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설교 모음

[스크랩] 2006. 10. 29. 새생명 대축제 주일 참 평안을 얻는 비결

하나님아들 2014. 8. 30. 21:36

2006. 10. 29. 새생명 대축제 주일
설교제목 : 참 평안을 얻는 비결
성경본문 : 마태복음 11:28~30

요즈음 바쁜 현대인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아! 피곤하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입니다. 몇 달 전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초등학교 학생이 책가방을 벗어 던지면서 “아!, 피곤하다” 하는 것입니다. 학교를 갖다가 학원을 두 곳에 둘러 공부하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책가방을 들어 보니까, 초등학교 학생의 책가방인데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초등학교 책가방이 무거우냐고 하였더니 다른 학생들도 다 그렇게 무겁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속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고라는 것은 인간이 일평생을 살면서 걸머메고 살아야할 고통과 괴로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고라는 것은 인간고를 말합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서 힘들게 뛰어다니어야 하고 육체를 입고 살기에 때로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삶이 고달프고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이 많기 때문에 바쁘고 분주하고 지식인은 지식인대로 생각과 번민이 많고, 권력자는 그 잡은 권력을 지키기 위하여서 근심을 하며 살아갑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시험과 입시 때문에 무거운 짐을 져야하고 직장인은 승진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해야되고, 힘이 없는 노인들은 소외감과 육체의 질병 때문에 번민을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들은 너 나 할것 없이 문제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자녀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어떤 이는 어떤이는 사업문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고통속에서 태어나서 고통속에서 살다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90:10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세계 정복을 꿈꾸었던 나폴레옹도 세인트 헤레나 섬에 유배 되어 마지막을 고할때 “나는 지금까지 단 한주일도 평안히 쉴 날이 없었다”고 하면서 저기 바닷가에 넘실거리는 물결은 세상사람들의 눈물이요 저기 부는 바람소리는 세상 사람들의 한숨소리와 같다고 인생에 마지막을 한탄하며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고의 짐을 지고 인생행로를 힘겹게 살아가는 인생들이 어디에서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고 어디에서 참된 안식을 얻을수가 있겠습니까?

