 사용하십시오. 이 말을 하기 싫거든 입이나 다물고 계십시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모든 직장생활, 가정생활에 있어서 성공과 행복의 모든 문제는 언어의 열매를 먹고 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로 상처를 많이 받는 곳이 어떤 의미에서는 가정입니다. 가장 상처를 많이 준 사람이 부모 또는 부부라고 합니다. 가정에서 받은 말의 상처가 우리 마음속에 너무도 많이 얼룩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부부는 말 한마디 상처를 용서하지 아니하고 오년, 십년동안 간직하고 있다가 때마다 칼내놓듯이 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될 것은 나쁜 말을 썼다가 자기 생명을 잃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도소 생활을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린시절 가출하여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그래서 교도소를 자기집 안방 드나들 듯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예수를 믿게 되었고 믿음 좋은 처녀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과자라는 이유 때문에 사회 생활하는데 지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과자’라는 말만 들으면 머리가 서고 거부반응이 일어납니다.
어느날 밤에 부부가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언성이 좀 높아지면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인이 남편에게 “당신이 전과자라 그래”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이 말에 이성을 잃은 남편이 일어나더니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와서 자기 아내를 찔러 죽였습니다. 자기 남편을 전과자로 만들었으니 전과자한테 죽은 것이죠. 자기 남편으로 만났을 때는 회개한 남편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과거에 대한 전과를 들추어내면 안됩니다. 분노하면 정신을 잃습니다.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기 좋다 하여 남의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말을 많이하면 남도 내말을 많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4: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하였습니다. 어떻게 ‘은혜를 끼치게 합니까? 좋은 말을 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고, 칭찬하는 말을 하면 됩니다.
내 운명을 내 말로 이루고 있습니다. 말은 씨가 됩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맺습니다. 무슨 열매를 맺는지 말씨대로 결정이 됩니다. 좋은 말 쓰기 좋아하면 좋은 열매를 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때에 맞는 말 한마디를 하여서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를 하여서 축복을 심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3) 항상 감사하고 격려해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옛날 우리나라 속담에 “한마디의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친절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위력이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뱉어낸 부주의한 말 한마디는 싸움의 불씨가 되고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랑스런 말 한마디와 격려해주는 한마디의 말은 긴장을 풀어주고 삶의 활력을 더해 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위로하면 격려해주는 언어를 많이 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을 만나면 그들이 가장 많이 잘 쓰는 용어가 “땡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하다는 말이 대단히 인색합니다. 서로가 감사를 알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지니고 사는 사회!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한 사회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는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원망과 불평하는 말들이 많고 격려와 용기를 주는 말 보다는 남을 헐뜯고 남을 긁어 내리기를 좋아하는 말들을 자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혀는 우리의 인체 중에 가장 작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 혀는 잘 길들여야지 길들이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언어는 이웃에게 덕을 세우고 남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와 찬송이 입에서 끊이지 않고 남에 대하여 칭찬과 격려가 끊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높이 드러나는 우이제일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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