(1) 예수 안에 있을 때 안식이 있습니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불안과 공포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가 좋다는 미국정부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물론 북한이나 이란의 핵문제나 정치적인 국제 분쟁과 경제문제도 있지만 국내적으로 정신질환자가 매년마다 너무 많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이로제 테러 공포 불안으로 잠을 못자고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환자들이 미국인 20명중 한사람 꼴이라는 것입니다. 연간 치료비용으로 쓰여지는것이 10억불이 소요된다는 것입니다. 현대 과학과 문명의 이기를 최상으로 누리고 있는 그들에게 겉으로 볼때는 평안하고 지상천국같이 살기 좋은 나라인것 같은데 내면적으로 볼때는 불안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정제나 수면제를 복용해야만 잠을 잘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에 수면제가 2000만 알이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요즘 고도 경제 성장을 통해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생활방법이 다양해지니까 많은 정신 질환자들이 급증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을 앓아도 신경성 두통, 신경성 위궤양, 신경성 소화불량, 신경성 관절염 모든병의 이름앞에 신경성이 앞에 붙어있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땅에 평안이 없고 안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가도 현대인의 생활은 긴장해야되고 복잡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살아갈수 없는 불안과 초조한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의 마음속에 평안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안식과 평안을 찾는데 이땅엔 어디를 가보아도 안식이 없습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 보면 이따금 ‘어린이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을 봅니다. 거기에는 차량이 진입할수 없게 ‘차량출입금지’ 라는 표지가 붙었습니다. 차들이 들어갈 수 없게 통제를 함으로 어린 아이들이 마음껏 쉬고 뛰고 다녀도 교통사고가 없는 안전지대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 민수기 35:9~34에 보면 도피성제도가 나오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부지중에 저지른 죄나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든 제도가 도피성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악의가 없이 죄를 저질렀을 때 또한 고의가 없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범했을 때 사람의 생명을 지키고 계속적인 보복으로 가나안 축복의 땅에 고귀한 생명의 피를 흘리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요단강 동편에 3곳 서편에 3곳 모두 6개의 성읍에 도피성제도를 만들어 도피성으로 피하게 되면 어느 누구든지 도피성안에 있는 한 그는 생명을 보호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약의 도피성 제도인 것입니다.
보호구역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가장 안전한 지대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에 엿새 동안 매일 아침에 직장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모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쉴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집이 있어도 집으로 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루종일 활동을 하다가도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내 가족이 있고 거기에 안식과 참 쉼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를 잠재우고 엄마가 시장을 갔습니다. 아이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잠을 자다가 깨었는데 엄마가 없으니까 엉엉 웁니다. 손에 먹을 것을 쥐어주고 장난감을 쥐어 주어도 계속 웁니다. 그런데 엄마가 시장에 갔다 오면서 문을 열고 아가야 하고 부르니까 장난감이고 먹을 것이고 다 팽개치고 엄마 품에 안기면서 울음을 뚝 그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의 품에 안길 때까지는 이땅에는 어딜 가보아도 참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품안에 안길 때 참 평안이 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안에서 참 안식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위에는 참 안전한 곳이 없습니다. 사고도 많고 재난도 많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경호원들을 세워놓고 아무나 출입을 못하게 하였던 청와대의 궁정동 방안에서도 한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총탄에 쓸어졌습니다. 아무리 경호원을 세워놓고 병사들이 총을 가지고 문을 지킨다고 하여서 그 곳이 안전한 곳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안전하고 진정한 참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예수안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에는 참안식과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 예수 안에 있을 때 자유함이 있습니다.
갈5:1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하시며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것은 그 당시에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율법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내게로 와서 복음이 무엇인지 깨닫고 진리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거운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이 되고 그리고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고 하였습니다.(요8:32)
예수님은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안에 있으면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8:36에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눅4:18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고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하여서 이 땅위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고후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예수님은 우리를 어디에서 자유케 해주시는가요? 롬6:22을 보면 먼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자유함을 주시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갈3:13을 보면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자유함을 주셨고 눅10:19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사탄이 너희를 해 할 수 없게 사탄의 결박에서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탄에 속한 자가 아니라 마귀의 일을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로 모든 것에 자유함을 입은 자유인 이라는 것입니다.(요일3:8)
오늘 우리는 예수 안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 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안에 진정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죄와 율법의 무거운 명에를 메고 억압 속에 사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안에 진리를 깨닫고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를 안 이후에는 자기 앞에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하면서 예수 안에서 바울은 모든 율법과 죄와 사망에서 자유 함을 누렸습니다.
2차대전 당시 유럽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근무했던 군의관들이 새롭게 만들어낸 병명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가시철망 병이라는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리면 우울해지고 먹어도 소화가 안되고 정신도 극도로 쇠약해져서 모든 것을 귀찮아하고 누워만 있으려고 하는데 그 병의 원인도 모를 뿐만 아니라 치료방법도 없다는 것입니다. 포로수용소에 오랫동안 가시철망에 갇혀서 자유를 빼앗기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소망이나 어떤 기대도 있을 수 없고 매일 생활이 불평과 불만만 가득차 있어서 정신마저 가시철망에 갇히게 된 억압 속에서 생겨지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포로수용소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모조리 가시철망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에 걸리어 자기 자신의 몸 자체도 가누지를 못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열심히 일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온종일 억압된 가시철망만 바라보고 한을 품고 한숨을 쉬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가시철망병에 걸렸고 눈을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자유를 누릴 때가 있겠지 하면서 고향도 그려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도 생각해본 사람들은 가시철망병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수용소 안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환경속에 살면서도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환자가 될 수도 있고 건강하게 살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현대인들은 어떻게 보면 수많은 여러종류의 가시철망을 쳐놓고 그안에서 살고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어떤 사람들은 정신질환으로 고생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밝은 인생을 살 수도 있고 어둡운 인생을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시고 개선가를 부르시고 우리를 자유케하시며 자유를 주신 예수안에서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3) 예수안에 있을 때 영생을 얻습니다.
요한복음 6:68을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런 고백을 하십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으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그렇습니다. 영생은 주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요한10:28 “내가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하겠다고” 하였고
요한일서5:11에는 “영생의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으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17:3에는 영생은 이것이니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까요?
요한복음 3:15을보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으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자가 영생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즉 생명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7: 21절을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주여 하는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시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자들 이라도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말씀을 하시며 내가 도무지 너희를 모른다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 영생을 얻을수가 있다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 입니까?
요한 6:40을 보면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뜻은 믿는자가 되는것이고 그리고 믿을 때에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럼 여기 믿는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에게 나의 모든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연합된 상태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요한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은 여러분 안에 예수의 생명을 갖고 있는지요? 예수의 영을 가진 자는 생명이 있는 자요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여기 똑 같은 계란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유정란이고 다른 하나는 무정란입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 똑같으나 암탉이 21일 동안 품고 있을 때 생명이 있는 유정란에서는 병아리가 깨어 나오지만 무정란에서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썩고 말 것입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납니까?
똑같은 계란인데 하나는 병아리가 나오고 다른 하나는 썩고 맙니까? 생명이 있고 없는자의 차이입니다.
예수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으면 생명이 있고 예수가 없으면 영생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예수 안에 있을 때 속죄함을 얻습니다.
로마서3:23을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하였습니다. 롬3:10을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들이 범죄한 죄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사망이 왔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죄와 허물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 주심으로 죄에서 우리를 살리셨고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2을 보면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다고 했는데 피를 흘려 주심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53:6 우리의 모든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담당해 주시고 죽을 생명을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 죽을 몸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셔 죽으심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6.25때 일이었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나온 한 어머니가 등에 어린아이를 업고 피난을 나오는데 인민군이 기관총 사격을 하니까 어머니가 자식을 살리기 위하여서 품안에 품고 엎드렸습니다. 등에 업으면 자식이 총탄에 맞을 까봐 품에 안고 엎드렸는데 어머니는 총탄에 맞아 죽었는데 어린아이는 살아있었습니다. 우리 국군이 전투현장을 확인하다가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까 어머니의 가슴 속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데려다가 국군아저씨는 고아원에 맡겨놓고 이따금 아이의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철이 들자 아이를 데리고 어머니 무덤을 찾아가 알려주면서 너희 어머니께서 피난을 나오실 때 기관총 사격을 받았는데 너를 살리기 위하여 품에 안고 죽으셨단다 하고 설명을 하였습니다. 이 아이는 이야기를 다 듣더니만 어머니 무덤에 엎드려 울면서 “어머니 내가 산 것은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하여서 수없는 총탄을 대신 맞으시고 나를 살리셨으니 내가 이렇게 산 것은 어머니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 때부터 이아들은 늘 마음속에 생각하기를 내가 산 것은 어머니의 은혜이다. 자나 깨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피가 그에게 흐르고 어머니의 심장이 그에게서 뛰었습니다. 자나 깨나 어머니만을 생각하고 내가 이렇게 산 것은 어머니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의 생일을 6.25일로 하고 어머니를 위하여 장학금을 만들고 어머니의 이름으로 선한 사업을 하면서 모든 기념사업은 어머니가 살려주셨기 때문에 어머니의 이름으로 모든 영광을 어머니께 돌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산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 우이제일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이름으로 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목마른 자도 오라고 부르십니다. 병든 자도 오라고 부르십니다. 외롭고 고독한 자도 예수앞에 나와서 참 평안을 얻으라고 부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안식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참 자유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영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속죄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새로 교회에 나오신 분들이 계십니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내마음속에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자유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인생의 지치고 힘든 모든 짐들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예수님 앞에 나와 참된 안식과 쉼을 얻으시는 복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출처 : 부르짖는 기도
글쓴이 : 이국태 원글보기
메모 :